이 모든 것이 다만 한 늙은 여자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을 바라보면 또다시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인디언 마을이 나타나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안다. 우리 인디언의 삶의 방식은 영원히 가버렸다는 것을.

북부 대평원에서 들소가 사라짐으로써 1883년과 그 이듬해 겨울 6백 명의 블랙푸트 족 인디언들이 굶어 죽었다. 그 ‘굶어 죽은 겨울’, 부싯돌 칼(플린트 나이프)은 죽기 전에 이렇게 자신의 소망을 피력했다.

"얼굴 흰 자들이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인디언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필요 없었다. 우리에게는 눈부신 현실 세계가 있었다. 이 대륙 전체가 하나의 낙원이었다. 달러가 무엇인지도, 커피와 위스키가 무엇인지도 우리는 몰랐다. 여러 부족이 있었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다.

그 대신 우리는 운디드니 대학살을 맞이했다. 백인들은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 그 슬픔이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채우며 흐르고 있다. 그것이 그곳에 있다. 흰 눈 속에서 죽어 간 아름다운 꿈이. 한 종족의 꿈이.

우리는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땅을 팔거나 사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 부족에서 오래전부터 금지되어 온 일이다. 누구도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대지를 잘 보호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얼굴 흰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은 사냥감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새끼를 번식시키거나 훗날을 생각하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얼굴 흰 자들은 동물을 보살피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돈만을 추구한다. 한 장소에서 사냥감을 다 죽이면 기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똑같은 식으로 사냥했다.

우리 부족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긴 기다란 집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배웠으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을 깨우쳤다.

"아들아, 위대한 정령께서는 그 물고기들을 너의 형제로 만드셨고, 네가 배고플 때 너의 허기를 채울 수 있게 하셨다. 따라서 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재미로 그들을 죽여선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네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만 한다.’

인디언들의 문화는 우정과 인간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개인의 소유와 욕망은 그다지 평가받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고 불신을 낳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문화는 커다란 공동체 문화였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던가? 물에 그만큼 신경을 썼던가?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자유를 주었던가? 내 손자들을 위해 할 일을 다했던가?

죽음은 쓸모 있으면서 낭비이기도 하고, 비극이면서 행복이다. 그것은 모든 것에 있으며, 모든 것 그 자체다.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왜 늑대들이 내 성스러운 노래에 응답하지 않는가를. 늑대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내 가슴은 눈물로 가득했다. 더 이상 내 손자에게 더 이상 우리의 과거에 대한 믿음을 심어 줄 수가 없었다.

무법 지대 서부는 백인들이 침입해 만든 무법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언제나 정의의 백인이 등장해 인디언들을 소탕하고 법과 질서를 세우는 내용을 줄거리로 삼았다.

"지금 이 순간도 백인들의 이야기책과 할리우드 영화들은 인디언들을 형편없는 야만인으로 그리고 있다. 인디언들은 여전히 머리 가죽을 벗겨 가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백인들이 자신들이 죽인 인디언 숫자대로 포상금을 받기 위해 도입한 전통이다."

미국의 달러 지폐에는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라고 적혀 있다. 인디언들은 그것에 대해 실수로 한 글자가 빠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황금을 신뢰한다IN GOLD WE TRUST’라고 고쳐야 백인들의 정신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에는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또는 평등하다는 단어 자체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등하며, 그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인들이 이곳에 온 이후부터 삶이 매우 복잡해졌다. 모든 것이 고통으로 변해 버렸다.

알라니스 오봄사윈_아베나키 족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인디언들이 백인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중요한 이유로, 천성적으로 타고난 그들의 자유 정신을 꼽는다.

그들은 다양성의 꽃이라는 민주주의를 말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것이다. 인디언 전사들은 억압된 통제와 규율 속에서 발달한 다른 종족의 군대들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자유 전사의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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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州 11월셋째주 예정
1일차: 구마모토 熊本 阿蘇 阿蘇山
2일차: 나가사키 長崎 어딘가
3일차: 후쿠오카 福岡 由布市 由布岳
4일차: 歸國

今回 日本 九州 旅行: 登山

이 책들엔 없다.

1. 아소산 (출처: 나무위키)
아소산(阿あ蘇そ山さん)은 일본 규슈 지방 중앙부, 구마모토현의 아소시(阿蘇市), 아소군 (阿蘇郡) 및 키쿠치시(菊池市) 일대에 위치한 활화산이자 복합화산(complex volcano). 최고봉인 다카다케(高岳; 1,592 m)와 현재 활동 중인 분화구가 있는 나카다케(中岳; 1,506m), 네코다케(根子岳), 에보시다케 (烏帽子岳), 기시마다케 (杵島岳)의 5개 봉우리(아소오악) 및 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륜산(外輪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소산의 거대한 칼데라는 동서 16km, 남북 27km에 달한다. 아소시를 둘러싸고 있는 외륜산까지의 분지 지형이 칼데라인데, 이는 과거 화산 폭발로 붕괴된 지형이다. 흔히 아소산이라 부르는 오악은 아소산의 칼데라 안에 새로 생긴 중앙화구구(中央火口丘)로, 거대한 화산이 붕괴되어 만들어진 칼데라 이후 새로 형성된 신생 화산이다. 따라서 아소산은 복합 화산 구조이다.
‘불의 나라(火の国)‘라는 별명이 있는 구마모토의 상징이다. 1934년 나카다케를 중심으로 국립공원인 아소 국립공원 (阿蘇国立公園)이 지정된 이후, 1986년 아소쿠주 국립공원(阿蘇くじゅう国立公園) 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2. 유포악 유후다케(출처: 구글 짜깁기)
유후인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산으로 유후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환경 속에서 산악 트래킹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두 개의 트래킹 코스
유후다케의 정상은 해발 1,580m가 넘는 높이의 동봉과 서봉 2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봉은 일반적인 트래킹 코스를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으나 서봉은 체인을 잡고 암벽을 타야 하는, 상급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로 오를 수 있다. 해발 1,584m의 유후다케는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에서 ˝분고후지˝라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미야마키리시마(철쭉꽂)와 단풍, 무빙으로 연중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인기의 산으로, 산 정상에서 유후인 마을을 비롯해 벳푸만, 구쥬 연산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태양을 등지고 섰을 때 자신의 그림자가 전방의 구름과 안개로 거대하게 비치고, 그 주위에 색깔 있는 빛 고리가 보이는 ˝브로켄 현상˝을 체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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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흘린 눈물만 모아도 가뭄은 없다

후아니타 센테노 추마쉬 족

우리는 산 위로 올라가서 겨자 열매를 구해 온다. 하지만 이제는 공해와 독소 때문에 두세 번 끓여야만 먹을 수 있다. 옛날의 그 건강하던 열매와 약초들은 이제 구경하기 어렵다.

시냇물조차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목장의 소들 때문에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맥들이 다 끊겼다. 물은 냄새가 나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오늘날에는 의사가 진통제 알약을 준다. 모든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지만, 이곳은 우리 땅이 아니다. 이곳은 연방 정부의 땅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곳을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이곳에는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다.

고고학자들이 와서 인디언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그 경계선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인디언들에게는 경계선이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자유로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좀 더 자유롭게 저 산과 언덕들을 거닐고,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살던 시절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도록.

자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그냥 자유로웠다. 자유라는 단어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발전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았고, 날마다 성장했다.

내가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다. 우리 부족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도 그 자체로 행복하게 살았다.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아서 날이 가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흘린 눈물을 한곳에 모을 수만 있다면 가뭄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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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P126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두름의 굴비 한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 - P126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P128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P128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P130

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P230

잘린 체게바라의 손에서 지문을 채취하던
CIA 요원 홀리오 가르시아도
지금쯤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 P233

벚꽃 아래 누우니
꽃잎마다 그늘이고
그늘마다 상처다
다정한 세월이여!
꽃 진 자리에 가서 벌서자.. - P235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P236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 P132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P132

며칠 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 P136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 P138

오 하얀 수면이여, 너 참 아름답구나!
가벼운 추위가 내 피를 덥게 하고 있다!
못 견디게 내 몸뚱이에 꼭 그러안고 싶어지누나
자작나무의 드러난 가슴을

오, 숲의 조는 듯한 뿌연함이여!
오, 눈에 덮인 밭의 쾌활함이여!
못 견디게 두 손을 모으고 싶어지누나
버들의 나무 허벅다리 위에서. - P142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P140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 P146

이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지하에
붉은 열을 내려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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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경이 필요 없다. 어떤 형태의 종교 조직도 필요 없다. 나는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바라본다. 우리는 ‘숨을 주는 이’를 믿는다. 당신이 그분을 어떻게 부르든, 내게는 모두 같다.

편안하게 와닿는 것이 인위적인 것보다 사람의 본성에 한결 어울리는 법이다. 당신들이 왜 그것을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

큰 각반(빅 레깅)_오지브웨 족

오래전 우리 부족에는 교육이라는 게 없었다. 책도 없고 교사도 없었다. 모든 지혜와 가르침은 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그 꿈을 시험해 보았으며, 그런 식으로 우리가 가진 힘을 배웠다.

치페와 족의 어른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소위 교육받은 바보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삶을 사랑하라 가르치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분임을 가르친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그것들을 배울 때, 아이들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대신 온갖 것들을 암기할 뿐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창조성, 꿈꾸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자넷 맥클라우드_툴라립 족

넌 누구지? 넌 도대체 누구지?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인디언이라고.

프란시스 바질_뉴멕시코 산타페 출신으로, 16세 이하 시 부문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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