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소설가 마틴 케이딘Martin Caidin은사고로 두 다리와 한 팔, 그리고 한쪽 눈을 잃은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주인공이등장하는 소설 『사이보그』를 썼다. 큰 인기를 얻은 이 소설은 ‘600만 불의 사나이‘라는 제목의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 방영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600만불의 사나이‘가 인기를 끌면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시리즈 ‘바이오닉 우먼‘이 나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소머즈‘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소머즈는 뛰어난 청각을 소유해서 재능을 발휘하는 여성 사이보그이다. 소머즈와 600만 불의 사나이는  같이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둘이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만나는 모든 외계민족을 자신들처럼 보그화시켜버리는 이들은 외계를 정복하며 적과 싸울 때 딱 한 마디만 한다.
"저항은 무의미하다Resistance is futile.
실로 무시무시한 사이보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란 존재도 언제 죽을지모르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도 인간은 매일 죽음을 안고 사는 존재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로이배티가 자신의 수명이 너무 짧다고 하자 이들의 창조주나 마찬가지인 타이렐 박사는그에게 레플리컨트의 삶은 목적에 충실한, 짧지만 불꽃같은 삶이니 그 삶에 만족하라고 한다.

나는 네가 상상하지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그 기억이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불길한 로봇이 주인을 공격하고, 머리를 먹으려고 했다.
로봇 진공청소기가 여인을 잡아먹었다.
 
외신 보도에서는 놀랍게도 로봇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처럼 묘사한 기사 제목이 많았다.

인간이 만든 대상이 결국 인간의 손으로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는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로봇에 대한 두려움, 로봇의 제0법칙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최고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화해를 한다. 여기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노동자와 지배자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하며, 그 중재자는 마리아나 프레더처럼 선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재자가 로봇 마리아처럼 미쳐 날뛰는 존재일 경우에는 양쪽 사람들이 모두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유명한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최초로 로봇의 3가지 원칙을 얘기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할 때를 제외하고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로봇에는 두 가지 프로토콜protocol이 입력되어 있다. 첫 번째는 어떤 생명체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 두 번째는 아시모프의 법칙과는 다른 것으로, 다른 어떤 로봇도 건드려서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스트롬이 『초지능』에서 말했듯이 AI는 인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정들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공명하는 것이다.

모던보이의 눈에 비친 기이한 과학
경이의 대상, 문명의 상징으로서의 전기
영국의 과학자 출신 작가 찰스 스노가 ‘두 문화two cultures’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1959년이었다. 그는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문화와 문학으로 대표되는 인문 문화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런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그중 하나는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접점들을 찾아서 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과학은 바로 힘이자 문명이었으니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되는 이인직의 『혈의 누』(1906)에는 주인공 옥련이 일본에서 신문명을 접하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다. 이인직은 일본의 문명을 "이층 삼층집이 구름 속에 들어간 듯"과 같이 묘사하면서 비약과 과장으로 그려냈는데, 이는 신문명을 처음 접한 주인공이 느꼈을 경이감을 전달하는 데에는 더없이 효과적인 수사였다.

이러한 변화는 더 큰 변화인 도시화, 문명화의 일부였다. 그는 "사방에 반작 반작 전기등"이 켜지고 전차와 인력거 소리가 도시에 울려퍼지는 것을 묘사하면서, 도시의 소리가 곧 문명의 소리라고 감탄했다.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서 목사인 상훈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다른 손님들과 시비가 붙어 파출소에 끌려가면서 겁을 벌벌 내는데, 그는 그 이유를 "낮같이 밝은 전등불이 눈 위에 반사되어 끌려가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한층 더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는 서울에서 유곽에 들른 윤직원 영감의 아들 종수가 방에 들어온 기생이 부친의 둘째 첩 옥화라는 걸 알게 되는 장면이 있다. 종수는 밤에도 방 안을 환히 밝혀주는 전등 덕에 옥화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밤에 불을 가진 것이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럽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안드로메다은하에도 태양과 같은 항성이 수천 억~1조 개 정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럼 우주에는 다른 은하계가 몇 개쯤 존재할까? 적어도 1000억 개 정도는 존재할 것이라 가늠해볼 수 있었는데, 그 수는 차츰 늘어나 2000억 개 정도가 되었다가 2016년에 발표된 이론에 따르면 2조 개로 대폭 늘어났다. 우주는 광활하다. 아니 광활하다는 말로는 묘사하기 힘든 것이 우주의 실체이다.

칼 세이건은 우주 어딘가에 고등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우주가 너무나 광활하기 때문이다. 이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있는 행성에는 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물이 있다면 원시 생명체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문과에 속했던 사람이든 이과에 속했던 사람이든, 고등학교 시절 끙끙대면서 배운 미적분이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서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봤을 것이다. 충만한 삶을 사는 데 미적분이 필요할까? 과연 도덕적인 삶을 사는 데 과학이, 수학이, 양자역학이 필요할까?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 우리가 우주의 먼지라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우리가 꼭 우주, 진화, 물리학을 알아야 하는 걸까?

문과에 속했던 사람이든 이과에 속했던 사람이든, 고등학교 시절 끙끙대면서 배운 미적분이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서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봤을 것이다. 충만한 삶을 사는 데 미적분이 필요할까? 과연 도덕적인 삶을 사는 데 과학이, 수학이, 양자역학이 필요할까?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 우리가 우주의 먼지라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우리가 꼭 우주, 진화, 물리학을 알아야 하는 걸까?

살인청부업자인 톰 크루즈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수백만 은하계와 수천만의 별들 중 한순간 반짝 하는 점 하나, 그게 우리다. 우주의 미아에 불과한 우리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이 지금 죽건 늙어서 죽건 별 차이 없다." 이에 택시운전사는 살인청부업자의 말에 반박하고, 그때부터 이 둘의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과학적) 사실로부터 가치, 윤리, 도덕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없다"라는 문장이 낯설지 않다. 동시에 우리는 과학과 인문・예술은 상호보완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는 사실, 후자는 당위를 다룬다는 의미에서이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과학과 인문학을 한 테두리 안에 두기보다는 과학의 영역, 인문학의 영역이 각각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이 상호보완적이다"라는 취지의 언급을 맨 처음 했던 철학자는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였다.

갈릴레오는 그 편지를 받고 "당신이 맞다. 그런데 당신의 실험이 내 이론을 틀렸다고 논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 이론적 증명은 저항이 없는 공간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답을 했다.

갈릴레오는 관성의 법칙이나 자유낙하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런 법칙은 자연에서 찾아질 수 없다. 그는 마찰이 없는 평면, 저항이 없는 공간을 상상함으로써 이런 법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법칙이 만족되는 상황을 창조해낸 것이다.

뉴턴은 지난 1000년간 존재했던 과학자 중 가장 천재적인 과학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뉴턴 이전 시대에 살았던 천문학자 케플러는 행성들이 태양을 타원의 형태로 돈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튀코 브라헤Tycho Brahe의 정확한 관측 결과를 이용해서 행성의 궤도가 원이라는 오래된 관념을 처음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칼 세이건은 그렇듯 멀리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다 보면 지구상에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심지어 서로의 이념과 명분에 ‘목숨을 거는’ 행위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죽은 모든 사람들이 그 하나의 점 위에 살았고, 지금 종교 때문에,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모두가 그 점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우리의 오만, 내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망상은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 한 장으로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되면 우리의 삶의 터전인 희미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주에 그렇게 많은 별이 있고, 그렇게 다양한 조건을 가진 별들이 많이 존재할 수 있는데, 왜 고등 생명체의 흔적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은 이렇다. 사람이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많은 종들이 멸종한다. 특히 최상위 포식자들이 가장 빨리 멸종하기 마련이다. 공룡도 그렇게 멸종했다. 환경이 바뀌었을 때 멸종하고 말았다. 인간이 100만 년을 더 살 수 있을까? 인류의 문명은 앞으로 고작해야 수천 년 정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지구 나이가 50억 년 정도이니 수천 년이라는 시간은 한 점에 불과하다.

인간이 전자기파, 즉 전파를 발견한 것이 100여 년 전이고, 우주로 전파를 쏜 것은 불과 몇 십 년이 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행성에서 고등 생명체가 전파를 발견한 뒤에 수천 년 정도 더 생존하다가 멸종되었다고 생각하면, 인간과 비슷한 모든 고등 생명체는 점 정도에 불과한 기간을 살다 소멸하는 것이다. 고등 생물체가 소멸한 이유는 핵에너지를 잘못 관리해서이다. 오만해서인 것이다.

다른 행성에서 비슷한 생물체가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었고 과학을 발전시켜서 원자 에너지를 사용하다가 핵전쟁이 발발해서 절멸되었다면, 우주에 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고등 생명체가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왜 인간이 수십 년 동안 메시지를 보내도 왜 답이 없는지 말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성찰하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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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의사였던 존 불워John Bulwer는 동물이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이를 해독하지 못할 뿐이라고 하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제스처들이 동물 언어의 흔적이라고 해석했다.

몽테뉴는 동물이 이성, 예지력, 언어를 가지고 있고 동정, 공감, 즐거움, 사랑, 증오, 질투, 탐욕, 복수, 슬픔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정도 차이에 불과한 것이지 본질에서의 차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 도덕적인 동물, 비도덕적인 여성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의 4부에서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들른 왕국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역전된 곳이다.

왕국을 지배하는 존재는 휴이넘이라는 말이었고, 이 왕국에서 휴이넘을 위해 봉사하는 동물은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야후였다.

걸리버는 이 왕국의 동물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 놀라고, 자신이 야후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중 하나는 당시 영국 사회가 흑인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걸리버가 살던 시대에 인간이 말을 잔인하게 취급한 것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는 것인데, 후자의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거꾸로 머리가 커지고 주둥이가 덜 튀어나온 고등 동물일수록 안면각이 90도에 가깝게 커진다. 하등 동물일수록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 먹는 것만 탐하는 존재이며, 고등할수록 먹는 것에 대한 탐욕이 줄고, 머리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안면각이 커지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주했을 때 그곳에 살던 키가 작고 팔이 긴 원주민들을 마치 동물을 사냥하듯 잡아서 죽이곤 했는데, 기록을 보면 유럽인들은 이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야만스럽지만 아름다운 것처럼, 백인 여성들은 열등하지만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분명히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괜찮은 사회,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일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진다든지 아니면 조금 다른 용어로 사회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져서 아주 많은 돈을 버는 소수의 사람들과 일자리가 없는 다수의 사람들로 세상이 양극화될 가능성을 크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야말로 (소수에게는) 유토피아와 (다수에게는) 디스토피아의 공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모어는 ‘좋은 곳’이라는 뜻의 ‘eu-topia’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의 ‘ou-topia’를 동시에 나타내는 중의적 개념으로 유토피아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뜻하게 되었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의 반대말로, 상당히 끔찍한 미래의 어떤 사회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접두어 ‘dys’는 ‘나쁜’, ‘고된’이란 뜻이다. 디스토피아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말로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표현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기계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디스토피아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널리 사용되었다.

이런 절벽과 암초 덕분에 유토피아는 외지로부터 상당히 격리된 자기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꾸려올 수 있었다. 유토피아 그림과 설명을 보면 유토피아 왕국의 모양은 흡사 여성의 성기와 유사하다. 유토피아적 자궁utopian womb이라고 해서 인간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가장 편안한 장소로 기획된 것이다.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이롭게할 것인가.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선사하는 것이 진정한 유토피아인지,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디스토피아인지 누구도 가늠하기 힘든 현실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는사실뿐.

우월한 유전자만살아남는 세상
자폐증 원숭이와 몸짱 돼지, ‘유전자가위’의 혁명이 시작되다

바이러스는 사람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박테리아도 공격한다. 그런데 박테리아들은 바이러스에 공격을 당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이를 이겨낸다.

GMO에 대한 두려움, 조작을 넘어서다
유전자 연구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가 <옥자>이다. 옥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슈퍼돼지의 이름이다.

열등한 삶을 비난한, 우생학의 숨은 역사

심각한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릴 때 안락사시키자는 법안이 통과됐고, ‘살 가치가 없는 삶unworthy lives’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다.

처음에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시행되던 안락사 법은 1939년에는 3세까지로 넓혀졌고, 1941년에는 17세까지로 그 해당 연령이 높아졌다. 그 이후로는 모든 기형 환자와 동성애자, 유대인으로 범위가 확장됐다.

이렇게 해서 2차 세계대전 동안의 홀로코스트,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이 대학살로 6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잃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서 우생학이 한국에 들어왔다. 1933년 조선 우생협회라는 학회가 생겼고,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윤치호, 여운형, 주요한, 김성수, 이광수 등이 이 학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우생》이라는 잡지를 발간해서 우생학 프로그램을 널리 알렸다.

그런데 우생학 비판론자들은 사회가 더 이상 우생학을 강요하지 않는 이유가 개인이 알아서 검사와 유산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양수검사 자체가 과거 우생학의 개인 버전personal version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영화제목 가타카GATTACA는 영화에 나오는 우주항공회사의 이름인데, 이 이름은 구아닌(G), 아데닌(A), 티민(T), 씨토신(C)같은 DNA를 이루는 염기의 명칭을 조합한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DNA의 이중나선 모양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유전자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나니?
사람들의 전장유전체 시퀀싱 whole genome sequencing정보를 가장 알고 싶어 하는 회사들은 보험회사들이다. 미국의 국민들은 대부분 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국가의 의료보험에 자동 가입되는 우리나라에도 현재 실비보험, 암보험 같은 사보험이 늘고 있다. 보험회사는 질병 발병률이 높은사람들은 미리 걸러내거나 상당히 높은 보험료를 매기려 하고, 이를 위해 개개인의 의료정보를 알아내고자 한다. 

유전자는 결코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
언젠가 ‘캐나다의 이력서에 없는 것‘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우선 캐나다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안 붙인다. 따라서 지원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알 수 없다. 또 나이를 쓰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나이는 취직한 이후에도 비밀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차별당할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젊은 사람을 원할 것이기에 그렇다.

영화에서 빈센트 프리맨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는데, 빈센트가 완벽하지않다는 것을 여자친구가 알게 되면서 둘은 갈등하게 된다. 이때 빈센트는, 자기는 의사가 30년 산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고 고백한다. 유전적 확률이 우리의 운명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혈압 높은 환자가 고혈압 약을 먹고 당뇨 환자가 인슐린 억제제를 먹는 것도 일종의 화학적 제품을 몸속에 주입하는 것이기때문에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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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 P36

우리가 이제 떠나려는 탐험에는 회의의 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앞에 놓인 탐험은 상상력 없이는 단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여정의 연속일 것이다. 회의의 정신은 공상과 실제를 분간할 줄 알게 하여 억측의 실현성 여부를 검증해 준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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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인 칸트는 여자의 이해력이 "추상적인 사색이나 지식"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근거에서 여자가 형이상학과 수학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여자들의 역할은 점진적으로 자녀양육, 가족 돌보기 등 집안일에 관련된 가족의 문제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여겨졌고, 여성과 남성의 성은 ‘상보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남녀 차이를 강조하는 과학은 충분히 과학적일까?
남녀 차이를 유포하는 주장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제시되었지만, 충분히 과학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근대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을 목도하면서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가 세상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는 창의성의 원천으로 누구나가 차이와 다양성을 꼽고 있다. 이렇게 차이는 소중한 것이다.

종교와 기술의 관계를 연구했던 기술사학자 린 화이트 주니어 Lynn WhiteJr. 20세기 서양의 환경 위기가 인간이 동식물을 포함한 환경을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다는 기독교적인 생각에서 연유했다고 주장했다. 즉 20세기 환경 위기의 가장 중요한 뿌리가 인간이 다른 존재들을 마음대로지배할 수 있다는 기독교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기독교 내의 반론이 이어졌다. 성경은 인간과 다른 동식물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설파하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고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식물의 생장의 영혼 : 영양섭취, 성장, 생식
- 동물의 민감한 영혼 : 영양섭취, 성장, 생식+ 
민감한 지식, 본능
- 인간의 합리적 영혼 : 영양섭취, 성장, 생식+ 
민감한 지식, 본능 + 이해, 의지

동물 학대의 근거,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
동물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질적인 차이를 강조한 기독교의 입장은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에 의해서 재확인되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세상에는 물질과 영혼이 존재하는데, 사유하고 의심할 줄 아는 인간에게만 영혼(마음)이 있었다. 물질의 속성은 운동하는 것이고, 영혼의 속성은 사유하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육체와 영혼과의 접점이 뇌 속에 있는 송과선이라는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영혼을 통해 육체를 움직일 수 있다.

반면 동물의 육체는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자동적으로, 영혼 없이 움직인다. 즉 동물은 그 자체로 복잡한 기계, 복잡한 자동인형automata에 불과하다. 인간의 육체도 자동인형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 기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bête machine은 영혼/물질의 이분법이 자연세계에 적용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유도되는 결론이었다. 동물기계론에 따르면 동물은 영혼이 없고, 생각이나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은 물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다.

동물은 기계가 아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이 동물을 고문하고 해부할 때,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학자들 중에서는 동물에게 이성이 없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고통은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동물에게황산을 주사하는 것 같은 실험을 하면 동물이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는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신이 동물의 여러 기관들을괜히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동물도 신의 피조물임을 감안하면 동물에게도 느끼고, 기억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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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1957년에 쓴 자신의 저서 『핵무기와 국제정치Nuclear weapon and foreign policy』에서 제한적인 핵전쟁은 당연히 치러질 수 있으니 미국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주장의 절정이 1962년 발간된 『열핵전쟁On thermonuclear war』이라는 핵 전략가 허만 칸Herman Kahn의 책이다.

핵 전략을 잘 짜서 전쟁할 경우에 소련은 거의 궤멸할 정도의 피해를 보지만, 미국은 불과(!) 6000만 명만이 사망할 뿐이기 때문이다.

허만 칸의 주장의 요지는 핵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핵전쟁도 할 만한 전쟁이라고 주장한 허만 칸의 책은 미국 최고의 학술 출판사인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예술"

당시 핵전략 중 하나로 상호확증파괴전략 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전략은 쉽게 말해 끝장을 보자는 것이으니, 전략의 이름도 그에 걸맞은 ‘매드’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상황을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치킨게임에 비유했다. 치킨게임이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자동차가 좁은 길에서 서로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돌려 돌진하는 차를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무서워 핸들을 돌리면 겁쟁이라고 해서 치킨게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핵경쟁이 이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 상황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묘사된다. 영화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핵전쟁을 억제하는 전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는 미친 과학

소련의 최후 병기 둠스데이 머신은 원자폭탄이 터지면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런 자동화 기능을 만들었는지를 묻는 대통령에게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대답한다. 취소할 수 없는 게 둠스데이 머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고 역할인 바, 적이 핵미사일 한 개를 발사했는데 우리는 핵미사일 1만 개를 발사한다는 결정은 인간이 내리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결정이어서 이를 자동화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기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이 기계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들이 서로 간에 상승작용을 이루면서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다.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당시 냉전의 두 주체인 미국과 소련에 대한 풍자나 비판을 넘어서 핵무기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당시까지 진보의 상징이었던 과학과 그것을 이룩한 과학자에 대한 맹신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는 마리 퀴리Marie Curie이다. 1867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소녀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Maria Skłodowska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되었다. 그녀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노벨상을 수상한 첫 번째 여성이 됐고, 1911년에 단독 노벨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게다가 남녀를 통틀어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마리 퀴리가 유일하다.

그녀는 또한 파리 소르본대학교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고, 1995년에는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이 안장되는 파리의 팡테옹에 묻히는 첫 번째 여성이 되었다. 그녀의 연구는 방사능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열었으며, 이런 업적 때문에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퀴륨에 역시 퀴리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과학자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머리(영혼, 이성)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과학자는 이성과 감정, 그리고 욕망을 가진 인간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래서 과학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결과물이다.

사이비과학의오래된 역사
 
세상을 보는 극단의 시선, 이분법

오랜 세월, 여성은 자연의 괴물이었으니

우리는 근대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을 목도하면서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가 세상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는 창의성의 원천으로 누구나가 차이와 다양성을 꼽고 있다. 이렇게 차이는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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