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왠지 저 사람이 무섭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눈으로 들어와 코로 빠져나가는25) 영리함이 제게는 뭣보다 두려운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시골사람들이 질투하는 걸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또 그렇게 생각되어도 할 수 없지만 무서운 건 역시 무섭다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사토무라 신타로 씨 같은 사람도…….

눈으로 들어와 코로 빠져나간다(眼から鼻へ拔ける): 나라시대, 대불전의 완성이 임박했을 즈음, 대불상의 한쪽 눈이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공 하나가 불상의 안쪽에서 눈을 붙이고 나서 콧구멍으로 빠져나온 것을, 아래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 ‘영리하고 기지가 풍부하다’는 의미.

"그래요, 그렇다면 저도 기쁘지만……. 어쨌든 사람은 겉보기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니 이제 앞으로는 서로 조심하기로 해요."

사람이란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있을 때는 좀처럼 속에 있는 것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지만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평소 속에 감춰두고 있던 것이 무심코 얼굴에 나오는 법이다. 그때 신타로가 그러했다. 게다가 그런 신타로의 얼굴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어떻게 구제할 길이 없을 만큼 어둡고 참혹하고 흉포한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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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 인간 특유의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면서 미야코 앞에 앉은 것은 나이 오십 전후의, 얼굴도 몸도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마치 요전에 돌아가신 조부와 비슷한 체구의 남자였다. 필경 이 부근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리라. 복장까지 조부와 닮아 있다.

시골사람은 대개 의리가 두텁지만, 바보 취급당하는 것보다는 겉치레 말 한 마디 쪽에 끌리는 게 인정상 당연하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디를 가도 그렇게 의리만 따지고 있을 수 없는 풍조가 넘쳐흐르고 있었고, 엉덩이가 무거운 의사보다도 바지런히 움직여주는 의사 쪽이 고마운 건 무리가 아니다.

마소거간꾼의 마구간 선점이든 의사의 환자쟁탈전이든 시골마을이란 신천지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나는 그때 적잖은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들었다.

"그게 말입죠, 구노 선생의 아라이 선생에 대한 증오란 건 엔간한 정도가 아닙니다요. 어두운 곳에선 도무지 듣고 있기가 힘든 말을 했다니까요. 그래, 저도 생각했던 건데요, 이카와 할아버님에게 독을 먹인 건 구노 선생이 아닐까 하고……."

팔묘촌……. 그것은 마치 양념절구의 맨 밑바닥에 자리한 듯한 모습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산들은 2리(약 8백 미터) 남짓, 각 방향으로 꽤 위쪽까지 경작되어 있었는데 기슭부터 양념절구 바닥에 걸쳐서 논도 볼 수 있었다. 그 논들은 문자 그대로 고양이 이마만큼 작은 면적이었는데 이상한 점은 어떤 논이건 주위에 울짱을 치고 있었다.

소를 쳐서 먹고사는 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목장인 것이란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소는 마을길에 이르는 곳에서 멋대로 자고 있다. 그리고 그 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논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친 거라고 한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돌아가라, 돌아가거라. 여덟무덤신께서 노하실 것이야. 네 놈이 오면 마을은 다시금 피로 더럽혀질 터. 여덟무덤신께서 여덟 명의 제물을 구하실 터. 이놈, 이노옴, 오지 말라는데……. 네놈은 네놈의 아비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느냐. 그것이 첫 번째 제물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둘, 셋, 넷, 다섯……. 이제 곧 여덟 사람이 죽을 것이야. 이놈, 이놈, 이노옴……."

어슴푸레한 황혼녘의 넓은 방에서 두 마리 원숭이 같은 노파가 소리 높여 웃었을 때, 나는 사악 등골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그 만큼 두 사람의 웃음소리에는 지금까지의 온화한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악함과 음험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마침내 이 산속의, 오래된 전설과 생생한 참극의 기억이 떠나지 않는 집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조부인 우시마츠와 형인 히사야의 죽음을 타살로 치고(그것은 이미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으나), 그것과 내가 마을에 돌아온 것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즉 내가 마을로 돌아왔기 때문에, 혹은 돌아올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혹시 내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니, 발견되었다고 해도 마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끝나지는 않았을까.

다지미 가는 약한 사람, 한 사람 몫을 못하는 사람의 집합체니까 한 사람 몫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위압감을 느끼는 거예요. 하물며 신타로 씨 같은 똑똑한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거지요. 즉 고모할머님이나 오빠가 신타로 씨를 미워하는 것은 모두 열등한 사람이 우월한 사람에 대해 갖는 비틀린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인간이 긴장과 흥분에 버티는 힘에는 자연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초월하면 긴장의 실은 툭 끊어지고 흥분의 주머니는 한껏 부풀어터진다. 이런 상태를 쓸개 빠진 상태라고 한다. 나는 그날 밤 쓸개 빠진 상태였다.

나는 그처럼 무서운 아버지를 갖고 있다. 아버지의 체내에 흐르는 저 흉악한 피는 내 체내에도 흐르고 있고 그것은 형태를 바꿔 불처럼 시뻘겋게 타오르는 대신 창백하게 가라앉아 그것이 독살광의 본성을 빚어낸 건 아닐까.

아아, 나는 고독하다.

아무도 내편이 되어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이는 없다. ……고독의 상념이 뼈저리고 안타깝게 가슴에 넘쳐흘렀을 때 갑자기 내 상념을 꿰뚫어본 것처럼,

남자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왠지 저 사람이 무섭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눈으로 들어와 코로 빠져나가는25) 영리함이 제게는 뭣보다 두려운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시골사람들이 질투하는 걸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또 그렇게 생각되어도 할 수 없지만 무서운 건 역시 무섭다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사토무라 신타로 씨 같은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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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의 어머니! 나는 지금까지도 눈을 감을 때마다 일곱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머니만큼 아름다운 부인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손도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작았는데 그 작은 손으로 어머니는 항상 남에게 부탁받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아아, 나는 이제서야 어머니가 발작한 원인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가엾은 어머니! 그처럼 무서운 과거를 지닌 어머니에게는 때때로 그렇게 무서운 악마가 덮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무렵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양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금에야 생각하니 후에 의견충돌이 있어 양아버지 집에서 뛰쳐나오고 결국 화해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뭐라 해도 피를 나누지 않은 부모자식 사이에는 결여된 것이 있었다. 말하자면 보기에는 별로 다르지 않은 요리지만 먹어보면 중요한 조미료가 빠져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게다가 새어머니가 계속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도 왠지 나를 서먹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을 터였다.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상업학교에 갔던 해에 나는 양아버지와 큰 충돌을 일으키고 집을 뛰쳐나와 친구 집에 들어갔다.

나는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금니에 뭔가 낀 듯한, 먹이를 눈앞에 두고 기다려야 하는 개처럼 묘하게 답답한 기분이 드는 동안 닷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갔지만 변호사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이 문제를 그대로 내팽개친 건 아니라는 사실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차츰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 편지는 마치 변소 화장지처럼 거무죽죽한 색을 한, 조악한 싸구려 종이봉투로, 적어도 닛토빌딩 4층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가 쓸 물건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신자명을 쓴 글씨도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몹시 서툴고, 인사말에도 군데군데 뚝뚝 잉크가 번져 있다. 뒷면을 보니 발신자의 이름도 없었다.

팔묘촌에 돌아오면 안 된다. 네가 돌아와도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덟무덤신이 분노하실 것이야. 네가 마을에 돌아오게 되면, 오오, 피! 피! 피다! 26년 전의 대 참사가 다시 되풀이되고, 팔묘촌은 피바다가 될 것이야.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과장을 뒤에 남겨두고 몽유병자처럼 비틀비틀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포와 전율의 세계로 한걸음 내디뎠던 것이다.

미야코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입으로는 일단 신타로를 위해서 변호해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점차 혼란스러워져 가는 걸 보니, 그녀 또한 뭔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이성으로는 부정할 수 있어도 어쩐지 그 밑바닥에 감정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은 언제까지고 내 가슴에 의혹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걷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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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인지 진실인지, 이 때 상처 입은 사람은 십여 명 정도였으나 쇼자에몬의 일격으로 죽은 건 일곱 명으로 거기에 스스로 목을 베어죽은 쇼자에몬을 더하면 한 번에 여덟 명이 죽은 게 되니, 이것도 저 무참히 살해당한 여덟 패주무사의 원념이라며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 최근 들어 이 산속 일개 외딴 마을의 이름이 전국의 신문에 실리는 일대 괴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건이야말로 내가 여기에 소개하려고 하는 괴사건의 직접적인 단서가 되는 것이다.

다지미 가에는 저 쇼자에몬 이래 대대로 미치광이의 유전자가 있어 요조도 젊었을 무렵부터 이래저래 잔학하고 난폭한 행동을 많이 했다. 요조는 나이 스물에 오키사란 여자와 결혼하여 히사야, 하루요(春代)란 두 아이가 있었다.

그 남자는 깃을 세운 양복을 입고 발에 각반을 묶은 짚신을 신고 하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머리띠에는 불을 켠 상태인 막대기 모양의 회중전등 두개를 뿔처럼 꽂고 가슴에는 마찬가지로 불이 켜진 내셔널 회중전등을 마치 축시참배5)에 쓰는 거울처럼 매단 채 양복 위에 맨 허리띠에는 일본도를 차고 한손에는 엽총을 들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그걸 보고 모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기겁하기도 전에 남자가 든 엽총이 불을 뿜자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 있지. 다지미 가의 선조인 쇼자에몬과 이번 요조,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언젠가 다시 한 번 저런 무섭고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어."

팔묘촌에서는 지금도 아이가 떼를 쓰면 회중전등 뿔을 기른 도깨비가 온다고 으른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에게 들었던 하얀 머리띠에 두 개의 회중전등을 꽂고 가슴에는 내셔널 램프를 매단 채 허리띠에는 일본도를 차고 한 손에는 엽총을 든 도깨비의 모습을 떠올리고 단번에 울음을 그친다고 한다. 그것은 팔묘촌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26년의 세월이 흘러 쇼와(昭和)6) 2×년.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 일어난다는 노인들의 말대로 팔묘촌에는 또다시 기괴한 살인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는 이전 두 사건처럼 격정적인 돌발사건이 아니라 묘하게 끈적끈적한 정체모를 살인이 계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에 팔묘촌은 왠지 모르게 섬뜩한 공포에 사로잡혔던 것이었다.

팔묘촌. 오오,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다. 뭐라 말할 수 없이 불쾌한 이름이다. 뭐라 말할 수 없이 불쾌한 마을이다. 그리고 또한 뭐라 말할 수 없이 불쾌하고 무서운 사건이었다.

팔묘촌. 나는 스물일곱 살이 된 작년까지 그런 불쾌한 이름의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하물며 그처럼 불쾌한 이름의 마을과 내가 중대한 관계가 있다고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나는 어렴풋이 내가 오카야마(岡山) 현 태생인 듯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카야마 현의 무슨 군, 무슨 마을 태생인지 그처럼 상세한 것은 조금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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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 팔묘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작품 목록

팔묘촌이란 돗토리(鳥取) 현과 오카야마(岡山) 현의 경계에 있는 산 속의 외딴 마을이다.

팔묘촌의 생업이란 숯 굽는 일과 소치기다. 소를 키우는 일은 최근 시작했지만 숯 굽는 일은 예부터 이 마을의 가장 주된 생업이었다.

팔묘촌, 얏츠하카무라(八つ墓村). 여기서 태어나 여기에 뼈를 묻고 대대로 오랫동안 이 이름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별 기이한 느낌이 들지 않을지도 모르나, 처음 이 이름을 들은 타지방 사람들은 다소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뭔가 기분 나쁜 유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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