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휩쓸려 굴종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조건을 바꿔나가려는 싸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싸움, 이런 싸움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보편 복지에 대한 요구와도 유사한 맥락일 겁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바로 옆의 사람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냐?" 이 질문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바로 지금이다"입니다.
굴종하지 않으면서 이런 존재들을 보듬기 위한 집단적인 연대를 고민하자. 제가 만약 프랑스에서 20년을 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냥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은 저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MB정권 아래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라든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여러 자유들이 훼손당하고 있는데, 물론 이에 맞서 싸워나가야 하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자유는 바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자유입니다.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시간과 함께 성숙합니다. 따라서 의지를 갖고 끝없이 긴장을 유지하면, 시간과 함께 자아를 실현하면서 생존이 담보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아무리 엄중한 사회라 하더라도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절대로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 죽는 순간까지.
홍세화 학교 선배든 인생 선배든 또는 형이든 누나든 아니면 부모님이든 간에, 그래도 선배 잘못 만나서 세상 보는 눈을 뜨게 된 이런 분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민중의 표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쳤으면 좋겠고요. 내일 지구가 망할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에 빗대 말하자면, 미래의 불확실성을 오늘의 불성실에 대한 핑계로 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말처럼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성실하고, 또 두말할 것도 없이 스스로에게 성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유물을 갖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성숙했는지, 그리고 나의 인간관계가 오늘보다 내일 더 성숙할지, 즉 존재와 관계의 성숙을 목표로 하는 비교만 남겨뒀으면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유배된 혹은 유배되었던 청춘끼리 공유했으면 좋겠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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