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묻히는 것에 분노한 아이들은 제물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찾아보기로 했다. 알아낸 건 몇 명뿐이었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죽어서 그마저도 어려웠다.

마을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중에는 주경과 미주의 외삼촌, 외숙모가 있었고 연희의 작은엄마와 진용도 있었다. 겁에 질린 대부분은 뿔뿔이 흩어졌다. 연희의 작은엄마는 연희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연희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미주의 집에서 지내면서도 주경 또한 용서하지 않았다. 연희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건 한참 지나야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어제는 정주시에서, 그 전에는 공항으로 가는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또 그 전에는 다른 곳에서……. 모르겠어? 선녀님의 벌은 끝나지 않았어."

"야, 양심의 가책 그만 느끼고 너는 너대로 갈 길 가. 사람이 잘못했으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마땅하고 그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살 방법이니까."

"너는 그 사실을 알지만, 그 사람들은 아니잖아. 그대로 죽일 거야?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면 너도 나처럼 되는 거야. 구할 수도 있는 생명을 구하지 않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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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마저 선녀님을 완전히 담을 수 없었단다. 고작 삼 년이면 끝이 났지. 그때마다 새 그릇으로……. 딸 한 명이 삼 년을 버텨주고 다른 딸이 삼 년 그리고 또 다른 딸이……. 그것만이 이 마을을 위한 고결하고 유의미한 희생이자 자신의 도리인 것이다.’

성은 뒤꿈치에서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아파서 움찔거리다가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빛 속에서 넘어지면 세상이 뒤바뀌었을 텐데 어둠 속에서 넘어지니 어둠뿐이었다. 고대하던 비밀은 마을의 일원이기에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그저 저주 같았다.

‘악마 같은 놈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여자아이들을 희생한다니. 너도 알고 있었지? 그러니 그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를 가르치려고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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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그곳에 연수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와 케냐로 갔다던 연수가.

"너도 이제 곧 열여덟 살이니, 마을의 비밀을 알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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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기독교 목사로 청호산에 기도하러 왔다가 이교도의 이능을 경험하고 전향했다고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에 대한 깨우침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공부와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잃은 제게 한 사람이 말했어요. 청호산으로 가라. 그곳에 네가 찾는 기적이 있다. 그리고 기도하라."

이장은 성에게 종종 청호리의 유래에 대해 말했다. 기도하는 터가 청호리가 되었고, 청호리는 변재선녀를 기리는 마을이 되었다고. 마을의 부흥이 선녀님의 뜻이며 그걸 이루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다.

이장은 마을을 이끌고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척이나 노력했다. 믿음을 가진 마을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정착했고, 이장은 스스로 그들의 버팀목이 되기를 자처했으니 가족에게 조금 엄격하게 대하는 아버지를 성은 이해했다.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변재선녀의 권능은 진짜다. 남들은 가뭄이나 태풍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청호리는 매년 풍년이었고, 아픈 이를 건강하게 했으며,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줬다. 선녀님은 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이뤄주었다.

"그 어떤 소원도 이뤄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너도나도 이곳으로 밀고 들어오겠지."
"그거 욕심 아니야? 너희끼리 잘 먹고 잘살겠다는 심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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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서 차는 잠시 멈췄다. 엔진음만 들리는 차 안에서 미주는 주경을 쳐다봤다. 주경은 앞을 보다가, 운전석 차창 너머 멀리 보이는 청수호를 보다가 다시 앞을 봤다. 주저하는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자신의 고향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와 같지 않을까.

빵. 주경이 경적을 울리자 화들짝 놀라 일어난 그가 손등으로 입가의 침을 닦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가 창문을 열었다.
"아, 온다는 게 오늘이었나? 옆엔 딸이고?"

"오빠한테 들었을 거 아냐. 잔말 말고 열어주지?"
"예민한 건 여전하네. 오랜만에 고향 친구 만나서 안부도 못 물어보냐?"
"전혀 반갑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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