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12세기에 나타났던 영웅 징기스칸은 겨우 10만 군대로 세계를 재패했다. 그것은 적을 포로로 잡아그 군대를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기세가 꺾인 군대는 대부분 항복했고, 결사전이란 그리 흔한 전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징기스칸은 처음에는 몽골군으로 적을 쳤지만 그후로는 대부분 현지 포로군으로 정복전을 치러냈다.
이처럼 황제 헌원군이 번번이 치우군에게 패했다지만 실은 한번 전투에서 수백 명 내지 수천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는 것 말고는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패하고 나면 헌원은 다시 이를 물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기를 수없이 했다. 그 사이 황제 헌원의 군대는 철기문명을 받아들였고,
천군 포로들을 통해 군사 전략이나 무기 제조법을 배웠다.
그가 비록 치우에게 끝내 무릎을 꿇었다지만 실은 이미 그들은 천군에 맞먹는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황토인은 결국 중원을 차지하였고, 승리한 천족은 한반도에 주저앉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말이다.
역사의 흐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승리하고도 졌다니...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진 게 아닌지도 모른다. 아직도 역사는 흘러가고 있으니까.
역사의 강은 어느 순간에 물줄기를 확 바꿀지 모른다.
우리 조상들의 무덤이 있고, 살던 터가 있고, 조상들이 마시던 물과 바람이 있는 땅이 저 멀리 다른 나라에 포함되어 있는 한 우리는 언젠가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어쭙잖은 중화사관(中華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무릎꿇고 감히 주장을 하지 못했다. 조선 5백 년 내내 그러했고, 20세기에도 그러했다. 역사는 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길게 멀리, 깊게 보아야한다. 역사는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흐름이 끊기는 강줄기가 아니다.
역사는 한강보다 길고 황하(黃河)나 장강(長江)보다 길다.
그러므로 몇몇 부족의 소멸(消滅)은 간혹 있어도 역사가정지하지는 않는다.
탁록벌을 적셨을 물줄기는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고구려군의 함성에 물결을 쳤던 압록강은 푸른 물줄기를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
5천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런 엄청난 세월이흘렀다고 해서, 그 역사가 화석(化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호호탕탕 흘러가는 황하의 강물처럼...
그 비옥한 탁록의 뜰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분다. 그렇게 흘러온 5천 년의 역사는 결코 이끼가 끼지도 않으며 탁해지지도 않는다.

천국(天國)의 신화(神話)는 그러한 역사의 강을 타고 우리 후손들을 향하여 쉼없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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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1912년~1996년
본명은 백기행,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했다. 1938년 시집 (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작품으로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광복 이후에는 고향인 북에 머물렀으며, 대표작으로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모닥불>, <고향> 등이 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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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도시가 아니다, 우주다Lutetia non urbs, sed orbis"

"나는 나폴레옹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

파리시 문장에 적힌 라틴어 모토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Fluctuat nec mergitur", 즉 시련이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뜻이다. 2015년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파리 시민들은 이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에 나섰다.

런던의 상징 빅 벤Big Ben 옆에는 전차를 몰고 있는 여인의 동상이 서 있다. 오른손에 창을 쥔 여인과 그녀를 보필하는 여성 2명의 모습이 보인다. 동상의 주인공이 여인인 것으로 보아 언뜻 대영 제국의 초석을 놓은 빅토리아 여왕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동상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브리튼섬의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여왕이다.

그녀의 이름은 부디카Boudica다. 그녀는 로마의 지배에 항전한 켈트족의 여전사이자 여왕, 혹은 왕비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부디카는 지금의 노포크Norfolk 지역에 살던 이케니 부족의 족장 프라수타구스Prasutagus의 부인었다.

"로마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보다 많지도 않고 용감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나라는 우리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반대로 그들은 우리의 땅을 잘 모른다. 우리는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저들은 배를 타고 건너기에도 힘들어한다. 저들을 추격하여 우리의 자신감을 보여주자! 저들이 산토끼나 여우라면 우리는 그들을 뒤쫓는 사냥개나 늑대들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부디카라는 이름이 켈트어로 ‘승리’를 의미한다고 한다.10 훗날 대영 제국의 상징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 역시 라틴어로 ‘승리’를 의미한다. 켈트족의 승리의 여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명실상부한 승리의 여신이 되었다.

"파리는 프랑스이다. 그 위대한 나라의 모든 중요한 관심사는 수도에 집중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그런 도시가 없다. 우리는 ‘여기가 곧 독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곳도 가지고 있지 않다."
괴테

탁록벌을 적셨을 물줄기는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고구려군의 함성에 물결을 쳤던 압록강은 푸른 물줄기를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
5천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런 엄청난 세월이흘렀다고 해서, 그 역사가 화석(化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호호탕탕 흘러가는 황하의 강물처럼...
그 비옥한 탁록의 뜰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풀이 자라고바람이 분다. 그렇게 흘러온 5천 년의 역사는 결코 이끼가끼지도 않으며 탁해지지도 않는다.

스페인 내전 최후의 보루

《이방인》을 쓴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의도 패배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용기를 내도 용기에 대한 급부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로 스페인에서."

서양 문명을 지탱하는 2개의 기둥이 있다. 첫 번째 기둥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헤브라이즘Hebraism이고, 두 번째 기둥은 그리스 문명을 가리키는 헬레니즘Hellenism이다. 이 두 기둥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서양 문명, 나아가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 현세 지향, 자유, 다신교, 디오니소스 같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반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주의, 내세 지향, 일신교, 아폴론 같은 키워드로 대표된다. 두 문명의 정신을 대비하는 신 중에서 아폴론은 냉철한 이성을 상징하며, 디오니소스는 감성적인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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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국내에서 손꼽히는 어원 전문 언어학자이자, 탁월한 역사스토리텔러, 언어라는 렌즈로 세계사를 다각도에서 조명하며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로 건너가 리모주대학교에서 불어학으로 석사학위를, 파리 제5 대학교에서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불어학을 가르쳤고, 지금은 수원대학교 프랑스어문학 전공 교수를 지내며 프랑스 언어학, 문화인류학, 신화학, 라틴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손꼽히는 어원 전문 언어학자....ㄱ ㅐ ㄴ ㅏ 갖다 주라고 해라
이 인간은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 편에서 원나라의 수도 상도, 대도, 카라코룸의 위치를 표현한 지도에서 고려의 영토를 원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당신은 박사학위를 ㄸ ㅗ ㅇ ㄱ ㅜ ㅁ ㅓ ㅇ 으로 땄는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가 보구나. 쭝국놈이냐?
아니지 몽골인인가?
원이 중국은 아니니까
이현세 “천국의 신화”에 의하면,
몽골인, 한민족, 여진, 거란은 천족이다.
같은 천족이구나. 그렇다구 어찌,
고려가 어찌 원의 영토냐

부마국으로 전락했지만 고려는 원의 직접통치를 받지 않았다. 고려가 원의 영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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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사전 《르 프티 로베르Le Petit Robert》에 따르면 수도는 "한 국가나 지방에서 제1열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정의되어 있다. 《르 프티 라루스Le Petit Larousse》 사전에는 "국가나 정부의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장소"라고 적혀 있다. 두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중세 유럽의 수도는 불완전하게, 간헐적으로, 그리고 뒤늦게 탄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류 문명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지금의 이라크)에서 탄생했듯이, 수도 역시 이 지방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지명은 그리스어로 가운데를 뜻하는 ‘메소’와 강을 뜻하는 ‘포타’의 합성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을 의미한다.

수메르인에 이어 이 지방을 차지한 아무르인은 기원전 20세기 무렵 우르 북쪽(바그다드 남쪽 80km)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이 도시의 이름이 바빌론이다.

수도는 이동한다.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처럼, 수도 역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일정 기간 수도의 역할을 하다가 새로운 도시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왕의 거처와 신전이 있는 도시를 수도라고 볼 때,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는 멤피스에서 테베로 옮겨갔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시대에 오면, 알렉산드리아가 명실상부한 이집트 왕국의 수도가 된다. 현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가 수도가 된 것은 서기 7세기 무렵에 불과하다.

일찍이 중앙 집권 체제를 완성한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하고, 확실한 수도를 가진 나라는 드물었다. 독일의 경우 역사적으로 파리나 런던 같은 진정한 의미의 수도를 찾아볼 수 없다.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독일에는 수많은 공후국이 있었기 때문에 핵심적인 수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독일의 경우 역사적으로 파리나 런던 같은 진정한 의미의 수도를 찾아볼 수 없다.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독일에는 수많은 공후국이 있었기 때문에 핵심적인 수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나라의 수도는 역사적 이유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간다.

이 분류는 역사 지리학자인 파운즈Pounds가 한 것이다. 그는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유럽을 설명하기 위해 중핵지역core-area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여기서는 ‘중핵’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중핵 수도, 신중핵 수도, 이중핵 수도, 그리고 다중핵 수도로 수도들을 분류했다.

1. 불변의 중심도시, 중핵수도
중핵中核 수도는 유럽의 파리, 런던, 아테네 같은 도시를 가리킨다. 중핵이라는 용어가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이므로, 전통적으로 한 국가에서 불변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수도를 중핵 수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로마, 파리, 런던, 아테네

2. 새롭게 부상한 신도시, 신중핵 수도
전통의 중핵 수도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롭게 등장한 신도시가 수도로 부상한 나라들이 있다. 과거의 수도와 현재의 수도가 공존하는 나라가 여기에 속한다. 아울러 새롭게 건설된 신수도 역시 신新중핵 수도로 분류했다.

바르샤바, 뉴델리

3. 경쟁하는 도시들, 이중핵 수도
이중핵二中核 수도란 한 나라에 수도의 지위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여러 도시가 있는 경우다. 이 책에서는 수도가 2개였던 국가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와 스페인이다.

모스크바, 마드리드

4. 여러 도시가 수도의 후보! 다중핵 수도
다중핵多中核 수도는 한 왕국이나 제국에 여러 개의 도시들이 수도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했던 경우를 가리킨다. 독일은 긴 역사 동안 여러 도시들이 수도의 지위에 있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여러 개의 수도를 확정한 나라에 속한다.

베를린, 베른

로마의 건국이 살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까? 로마는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인다. 마침내 로마는 지중해의 패자가 되었고, 유럽의 대부분과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로마의 별명은 ‘영원의 도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전 역사가 이 도시와 연관되어 있다.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밀라노에서 공포한 이유도, 당시 밀라노가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었다. 374년에는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궁전의 제1정문인 황제의 문에는 "신의 은총과 허락으로 두 대륙의 술탄이자 두 바다의 지배자, 현세와 내세에서의 신의 그림자, 동방과 서방에서 신의 총애를 받는 자, 육지와 바다의 통치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성城의 정복자인 술탄……"이라고 적혀 있다.

몽골족의 등장

12세기 유럽인들에게 몽골족은 중국과 스텝steppe(러시아, 아시아 등지의 초원) 사이에 살던 여러 유목민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짐승처럼 살고 있고, 이끌어줄 종교나 법도 없으며, 야생동물이 풀을 뜯는 것처럼 그저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약탈과 폭력, 부도덕함과 방탕을 남자다움과 뛰어남의 징표로 생각한다."

카라코룸은 몽골어로 ‘검은 자갈밭’을 뜻하는 ‘Qara-Qorum’에서 나왔는데, 중국 문헌에는 ‘客喇和林(객자화림)’ 또는 ‘和林(화림)’으로 등장한다.

자금성에서 ‘금禁’은 금지한다는 뜻이다. 즉, 황제가 거처하는 궁궐은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다. 영어로 자금성은 ‘Forbidden City(금지된 도시)’로 번역된다.

청나라는 이렇게 중화사상을 고집하는 한족뿐만 아니라, 변방에 살던 이민족의 종교 또한 제국의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수용했다.

로마 제국의 동북 지방의 국경이었던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그리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등 많은 도시를 지난다. 가히 수도의 강이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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