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는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돌진한다.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증오를 가득 담은 마지막 입김을 뱉어 주마.
그곳 여인숙에서 나는 식인종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자게 됐다. 영혼은 숨길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무시무시한 문신 아래 숨은 퀴퀘그의 맑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피쿼드호에 타기로 했다.
나오는 길에 일라이자라는 예언자로부터 불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죽을 거야.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어. 신이시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딱 한 사람. 현명한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은 복수를 위해 고래를 잡을 수는 없다며 반발했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고래를 많이 잡아 돈을 버는 것일 뿐이고 짐승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에이하브의 선동에 겁먹은 선원들은 모비 딕을 잡아 복수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판단력을 잃어버린 채광분하는 에이하브는 나를 비롯한 배에 탄 모든 선원들에게 모비 딕보다 더 두려운 대상이었다. 에이하브의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외심을 잃게 만들었고, 선과 악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았다. 그는 우리를 결국 파멸로 몰고 갈 게 뻔했다.
어느새 다시 나타난 모비 딕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보트를 뒤집어 놓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에이하브의 의족이 부러졌다. 스타벅은 이제 그만하자고 외쳤다. 에이하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운명의 부하이고, 너희들은 나의 부하다. 내 명령에 따르라." 다음 날 정오 모비 딕이 다시 나타났고, 사흘간의 추격전 끝에 에이하브는 모비 딕의 눈에 작살을 꽂아 넣는 데성공했다.
3일간의 대결투는 끝이 났다. 나는 에이하브와 모비 딕의 대결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모든 것을 부질없게 만들어 버리는 자연의 위력은 놀라웠다. 바다는 에이하브의 원한과 집착을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겨 흔적도 없이 삼켜 버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싸늘한 침묵만을 남긴 채 일렁이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구조됐고 내가 겪은 일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나 혼자 살아남아 말한다. 이 항해는 도전의 길이었으며 동시에 파멸의 길이었다. 내 인생에서 끊임없이 갈망했던 특별한 항해는 끝났다. 이제 내 젊음의 한 부분과 고래잡이배의 추억을 검고 푸른 바다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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