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2000년대 이후로 빠르게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민자들의 거주지 테너먼트(Tenement)와 녹슨 비상 철제 계단으로 상징되는 이 거리의 풍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지난 세기 막 뉴욕에 도착한 수많은 노동자가 터를 잡은 곳이자 전위적인 작가들과 음악가들이 모여 살았던 로어이스트사이드는 이제 뉴욕에서 가장 힙한 동네 중 하나가 되었다.
벨벳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루 리드가 월세 38달러를 내며 살았던 방은 이제 월세 3800달러를 내도 부족한 곳이 되었다. 오래된 노포들이 있던 자리는 결국 헐리고 그 자리에 더 많은 스타벅스와 자라 매장이 생길 것이다.
모두에게 무료이다. 이 공원이 가진 중요한 장점이다. 불필요할 정도로 크고 비싸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가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다. 도시의 공원 입장료가 무료인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공원이나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는 생각보다 꽤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뉴욕에는 그래머시파크처럼 인근 주민만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공원들이 남아 있다.
센트럴파크가 처음부터 모두를 위한 공원이었던 건 아니다.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 자리에 터를 잡고 살던 아일랜드 농부들, 세네카빌리지에 모여 살던(비어 있는 땅을 무단 점유한 스콰터로 취급당했지만 교회도 학교도 있는 엄연한 마을이었다) 흑인들을 쫓아내야 했다.
한국의 카페가 거실의 기능을 대신하는 공간이라면 뉴욕의 공원은 공공화된 정원 또는 앞마당이다(뉴욕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일 것 같은 차가운 뉴욕에서 센트럴파크는 돈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따뜻한 상징물이다.
뉴욕의 겨울은 너무나 혹독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 센트럴파크의 어린 오리들이 겨우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지 걱정하는 게 바로 이해될 정도다(저도 늘 걱정하고 있습니다. 부디 잘 지내고 있길 바랄게요).
센트럴파크는 뉴욕을 낭비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워낙에 유명한 재즈 클럽이기 때문에 언제 가더라도 성지 순례 느낌으로 온 것 같은 재즈 팬들이 몇 사람 꼭 있다. 특히 재즈 저변이 가장 넓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 온 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분들은 거의 90퍼센트의 확률로 졸고 있다. 8시 공연은 한국과 일본에서 온, 시차 적응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가장 졸릴 시간이기 때문이다(브로드웨이 뮤지컬 극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고 한다).
한국의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기념일 분위기라면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더 가깝다. 미국에서도 크리스마스란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 선물을 나누고 취업이라든가 결혼이라든가 잔소리를 주고받으며, 종종 서로 싸우고, 칠면조 로스트 같은 비효율적인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날이다.
나의 크리스마스는 영원히 이들의 크리스마스와 같아질 수 없겠지만 뉴욕이란 도시는 너무나 다양해서 어딘가에는 나 같은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안도감.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장소들.
"Le Mal du Pays, 프랑스어예요. 일반적으로는 향수나 멜랑콜리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려운 말이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메뉴판을 보니 제주산 양식 광어회가 눈에 띈다. 주문을 받는 분은 여기 광어가 한국에서 온 거라고 몇 번을 강조하고 돌아갔다. 뉴욕 퀸스에서 제주도 출신 생선을 만나다니, 21세기의 놀라운 공급사슬과 유통망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탄 시간만이라도 잠시 책을 본다든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려는 MTA의 배려일 리는 없고, 어차피 뉴욕의 지하철은 오프라인의 작은 평화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하우스턴스트리트를 걷다가 친구에게 한마디 들었다. 길에서 나는 지린내를 언급하는 것은 뉴요커답지 못한 태도라는 것이다.
"우리 내려서 걸을까?"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교통 체증이 심한 뉴욕은 택시보다 걷는 게 더 빠를 때가 있다. 하지만 꼭 그래서 걷자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오랜만에 인파에 묻혀 타임스스퀘어를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먹는 피자는 동네에 있는 베쪼(Vezzo)라는 식당의 루콜라를 잔뜩 올리고 네 가지 치즈로 토핑한 화이트치즈피자다. 완벽한 피자란 언제나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피자’이기 때문에.
줄 서서 먹는 치킨오버라이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길거리 음식은 아마도 할랄가이즈의 치킨오버라이스일 것이다.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율법은 먹을 수 있는 동물의 종류와 도축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 계율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음식을 할랄이라고 한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오이를 먹는다. 오이의 푸른빛에서 여름이 오고 있다. 5월의 푸른 빛깔 맛에는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아련하고도 간질거리는 비애가 있다.* *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전규태 옮김, 열림원, 2014.
과거 유럽에서 넘어온 노동자들은 로어이스트사이드에 많이 정착했다. 흔히 뉴욕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 있는 ‘용광로(melting pot)’라고 묘사하는데 로어이스트사이드는 뉴욕이라는 용광로에 쇳물이 부어지는 곳이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유대인 이민자들의 흔적은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었고, 유학은커녕 어학연수 한번 못해봤는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쓰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대체로 용기는 무지에서 나온다).
외국어로 사는 것은 IQ를 30퍼센트쯤 디스카운트해서 사는 일이다. 이 30퍼센트는 한국어가 영어로 바뀌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한국어로 축적한 지식들은 생각처럼 바로바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다.
모국어로 쌓아놓은 사회, 문화, 경제, 역사 지식들이 빈약한 내 영어 어휘와 1 대 1로 잘 연결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더라도 영어로 재습득해서 용어와 개념, 논리까지 재구성해놔야만 원하는 형태의 문장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복잡한 사고를 한다고 해도 입이나 글로 풀어져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으면, 나는 알고 있는 걸까 모르는 걸까? 마치 선불교의 공안 같은 질문이다.
결국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서 생각하고, 생각한 수준에서 대화한다. 영어가 느는 속도는 매우 느린 반면, 사고의 깊이는 빠른 속도로 얕아진다.
톨킨의 말을 빌리자면 "헤매는 사람이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모국어로는 길을 잃은 느낌 없이 결론을 찾아가는 여정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영어로는 잠시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원래 가려던 길로 돌아와서 마치 계획했다는 듯 유려하게 결말을 내는 일이 불가능하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길을 물어보는 나에게 한 노인분이 해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젊은 친구, 이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는 것이라네(Best way to get around the city is to get lost in the city, son).” 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아무튼, 뉴욕 : 편견과 편애의 리스트 | 신현호
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단순한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 단순하다고 느껴진다면 아마그건 욕망에 더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뉴욕이 좋다고 확신할수 있었던 시절의 나는 뉴욕을 사랑하기보다는 욕망했던 걸까?상대의 모든 면을 나열하고 나면 귀납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감정의 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그 대상에 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누더기같이 콜라주된 이 모순된 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중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리스트를 계속 이어가볼게."
신현호미국 뉴욕에서 10년 넘게 거주 중인 회사원. 실용적 낙관주의자이자 산책 애호가. 주 40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음식과 여행에 관한 글을 쓰거나 요리를 한다. 뉴욕의 겨울을 싫어한다. /
자기 스스로를 100퍼센트 사랑할 수 있을까? 만약 스스로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면 자신이 사는 도시를 100퍼센트 사랑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즐거움, 밥벌이의 고단함 등등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잠시 스쳐 가듯 여행하는 사람처럼 적당한 거리를 둔 산뜻한 관계가 될 수는 없다. 좋은 것을 사랑하는 동시에 끔찍한 것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사실 꼭 100퍼센트일 필요도 없다.
한때 서울은 나에게 명백한 오답이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울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도 다른 버전의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친구, 이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는 것이라네(Best way to get around the city is to get lost in the city, son)."
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
1부 뉴욕에서 길 잃기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도입부에 나오는 클라이슬러빌딩도 옆에 있었다. 그랜드센트럴은 뉴욕의 첫인상 그 자체였다. 이 역은 맨해튼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지금의 너를 이 자리에 데리고 온 건 큰 성공들이 아니라 작은 실패들이었다"라는 위로의 문자를 받았다. 정말 그랬다.
생각해보면 원하는 곳에는 모두 떨어졌지만 거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플랜A가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 문은 닫혔지만 다른 쪽에서 새로운 문이 열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플랜B로 잘 채워진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미래완료형은 자기실현적 예언의 시제이다. (자기개발서 같은 결론이지만) 예언은 그 자체로 예언을 이루어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일은 종종 오래된 미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떤 개인을 망가뜨릴 수도, 행운이 따르기만 한다면 성취감을 줄 수도 있다. 스스로 이런 행운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뉴욕에 와야 한다.* * E. B. White, 『Here is New York』, Little Bookroom, 2000.
지인들이 인사말처럼 ‘언제 한번 갈게’라고 했지만 실제 여행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행을 하기에 뉴욕은 썩 좋은 도시는 아닐지 모른다. 물가는 살인적이고 하루 종일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거리에서는 마리화나와 불쾌한 노상 방뇨 냄새가 난다. 같은 시간과 비용이라면 훨씬 더 쾌적한 선택지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들에게도 뉴욕은 기회의 땅이다. 마치 외계인들은 모두 지구정복 가이드북 같은 걸 읽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 뉴욕이 소개되어 있고 그래서 다들 일단 뉴욕부터 침공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변호사의 마지막 인사말은 ‘우리가 운이 좋(아 뉴욕에서 생존한)다면 다른 공연에서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외관적으로 포위된 상태 속에서의 연대 책임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 형태를 파괴하고 개개인을 저마다의 고독 속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트럼프는 공식 석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고 불렀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의 분노를 특정 인종에게 돌려 더 많은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표현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 뒤 뉴욕에서는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하는 증오 범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차별과 혐오는 사실은 공기 같은 것이다. 막상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기압처럼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일정한 압력을 만들어내는 무언가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특정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듯, 프룬을 생각하면 한가로운 주말 오전 뉴욕에 여행 온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들, 지독한 숙취의 기억과 블러디메리 두 잔에 적당히 취해 이스트빌리지 거리로 나왔을 때 쏟아지는 햇살 같은, 팬데믹 이전의 어떤 뉴욕을 떠올릴 수 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는 내 감정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국어에도 역시 내 마음과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낯선 외국에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유창하게 모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말이란 그렇게 착착 준비되어 있다가 척척 잽싸게 나오는 것이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 최윤영 옮김, 을유문화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