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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의 새 장수와도 거의 얼굴이 닿을 듯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름답게 빛나는 검고 큰 눈은 무희가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이었다. 쌍꺼풀의 선이 말할 수 없이 고왔다. 그리고 그녀는 꽃처럼 웃었다. 꽃처럼 웃는다는 말은 그녀에게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다시 여행 중에 죽은 아기에 대한 얘기를 했다. 물처럼 멀건 아기가 태어났었다고 한다. 울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일 주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호기심도 경멸도 없이 그들이 유랑인이란 종류의 인간임을 잊어버린 듯한, 나의 덤덤한 호의는 그들의 가슴에도 젖어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느 새 오시마의 그들의 집에 가는 것으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

가을 하늘이 너무 맑은 탓인지 한낮이 가까운 바다는 봄처럼 아스라했다. 여기서부터 시모다까지 50리를 걷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바다가 보일락말락했다. 지요코는 한가롭게 노래를 시작했다.

물이란 말을 듣고 나는 뛰었다. 나무 그늘의 바위 틈에서 샘이 솟고 있었다. 샘 둘레에 여자들이 서 있었다.
"자아, 먼저 마시세요. 손을 넣으면 더러워질 테고 여자가 먼저 마시기도 뭣해서……"

"참으로 좋은 분이야. 좋은 분은 좋지?"
이 말은 단순하면서도 개방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감정의 치우침을 훌쩍 앳되게 던져 보인 목소리였다. 나 자신에게도 자기가 좋은 사람이란 감정을 무리없이 느끼게 했다.

도중에 몇몇 마을 입구에 팻말이 서 있었다.
‘걸인, 유랑 예인, 마을에 들어오지 말 것.’

승선장에 가까이 가자 바닷가에 웅크리고 있는 무희의 모습이 나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곁에 갈 때까지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잠자코 머리를 숙였다. 지우지 않은 어젯밤의 화장이 나를 더욱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눈꼬리의 연지가 성난 것 같은 얼굴에 앳된 의젓함을 주고 있었다.

선실의 램프가 꺼졌다. 배에 실은 생선 비린내가 강해졌다. 캄캄함 속에서 소년의 체온으로 몸을 덥히면서 나는 눈물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맑은 물같이 되어 줄줄 흘러넘치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감미롭고 유쾌한 심정이 있을 뿐이었다.

《이즈의 무희》는 일본의 작가가 좀처럼 가지지 못하는 젊음 그 자체의 미완성의 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코 작품의 미완성을 의미하지 않는 진정한 청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고 미지마 유키오는 다시 말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인생 자체가 ‘미완성의 미’로 뒷받침되어 모든 가치 있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겠으나, 그 중에서도 청춘이 갖는 미완성의 의미는 그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고, 따라서 그만큼 심오하고 원대한 가능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서정가 抒情歌
 
사자 死者 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인간의 습관일까요.
하지만 인간은 사후의 세계에까지 이승의 인간 모습 그대로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더욱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향수를 써 본 적이 없는 처녀였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미 4년 전의 어느 밤, 욕탕에서 갑자기 강렬한 향기에 쏘인 나는 그 향수의 이름을 모르면서도 전라의 몸으로 이처럼 강한 향내를 맡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아득해져 버렸던 것입니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옥상에 온실이 있는 방에 4, 50명의 여자가 모여 일시에 추억의 경쟁을 하면 방에서 오르는 심한 악취 때문에 온실의 꽃은 모두 말라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옥상에 온실이 있는 방에 4, 50명의 여자가 모여 일시에 추억의 경쟁을 하면 방에서 오르는 심한 악취 때문에 온실의 꽃은 모두 말라버릴 것입니다. 뭐, 그 여자들이 추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란 것은 아닙니다. 미래란 것에 비해서 과거란 것은 훨씬 생생하고 동물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신부와의 첫날밤에 침상에 뿌린 향수 냄새를 두 분의 호텔과는 멀리 떨어진 욕탕에서 맡은 뒤로는 내 영혼은 하나의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아직 한 번도 당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한 번도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 하나는 유마경 2) 維摩經 의 중향 衆香 의 나라, 가지가지의 향을 뿜는 가지가지의 나무 아래에 성자들이 앉아 있고, 각기 다른 향을 맡음으로써 진리를 깨닫는다는 ─ 하나의 향기에서 하나의 진리를 깨닫고, 또 다른 향기에서 다른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전당 속의 사람들은 붉은 유리를 통해 오는 핑크빛 쪽에 가서 서기도 하고, 푸른빛 쪽에 가서 서기도 했어요. 오렌지빛이나 노란빛을 쪼이는 자도 있었습니다. 뭣 때문에 모두들 저러는 것일까? 하고 그분은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누군가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핑크빛은 사랑의 빛, 푸른빛은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빛, 그리고 안내인의 말로는, 이것은 지상의 인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지상에 떨어진 꽃의 향기는 천상으로 올라가 그 향이 지상에서와 똑같은 꽃을 천상에서 피우는 것입니다. 영계의 물질은 모두 지상에서 승천하는 향기로 됩니다.

잘 주의해서 보면 지상에서 죽은 것과 썩은 것에는 모두 그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습니다. 이 향기가 승천하여, 그 향이 향으로 되기 전의 것을 그 향으로부터 만드는 것입니다. 아카시아의 향기도 대나무 향기와는 다릅니다. 썩은 삼 麻 의 냄새와 썩은 나사 羅紗 의 냄새는 다릅니다.

야마시로 山城 의 참외도, 가지도, 가모천 加茂川 의 물도 모두 부처님께 공양하리라고 노래한 잇규 선사의 정령제에 대한 마음을 나는 무엇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4) 목련존자 : 부처님의 십대 제자의 한 사람.
5) 촉루 : 살이 썩고 남은 뼈. 해골.
6) 천시아귀 : 익사한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냇가나 배 위에서 드리는 불공.

비 悲 자를 단순히 슬프다고만 읽는 것은 얕은 생각이겠지만, 불법에서는 어머니의 은혜 쪽을 아버지의 은혜보다 무섭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잘 아실 거예요.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그 때 갑자기 당신이 말해서 나는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릅니다.
비가 무엇엔가 쭈욱 빨려들 듯이 개자, 세상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8) 우란분제 : 음력 7월 15일에 드리는 불공.
9) 베다경 : 인도의 가장 오래된 종교 경전으로 바라문교의 경전. 인도의 종교·철학·문학의 근원이 되는 것.

하얀 유령 세계의 주민이 되기보다는 난 죽으면 한 마리의 흰 비둘기나 한 포기의 아네모네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살아 있을 때의 마음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평화롭겠습니까.
먼 옛날의 피타고라스의 일파 따위도 악한 사람의 혼은 내세에 짐 승의 몸 속으로 들어가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불법의 윤회 전생의 설도 이 세상의 윤리의 상징 같습니다. 전생의 매 鷹 가 이생에서 사람이 되는 것도, 현세의 사람이 내세에서 나비가 되는 것도, 또 부처가 되는 것도 모두 이 세상의 행위에서 오는 인과응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로운 서정시의 결점입니다.

‘기묘하도다. 불 속에서 연화 蓮華 를 낳고, 애욕 속에서 정각 正覺 을 나타내다.’

가엾은 여신으로서보다는 아름다운 꽃으로 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니 여신의 마음은 비로소 밝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물이란 우스운 데가 있습니다.

사물의 향기나 빛깔조차 정령들의 세계에서까지 마음의 양식이 된다지 않습니까? 하물며 연인의 사랑이 여자의 마음의 샘이 되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내것이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서 사는 하나의 장식용 깃에 까지도, 또 주방에서 요리하는 한 마리의 옥도미에도, 나는 행복한 여자답게 사랑의 마음을 기울일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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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탕에 저것들이 와 있습니다 ─ 저봐요. 이쪽을 보았는지 웃고 있어요."
그가 손가락질을 해보여서 나는 개울 저쪽의 공동탕을 보았다. 서리는 김 속으로 7, 8명의 나체가 희미하게 떠보였다.

어슴푸레한 욕탕 안쪽에서 갑자기 발가벗은 여자가 달려나오더니 탈의장의 톡 튀어나온 개울가에 뛰어내릴 듯한 자세로 서서 두 팔을 활짝 올리고 뭐라고 외쳤다. 수건도 두르지 않은 전라였다. 그것은 무희였다.

오동나무 밑둥처럼 쭉 뻗은 하얀 나신을 보고 마음에 청수 淸水 를 느낀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나서 껄껄 웃었다. 어린 아이였다. 우리들을 발견한 반가움에 발가벗은 채로 햇살 속에 뛰어나와, 발끝으로 바짝 설 만큼 어린 아이였다.

탕에는 가지 않고 나는 무희와 오목을 두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오목을 잘 두었다. 에이기치나 다른 여자들은 턱도 없었다. 오목에서는 대개의 사람에게 이기는 내가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일부러 져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분 좋았다. 둘뿐이었으므로 처음에는 그녀가 멀리서 손을 뻗쳐 돌을 놓고 있었으나 차츰 열중하여 바둑판 위로 상반신을 내밀어 왔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검은 머리가 내 가슴에 닿을 듯했다.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고,
"죄송해요. 야단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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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건져낸 시체처럼 전신이 퍼렇게 부어오른 할아버지가 화롯가에 앉아 있었다. 눈동자까지 노랗게 썩은 듯 한 눈을 나른하게 내 쪽으로 돌렸다. 앉은 자리 주변에는 낡은 편지랑 종이봉투가 산을 이루고 있어서 그 종이더미 속에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저히 산 사람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산중의 괴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 전번에 데리고 있던 애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좋은 처녀가 돼서 자네로서도 다행이지. 이처럼 고와지다니…… 여자들이란 빠른 법이야."

심한 경멸을 담은 노파의 말이, 그렇다면 무희를 오늘 밤 내 방에서 재워야지 하고 생각할 만큼 나를 충동질했다.

나는 50전 은화를 한 닢 놓고 왔을 뿐이었는데, 감지덕지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희 일행을 빨리 쫓아가고 싶어서 노파의 뒤뚱거리는 걸음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마침내 고개의 터널까지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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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위에 앉았다. 비탈길을 달려올라와 숨이 찼고, 또 갑작스런 일이라,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를 않았다.

무희의 일행은 40대 여자가 한 사람, 젊은 여자가 두 사람, 그 밖에 나가오카 長岡 온천 여관의 시루시한텡 3) 을 걸친 25, 6세쯤의 남자가 있었다.
 
3) 시루시한텡 : 성명, 상호를 새긴 간단한 웃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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