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시타 다케조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뒤 당황해서 목소리를 낮추더군.
―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잊어 주세요.
다케조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무라시타 다케조라는 인물이 가타도에서 커다란 권력을 갖고 있다는 기사였어. 경제적으로도 인맥상으로도 다케조의 지위는 확고부동했지.

인맥. 그래, 그것이 답이었어.

나는 생각했지. 고미야마 형사가 일부러 ‘무라시타 다케조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그 의미를.

이것은 방증傍證이고 소문의 범위를 넘지 않으니까 단정은 할 수 없지만, 무라시타 다케조라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실례가 있어.

"이 문을 빠져나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사에구사가 중얼거린다.

레벨7. 그것은 팩싱턴에 의한 귀로가 없는 여행의 상징임과 동시에 무라시타 다케조에게 컨트롤된다는 것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 단어가 팔에 씌어 있는 인간은 폐인이 되거나, 달아나도 달아나도 ‘주치의’인 다케조에게 끌려가 그의 세력권에서 나갈 수 없어지든지 ― 그 어느 한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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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관리직은 이른바 ‘딜레마’의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마음고생이 많고 지쳐서 문득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어지지요. 이렇게나 일을 하고 있어도 과연 보상받을 수 있을까, 타인의 눈에 자신은 어떻게 비칠까 ― 그런 불안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 같아요."

"부인과 부부관계는 어떤가. 자녀와 커뮤니케이션은 되고 있는가. 상사의 평판은 어떤가. 자기를 우러러보는 부하는 있는가. 그런 건 자기가 제일 잘 알잖아요?"

"혼자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거겠지. 문제는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 라는 거."

"이런 곳 회원들 중에도 고민이 있는 분은 있나 봐요. 밖에서 보고 있으면 불만도 부족함도 없는 사람들로만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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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지도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 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 P80

새벽이 올 때까지

다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 - P81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P82

태초의 아침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 P84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P85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밤은
많기도 하다. - P86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빗속에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 P87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P88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 P89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P90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P91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P92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 P93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 P94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
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P95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P98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P99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 P101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P102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 P104

흐르는 거리

으스름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 날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아보세" 몇 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트리고, 밤을새워 기다리면 금휘장에 금단추를 삐였고 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침과 함께 즐거운내림(來臨),

이 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 P105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그리워한다. - P106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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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유지, 24세. 미요시 아키에, 22세. 그것이 그들이었다.

오전에 도호쿠 신칸센으로 그들은 사에구사와 함께 센다이로 떠났다. 그들의 시계를 되감는 작업의 시작이었다.

시치고산七五三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고 건강을 비는 의식으로 남자는 3, 5세, 여자는 3, 7세 되는 해에 전통복장으로 신사 등에 참배함

이 얼굴, 이 눈. 본 기억이 있다. 너무나도 잘 아는 표정이다. 유지 자신이 요 며칠 사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발견한 표정이었다.

두려움이다.

미야마에 다카시는 두려워하고 있다. 태세를 갖추고 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서워해야 할 존재가 앞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이 사진 속의 당시 불과 열일곱이던 소년은 알고 있었을까.

정말로 미요시 유키에의 탓이었을까. 그녀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라는 단지 그것뿐일까. 혹은 열일곱 살 때 네가 본 ‘뭔가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가 사이와이 산장에 있었나 ― .

"사라져 가는 방언이군."

"그러게요.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습니다. 특색이 없어져 버리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도쿄의 녀석과 구분이 가지 않아요. 애쓰고 있는 건 오사카 사투리뿐이고."

"그 남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이야, 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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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비가 올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작고 차가운 손이었다.

"여보, 에쓰코를 부탁합니다"였다. 딸에게 환갑을 맞이하려는 남편을 부탁하는 게 아니라 남편에게 딸을 부탁하고 갔다.

"시작하면 돌아올 수 없는 게임이 있니?"

유카리는 웃었다. "그런 건 무섭잖아. 게임하고 있는 사람이 게임 안에서 갇혀서 나올 수 없는 것 같아."

― 신교지 씨……구해
신교지 씨, 구해줘요.
미사오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볼을 가볍게 만지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감이 좋아."

"조심해."

외롭지만 친구를 만들어서 생기는 번거로움이 싫으니까, 타인과 직접 접촉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싫으니까, 전화로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우리를 원하는 거지요. ‘전화로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전화 속만의 교제로 끝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버랜드와 같은 형태의 전화 피난소가 존재하는 이상, 절대 조건은 ‘이쪽에서는 결코 파고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유카리, 미사오 언니 좋아해. 엄마, 파이팅!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유카리의 격려뿐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도 같은 인간인 것은 변함없으니까, 이름은 하나로 족합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 ― 비록 그것이 임시라 해도 ― 그 순간에 다른 인간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래 이름의 존재로 돌아갔을 때는 임시 이름을 붙였던 존재는 죽는 게 됩니다. 그게 싫습니다."

"고마워. 나, 임시 고용한 이름 따위 갖고 싶지 않아."
"같은 의견이라서 한시름 놨네."

그는 문득 그녀가 이전에도, 즉 사라져 버린 과거의 어딘가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명의는 ‘사토 이치로’라고 합니다."

사에구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니혼타로(한국에서 흔히 예시로 드는 ‘홍길동’처럼 쓰이는 이름)나 마찬가지군."

"딱 좋군. 당신들 이사 기념 메밀국수다(일본에서는 새로 이사하면 메밀국수를 이웃에 인사로 돌림)."

"더구나 미사오는 아직 고교생이니까."

에쓰코가 말하자 기리코는 아하하 하고 웃었다. "학생이냐 사회인이냐는 상관없어요. 지금은 모두 자유롭고 돈을 갖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젊은 여자애에게는 황금시대죠. 뭐든 할 수 있고 대개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그런 건가 ― 하고 에쓰코는 생각했다. 유카리도 그렇게 될까. 시대가 그런 빛을 하고 있으니까 물들어 가는 것일까.

"대개의 인간은." 사에구사는 웃었다. "책임감이 강하니까. 틀렸다는 걸 알면 제대로 알려 주거든."

"오토인가. 그건 여자나 타는 거야. 차종이나 차 색깔은 떠오르지 않나? 번호라면 더 좋고. 그것만 알면 바로 당신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데."

몸이 무겁다. 뇌가 있어야 할 곳에 톱밥이라도 가득 차 있는 듯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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