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형식면에서 우리 판단력에 대해서는 반-목적적이고, 우리의 현시능력에 대해서는 부적합하며, 상상력에 대해서는 폭력적이다.
- 『판단력비판』 §23

칸트는 문화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창조의 최종 목적으로, 도덕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창조의 궁극 목적으로 정의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그를 통해 자연 저편에 문화의 세계를 건설하고 마침내 이상적인 윤리의 세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문화적 인간은 특정 목적을 계획하고 그것에 적합한 수단을 찾아 실현한다. 반면 도덕적 인간은 모든 목적-수단 관계를 벗어난, 그래서 어떠한 다른 목적에 의해서도 제약되지 않는 법칙을 제정한다. 도덕적 인간이 창조의 궁극 목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취미를 정초하기 위한 참된 예비학은 윤리적 이념들의 발달과 도덕 감정의 교화에 있다.
- 『판단력비판』 §60

칸트는 첫 번째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론철학을 신학에서 해방하면서 위대한 역사적 전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두 번째 비판서인 『실천이성비판』과 세 번째 비판서인 『판단력비판』에서는 신학이 다시 살아나 때로는 실천철학에, 때로는 예술철학에, 그리고 마침내는 이론철학에까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신학은 더 이상 근대 학문 위에 군림하는 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근대 학문에 맞추어 개조된 신학에 불과하다.

신학은 문화의 중심에 있는 학문이 아니라 그 주변부로 밀려난 학문, 근대의 문화적 조건 속에서 실체를 잃어버린 학문일 뿐이다. 이제 신학은 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반성적 주체의 자기 정향 속에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근대 과학에 의해 사막화된 자연에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칸트는 인간 문화 전체의 기원을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자질에서 찾았다. 그 자질은 다름 아닌 계획 능력에 있다. 자연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는 목적을 설정하는 것, 목적 실현을 위한 적합한 수단을 찾고 단계적 절차를 설계하는 것, 절차에 따라 실행하는 것, 이런 것들이 모든 문화적 성취의 배후에 있는 활동이다.

구제해야 할 것은 자연이라기보다 인간이다. 파스칼이 사막화된 자연 앞에서 느낀 공포는 허무주의의 위험성에서 온다. 맹목적인 물리법칙이 몰고 오는 허무주의에서부터 인간을 구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칸트가 목적론적 판단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이를 위해 신학을 되살리는 마지막 이유일 것이다.

칸트의 『영구 평화를 위하여』(1795)는 이런 역사 진보의 마지막 단계로서 세계적 단위의 영구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논하고 있다. 그 조건은 국제법을 제정하고 세계 법정을 수립하는 데 있다.

단일한 세계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평화로운 국제 질서를 위해서는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세계 법정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UN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다. 칸트의 『판단력비판』 후반부는 이런 역사의 합목적성과 그 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당화하는 위치에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자기에 맞설 수 있는 사유 및 자유의 형식을 발견해야 하는 과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과제에 부딪혀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용기와 지침을 주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새로운 마음의 모델을 제시한 칸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무의 주관적 조건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에 있다. 존경이라는 주관적 조건을 결여한 채 도덕법칙과 일치하는 행위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객관적 조건만 만족시키는 행위는 아직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합법적 행위에 불과하다.

도덕성과 합법성의 구분은 칸트 윤리학의 주요 특징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칸트 윤리학이 의무의 윤리학이라 불리는 것도 도덕성과 합법성의 구분을 배경으로 한다.

도덕법칙과 일치하는 행위는 외견상 의무와 구별할 수 없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유사성은 결과에 있다. 결과에 있어 어떤 행위는 의무와 동일할 수 있으나 아직 도덕적 행위라 불릴 수 없다. 그 동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도덕법칙에 따른 행위는 그 동기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에 있는 행위를 말한다. 칸트는 존경이라는 동기에서 나온 행위만을 도덕적 행위로 인정한다.

의무와 유사한 또 다른 용어는 책임이다. 책임에 해당하는 서양 말로는 ‘responsibility’도 있다. 이 경우 책임은 의무에 대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부담을 가리킨다. 반면 ‘obligation’으로서의 책임은 의무에 대한 수동적이고 강제적인 부담을 의미한다.

별이 빛나는 하늘, 내 안의 도덕법칙
칸트가 1804년 80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했을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의 위대한 삶을 기렸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 넣었다.

내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그것에 대해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커다란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 전자[별이 빛나는 하늘]는 내가 외적 감성 세계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에서 시작해서 내가 서 있는 그 연결점을 무한 광대하게 세계들 위의 세계로, 천체들 중의 천체들로,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주기적인 운동의 한없는 시간 속에서 그 시작과 지속을 확장한다. 후자[내 안의 도덕법칙]는 나의 볼 수 없는 자아, 나의 인격성에서 시작해서 참된 무한성을 갖는, 그러나 지성에게만 알려지는 세계 속에 나를 표상한다. (···) 무수한 세계 집합의 첫 번째 광경은 동물적 피조물로서의 나의 중요성을 말살해버린다. 동물적 피조물은 질료를 짧은 시간 동안 생명력을 부여받은 후에 다시금 (우주 안의 한낱 점에 불과한) 유성에게 되돌려줄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두 번째 광경은 예지자로서의 나의 가치를 나의 인격성을 통해 한없이 드높인다. 인격성에서 도덕법칙은 동물성으로부터, 나아가 전 감성 세계로부터 독립해 있는 생을 나에게 개시한다.
- 『실천이성비판』 맺음말 전집 5권 161~162쪽

이론은 진의 가치를, 실천은 선의 가치를, 예술은 미의 가치를 추구한다. 칸트의 3대 비판서는 각각 이론적 지식, 실천적 행위, 예술적 창조가 어떻게 서로 다른 가능 조건 위에 서 있는지 밝히고, 따라서 각각의 타당성 영역이 어떻게 다른지 입증했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결국 마음을 해부하여 이론적, 실천적, 예술적 보편성이 어떻게 서로 다른 조건에 근거하며 따라서 어떻게 서로 다른 타당성 범위를 거느리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칸트는 『판단력비판』 전반부에서 숭고의 미학을 제시하며 조화의 논리에 갇혀 있던 과거의 예술철학을 비로소 전복한다. 칸트는 근대 미학의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탈근대 미학의 초석을 마련한다.

세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칸트는 근대 미학의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심미적 체험의 독특한 특성을 포착하는 것은 물론, 심미적 판단1이 지닌 보편적 타당성을 정당화하는 길을 처음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런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성적 판단’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였는데, 이것은 칸트가 철학사에서 일으킨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이렇게 우연한 사실로부터 새로운 보편자로 나아가는 판단을 ‘반성적 판단reflexive judgement’이라 명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보편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특수한 사실로 나아가는 ‘규정적 판단determining judgement’과 구별한다.

‘규정’과 ‘반성’을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정의해보자. 즉 규정이란 말에서 사물로 가는 판단이고, 반성이란 사물에서 말로 가는 판단이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이 무엇인지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천재성은 배우거나 가르칠 수가 없다. 따라서 과학에서는 천재가 있을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천재의 사례로 꼽히던 뉴턴을 천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앙꼬 없는 찐빵은 찐빵이 아닌 것처럼, 감성적 이념이 빠진 작품은 작품이 아니다.

어떤 시는 정말로 산뜻하고 우아할 수 있으나 정신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다. 어떤 이야기는 정확하고 정연하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어떤 축하 연설은 철저하고 동시에 엄숙하지만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회화會話도 즐거움은 없지 않지만 정신은 결여되어 있는 게 많다. 심지어 어떤 귀부인에 대해서도 그녀는 예쁘고 사근사근하고 얌전하지만 정신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여기에서 정신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정신이란 미학적 의미에서는 마음에 생기를 일으키는 원리를 말한다.
- 『판단력비판』 §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생산된 지식들은 파편들처럼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이런 체계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능력이 이성이다.

칸트의 모든 비판서에는 변증론이 등장한다. 변증론의 주된 목적은 철학사 해체에 있다. 칸트는 변증론을 통해 자기 이전의 사상사를 간결한 삼단논법으로 재구성한 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순수이성비판』의 변증론이 겨냥하는 대상은 전통 형이상학, 특히 17세기 대륙 이성론이다. 서양에서 형이상학은 영혼, 우주, 신이라는 세 가지 문제와 싸워왔다. 이 세 가지 이념에 대한 이론적 인식을 추구해온 것이 서양 형이상학이다. 칸트는 변증론을 통해 전통적인 영혼론, 우주론, 신론을 차례대로 와해해간다.

인간은 그 형이상학적 세계에서 자라나는 물음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를, 나아가 자연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구할 수 없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식의 본성을 밝히고 그 한계를 분명히 한 궁극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대상을 사물로서 인식할 수 없다 해도 적어도 그것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므로 나는 신앙을 위한 자리를 얻기 위해 지식을 폐기해야만 했다.
- 『순수이성비판』 재판 서문 XXVI쪽, XXX쪽

순수 이성 비판의 진정한 목적은 이성의 사유에 올바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 이성의 사유에 올바른 방향과 좌표를 제시하는 것, 참된 학문의 체계와 믿음의 근거를 구축하는 것이다.

경험적 인식의 중심에 있는 것이 지성이라면, 인식의 영역 바깥으로 사유가 나아갈 때 올바른 문제를 가리키며 방향과 구도를 열어주는 것은 이성이다. 그리고 이런 이성의 사유로 가기 위한 예비적 과정이 지금까지의 순수 이성 비판인 셈이다.

칸트 이전까지는 명제를 분석명제와 종합명제로 나누었다. 분석명제에서는 술어에 해당하는 속성이 주어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분석명제는 주어에 이미 포함된 속성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있을 뿐이다.

‘삼각형은 세 변을 가진다’ 또는 ‘삼각형은 넓이를 지닌다’ 같은 명제를 보자. 여기서 술어인 ‘세 변’과 ‘넓이’는 모두 주어인 삼각형의 정의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런 명제는 결코 틀릴 수 없다. 언제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다.

종합명제에서는 주어에 없는 속성이 술어에 의해 덧붙여진다. ‘이 삼각형은 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저 삼각형은 초록이다’ 같은 명제를 보자. 여기서는 술어에 있는 ‘금’이나 ‘초록’은 삼각형의 정의에 없는 요소다. 삼각형 자체와 무관한 경험적 성질이 계사(‘~이다’)에 의해 주어와 결합된다.

종합명제는 보편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다만 개연적이며, 그래서 언제나 오류 가능성에 빠질 위험에 있다.

영국 경험론은 모든 지식의 기원을 감각적 경험에 두었고, 그 결과 학문적인 명제 일반은 개연적이거나 확률적인 타당성밖에 가지지 못한다는 회의론으로 귀착했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넘어 그 두 가지 입장을 종합한다. 칸트는 뉴턴의 물리학도 수학적 진리만큼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라고 간주했다. 거꾸로 형식과학의 명제도 경험과학의 명제 못지않게 내용의 증가를 동반한다고 보았다.

칸트에게서는 인식이든 사유든 마음속의 모든 일은 4가지 인식능력(감성, 상상, 지성, 이성)에 의해 일어난다.

『순수이성비판』 초판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본성에 의해 부과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그렇지만 자신의 능력을 벗어남으로 도대체 대답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는 운명이다.
- 『순수이성비판』 초판 서문 VII쪽

첫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귀결들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철학이라고 부른다. 원어인 ‘트랜센덴탈transcendental’의 의미는 칸트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그 번역을 놓고 많은 이견이 오갈 만큼 해석이 쉽지 않다. 이 문제에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먼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룬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의미를 그것이 초래하는 여러 결과들을 통해 정리해보도록 하자.

첫째, 칸트의 첫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단순히 대상 중심의 인식론이 주체 중심의 인식론으로 바뀐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 신학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6 칸트 이전의 철학, 특히 합리론의 독단적 형이상학은 신학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둘째,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시간 개념에서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칸트 이전의 사상사에서 시간은 자연의 규칙적인 운동(특히 천체의 운동)을 기준으로 측정되는 객관적인 사태였다. 그러나 칸트의 인식론에서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인식 주체와 무관하게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다만 우리 의식이 외부 세계로부터 자극을 수용하는 감성적 직관의 형식에 불과하다. 의식의 바깥에 있던 시간이 자연의 운동에서 해방되어 의식 안으로 귀속된 것이다.

셋째, 철학적 이성이 수학적 이성으로부터 해방된다. 철학적 이성은 당시까지 과학과 철학을 지배하던 수학적 이성과 분리되어 이제 자기 고유의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수학은 학문의 모델이었다. 이성은 언제나 수학적 이성을 의미했다. 합리성이란 측정 가능성과 연역적 증명에 기초한 수학적 합리성이었다. 따라서 모든 학문은 보편수리학의 이념 아래 하나로 통합되는 형국이었다.

철학마저 수학의 방법에 의존할 때만 엄밀한 학문으로 인정받았다. 가령 스피노자의 대표작 『윤리학』의 원제는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이다. 기하학적 논증을 모델로 철학적인 논증이 이루어지던 당대의 일반적 추세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칸트는 수학과 철학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인식과 사유, 그리고 지성과 이성을 구별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신학에, 그 이후에는 수학에 예속되어 있던 철학은 이로써 학문의 여왕이라는 우월한 위치를 다시 획득한 셈이다.

나는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대한 우리의 선험적 개념들을 다루는 모든 인식을 초월론적이라 부른다. 그러한 개념들의 체계는 초월론 철학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 『순수이성비판』 초판 서론 11~12쪽

철학의 신대륙을 발견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초월론적’이라는 용어는 ‘트랜센덴탈transcendental’의 번역어다. 이 말의 어원에는 트랜스-카테고리알trans-categorial, 다시 말해서 ‘범주-초과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단어는 1128년에 철학자이자 독일 지역 궁중대신 필리페Philippe라는 인물이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월론적 차원은 칸트가 철학사에 가져온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칸트는 철학 고유의 영토, 신대륙을 발견한 철학의 콜럼버스다. 칸트 이후의 철학사는 초월론적 차원의 발굴 및 확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근대적인 삶에 부합하는 새로운 윤리학을 제시한다. 칸트의 ‘자유’ 개념은 한없이 작고 유한한 인간일지라도 광대한 우주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근거이자 품격의 원천이다.

두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앞에서 『순수이성비판』을 중심으로 칸트가 이론철학에 가져온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대해, 이 전회의 귀결점들에 대해 논의했다. 이제부터는 『실천이성비판』을 중심으로 칸트가 실천철학에 가져온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칸트는 인식론에서뿐만 아니라 윤리학에서도 거대한 전환을 가져왔는데, 그 전환 역시 코페르니쿠스적 도식으로 집약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동일한 문화적 관습과 전통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렇기에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이 대체로 동질적이었다. 동질적인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선)을 놓고 합의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종교, 풍속, 교육 배경이 같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인간형과 최선의 삶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 일치를 끌어낸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출생 지역, 문화나 교양, 종교적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서 이상적인 인간이란 무엇이고 최선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놓고 합의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이합집산하는 곳일수록 규칙을 적게 하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 구성원들이 사이좋게 살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의 규칙을 정하는 것, 그렇게 정해진 규칙은 무조건 따르는 것, 이것이 평화롭게 사는 길이다. 법 중심의 윤리학은 이런 필요성에서 유래한다. 법 중심의 윤리학에서 도덕법칙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그런 의미에서 의무라 불린다.

인간을 (감성 세계의 일부로서의) 자신을 넘어서게 하는 바로 그것, (···) 그것은 인격성이다. 인격성은 자연 전체의 기계적 질서로부터의 자유이자 독립성이며 동시에 자신에 고유한, 자기 자신의 이성에 의해 주어진 순수 실천 법칙들에 복종하는 존재자의 능력으로 보이는 어떤 것이다. (···) 인간은 비록 충분히 신성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그의 인격에서 인간성은 그에게 신성하지 않을 수 없다. (···) 인간은 곧 그의 자유가 지닌 자율의 힘에 의해 신성한 도덕법칙의 주체다.
- 『실천이성비판』 전집 5권 86~87쪽

칸트 철학의 근본 물음들로 돌아가자.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칸트가 말하는 의지는 욕망의 일종이다.8 여기서 칸트가 상위의 인식능력으로 세 가지를 꼽았음을 다시 기억하자. 인식(앎)의 능력, 욕망의 능력, 감정(쾌-불쾌)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 실천의 세계를 여는 최초의 능력 혹은 상위의 능력은 욕망이다.

존경, 도덕적 판단의 원동력
의지 다음에는 존경respect이 있다. 존경이란 정확히 말하면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칸트는 도덕적 판단이 일어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기’를 존경에서 찾았다. 이 말의 독일 원어 ‘Triebfeder’는 원동력을 의미하는데, 요즘 말로는 엔진이나 모터 같은 동력 장치에 해당하는 용어다.

칸트의 존경은 성리학의 ‘경敬’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성리학 전체를 ‘경’이라는 한 글자로 압축한다. 칸트 윤리학과 비교해 함께 살펴볼 만한 대목이다.

자율, 적극적 의미의 자유
이제 자유를 의미하는 자율autonomy을 보자. 칸트 철학에서 자율은 의지의 자율을 말한다. 의지의 자율은 ‘초월론적 자유’와 구별되는 ‘실천적 자유’를 정의한다.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는 규칙이다. 아무것이나 다 할 수 있는 상태가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요, 책임이나 의무와 함께 갈 때만 자유는 비로소 의미 있는 자유가 된다는 것이며, 그런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규칙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는 규칙은 외부로부터 강요된 규칙이 아니라 행위자 스스로 제정한 규칙이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칸트 철학에는 세 차원이 있다. 하나는 주체로서는 알 수 없는 물자체다. 다른 하나는 주체에게 경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계다. 마지막으로 물자체와 현상계 사이를 나누면서 이어주는 제3의 차원이 있다. 그것은 경험적 대상을 비로소 나타나게 만들어주는 의식 내 선험적 원리들이 자리하는 영역이다. 칸트는 그런 선험적 원리들이 자리하는 장소를 ‘초월론적transcendental’ 차원이라 부른다.

경험의 선험적 원리들을 탐구하는 철학을 ‘초월론적 철학’이라 명명한다.

앎이란 무엇이며 경험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길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현상계의 형식적 원리들, 그것이 곧 경험(인식)의 선험적 원리들이다. 그리고 그 원리들이 선험적으로 의식에 내재한다면, 경험의 기원이나 본성에 대한 물음은 의식의 선험적 원리들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인식론은 의식의 해부학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인식의 메커니즘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철학’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비판철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칸트의 3대 저작에는 모두 비판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비판critique이란 말은 본래 그리스어 크리네인krinein에서 유래한다. 이는 자른다, 특히 음식의 썩은 부분과 썩지 않은 부분을 가른다는 뜻을 지닌다.

칸트의 비판철학에는 이런 어원적 의미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인식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인식의 영역과 사유의 영역,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등을 나누는 것, 한계를 그리는 것이 칸트적 의미의 비판이다.

거기에는 또한 해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순수이성비판』의 대부분은 우리의 마음을 가르는 과정, 의식을 해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순수이성비판』 초판 51쪽

지성의 12범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범주3는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위치, 상태, 능동, 수동 이렇게 10개가 있다. 그러나 칸트는 고전 논리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10개의 판단 형식에 2개를 더 추가하고, 그로부터 12개의 범주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 12개의 범주를 다시 양, 질, 관계, 양태라는 4개의 상위 범주 아래 각각 3개씩 할당했다. 지성은 판단 형식에 해당하는 12개의 범주를 통해 감성적인 내용을 규정해간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감성에서 출발해서 그 직관의 내용을 지성에 전달해줄 때다. 이 경우 상상력이 하는 일을 ‘종합synthesis’이라 한다. 반대로 상상력은 지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서 감성적 직관의 내용을 그것에 부합하도록 가공해주기도 한다. 이 경우 상상력이 하는 일을 ‘도식화schematize’라 한다.

이런 차이는 상상력에 기인한다.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개념에 부합하는 도식을 효율적으로 그려낸다는 것과 같다. 거꾸로 효율적인 도식을 그려낼 줄 알아야 그만큼 추상적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다. 자유로운 개념 사용의 조건은 도식을 그려내는 능력, 상상력에 있는 것이다.

인간 인식의 두 줄기가 있는데, 그것들은 아마도 하나의 공통의,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뿌리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감성과 지성이 그것이다.
- 『순수이성비판』 초판 15쪽

종합 일반은 단지 상상력의 작용 결과에 불과한 것으로, 이런 상상력은 영혼의 맹목적인가 하면 또한 불가결한 기능이다. 이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런 인식도 가지지 못할 터이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드물게 어쩌다 한 번 의식할 뿐이다.
- 『순수이성비판』 초판 7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이란? 哲學, philosophy
인간과 세계가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믿고 있는 전제들과 각 분과 학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본 개념 및 원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의 삶과 학문들의 토대에 대한 반성을 추구한다. 철학이 ‘근본학(根本學)’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은 각 학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 전체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모색한다.

경건주의(pietism)
17세기 말에 독일에서 일어난 교회 개혁 운동의 총칭으로, 루터의 이념으로 되돌아가 초기 기독교회의 경건한 신앙을 현대에 부활시킬 것을 목표로 했다.

독일관념론(German Idealism)
정신, 이성, 이념 따위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통해 물질적 현상을 밝히려는 사상으로, 18세기 말~19세기 중엽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칸트를 시작으로 피히테, 셸링으로 이어져 헤겔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었다.

현상학(phenomenology)
후설을 중심으로 셸러, 하이데거 등의 현상학파가 주도한 사상으로 의식에 나타난 현상을 사변적 구성을 떠나서 충실히 포착하고, 그 본질을 직관에 의해 파악 및 기술한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
19세기 중엽 키르케고르를 시작으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상이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주목하여 개인이 가진 실존적 의미를 찾고 이를 자신의 삶에 체화하여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주장했다.

회의론(scepticism)
인간의 인식을 주관적, 상대적이라고 보아 진리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궁극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합리론(rationalism)
비합리적이고 우연적인 것을 배재하고 이성적, 논리적,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철학적 태도로, 이성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대표 학자로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가 있으며 모든 지식은 감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경험론의 반대 입장을 취한다.

실증주의(positivism)
초월적,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격하고 관찰 및 실험 등 과학적 탐구를 강조한 철학적 경향으로, 19세기 후반에 서유럽에서 발전하여 20세기 영미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보편수리학(mathesis universalis)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에서 시작된 사상 전통으로, 세계는 신의 완전한 수학적 설계에 기초하여 창조되었다고 보며 모든 존재자의 관계적 규정을 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후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에 의해 모든 수학의 바탕에 있는 기초 학문으로 수립된다.

변증법(dialectic)
동일률을 근본 원리로 하는 형식 논리와 달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는 논리로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 반(反), 합(合) 3단계를 거쳐 전개된다고 보았다.

해체론(deconstruction)
플라톤 이래 서구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이를 해체하고자 한 사상으로, 서양 문화의 근간, 서양 사상사 전체에 감추어진 모순을 발견하고 그 한계를 전복 및 극복하려고 했다.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
신의 존재 및 그 진리의 근거를 초자연적인 계시나 기적에서 구하지 않고, 인간 이성의 능력이 인식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것에서 구하는 학문적 체계를 말한다.

철학사는 왜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가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칸트를 빼놓을 수 없다. 칸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서양철학사의 5대 천왕에 속한다.

이 5대 천왕 중에서 단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많은 경우 칸트는 플라톤과 경쟁하면서 정상을 다툴 것이다. 칸트는 그만큼 서양 사상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정초正礎한다’는 말은 어떤 하나의 사실에 대해 그것이 보편성을 주장할 권리를 입증해준다는 것을 말한다.

칸트적인 의미의 ‘비판’이란 정초이고, 정초란 특정 사실에 대해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할 범위를 설정해주는 일이다. 이는 영토를 제공한다는 것과 같다.

가령 자녀들이 결혼할 때 부모가 집을 장만해주는 것도 정초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가정생활 일반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를 마련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당사자들이 직접 집을 마련한다면 그것은 자기정초에 해당한다.

정초란 그 분야의 고유한 영토를 보장하는 것과 같다.

칸트가 서양철학사에서 차지하는 거대한 위상과 그가 일으킨 위대한 변화를 표현하는 많은 말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호수의 비유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큰 호수로 들어오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물줄기다.

서양 주체ego cogito의 역사에서 초월론적 차원의 발견은 이후 프로이트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 현대 사상사의 한 가지 중요한 과제는 초월론적인 차원과 무의식적 차원을 결합하는 데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라캉의 무의식 이론이, 철학에서는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이 그런 종합의 주요 사례가 된다.

칸트는 철학의 고유한 영토를 발견한 철학의 콜럼버스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이룬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서양철학사를 넘어 인류 정신사를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 칸트의 인식론은 여전히 현대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진선미眞善美’라는 말이 있듯이 서양철학에서 진리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철학은 제1철학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선의 문제를 다루는 실천철학은 제2철학으로, 미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철학은 제3철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전도는 이미 ‘사유하는 주체’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던 데카르트에 의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체 중심의 인식론에 완결된 형식을 부여한 것은 칸트다. 칸트는 사유하는 주체 내부에서 초월론적 차원을 발견하여 주체 중심의 근대 인식론을 완성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