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기는 열었다.

테이크아웃 판매만 할 수 있다.

커피 세 잔, 담배 세 갑, 과자 세 봉지 팔았다.

삼 삼 삼 운율이 맞은 기념으로 글을 하나 남긴다.


삼삼삼 운율?

실상 운율에는 별 의미가 없다.

그 사이 사이 음료수 캔도 팔았고 가나 초콜렛도 팔았다.

운율을 맞추려다보니 다른 것은 생략한 것이다.

이왕이면 삼삼칠 운율로 맞출 것을 그랬나?


까마귀 일곱 마리가 하늘을 난다.

깍까까 깍까까 깍까까까까까까

엄청 시끄럽다.

인적이 드문 마당에 까마귀 날아든다.

까마귀 득세한 날,

까치가 덤빈다.

까치도 난다.

까까까 까까까 까까

까마귀는 깍까까까

까치는 까아치

까마귀가 더 온다.

(얘들은 어디 있다가 오는거지?)

까마귀가 수가 훨씬 많다. 등치도 크다.

그래도 까치가 덤빈다.

(거 참 나. 엄청 시끄럽구만.)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무튼 까마귀 승!

그러다 한 사람 지나간다.

두 사람 지나간다.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여섯, 일곱...

사람 보고 까마귀 난다.

다 날아간다.

하아아..




손님도 가고

까마귀도 가고


나만 남았다.

그만 문 닫을까?

헤헤.

하늘 참 파랗네.

헤헤.

안경 참 흐리네.

헤헤.

얼굴 참 하얗네.

헤헤.

마음 참 슬프네.

헤헤.

헤.


손이  참 시리네.

헤.

헤.

헤.

















#

오후 4:42

해가 진다.

시퍼렇던 하늘 색깔이 점차 옅어지는 시간.

파란 색소가 빠져나가는 시간.

이러다 붉은 색소가 스며들고 그러다 까맣게 타는 하늘(뭔 이런 오글거리는 표현을 다 하고 앉었냐 싶지만은 아무튼 이제는 발도 시리다. 쓰읍)이 덮쳐오겠지. 


가게 문 안 닫고 잘 버티고 앉았으니 아마 내 생각에 앞으로 담배 두 갑 정도는 더 팔 수 있을 것이다. 두 갑, 구 천 원... 아 맞다. 아까 손님이 프로즌 달라고 했는데 새로나온 담배냐고 물으니 요즘 핫한 거라고 한다. 주문해야할까? 담배는 선불, 그것도 현금으로 결재해야 되서 재고 많으면 부담된다. 그래도 핫하다는데 주문해야겠지? 담배 주문하는 김에 책도 좀 주문해볼까나? 떽! 담배랑 책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아니 뭐. 나한테는 별 상관이 없긴 한데.. 그게 그러니까.. 책이니까 말이야. 책은 아무거나 다 상관이 있는 거라고. 책이 상관하지 못할 세상이란 있을 수가 없다니깐 그래. 어? 잠깐! 까마귀 날아간다!



헤헤.

이것봐. 날아가지? 까마귀 날아가잖아. 까마귀 많지. 까마귀떼 바쁘다니깐. 흐흐

아무튼 그래서 나도 바쁘다. 잊기 전에 프로즌 한 보루 주문하고, 또 잊기 전에 레베카랑 루아크 책 주문해야겠다. 헤헤헤헤헤. 

까마귀떼 바쁜 날.

잘잘라는 기쁜 날.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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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시인이 되기로 하셨군요. 요 근래 본 가장 멋진 시입니다. ^^

잘잘라 2020-12-08 23:23   좋아요 0 | URL
이예? 이예? 이예? 바람돌이님, 저 지금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저 오늘 잠 못 이루면 전부 다 바람돌이님 때문이예요. 책임지세요. ㅎㅎ
 
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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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테마로 200자 원고지 600매를 쓰는 일‘을 소개해준다. 이렇게 극진한 소개를 받은 김에 어디 한 번, 창작의 욕망을 불살라 봐바바? 시도때도없는 이눔의 공허함을 가차없이 내팽개 쳐 봐바바바? 눈물나게 웃긴 이야기로 꼭 한번 써보고 시푸다. 200자X600매=십이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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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06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꼭 써요!!!!! 빠샤!! 👍👍👍👍👍

잘잘라 2020-12-06 11:26   좋아요 0 | URL
빠샤아ㅡ!! 라로님 기운 받고 힘내서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12월 3일 목요일
누구는 수능시험을 보고
누구는 낮술을 마시고
누구는 밥을 굶고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
누구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누구는 전화를 받고
누구는 이상한 기분이고
누구는 소리를 지르고
누구나 경찰서에서 만나고
누구나 떠들고
누구나 한숨 쉬고
누구나 똑똑하고
누구만 한심하고
누구는 죽고 싶고
누구는 어지러운데
누구도 없다.
누구도 없다.
누구나 있는데?
누구만 없다.
누구만.
(제목 나왔다. 누구 놀이)


#
그래도 책이 왔다.
사자 얼굴 디게 크다.
강가에 앉아 있는 사람 얼굴이 왜 저럴까.
ㄱ래도 좋다.
(‘그래 놀이‘도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는 오늘도 경찰 만날찌 몰르니깐..)


《경이로운 동물들》, 커서 좋다.
《책 한번 써봅시다》, 작아서 좋다.

장난하냐?
네.

진심 장난하고 싶다.
토요일이다.
신나는 툐요일, 토요일 툐요일은 즐거워.

다행이다.
토요일이라서..
토토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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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인가 돈인가

기다리는 데 필요한 것은 전기인가 물인가

기다리는 데 필요한 것은 밥인가 술인가


다 필요없다.

나만 있으면 된다.

그곳이 어디든,

그때가 언제든,

이 모양 이 꼴이든,

저 모양 저 꼴이든,

정신 차리고

나만 있으면 된다.


기다리는 실력이 점점 늘어간다.

올 것은 오고야 말테니.

올 때까지,

내가 있으면 된다.


2020년 한 해,

기다리는 실력이 엄청 늘었다. 

사람이든 날씨든,

손님이든 친구든,

택배든 시간이든,

책이든 뭐든,

다,

모조리,

죄다 기다려주마.

싹다 기다려주마.

나는야 기다리는 나라의 대마왕

대대대 대대 대마왕

움화하하하하하

*

결국

기다리는 자가 맞이할

도서목록.

『놀라운 나비들』

놀라운 가격

놀라운 그림

놀라운 나비

놀라운 나,

놀라운 나의

놀라운 기다림









『경이로운 동물들』

경이로운 그림

경이로운 동물

경이로운 시간

경이로운 세상











아 나 기다림의 대마왕인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다.

금요일 오후 네 시.

다 팽개치고 뛰쳐나가고 싶은 시간.

아 진짜.


♬밖으로~ 나가버리고호~


정신차리자.

아직 아니다.

잊지 말자.

나는야 기다리는 나라의 대대대 대대 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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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리커버 양장 에디션)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움직인 만큼 딱 그만큼 세상이 깨끗해진다. 한 사람만 왔다 가도 치울꺼리가 생기고, 가게 문을 열었다는 자체가 이미 스탠바이 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몸에는 늘 힘이 들어간다. 움직여야 계속 움직일 수 있다. 체력이 딸린다고 느낄 때 더 움직이는 이유다. 움직여야 힘이 빠지고, 힘이 빠져야 힘이 덜 든다.

6년째, 가게를 하면서 내가 가장 잘 이해하게 된 것은 깨끗함에 대한 욕구(실은 ‘욕망‘이라고 말하고 싶은) 또는 기대치가 엄청 높다는 점이고, 이것은 손님들 얘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직 강박증까지 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시간 문제가 아닐까,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강박증이라면 치울꺼리 남겨두고 도망치듯, 늘 그렇게 후다닥 퇴근하진 못할테니까.

오늘도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바빴다. 특이점은 날이 추운데도 커피를 들고 나가서 차가운 바깥 의자에 앉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장사를 안한다면 모를까 계속 하려면 역시나 바깥에도 테이블을 놓아야 할까? 흠.


*
《부지런한 사랑》을 읽고 좋아서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력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그것도 좋아서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읽고, 이어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는다. 다른 책보다 크고 눈에 띄는 표지라 가게에서 읽자니 오가는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지만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고도 치우지 않고 앉아서 책멍(표지멍? 제목멍? 이슬아멍, 복희멍, 우럼마멍) 때린다. 훌쩍 30분이 흘렀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세대고, 나이, 성격, 취향, 어느 하나 닮은 데가 없는 이 사람 얘기가 왜 이렇게 와 닿을까 골몰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아 거기, 그 모든 공간, 그 모든 장소에 내가 있었구나. 서울, 을지로, 청계천, 구제 옷 가게, 반지하, 운동장, 운동회, 면허시험장, 스쿠터, 카페, 미술학원, 화실, 강의실, 신사동, 잡지사, 면접실, 그리고, 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거기에.

*
바깥에 놓을 테이블을 주문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불멍이니 물멍이니 별소리가 다 많으니 나는 오늘 책멍 또는 북플멍이다.
일을 하는 건지,
돈을 버는 건지,
핑계김에 책을 읽자는 것인지.
읽는김에 글을 쓰자는 것인지.
그걸 다 하자는 말인가.
말이다.
말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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