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하버드 신경학 교수에 소울메이트 남편, 거기에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삼남매까지...앨리스에게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매일 매일 조깅하는 거리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기 까지는. 처음 갱년기 증상일거라 짐작했던 앨리스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자 본격적으로 자신의 뇌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진단명은 조발성 알츠하이머. 나이 오십에 치매라니...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강의를 하고 학회에 출석해야 하는 앨리스로써는 자신이 숨쉬는 것마냥 해온 모든 것이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녀의 발병이 유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걸 알게 된 앨리스는 그녀의 자식들이 걱정이 되고,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되도록이면 자신의 병명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던 앨리스는 실수가 잦아지면서 더이상 남에게 증상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데...


영화 <Still Alice>의 원작인데 영화가 궁금하다보니 원작먼저 읽게 되었다.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을 하나둘씩 못하게 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느린 인격 살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 소용돌이 치는 과정속으로 휩쓸려 버린 한 교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어떻게 영화화가 되었을지 짐작이 가던데, 무엇보다 배우들을 잘 선정한 듯 싶다. 주인공 역의 줄리안 무어나 앨리스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세째딸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책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아 보이니 말이다. 지적인것이 생명인 하버드교수에게 찾아온 치매라... 그런 아이러니함속에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앨리스의 모습을 통해 치매의 끔찍함과 가족들의 어려움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더불어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어디까지를 ' 나'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그 상황에 처한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 작가는 앨리스는 통해 질문하고 있던데,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다.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모두에게 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주장인 듯 하던데, 알고는 있지만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 힘든, 어찌보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런지 싶다. 치매의 문제야 말로 나는 상관없다고 자신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테니 말이다. 


★★☆☆☆ 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치바의 후속작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사신 치바가 다시 돌아왔다. 전작을 재밌게 읽었던 나로써는 반가움에 콧노래를 불렀던 작품. 내일 죽는다면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별로 떠오르는 상대가 없는 나완 달리 꼭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두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외동딸을 사이코패스에게 허무하게 잃어버린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야먀노베 부부는 1년동안 치밀하게 딸의 복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되었을때 그들 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치바! 과연 치바는 왜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며, 이번에 그가 조사(?) 하는 사람은 누구인 것일까?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실은 개미하나 죽이지 못하는 여린 심성의 야먀노베 부부는 복수는 커녕 오히려 딸의 살해범에게 농락을 당하고 마는데...


사신 치바같은 쓸만한 캐릭터를 이미 만들어놨음에도 왜 전작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걸 보면 좋은 작품을 쓴다는게 생각만큼 쉬운게 아닌 모양. 장점은 뭐, 거의 없다 시피하니 대충 생략하고 단점만 들라면 이사카 코타로의 고질적인 악습이라고 해야 하나? 설교가 여지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양반, 치바가 음악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처럼 설교를 안 하면 책을 못 쓰시나보다. 누군가 좀 말려줬음 싶을 정도로 전작품을 통해 설교를 남발하시는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누가 소설 읽으면서 지루한 설교따위를 듣고 싶겠는가. 하여간 난 아니라니까? 이야기는 굼뱅이 마냥 느리게 진전을 하고, 이런 전개가 필요하긴 해? 라는 뜨악한 심정으로 보게 만드는데다, 사이코패스가 이젠 전세계적인 유행인가 보군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별로다. 그만큼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는 말씀. 그나마 결말이 맘에 들어서 다행. 그렇지 않았더라면 점수를 더 박하게 줄뻔했다. 냉정하지만 인간적이고, 음악과 비를 몰고 다니는 사신이라는 기발한 캐릭터를 고안해낸 이사코 코타로, 그가 다음엔 이 치바를 더 훌륭하게 활용해 주시길...


★★★☆☆ 실크 웜/ 로버트 갤브레이스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낸 조앤 롤링의 두번째 추리 소설 . 복잡하게 시리 왜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필명으로 내셨을까 짜증이 나긴 하는데, 해리 포터의 세계적인 인기를 감안하면 그 이름에 의지하지 않고 글을 써내겠다는 그녀의 의지만큼은 존중해주고 싶다. 하여간 자신이 아동용 책뿐만이 아니라 어른용 추리 소설도 굉장히 잘 쓴다는것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던 작품. 해리 포터로 평생을 써도 다 못쓸 돈을 버셨을텐데도 힘들여 책을 쓰시는걸 보면 그녀의 근면성도 알아줄만하고, 더군다나 다른 장르임에도 이질감없이 뚝딱뚝딱 잘만 써내려 가는걸 보면 그녀가 천상 글쟁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해리 포터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이름을 꼭 날렸을만한 재능이다. 하긴 이제 오십을 넘기셨으니 나중에 어떤 작품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언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 하여간 이젠 하도 칭찬을 해서 더이상 칭찬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조앤 롤링이 내놓은 두번째 소설.  그녀에 대한 욕심이 과해져서 일까? 기대치가 이제 하늘로 치솟아 보이지 않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이 전작만큼 좋지는 않았다. 이유는? 글쎄...살인 방식이 너무 끔찍하고, 사건을 조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꼬아놔서 말이다. 과연 누가 이렇게 살인을 하고 싶겠는가 싶을 정도로 공을 들여 살인을 저지른 과정도 석연치 않아서, 이 모든 것을 합해 점수가 좀 내려갔다. 하지만 살인사건만 빼고 본다면 그외 과정들은 훌륭하다. 탐정과 그 비서의 썸탈듯 썸타지 않는 이야기, 출판계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재미, 당대 인기 락스타의 혼외 자식이라는 어정쩡한 캐릭터로 중무장을 한 탐정 자신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져서 흔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은 탁월했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조앤 롤링에게 실망했느냐고? 어디 감히!! 그러겠는가. 생각해보면 조앤 롤링은 짝수번째 작품이 그다지 재밌지 못했다. 첫번째 해리 포터가 대박나고 나서 나온 두번째 책이 난 가장 재미없었다고 보는데, 그 이후로도 약간은 짝수번째가 약하다는 징크스가 있었지 않는가 한다. 해서 아마도 다음 편이 이보단 더 재밌을 것이라 추측을 하면서, 조앤 롤링이 남는 시간에도 꾸준히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내어 주셨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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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드 잡>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대학에 떨어지고 여친에게까지 차인 히라노 유키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집어든 삼림관리 교육관 모집서에 호기심이 생긴다. 내용때문이 아니라 그 전단지 속의 여자 모델이 예뻤기 때문. 단순히 그녀가 맘에 든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덜컥 낸 유키는 긴 여정끝에 가무사리 숲이란 곳에 도착하게 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이 공기도 사람도 말도 다른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지게 되었을때 누구라도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유키는 다른 도시 청년보다는 훨씬 더 어리버리하고 약골이라서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살던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살면 안 되는 곳에 떨어졌을때의 충격과 갈등을 다들 짐작하시리라 본다. 1개월만 버티면 수료증을 준다는 말에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는 어느날 야밤에 짐을 싸고 마는데...

 

숲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숲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주던 영화다. 일본 영화답게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다. 뺀질이 초짜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직업에 도전해 당당한 일꾼으로 성장해간다는 기본 줄거리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린 것이 주효하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도 볼만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숲의 정경이다. 어디에 카메라를 갖다 대건 눈이 확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녹색의 바다가 출렁이는 듯한 장면은 감탄스러웠다. 거기에 일본에서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직업 벌목꾼처럼 나무를 타고 베는데 그것도 대단했지 싶다. 어떤 액션 장면보다 아찔하던데, 그걸 어떻게 찍었을지 저의기 궁금하다. 숲을 존중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도시 청년의 직업탐방기. <가무사리 솦의 느긋한 나날>의 감동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보셔도 좋을 듯. 


                                                       < 투 데이즈 원 나잇>


마리옹 꼬띠아르의 원맨쇼를 보는 듯했던 작품. 주인공의 옆 모습만 비쳐주는데도 영화가 지루하지 않더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우울증에서 간신히 회복된 상드라는 병가에서 돌아와보니 직장에서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투표에 의해서. 사장이 보너스냐 상드라의 복직이냐를 두고 투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월급이 간절히 필요한 상드라는 눈물을 흘리지만, 친한 직장 동료의 설득으로 월요일에 다시 한번 전체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이틀 낮과 하루 밤의 주말 동안 동료들의 집을 돌면서 자신에게 찬성 투표를 해달라고 설득하는 것. 우울증의 여파로 깨질듯 연약한 그녀는 자신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 내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자신없어 한다. 다른 누구보다 돈이 얼마나 커다란 유혹인지 아는 그녀로써는 자신을 위해 그들의 몫을 포기해달라고 부탁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갖고 있는 용기를 긁어모아 가가호호 집집 방문을 시작한 상드라, 그녀는 과연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상드라의 감정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마치 내가 해고 직전에 동료들의 동정에 호소하고 다녀야 하는 상드라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처음엔 그것이 말도 못하게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니 그외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 그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다. 마지막에 상드라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서 " We had a good fight." ( 정확치는 않음. 본지 좀 오래되서.)이라고 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한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에선 때론 결과가 전부가 아닐때도 있다는 것을,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는 과정속에서 얻어내는 것도 있구나 라는걸 생각하게 했다. 화려한 비주얼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로 승부하는 작품.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공감하기 더 쉽지 않을까 한다.



                                                                        <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스티븐 카렐이 출연한다고 해서 보게 된 작품.  다른 남자가 생겼으니 이혼하자는 아내의 말에 짐을 싸들고 나온 칼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첫사랑과 결혼해 아내만 보고 살아온지 어언 20여년. 가정을 위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살아온 그에게 아내가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배신감과 상실감에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던 그에게 그런 그를 안스럽게 보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나섰으니 그가 바로 야곱이다.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 멋들어진 카사노바는 지루하고 축 늘어진 재미없는 아저씨가 되어있는 칼을 개조시켜 주겠노라고 선언한다. 처음엔 어린 네가 뭘 안다고 하면서 반발하던 칼은 점차 야곱의 조언에 따라 중년 카사노바로 거듭나게 된다. 새 인생이 펼쳐졌다면서 환호를 하는 칼,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선 여전히 아내에게 돌아가고픈 마음 하나뿐인데...

경쾌하고 다소 꼬인듯한 로맨스 영화라고나 할까? 줄곧 엇갈리기만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혼란스러웠는데 마지막에 제대로 정리를 해주어서 다행이다 했다. 화려한 배우들에 그럴듯한 연애 기술 조언, 그리고 그들의 왁자지껄 연애로 재밌게 본 작품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웃을 수밖엔 없었음. 마지막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스티븐 카렐을 보려고 보게 된 영화인데,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 작품. 엠마 스톤도 예쁘게 나온다. 아, 그러고보니 요즘 잘 나가시는 줄리언 무어도 나오시네. 하여간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던 작품.


                                                    <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라이언 고슬링에서 시작해서 데인 드한으로 끝이 나는 영화. 리뷰가 길어지는 관계로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2대에 걸친 악연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던 작품이다. 서커스의 모터싸이클 스턴트맨인 루크는 1년 반 전에 하루밤 잤던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은 아버지가 없어서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나선 루크, 문제는 그녀에게 이미 결혼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관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란 어려운 법, 당장 사단이 나기 시작하고, 아이에게 돈이라도 원없이 주고 싶었던 루크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은행 강도에 나서게 된다. 한편 신참내기 경찰인 에이버리는 도망친 은행강도가 민가에 침입했다는 말에 출동하게 되는데...

라이언 고슬링의 진심어린 연기, 데인 드한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눈에 들어오던 작품. 브래들리 쿠퍼도 어디 가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 영화에서는 그 둘에게 밀리는 느낌이다.  2대에 걸친 악연을 조금은 억지스럽게 아귀를 맞춘게 아닐까 싶은 감이 있다는 것이 별로였지만 영화의 분위기만큼은 제대로 살린 듯. 특히나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면서 아들 주변을 빙빙 도는 칼의 슬픈 인생이 눈에 밟히던 영화였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니 알아줄 수 없는 진심에 가슴이 아리더라. 그런 역에는 이상하게도 라이언 고슬링이 제격인듯...매력적인 세 남자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영화 자체는 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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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리뷰를 길게 쓰다가 날려 버렸다. 왜 임시 저장을 누르지 않은거야 자책을 해 봐도 이미 소용 없는 일. 김도 새고 기운도 빠져서 결국 쓰던 것중 기억나는 것만 적기로, 고로 설명이 대략 친절하지 않고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이해가 안 되시면 그냥 건너 뛰시길. 결론만 알고 싶으시다면, 기대를 크게 하시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비티보단 조잡하고, 앞 부분은 지루한데다, 감상적인 톤이 두드러져서 SF영화라기 보단 가족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대단히 재밌다고 거품 물만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한번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되는데,  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우뇌형 인간을 위한 최신 우주 이론 정복기 >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빅뱅이니 블랙혹이니 웜홀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 매혹적인 이론들을 접할때마다 우리 우뇌들이 겪는 한결같은 좌절감은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렸다. 그렇게 우주에 대해 심오한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이해력이 달리는 관계로 당최 뭔말을 하는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감상적인 소재를 당의처럼 입혀서 최신 우주 이론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던 작품이구나 했다. 비유를 해보자면 드라마판 <코스모스>라고나 할까나? 해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우주를 설득력있게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좌뇌형 인간들에게나 의미있을 이론들을 지극히 감상적인 톤을 입혀 우뇌형 인간들에게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좌뇌형 인간들에겐 어쩜 이 영화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이렇게 감상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우주를 분석하는데 그런 감상이 필요하지도 않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 있는 그대로의 우주' 는 삭막 그자체란 말이지. 이상하게도 우린 감성적으로 접근할때 더 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해서 놀란 감독이 이런 작법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뭐, 이것이 이 영화를 본 내 감상이고...

해서 나에게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했던 점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나 그 지구의 미래를 걸머지겠다고 우주로 나섰던 우주 탐험대가 아니라, 우주 이론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던 그들의 방식이었다. 우주에 나갔다. 우리가 살만한 별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지만 그럴듯한 후보군별까지 가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웜홀이다. 중력이 강한 한 후보군에 들어선 탐사선 사람들은 10분후 돌아와보니 23년이 지났다는걸 알게 된다. 상대성 이론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대한 추측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실제로 블랙홀이라고 추측되는 공간이 관측되었다고는 하나 과연 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할 뿐이지만 정설은 없고, 미래, 우리 지구 과학자들이 그걸 밝혀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다만 그곳에는 4차원이 아닌 5차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금까지의 최신 우주 이론들을 망라하고 있는데, 말로 풀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안 갈지 모르나, 영화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이 이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모면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론에 사실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미덕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이 최대 단점도 포착된다. 마지막 결론 부분쯤에서 뭔가 석연찮게 두리뭉실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그래도 과학 다큐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그저 허무맹랑한 SF영화처럼 톤이 바뀐다고나 할까. 앞까진 그럭저럭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정도였다면 저건 그냥 상상 아냐? 진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어리둥절하던데, 알고보니 영화가 그렇게 풀려가게 된 데는 현대의 우주 과학 이론이 바로 그 앞 지점까지만 밝혀져서 라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블랙혹과 5차원에 대한 이론은 아직까지 딱 이렇다 저렇다 정설로 내세울만한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가 두리뭉실하게 된 것은 우리가 아는 것 역시 그렇게 두리뭉실하기 때문이란다.

하긴 다른건 그럭저럭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시간 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내가 우뇌형 인간이라고 해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직관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해서 가장 설득력없는 이론을 가져다가, 가장 감상적인 결론을 쉽게 내려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마지막 부분만은( 이성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웠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은 영화라는 것이다. 내가 수긍하건 말건 간에 그냥 즐기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니, (우뇌형) 인간으로써 보자면 결론만큼 다행스러운 것이 없었다. 초반 하도 우울하게 지구의 미래를 그려놓길래 먹먹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데, 우울하게 끝을 내놓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말이다. 과연 우리 지구의 미래가 그렇게 암울할 수 있을까 내내 의아해하면서 지켜봤는데, 적어도 인간들이 결국 답을 찾아 내더라는 결론만큼은 지지하고 싶었다. 삭막한 미래의 지구를 보니, 그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이 사랑과 추억과 우정와 열정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더라. 아마도 감독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인 결국은 그런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런지...감히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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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라든지 진심이라든지, 그런 것에 솔깃할 나이는 이미 지나 버렸기에 제목만 보고는 흘려 보낸 작품. 도무지 저딴 제목으로 멀쩡한 작품이 나와 주겠어 라면서 혀를 끌끌 찼는데...문제는 이 영화가 이상하게도 자꾸 여기저기서 눈에 밟히더라는 것. 해서 결국 호기심에 지는 셈치고, 그리고 더이상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서 보게 된 작품. 결론은 안 봤음 어쩔뻔했어~~라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로 재밌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저급의 퀄리티는 온데간데 없이--그렇다고 대놓고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서도--군더더기 없이, 유려하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봐서인가 감탄하고 말았다.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배우들의 연기와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가 되게끔 풀어놓고 있던 감독의 연출력. 가히 기가 막히다고 할만큼 멋진 앙상블이었다. 소재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될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이야기가 나와 주더라는 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해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나이 42에 무작정 백수가 되기로 결정한 오오구로 시즈오는 이제와서 자아를 찾겠다고 오도방정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심사숙고 하겠노라고 엄숙하게 선언을 하는 시즈오, 그 앞에는 빨리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아버지와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라고 등떠미는 착한 17살의 딸네미가 있다. 백수 한달 만에 천직을 찾았다면서 만세를 부르는 시즈오, 그것은 바로 만화다. 만화를 그릴 줄은 아느냐고 묻는 딸과 얘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는 아버지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명랑한 시즈오는 만화가 데뷔를 위해 불출주야 노력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기로 했다기로서니 어떻게 하루종일 만화만 그릴 수 있겠는가. 하여  42살 시즈오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게임 삼매경, 그다음엔 이십대 청년들과 함께 알바 삼매경, 그 다음엔 성실한 샐러리맨 소꼽친구 불러다 술 얻어먹기, 불안해질때쯤 철야 만화 그리기, 돈 부족해지면 딸에게 돈 빌리기등 도대체 어른이 얼마나 철이 없으면 이라고 할만한 일상으로 첨철되어 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만만한 시즈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타박을 당할때마다, 그리고 힘들여 그려간 만화가 퇴짜를 맞을때마다 '아직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그런 최면도 결국엔 현실에 맞닿아 깨지게 되는 날이 오기 마련,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인 시즈오로 나오는 배우의 원맨쇼 같던 작품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찌나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던지, 신인인데 이렇게 연기를 잘 한다고? 라는 생각에 찾아보니 츠츠미 신이치...그럼 그렇지, 내가 아는 배우였다. 다만, 이렇게 망가진 역으로는 처음 봐서 몰라본 것일뿐. 아는 얼굴임에도 몰라볼 정도로 츠츠미 신이치는 철저히 배역 그 자체더라. 가장임에도 어찌나 철딱서니 없고 생각이 없는지 밉살맞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캐릭터인데, 그런데 츠츠미 신이치가 연기를 하니 밉지가 않다. 사실은 귀엽기 그지없다. 중년의 남자가 주책을 떠는데도 귀여울 수 있다니...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가능했단 것이지. 그런 보기 드문 설득력으로 무장한 영화였으니 성공작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해서 결론적으로 주연 배우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것, 거기에 이 영화는 조연들도 좋다. 일본 영화를 보면 맘에 드는 것이 주연만 사는게 아니라 조연들도 산다. 주연을 위해 버려지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연과 공생하는 캐릭터라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말이다. 좋은 배우들을 끌어다 연기를 시키면서 결국 아무것에도 쓰지 않는 낭비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는 참 매력적이다. 그밖에 또 맘에 드는 점을 들라면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며칠전 우리나라 영화인 <슬로우 비디오>를 보고선 경악하고 말았다.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선문식 철학을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면서 어떻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지 만드는 사람들이 안이했다 싶더라. 이 영화속에서는 다행히도 그런 우는 범하지 않는다. 그게 최소한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최대한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알기에, 맥락이 이어지는 대화를 해대는 이 영화가 멋지게 다가왔다. 원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문인지 전개가 물 흘러가듯 스스럼없이 이어진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설정이 아니라 진짜로 백수 아저씨가 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보는 듯하다. 환상을 꿈꾸면서 마냥 낙천적인 아저씨를 보는데 진짜로 현실적이라는게 이 영화의 포인트.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있지 않는다고 해도 가능하다고 상상이 될만한, 그런 인간들이 그려진다는 점이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한 점은 이 영화가 웃긴다는 것이다. 이 영화, 코미디다. 배우의 신공 넘치는 연기에도 웃고, 진짜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어물쩍 넘어가려 애를 쓰는 주인공의 강한 정신력에도 웃고, 42에 중 2병에 걸린 아들을 어째야 할지 몰라 고민인 아버지 때문에도 웃고... 하여간 등장인물들은 진지한데 보는 나는 웃긴다. 바로 이 것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었다. 나이가 들었으면 철이 들어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서도, 철이 어떻게 드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 법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그런 사람을 향해 마냥 타박을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 그런 사람이라도 진심이라면 응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 작가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세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공감력만큼은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단 한 수 위 같아서 살짝 부럽더라. 다양한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진심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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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


미나토 가나에의 책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던 작품. 원래 미나토 가나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일드 <N을 위하여> 1화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1화가 상당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라 눈을 뗄 수 없던데, 일본 드라마 관계자들이 워낙에 연출력이 좋아서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온것인지, 아니면 원작 자체가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 저의기 궁금해서 말이다. 아,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기다리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서도...


내용은 초호화 고층 아파트에서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장에 있었던 네 사람을 취조하던 경찰은 그 중 한 명이 자백을 하자 살인죄로 그를 기소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우연히 그 장소에 모인 것이었다고 말하던 네 사람은 각자의 기억대로 당시를 회상하는데...


네 사람, 살인 사건, 10년뒤의 회상, 그 네 사람에 얽힌 사연, 과연 진실은? 이라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게 하던 작품이다. 과연 드러난 진실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괴리는 어쩌다 생긴 것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안 볼 수가 없었다. 설정이나 풀어가는 전개등에서 뜻밖이다 싶을 정도로 탄탄하다는 점이 장점. 특히나 그 네 사람중 유일한 여주인공인 스기시타 노조미의 인생 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좋을만 했다. 데릴 사위로 들어온 아버지가 17년간의 헌신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단지 자기 마음대로 한번 살고 싶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다 내 쫓았다는 이야기. 도무지 어디서고 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게  묘하게 신빙성과 호소력이 있어서 말이지,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단점이라면, 그외 다른 주인공들에 대한 묘사 부분에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점과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는 씬이 늘어나면서 같은 문장들이 자꾸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대체로 극도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등장시킴으로써 리얼리티를 해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그러니까 한마디로 지나치게 극단적이라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뜻--이 작품속에서도 결국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별로였다. 그런 사람들을 빼고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면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상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등장시켜야 하는 것이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인가 보다. 그녀가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글이 써진다고 한다면, 독자로썬 적응하는 수밖엔...그게 싫음 읽지 않음 되니 말이다.  아직 드라마가 1회밖엔 방영되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으나, 아마도 작품성 면에서는 드라마가 좀 더 낫지 않겠는가 한다. 다른건 몰라도 일본 드라마 제작진들, 별거 아닌 원작들을 가지고도 뚝딱뚝딱 근사한 드라마를 잘도 만든다니까. 그것 하나만은 인정해 줘야 할 듯...


                 우편 주문 신부/ 마크 칼레 스니코/★★★☆☆



일단 이 책은 19금이다. 뭐, 내 기준에만 그런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아무나 빌려 갈 수 있는 서가에 꽂혀 있던 만화책에 이런 내용이 숨겨져 있어서 살짝 놀랐다. 뭐, 이런 정도는 요즘 청소년들이 봐도 아무 지장이 없으려나? 하긴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가질 만한 나이가 아니긴 하겠다 싶지만서도...


우편 주문 신부...제목만으로 반발심이 들만한 작품인데, 보게 된 이유는 표지에 보이는 한복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한복 같아서, 설마 한복? 이라고 들여다 봤더니 진짜 한복이다. 한복에 담배라...거기에 우편 주문 신부라. 뭐, 이 정도면 이 작품에 대해선 설명은 거반 다 한듯 하다. 캐나다의 39살 숫총각 몬티는 우편 주문으로 한국인 경을 신부감으로 데려온다. 작은 동양인 여인을 기대했던 몬티는 키가 큰 경을 보고는 실망하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그는 실망감을 누그러뜨린다. 경 역시 한국이 싫어 모든 것을 잊는다는 심정으로 캐나다에 왔지만, 만화책 가게를 운영하면서 크지 않는 아이처럼 집안 가득 장난감을 모으고 살아가는 몬티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선 두 사람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 한편으로는 실망감을 감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앞으로는 행복했음 좋겠네 라는 희망을 안고 둘은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순종적이고, 근면하고, 가정적이고, 고분고분한 동양인에 대한 환상이 있는 몬티가 과연 산전수전 다 겪은 현대적인 여성 경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덜 자란 애들처럼 환상에 절어사는 몬티에게 경은 과연 사랑을 느낄수 있을까? 둘의 파국이 예정된 것이라면, 남은 것은 이제 언제 그것이 터지는가 하는 것일 터... 탈출구를 찾던 경은 우연히 사진 작가 이브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누드 모델 제안에 응하면서 예술이라는 일탈로 나가가게 된다. 그런 경을 바라보는 몬티의 눈에는 불안감과 질투가 가득한데, 과연 이 커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이 과연 부부로써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팔려온 신부, 라는 말이 맞겠지? 팔려온 신부가 타국에서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라는걸 뜨악하고 끔찍한 심정으로 보게 된 책이다.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읽기가 더욱 더 끔찍하던, 물론 여기엔 살인이나 그런게 없지만서도,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것 자체가 이미 끔찍한 일이라서 말이다. 작가가 어디서 어떤 경로로 경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을 만났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분명히 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리얼리티 있어서 말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렇게도 행복은 잡기 힘든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을 내버린다는 것의 결과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순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성 면에서는 거짓이 섞이지 않는 수작이나, 솔직히 이런 책을 읽고 싶은가는 의문이다. 내용을 알았더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지도...오해는 마시길. 주인공이 한국인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인간으로써, 읽기 힘들었다는 것일뿐.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박현희/★★★☆☆



고등학교 선생님인 저자가 사회학인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전래 동화의 다시 읽기 내진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던 책. 기대하고 봤는데, 기대만큼 좋았다. 물론 이 작가의 견해에 다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럼에도 동의를 넘어 한 수 배웠다고 할 만한 곳도 군데 군데 있었다. 한국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고 존경스러워 보긴 또 오랜만 인데, ( 오해는 마실 것이, 이럴때의 오랜만은 일주나 이주 정도의 기간이다. 이는 지루한 것을 못 참는 나의 성향상, 독서 주기가 시간 주기보다 짧기 때문이다.). 다만 알아두셔야 할 것이 이때 재해석의 상대가 주로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창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심 된다. 그걸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래 동화를 사용한 것이고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들의 거짓말을 이해하라는 부분이었다. 비교적 자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어른들에 비해 모든 것을 통제 받아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엔 없는 것이라고 하던데, 일리 있지 했다. 하니, 거짓말 했다고 그들을 추궁하고 다그치기 보단 이해하는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라고 하시는데, 전적으로 공감이다. 오히려 내가 왜 그걸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는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어렸을 적에 어른이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내 맘대로 , 그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편리하게도 그건 까맣게 잊어 버리고, 너희들은 뭐가 불만이냐, 불평할게 뭐가 있냐면서 고개를 저었더랬으니... 그런걸 보면 기억력이란 참 편리한 것이고, 우린 우리들의 기억력을 너무도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다. 하여간 아이들의 거짓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가는 모르겠으나...그 외 외로움 때문에 백설공주가 자꾸 문을 열어준다는 해석이나, 싫어하는 것들을 굳이 좋아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도 맘에 든다. 이 모든것을 합해서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작가가 참 마음이 따스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는 파워를 가지신 분이었는데, 그걸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힘으로 사용하시는걸 보면서 말이다. 이런 선생님이 아직 존재한다는 자체가 아직은 우리 학교에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닐런지...그리고 그 선생님의 눈엔 아이들의 희망이 보인다고 하시니, 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다.


고등학생들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던 책으로, 더 확대해 보자면 학생을 자식으로 둔 학부형들이 읽으셔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선생님의 눈으로 본 이야기니,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귀 기울여 들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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