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이 떨어진 머나먼 외계행성에서 대체 식품을 조달하기 위해 지구로 노동자를 대거 파견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식량의 원료는 바로 인간. 지구에 널리고 널린게 인간이라는걸 감안하면 굳이 사육 하지 않고 사냥만으로도 채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능률적인 식략 조달방법이라고 할만하다. 문제는 인간을 어떻게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채집 또는 사냥하는가 라는 것일뿐...해서 여기 외계인 로라가 등장한다. 자신의 몸을 매력적이고 싱싱한 젊은 여성의 것으로 탈바꿈한 그녀는 그것을 무기로 밤마다 사냥에 나선다. 차를 몰고 거리를 어슬렁대면서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혼자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성. 길을 잃었다는 핑계로 그들에게 접근한 로라는 차에 태워 이것저것 호구 조사를 시작한다. 혼자 사는지, 그가 사라지면 슬퍼할만한 가족이나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만한 친구는 없는지 등등... 조사 끝에 적당한 후보자라고 판명이 되면 그들을 유혹해 공장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 그녀의 일. 유혹에 넘어간 남성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로라의 싱싱한 육체가 아니라 껍데기만 남긴 채 압축이 되어 식량으로 제조되는 공정 뿐이었던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거리를 배회하며 사냥감을 물색하던 로라는 연차가 늘어나면서 인간이란 사냥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외계인이라는 특성상 인간이란 존재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던 로라는 인간들이 자신을 동등한 존재로 대접한다는 것에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어느날 충동적으로 다 잡은 사냥감을 살려준 로라는 그길로 동료들로부터 쫓김을 당하게 되는데...


섬뜩하지만 아름답다는 표현이 적당한 듯한 영화다. 공포 영화로 분류할 수 없음에도, 어쩜 그래서 더 괴기스럽고 끔찍했는지 모르겠다. 지극히 현실적이여 보여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인간을 식량으로 사용하는 외계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상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설령 그런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암시만으로도 섬뜩했던 것이, 인간이 식량이라는 전제로 영화를 보려니, 우리가 식량으로 삼고 있는 다른 동물에 대해 생각이 미쳐셔 말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과연 그 외계인과 우리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아찔한 기분이었다.  감히 더이상 생각을 전개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발상이었다. 그렇게 톡특하다고도, 참신하다고도, 그리고 개성이 넘친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장점을 들라면...


우선,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지는 몰랐다. 그녀의 외계인 연기는 그야말로 악소리 난다. 분명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운 씬인데도, 얼굴을 보면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는다. 진짜 외계인인듯, 지구에 처음 와서 인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는데 무표정한 연기 조차도 어찌나 자연스러운지...그녀의 몰입도 높은 연기에 감탄하고 말았다. 이 정도의 연기라면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각종 상후보에 이름조차 거론이 되지 않는걸 보면 의아스럽다. 뭐, 아직 젊은 나이니 언젠가는 타겠지만서도, 그녀의 몸 사리지 않는 연기에 감명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둘째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찍었지 싶은 장면이 이 영화속에는 많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진짜 힘들게 찍었겠다 싶은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여기 이 작품에는 댈 것이 아니다. 진짜로 촬영하기 힘들었겠다 내지는 저런 장면을 어떻게 찍었지 싶게 경악스러운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걸 흔연스럽게 찍어낸 이 감독 진짜 지독하다 싶더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 장면들을 잘도 찍어낸다. 외계인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니 생길 수 밖에 없는 마찰음이 그렇게 클 줄이야. 우리에게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외계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때 , 예를 들자면 목숨이나 아름다움, 아기의 울음소리, 사랑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혀지고 유린당하는 광경을 보려니 그 차가움에 소름이 돋는다. 먹히는 자와 먹는 자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극 속에서도, 인간과 외계인에게 공통으로 소통하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친절과 폭력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하던지.그 둘이야말로 유니버설한 공통어라는 뜻일텐데, 어느정도는 일리있는 통찰이지 않는가 한다.

세째는 화면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스코트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간결하면서도 섬뜩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던데. 황량하면 황량한데로, 지독하게 쓸쓸하면 쓸쓸한데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이면 또 그런대로.. 내용을 잘 살릴만한 배경지로 탁월했지 싶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끔찍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 거거에 육체로 유혹을 하고, 산채로 발가 벗겨져 식량이 되어야 하는 내용이 있다보니, 다양한 누드가 등장하는데, 그게 그리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성의 대상이 아니라 식량의 대상으로 육체를 바라봐서 그런 듯한데, 우리가 대상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상대가 달라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더라. 외계인의 시각에서 인간을 바라보려니, 과연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 라는 것도.

네째, 가장 특이한 점이 이 부분인데,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난 지인들에게 이 영화는 추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질 것이라서 그렇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분명 매력적인 구석이 있고 , 잘 찍은 영화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지만서도, 좋아하는 영화가 되긴 힘들다. 어쩌면 그래서 스칼렛 요한슨이 더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장면마다 고난이도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데다 엄동설한에 알몸으로 진흙탕을 뒹굴기까지 하던데, 그것이 연기에 대한 집념이 아니라면 가능했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돈이나 인기만을 생각하는 배우였다면 결코 이런 역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결론은 생각할 거릴 안겨주는 충격적인 영화로는 그만이지만, 생각하기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비위에 안 맞는 영화가 되기 쉽상이라는 것. 하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따져 보시고 보실지 마실지를 결정하시면 되실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우드 잡>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대학에 떨어지고 여친에게까지 차인 히라노 유키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집어든 삼림관리 교육관 모집서에 호기심이 생긴다. 내용때문이 아니라 그 전단지 속의 여자 모델이 예뻤기 때문. 단순히 그녀가 맘에 든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덜컥 낸 유키는 긴 여정끝에 가무사리 숲이란 곳에 도착하게 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이 공기도 사람도 말도 다른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지게 되었을때 누구라도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유키는 다른 도시 청년보다는 훨씬 더 어리버리하고 약골이라서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살던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살면 안 되는 곳에 떨어졌을때의 충격과 갈등을 다들 짐작하시리라 본다. 1개월만 버티면 수료증을 준다는 말에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는 어느날 야밤에 짐을 싸고 마는데...

 

숲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숲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주던 영화다. 일본 영화답게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다. 뺀질이 초짜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직업에 도전해 당당한 일꾼으로 성장해간다는 기본 줄거리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린 것이 주효하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도 볼만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숲의 정경이다. 어디에 카메라를 갖다 대건 눈이 확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녹색의 바다가 출렁이는 듯한 장면은 감탄스러웠다. 거기에 일본에서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직업 벌목꾼처럼 나무를 타고 베는데 그것도 대단했지 싶다. 어떤 액션 장면보다 아찔하던데, 그걸 어떻게 찍었을지 저의기 궁금하다. 숲을 존중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도시 청년의 직업탐방기. <가무사리 솦의 느긋한 나날>의 감동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보셔도 좋을 듯. 


                                                       < 투 데이즈 원 나잇>


마리옹 꼬띠아르의 원맨쇼를 보는 듯했던 작품. 주인공의 옆 모습만 비쳐주는데도 영화가 지루하지 않더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우울증에서 간신히 회복된 상드라는 병가에서 돌아와보니 직장에서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투표에 의해서. 사장이 보너스냐 상드라의 복직이냐를 두고 투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월급이 간절히 필요한 상드라는 눈물을 흘리지만, 친한 직장 동료의 설득으로 월요일에 다시 한번 전체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이틀 낮과 하루 밤의 주말 동안 동료들의 집을 돌면서 자신에게 찬성 투표를 해달라고 설득하는 것. 우울증의 여파로 깨질듯 연약한 그녀는 자신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 내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자신없어 한다. 다른 누구보다 돈이 얼마나 커다란 유혹인지 아는 그녀로써는 자신을 위해 그들의 몫을 포기해달라고 부탁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갖고 있는 용기를 긁어모아 가가호호 집집 방문을 시작한 상드라, 그녀는 과연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상드라의 감정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마치 내가 해고 직전에 동료들의 동정에 호소하고 다녀야 하는 상드라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처음엔 그것이 말도 못하게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니 그외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 그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다. 마지막에 상드라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서 " We had a good fight." ( 정확치는 않음. 본지 좀 오래되서.)이라고 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한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에선 때론 결과가 전부가 아닐때도 있다는 것을,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는 과정속에서 얻어내는 것도 있구나 라는걸 생각하게 했다. 화려한 비주얼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로 승부하는 작품.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공감하기 더 쉽지 않을까 한다.



                                                                        <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스티븐 카렐이 출연한다고 해서 보게 된 작품.  다른 남자가 생겼으니 이혼하자는 아내의 말에 짐을 싸들고 나온 칼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첫사랑과 결혼해 아내만 보고 살아온지 어언 20여년. 가정을 위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살아온 그에게 아내가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배신감과 상실감에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던 그에게 그런 그를 안스럽게 보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나섰으니 그가 바로 야곱이다.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 멋들어진 카사노바는 지루하고 축 늘어진 재미없는 아저씨가 되어있는 칼을 개조시켜 주겠노라고 선언한다. 처음엔 어린 네가 뭘 안다고 하면서 반발하던 칼은 점차 야곱의 조언에 따라 중년 카사노바로 거듭나게 된다. 새 인생이 펼쳐졌다면서 환호를 하는 칼,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선 여전히 아내에게 돌아가고픈 마음 하나뿐인데...

경쾌하고 다소 꼬인듯한 로맨스 영화라고나 할까? 줄곧 엇갈리기만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혼란스러웠는데 마지막에 제대로 정리를 해주어서 다행이다 했다. 화려한 배우들에 그럴듯한 연애 기술 조언, 그리고 그들의 왁자지껄 연애로 재밌게 본 작품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웃을 수밖엔 없었음. 마지막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스티븐 카렐을 보려고 보게 된 영화인데,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 작품. 엠마 스톤도 예쁘게 나온다. 아, 그러고보니 요즘 잘 나가시는 줄리언 무어도 나오시네. 하여간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던 작품.


                                                    <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라이언 고슬링에서 시작해서 데인 드한으로 끝이 나는 영화. 리뷰가 길어지는 관계로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2대에 걸친 악연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던 작품이다. 서커스의 모터싸이클 스턴트맨인 루크는 1년 반 전에 하루밤 잤던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은 아버지가 없어서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나선 루크, 문제는 그녀에게 이미 결혼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관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란 어려운 법, 당장 사단이 나기 시작하고, 아이에게 돈이라도 원없이 주고 싶었던 루크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은행 강도에 나서게 된다. 한편 신참내기 경찰인 에이버리는 도망친 은행강도가 민가에 침입했다는 말에 출동하게 되는데...

라이언 고슬링의 진심어린 연기, 데인 드한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눈에 들어오던 작품. 브래들리 쿠퍼도 어디 가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 영화에서는 그 둘에게 밀리는 느낌이다.  2대에 걸친 악연을 조금은 억지스럽게 아귀를 맞춘게 아닐까 싶은 감이 있다는 것이 별로였지만 영화의 분위기만큼은 제대로 살린 듯. 특히나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면서 아들 주변을 빙빙 도는 칼의 슬픈 인생이 눈에 밟히던 영화였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니 알아줄 수 없는 진심에 가슴이 아리더라. 그런 역에는 이상하게도 라이언 고슬링이 제격인듯...매력적인 세 남자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영화 자체는 좀 어둡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터스텔라 리뷰를 길게 쓰다가 날려 버렸다. 왜 임시 저장을 누르지 않은거야 자책을 해 봐도 이미 소용 없는 일. 김도 새고 기운도 빠져서 결국 쓰던 것중 기억나는 것만 적기로, 고로 설명이 대략 친절하지 않고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이해가 안 되시면 그냥 건너 뛰시길. 결론만 알고 싶으시다면, 기대를 크게 하시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비티보단 조잡하고, 앞 부분은 지루한데다, 감상적인 톤이 두드러져서 SF영화라기 보단 가족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대단히 재밌다고 거품 물만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한번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되는데,  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우뇌형 인간을 위한 최신 우주 이론 정복기 >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빅뱅이니 블랙혹이니 웜홀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 매혹적인 이론들을 접할때마다 우리 우뇌들이 겪는 한결같은 좌절감은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렸다. 그렇게 우주에 대해 심오한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이해력이 달리는 관계로 당최 뭔말을 하는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감상적인 소재를 당의처럼 입혀서 최신 우주 이론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던 작품이구나 했다. 비유를 해보자면 드라마판 <코스모스>라고나 할까나? 해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우주를 설득력있게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좌뇌형 인간들에게나 의미있을 이론들을 지극히 감상적인 톤을 입혀 우뇌형 인간들에게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좌뇌형 인간들에겐 어쩜 이 영화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이렇게 감상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우주를 분석하는데 그런 감상이 필요하지도 않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 있는 그대로의 우주' 는 삭막 그자체란 말이지. 이상하게도 우린 감성적으로 접근할때 더 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해서 놀란 감독이 이런 작법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뭐, 이것이 이 영화를 본 내 감상이고...

해서 나에게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했던 점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나 그 지구의 미래를 걸머지겠다고 우주로 나섰던 우주 탐험대가 아니라, 우주 이론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던 그들의 방식이었다. 우주에 나갔다. 우리가 살만한 별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지만 그럴듯한 후보군별까지 가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웜홀이다. 중력이 강한 한 후보군에 들어선 탐사선 사람들은 10분후 돌아와보니 23년이 지났다는걸 알게 된다. 상대성 이론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대한 추측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실제로 블랙홀이라고 추측되는 공간이 관측되었다고는 하나 과연 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할 뿐이지만 정설은 없고, 미래, 우리 지구 과학자들이 그걸 밝혀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다만 그곳에는 4차원이 아닌 5차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금까지의 최신 우주 이론들을 망라하고 있는데, 말로 풀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안 갈지 모르나, 영화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이 이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모면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론에 사실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미덕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이 최대 단점도 포착된다. 마지막 결론 부분쯤에서 뭔가 석연찮게 두리뭉실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그래도 과학 다큐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그저 허무맹랑한 SF영화처럼 톤이 바뀐다고나 할까. 앞까진 그럭저럭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정도였다면 저건 그냥 상상 아냐? 진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어리둥절하던데, 알고보니 영화가 그렇게 풀려가게 된 데는 현대의 우주 과학 이론이 바로 그 앞 지점까지만 밝혀져서 라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블랙혹과 5차원에 대한 이론은 아직까지 딱 이렇다 저렇다 정설로 내세울만한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가 두리뭉실하게 된 것은 우리가 아는 것 역시 그렇게 두리뭉실하기 때문이란다.

하긴 다른건 그럭저럭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시간 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내가 우뇌형 인간이라고 해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직관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해서 가장 설득력없는 이론을 가져다가, 가장 감상적인 결론을 쉽게 내려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마지막 부분만은( 이성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웠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은 영화라는 것이다. 내가 수긍하건 말건 간에 그냥 즐기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니, (우뇌형) 인간으로써 보자면 결론만큼 다행스러운 것이 없었다. 초반 하도 우울하게 지구의 미래를 그려놓길래 먹먹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데, 우울하게 끝을 내놓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말이다. 과연 우리 지구의 미래가 그렇게 암울할 수 있을까 내내 의아해하면서 지켜봤는데, 적어도 인간들이 결국 답을 찾아 내더라는 결론만큼은 지지하고 싶었다. 삭막한 미래의 지구를 보니, 그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이 사랑과 추억과 우정와 열정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더라. 아마도 감독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인 결국은 그런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런지...감히 추측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선이라든지 진심이라든지, 그런 것에 솔깃할 나이는 이미 지나 버렸기에 제목만 보고는 흘려 보낸 작품. 도무지 저딴 제목으로 멀쩡한 작품이 나와 주겠어 라면서 혀를 끌끌 찼는데...문제는 이 영화가 이상하게도 자꾸 여기저기서 눈에 밟히더라는 것. 해서 결국 호기심에 지는 셈치고, 그리고 더이상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서 보게 된 작품. 결론은 안 봤음 어쩔뻔했어~~라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로 재밌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저급의 퀄리티는 온데간데 없이--그렇다고 대놓고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서도--군더더기 없이, 유려하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봐서인가 감탄하고 말았다.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배우들의 연기와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가 되게끔 풀어놓고 있던 감독의 연출력. 가히 기가 막히다고 할만큼 멋진 앙상블이었다. 소재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될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이야기가 나와 주더라는 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해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나이 42에 무작정 백수가 되기로 결정한 오오구로 시즈오는 이제와서 자아를 찾겠다고 오도방정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심사숙고 하겠노라고 엄숙하게 선언을 하는 시즈오, 그 앞에는 빨리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아버지와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라고 등떠미는 착한 17살의 딸네미가 있다. 백수 한달 만에 천직을 찾았다면서 만세를 부르는 시즈오, 그것은 바로 만화다. 만화를 그릴 줄은 아느냐고 묻는 딸과 얘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는 아버지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명랑한 시즈오는 만화가 데뷔를 위해 불출주야 노력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기로 했다기로서니 어떻게 하루종일 만화만 그릴 수 있겠는가. 하여  42살 시즈오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게임 삼매경, 그다음엔 이십대 청년들과 함께 알바 삼매경, 그 다음엔 성실한 샐러리맨 소꼽친구 불러다 술 얻어먹기, 불안해질때쯤 철야 만화 그리기, 돈 부족해지면 딸에게 돈 빌리기등 도대체 어른이 얼마나 철이 없으면 이라고 할만한 일상으로 첨철되어 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만만한 시즈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타박을 당할때마다, 그리고 힘들여 그려간 만화가 퇴짜를 맞을때마다 '아직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그런 최면도 결국엔 현실에 맞닿아 깨지게 되는 날이 오기 마련,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인 시즈오로 나오는 배우의 원맨쇼 같던 작품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찌나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던지, 신인인데 이렇게 연기를 잘 한다고? 라는 생각에 찾아보니 츠츠미 신이치...그럼 그렇지, 내가 아는 배우였다. 다만, 이렇게 망가진 역으로는 처음 봐서 몰라본 것일뿐. 아는 얼굴임에도 몰라볼 정도로 츠츠미 신이치는 철저히 배역 그 자체더라. 가장임에도 어찌나 철딱서니 없고 생각이 없는지 밉살맞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캐릭터인데, 그런데 츠츠미 신이치가 연기를 하니 밉지가 않다. 사실은 귀엽기 그지없다. 중년의 남자가 주책을 떠는데도 귀여울 수 있다니...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가능했단 것이지. 그런 보기 드문 설득력으로 무장한 영화였으니 성공작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해서 결론적으로 주연 배우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것, 거기에 이 영화는 조연들도 좋다. 일본 영화를 보면 맘에 드는 것이 주연만 사는게 아니라 조연들도 산다. 주연을 위해 버려지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연과 공생하는 캐릭터라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말이다. 좋은 배우들을 끌어다 연기를 시키면서 결국 아무것에도 쓰지 않는 낭비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는 참 매력적이다. 그밖에 또 맘에 드는 점을 들라면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며칠전 우리나라 영화인 <슬로우 비디오>를 보고선 경악하고 말았다.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선문식 철학을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면서 어떻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지 만드는 사람들이 안이했다 싶더라. 이 영화속에서는 다행히도 그런 우는 범하지 않는다. 그게 최소한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최대한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알기에, 맥락이 이어지는 대화를 해대는 이 영화가 멋지게 다가왔다. 원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문인지 전개가 물 흘러가듯 스스럼없이 이어진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설정이 아니라 진짜로 백수 아저씨가 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보는 듯하다. 환상을 꿈꾸면서 마냥 낙천적인 아저씨를 보는데 진짜로 현실적이라는게 이 영화의 포인트.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있지 않는다고 해도 가능하다고 상상이 될만한, 그런 인간들이 그려진다는 점이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한 점은 이 영화가 웃긴다는 것이다. 이 영화, 코미디다. 배우의 신공 넘치는 연기에도 웃고, 진짜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어물쩍 넘어가려 애를 쓰는 주인공의 강한 정신력에도 웃고, 42에 중 2병에 걸린 아들을 어째야 할지 몰라 고민인 아버지 때문에도 웃고... 하여간 등장인물들은 진지한데 보는 나는 웃긴다. 바로 이 것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었다. 나이가 들었으면 철이 들어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서도, 철이 어떻게 드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 법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그런 사람을 향해 마냥 타박을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 그런 사람이라도 진심이라면 응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 작가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세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공감력만큼은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단 한 수 위 같아서 살짝 부럽더라. 다양한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진심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72년, 74남북 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될 무렵,  삼류 배우 지망생 김성근은 모종의 오디션에 합격해 김일성을 연기하게 된다. 무엇을 위한 오디션이었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에 대비해 대통령과 사전 모의 회담을 가져 보자는 중앙정보부의 기획에 의한 것. 보통 오디션에 합격하면 뛸듯이 기뻐하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성근은 자신 앞에 떨어진 미션과 분위기에 주눅이 든다. 그럼에도 혼신의 연기를 한번 펼쳐 보자 하고 결심을 하는 그를 도와주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연기를 지도하는 대학교 교수와 김일성 주체 사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중정에 끌려온 대학생이다. 중정의 명령 하에 팀을 이룬 셋은 완벽한 시나리오와 흠잡을데 없는 연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하게 된다. 김일성과 비슷한 체격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는 것도 포함해서...결국 메소드에 메자도 모르던 성근은 김일성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 걷고, 손을 흔들고, 악수를 하게 되기에 이른다. 철저하게 준비한 김일성을 자랑스럽게 연기할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성근은 유신으로 말미암은 정권의 돌변으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난생처음 연기다운 연기를 해보고 싶어했던 성근은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되고...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난 뒤 성근의 아들 태식은 자신이 김정일인줄 아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픈 태식이나, 빚때문에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과연 이 꼬여도 한참을 꼬여버린 두 부자의 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태식은 이제 자신이 아버지를 버릴 거라고 다짐하지만, 것마저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도무지 이 영화는 어디에 넣어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작품이었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몇몇 끔찍한 장면들이 눈에 거슬리고, 진지한 사회 드라마를 표방한건가 싶으면 웃기려고 작정한--하지만 웃음은 거의 나지 않는--장면들이 눈에 밟히고, 그렇다면 블랙 코미디? 라고 보기엔 풍자라고 할만한게 없고, 부자간의 감동 스토리를 보여 주려 한건가? 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데, 이것마저 사실 강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왜 아버지의 정을 그리면서 아버지를 이렇게 학대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으면서, 거기에 정권의 잘못된 강압에 의해 정신이 나가버린, 한마디로 미친 사람을 보면서 웃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이 영화가 보는 내내 불편했다. 한없이 갑갑하고 답답한 설정에 간간히 웃음을 유발할만한 상황을 던져 넣으므로써,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한 것 같은데, 이것이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버렸다고나 할까. 거기에 정신줄 나가버린 사람을 20년이나 돌봐야 했을 처절한 가족들의 심정에 나는 가슴이 서늘하더구만, 감독은 그게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것 같아 어이가 없더라. 도무지 얼마나 악취미면 미친 사람을 보면서 웃으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미쳐 버릴 정도로 연기에 몰두했으니 예술이라고 해줘야 한단다.  뭐 ,이런...예술은 뭔 개뿔, 인간이 그렇게 하찮다는 것이냐 싶어 욕이 나오는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내내 감독의 이 놀랍도록 끔찍한 전제를 불편한 심정으로 봐줘야 한다는 것을 눈감아 준다면, 영화는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재밌지도 않게 흘러간다. 연출은 잘 했다는 뜻일게다. 이야기 전개는 비교적 무리없이 흘러가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컨데 설경구다. 설경구와 다른 배우들이 살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기에 이런 시나리오임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좋아했는가라면 그건 아니지만서도...오히려 보면서 얼마나 설경구가 가엾던지 말이다. 왜 그에겐 이런 배역밖엔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시대의 아픈 아버지 상은 다 그가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싶어 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왜냐면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역력한데, 그 역이 그다지 매력있는 배역이 아니라서 말이다. 어떤 인상이었는가 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걸 죽도록 열심히 붓고 있는걸 보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미안해 진다는 것이지. 이 영화속에선 가장 매력적이고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되는 배역이 사채꾼업자랑 밉살맞은 연기학과 교수였으니 말 다한거 아니겠는가. 주연보다 조역들이 매력있으면 도무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이 없어 보인다.

결국은 성근이 미친 것도 다 아들을 위해서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던데, 그건 나를 설득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해서 마지막 태식이 오열하는 장면도 난 심드렁했다. 감동은 커녕 머리속에선 이 감독은 미친사람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론적으로, 장르를 확실하게 정했으면 오히려 보기가 낫지 않았으려나 싶다. 호불호가 나뉘기는 했겠지만 적어도 이도저도 아닌 것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욕심이 지나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던데, 물론 설경구가 얼마나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가라는것 하나만큼은 이 영화를 통해서 증명되었지만서도 말이다. 바라건데, 다음에는 그에게 가만 서 있어도 매력이 넘치는 그런 배역이 들어와주길...왠지 설경구란 배우를 혹사한 기분이라서 영 기분이 안 좋더라. 그처럼 연기를 진정성 있게 하시는 분에게 다음번엔 조금은 더 배역 운이 좋기를 바라는게 과한건 아니겠지. 이상 설경구가 살리려 애썼으나 심폐소생엔 실패한 듯 보이는 <나의 독재자>에 대한 리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