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전쟁에서 패배한 도시, 그리고 전쟁의 와중 저항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절멸당하는 남자들과, 필요에 의해 노예가 된 여성들 사이에는 분명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드러날지 모른다. 그러나 노예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이 책 속에 드러난 성노예와 다름이 없는 삶의 연속을 통하여, 여성들 스스로가 느낄 참담함을 과연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어떠한 감정으로 마주해야 하는가... 결국 그러한 질문 앞에서 소설 속 줄거리는 크게 충격적이고 또 커다란 불편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현대인들은 그러한 절망을 애써 외면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대중문학을 통해 인권유린과 폭력을 마주한다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야만을 인정하거나 묵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 현대적 인본주의가 등장하고 정착된 이유에는 앞서 드러난 역사 속의 야만을 들여다보고 또 그것을 수정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마주하며, 독자들이 자칫 단순히 과거의 야만, 또는 전통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머물러 온 성별과 계급 등을 나누어 그 실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해당 역사가 정의하려는 (시대상) '영웅적인 행동' 뒤에 희생되어진 사람들... 더 나아가 힘의 논리 아래 짓눌려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어버린 다수의 희생자들을 마주하여, 이에 그러한 이야기가 한낮 옛날 이야기가 아닌,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또 그러한야만에 대한 경계가 (오늘날에도)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로서, 그 감상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