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소설집 '저녁의 해후'에 실린 '사람의 일기'(1985)로부터 옮긴다. 아래 글 속 정미는 친구의 딸로서 운동권이다. 

Friendship, 1907 - Mikalojus Konstantinas Ciurlionis - WikiArt.org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해볼수록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정미의 사랑과 책임감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의 가냘픈 작가정신도 그런 것이 줄기를 이루고 있다고 자부해왔건만 정미의 투박한 진실성 앞에선 어딘지 간사스럽고 가짜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이론적으로도 정미한테 끌렸다.

나는 겨우 날카롭고 강한 걸 이길 수 있는 것은 더 날카롭고 더 강한 힘이 아니라 유하고 부드러운 것이라는 노자(老子)의 아류쯤 됨직한 방법론으로 체면을 세우곤 했다. 그럴 때 정미는 노자가 생전에 웃었음직한 더할 수 없이 질박한 미소로써 대답을 대신하곤 했었다.

친구가 외로움을 덜고 갔는지 더 큰 외로움을 안고 갔는지 헤아릴 겨를도 없었다. 행여 영향을 끼칠 말이나 책임질 말을 했을까봐 돌이켜보면서 문득 자신에 대해 매우 비위가 상했다. - 사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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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Dynamic Wang





이 글은 내가 처음 쓴 선언문이 아니다. 1985년에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는 기술과학 속 현대의 삶이 내파하는 현상을 페미니즘을 통해 이해하려 했다. "인공두뇌 유기체"인 사이보그는 정책 및 연구 프로젝트에 침투해 있던 기술 인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상상, 우주 개발 경쟁, 냉전으로 점철된 1960년에 생긴 이름이다. 나는 축복도 저주도 하지 않는 대신 우주 전사는 꿈도 꾸지 못할 목표를 아이러니하게 전유하려는 정신, 곧 비판적 정신을 통해 사이보그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 반려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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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 본토 첫 타격 https://v.daum.net/v/20250622211700691 큰일이다, 큰일. 트럼프가 돌아온 미국이 무슨 짓을 더 저지를지......

Summer Days, 1936 - Georgia O'Keeffe - WikiArt.org







나 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역사적 위치(백인, 전문직, 중산층, 여성, 급진 정치, 북아메리카, 중년의 신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정치적 정체성 위기의 근원은 너무나 많다. 많은 갈래의 미국 좌파 및 페미니즘이 최근 밟아온 역사는 이런 위기에 대한 반응이자, 본질적 통일성의 근거를 다시 찾으려 끝없이 분열하면서 탐색을 거듭해온 결과다. 하지만 정체성 대신 결연과 연대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 또한 확장되어왔다. - 사이보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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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열린책들 프로이트 전집 '정신분석강의'(구판)에 실린 영어편역자 제임스 스트레이치가 쓴 해설 '프로이트의 삶과 사상'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efan Schweihofer님의 이미지






우리는 그가 열일곱 살 때 한 급우에게 보냈던 편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편지에 그는 졸업 시험의 각기 다른 과목에서 거둔 성과들, 즉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서 인용한 라틴 어 구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이디푸스 왕』에서 인용한 30행의 그리스 어 구절을 적고 있다.

미묘한 정신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질적으로 순박했으며 때로는 비판 능력에서 예기치 않은 착오를 일으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 학이라든가 철학 같은 자기 분야가 아닌 주제에서 신빙성이 없는 전거(典據)를 받아들이는 실수라든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그 정도의 인식력을 지닌 사람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때로는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결점을 보지 못한 것 등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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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자이 오사무의 생일이다. 이 달 13일이 기일인데 생일에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6월에 태어나고 사라졌다. '디 에센셜 에디션_ 다자이 오사무'(마침 첫 글이 생일이 소재인 '6월 19일'이다)로부터 옮긴다.

Dazai at the Tamagawa Canal in early 1948, a few months before he drowned in these very waters.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靑森)현 쓰가루(津輕)군에서 신흥 상인이자 대지주인 부친 쓰시마 겐에몬과 모친 다네 사이에 열 번째 자녀, 여섯 번째 아들로 출생했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

1948년(39세)『다자이 오사무 수상집』, 『다자이 오사무 전집』 간행. 이 무렵 자주 각혈했다. 5월, 「앵두」 발표. 「인간 실격」을 탈고한 뒤 아사히 신문의 연재 소설 「굿바이」 집필에 착수했다. 6월, 「인간 실격」 일부를 《전망》에 발표. 6월 13일 밤, 도쿄 미타카의 다마 강 수원지에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榮)와 투신했다. 만 39세의 생일인 6월 19일, 시신이 발견되었다. 미타카의 젠린지(禪林寺)에 잠들다. 6,7월, 유고 「굿바이」 발표. 7월, 『인간 실격』, 작품집 『앵두』(「미남자와 담배」 수록)가 출간되었다. 11월, 『여시아문(如是我聞)』 출간.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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