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 작가가 쓴 '이별의 김포공항'(1974)을 이슬아 작가가 읽고 쓴 글로부터 옮긴다. 악스트 2020.1.2. 에 발표했다.

김포공항 국제선(2015년 6월 27일) By Ken Eckert - Own work, CC BY-SA 4.0


김포공항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g2055a





지금까지 나에게 글쓰기는 웃기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옮겨 적는 과정이었다. 그 안에는 눈물도 고단함도 있지만, 내일 다시 시작할 몸과 심신의 체력을 꼭 남겨둔 채로 엔딩을 맞이하는 게 내 글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비출 수 없는 진실의 디테일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박완서의 소설집을 보며 실감한다.

박완서의 소설로 나는 전 연령의 여자들 모습을 선명하게 읽는다. 가슴이 울렁이는 독서다. 회복되지 않는 엔딩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내가 애증하는 인물들에 대해 더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슬아 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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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그래서 고 박완서 작가 생각이 났다. 박완서는 한국전쟁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한국전쟁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양혜원)의 4장 '트라우마' 중 '트라우마를 들어줄 귀'로부터 옮긴다.

1951년 1월 8일 강릉 외곽에서 폭설을 뚫고 남쪽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 행렬 -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한국 전쟁의 고난 중 하나가 피난길과 피난살이라면, 박완서의 가족은 그런 피난조차 가지 못해 피난 한 번 갔다 오는 것이 부상당한 오빠의 소원이 되었다. 모두가 피난살이의 고생을 이야기할 때 그 피난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오해 없이 들릴 수 있을까?

피난이 부럽고 차라리 졸지에 죽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박완서의 경험은 그래서 들어줄 귀를 찾아다니며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늘 죽음을 억울하고 원통한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조차 바뀌어갔다. 정말로 억울한 것은 죽은 그들이 아니라 그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나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억울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 것이다."29

29) 박완서. 《나목/ 도둑맞은 가난: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민음사(1981).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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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그린 세한도를 본다. 아래 글의 출처는 '세한도 - 키워드 한국문화 01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박철상)로서 저자는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한도 By Kim Jeong-hui - http://gongu.copyright.or.kr






추사는 젊은 시절 멀리 떠나는 친구를 위해 부채에 그림을 그려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그림에도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림에 시를 한 수 써넣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을 차마 못 그리는 자신의 심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쓸쓸할까봐 사람을 그려 넣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정반대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람을 그려 넣지 않음으로써 그 쓸쓸함을 극대화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그것은 추사의 의식 세계이기도 하다. 적막함과 쓸쓸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느껴질 리 없다. 한없는 외로움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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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도 지났고 올해의 6월이 가는 중이다. '빨강 머리 앤'(더모던)으로부터 옮긴다.

A June Morning, 1909 - Robert Julian Onderdonk - WikiArt.org


* 똥손이라 퍼즐 취미는 없지만 퍼즐 잘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한다.





앤은 무릎을 꿇고 앉아 6월의 아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앤의 눈은 환희로 반짝였다. 아, 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예쁜 곳이 또 있을까? 이런 곳에 살 수 없다니! 앤은 이곳에 사는 상상을 해 봤다. 이곳에는 상상할 거리가 가득했다. -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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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5-06-24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앞에 펼쳐진 무한히 열린 공간, 이젠 그런 세계가 서서히 닫혀가는 걸 느낍니다, 되찾을 길 없는 그 공간의 세계, ‘환희로 반짝이는 앤의 눈‘의 묘사는 그래서인지 더없이 아름답게 여겨지는군요.

서곡 2025-06-24 15:58   좋아요 0 | URL
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적어도 썩은 동태 눈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박완서 단편 '사람의 일기'('저녁의 해후' 수록작)로부터 옮긴다.

Red Vision, 1984 - Leonor Fini - WikiArt.org




남에 대해 무심하고 때로는 차갑기까지 한 만큼 내 식구들에 대한 나의 애정과 관심은 내가 생각해도 좀 지긋지긋한 바가 있었다.

여직껏 써갈긴 이야기에 넌더리가 났다. 내 소설에서 주로 다루어온 나보다 못난 사람들, 짓눌리고 학대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다만 이야기를 꾸미기 위한 관심이었다는 걸 왜 느닷없이 깨닫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관심만 있고 사랑 없음이 그 삭막한 바닥을 드러내자 이제야말로 마지막이다 싶었다.

그 무렵 나는 나의 문학적 관심의 사랑 없음에도 절망하고 있었지만, 가족이라는 가까운 핏줄에만 집중적으로 국한된 나의 지긋지긋한 모성애에도 적이 절망하고 있었다. 밖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독이 될 것처럼 그 사랑은 이미 너무 진하고 편협했다. - 사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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