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 아저씨' 무대 리허설을 담은 1990년대 영화 '42번가의 반야'는 줄리안 무어가 엘레나 역이고 미드에서 본 배우들이 나온다. 언젠가 영화 전체를 볼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29565/own/videoData (한국영상자료원 도서관)



'예술가의 초상- 세상의 틀을 깨고 삶에 영감을 주는 여성 예술가들과의 대화'에 줄리안 무어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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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나 오캄포의 '설탕의 집'은 작품집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에 실려 있다.

사진: UnsplashSven Mieke



약혼을 하고 나서 우리는 새로 지은 집을 구해야 했다. 그녀의 믿음에 따르면,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운명이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단 한 번도 나의 삶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위험은 오로지 그녀에게만 닥칠 뿐이고 사랑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로 결합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마침내 나는 몬테스 데 오카 거리에서 설탕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은 집을 발견했다. 집이 어찌나 하얗던지 눈부시게 반짝였다. 전화가 설치되어 있었고 앞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나는 그 집이 최근에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930년에 이미 한 가족이 거주했었고 그 후에 세를 놓으려고 집주인이 몇 군데 수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크리스티나가 그 집에 아무도 살았던 적이 없으며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보금자리라고 믿게 만들어야 했다. 그 집을 보았을 때 크리스티나가 반색을 하며 환호했다.

"크리스티나. 만약 이 집에 다른 사람들이 산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하겠어? 여기서 떠날 거야?"

"전에 누군가가 이 집에 살았다면 그 사람은 분명 디저트나 생일 케이크에 들어 있는 설탕 인형처럼 생겼을 거야. 설탕처럼 달콤한 사람. 이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입구의 작은 정원이 나에게 평안을 주는 걸까? 모르겠어! 세상의 금은보화를 다 준대도 여기서 떠나지 않을 거야. 더군다나 우린 마땅히 갈 곳도 없잖아. 당신 입으로 얼마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

어느 날 나는 크리스티나가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들었다."난 삶을, 행복과 고통을 그리고 실수와 확신을 누군가로부터 물려받고 있는 것 같아. 난 마귀가 씌었어."

"난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해." 크리스티나가 다시 예의 그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말했다. "전에는 괴로웠지만 지금은 마냥 즐거워. 난 딴 사람이 됐어. 어쩌면 예전의 나보다 더 행복할지도 몰라." - 설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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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나 오캄포의 '포르피리아 베르날의 일기'는 헨리 제임스가 쓴 '나사의 회전'을 참조한 작품이다.




나는 낭만적이다. 어젯밤에 미스 필딩이 머리를 땋아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나보다 오래 살았지만 덜 치열하게 살았으니 그녀가 더 낭만적일 것이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쓰나 일어난 다음에 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어내는 게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 없이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때로는 사진 한 장, 낙조, 향기, 천사 혹은 음악으로 충분하다. - 포르피리아 베르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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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사상 전20권 전집에 담아 https://v.daum.net/v/19961001120600660?f=o








인간적인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신앙과 도덕의 차원을 옹호하려는 입장도(칸트) 제시되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의 보편성은 결코 역사와 시간을 초월할 수 없으며 오직 역사 속에서 이성은 단계적으로 실현된다는 역사주의적 견해도(헤겔) 나름대로 제기되었다.

프로이트는 이 같은 자기 반성적인 서구 문화의 정점에 서 있다. 그는 무의식과 성의 일차적인 의미를 부각시킴으로써 주체의 의식과 이성이 단지 이차적인 의미만을 지닌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실상 무의식과 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합리성의 심층적 의미론>에 가까우며 성에 대한 이론적 관심은 신경증과 같은 정신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신분석 강의』에는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정신분석학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되어 있다.

1920년 대에 걸쳐서 정신분석학은 더욱 풍부해지고 본능과 불안 등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모색된다. 또한 자아와 초자아, 이드 등으로 인격의 세 차원들이 새롭게 분류되고, 양심과 죄의식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통찰들이 후에 추가되었던 것이다.

『정신분석 강의』의 기본적인 내용들은 지속적으로 중요한 성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우회하면서 정신분석학을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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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룩_www.NEOLOOK.com https://neolook.com/archives/20190723b


인간의 내면 색·채·탐·구 - 경향신문 https://m.khan.co.kr/article/200310061608021/amp




정신분석학은 그 전개 과정에서 생리학과 심리학, 문화 과학, 종교, 신화학 등을 포괄하는 연구 성과들에 의해서 ─ 혹은 라캉에 따르면 당연히 언어학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 다양하게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자연 과학> 대 <정신과학>의 구별과 같은 이분법적인 학문의 분류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힘들 사이의 생리학적이며 역학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설명들과 사변적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해석학적 개념들이 동시에 동원되어야 한다.

굳이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성격을 규정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속적인 비판과 연구에 의해서 재구성되어 가는 <경험적 과학>에 가깝다.

경험이란 개념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론 자체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경험적 학문은 완결된 이론으로서의 형이상학과 구별되는 개념이며, 새로운 이론의 재구성이 가능한 정신분석학의 개방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프로이트 자신이 「<정신분석학>과 <리비도 이론>」이란 짧은 글에서 언급한 <경험적 과학>의 개념은 경험할 수 있는 사실 자체를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검증 기준으로 설정한 <실증주의>의 개념과 동일시될 수 없다.

실제로 그는 언젠가 <정신분석학 대학>을 구상하면서 인문학적 전통과 정신분석학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정신분석가를 양성하기 위한 가상(假想) 대학의 교과목에는 의과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과목들이나 심층 심리학외에도, <문화사, 신화학, 종교 심리학, 문학>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강의』를 탈고한 이후에도 문화와 신화 등의 영역으로 연구의 폭을 확장시켜 나갔는데, 이는 그 자신의 주관적인 결단이라기보다 그가 추구한 주제 자체의 특성에서 연유한 것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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