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카메론 프로젝트에 마거릿 애트우드는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라는 단편을 실었다. 데카메론의 에피소드를 직접 인용하고 오마주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대표작이 될 만하다. 그리젤다는 데카메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열째 날 마지막 열째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으로서, 신분 높은 남편의 횡포에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신분제에서의 신분 차이와 가부장제에서의 남편의 지배라는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애트우드는 그리젤다가 남편의 처분에 자신을 고스란히 맡기고 그저 인내하게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작전을 위한 장치로서, 애트우드는 그리젤다를 쌍둥이로 만들어버린다. 둘로 분열시켜 한 쪽을 참을성 있는 그리젤다, 다른 한 쪽을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라고 부른다. 

 




옛날에 쌍둥이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분이 낮았죠. 그들의 이름은 참을성 있는 그리젤다와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였습니다.

그들은 ‘참있양‘과 ‘참없양‘이라고 불렸습니다.

아니요, 한 명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두 명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누구죠? 바로 저입니다. 그러니 두 명이 맞습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참있양.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가 합법적으로 성교를 하고 어린 공작을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더군."

"당신이 신분이 낮다는 걸 알고 있소, 참있양. 하지만 그래서 난 지체 높은 누군가보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소. 지체 높은 부인은 생각이 많지만, 당신은 생각이 없잖소. 난 당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내키는 대로 굴욕을 줄 수 있소. 그래도 당신은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겨서 싫은 소리를 하거나 질질 짜거나 뭐 그런 걸 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당신이 나를 거절하면 난 당신의 머리를 베겠소."

"어떻게 그 자가 언니를 그렇게 대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어?" - 마거릿 애트우드,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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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2017년 7월) 사진: Unsplashlucas Favre






1817 11월 셸리와 공동으로 쓴 ‘제네바 호수 일주 항해와 샤모니 빙하를 묘사하는 편지를 비롯해 프랑스 일부 지역,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의 6주간 여행 이야기‘ 출간. 일기와 패니(아버지가 다른 언니)에게 보낸 편지들을 편집한 이 책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서 잠시 머물며 쓴 편지들(1796)‘을 모델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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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이 전쟁범죄를 증명할까]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1908.html


우크라이나 - 사진: UnsplashEugene Krasnaok





우리 엄마 좀 죽여주세요…… 죽여주세요! 엄마가 독일군을 좋아했어요……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우리한테 물어봐.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멋대로 역사를 바꾸지 말고. 지금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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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삶을 산 저자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메리 셸리는 출생과 첫 출산에서 상실의 비극에 처한다.

[Page from William Godwin's journal recording "Birth of Mary, 20 minutes after 11 at night" (left column, fourth row)] By William Godwin (1756-1836)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1797 8월 30일 영국 런던 소머스타운에서,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과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남. 아버지는 무정부주의 선구자이자 급진적인 정치사상가였고, 어머니는 최초의 여성주의 이론서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였음. 어머니는 출산 직후 산욕열로 10일 만에 사망함.

1815 2월 22일 첫딸을 조산했으나 생후 11일 만에 사망함. 꿈에서 다시 살아난 어린 딸을 보았다는 기록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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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난민들 위해 일자리 제공하는 일이 현재의 나의 꿈” http://seattle.koreatimes.com/article/20220429/1413189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옥사나라는 아이와 친했는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굶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얼마나 먹을 게 없는지, 개구리고 쥐고 남아나는 게 없다는 거야. 사람들이 다 먹어버려서. 옥사나의 고향마을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죽어나갔대.

옥사나의 남동생들도 모두 굶어 죽고, 엄마 아빠도 돌아가시고. 옥사나만 밤에 몰래 콜호스*의 마구간에서 말똥을 훔쳐먹고 살아남았어.

* 소련의 집단농장. 협동조합 형식으로 농민들이 집단경영을 했으며 각자의 노동에 따라 수익을 분배했다.

아무도 못 먹는 말똥을 옥사나는 먹은 거지. "말똥이 따뜻할 때는 먹기 힘든데, 차가워지면 먹을 만해. 꽁꽁 언 게 제일 먹기가 나아. 얼면 건초 냄새가 나거든."

이틀 후에 옥사나는 전투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었어. 남은 가족이 아무도 없어서 전사통지서도 보내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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