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1945)는 다자이 오사무가 전쟁 중에 민담을 다시쓰기한 작품으로서 '혀 잘린 참새'도 그 일부이다.

Sparrow on a banana leaf, 1930 - Qi Baishi - WikiArt.org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달려라 메로스'(다자이 오사무)에도 '옛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혀 잘린 참새의 주인공은 일본 제일은커녕, 반대로 일본에서 가장 쓸모없는 남자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우선 몸이 약하다. 몸이 약한 남자라는 것은 다리가 약한 말보다 더욱 세간에서 평하는 가치가 낮은 것 같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지만 상당히 이전부터 스스로를 옹(翁)이라 칭하고 또 자기 집 사람들에게도 ‘할아버지’라 부르라고 명령했다.

몸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워 있을 정도의 환자도 아니므로 무언가 한 가지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이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책만은 상당히 많이 읽는 것 같지만 읽는 대로 잊어버리는지 자신이 읽은 것을 남에게 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멍하니 있다. - 옛날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tt에서 발견한 일본 영화 '인간실격'(2019)을 보았다, 기엔 부족하고 틀어놓고 대충 딴 일을 하면서 오다가다 시청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영화화한 건 아니고 다자이가 '사양'과 '인간실격'을 쓰던 시기를 담고 있다. 다른 건 다 그렇다치고 우선 다자이 오사무 본인에 비해 배우가 건장해 보여 이질적이었다. 다자이와 미시마 유키오가 만나는 장면이 흥미롭다. 


아래 글은 '제국일본의 사상 - 포스트 제국과 동아시아론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김항)가 출처이다.

다자이 오사무(1936)


cf.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중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합니까?'에 다자이와 미시마 이야기가 나온다.




평론가 하나다 키요떼루(花田淸輝)는 미시마의 데뷔작 『가면의 고백(假面の告白)』(1949)에 대한 비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자이 오사무가 (…) 철두철미 반어적으로, 독으로 독을 제압하려 했고, 허구로 허구를 죽여가며, 가면을 쓴 채 가면을 역이용함으로써 얼마나 집요하게 스스로의 진짜 얼굴을 보이려 했는지는 잘 알려진 바다. 하지만 이런 비극은 미시마 유끼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 생각에 아무리 다시 볼 수없는 얼굴일지라도 가면 밑에 진짜 얼굴이 있다는 자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행복할 터다.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다자이 세대와 비교하면 미시마 세대는 한층 더 비극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짜 얼굴이 어떤 것인지 모르며, 가끔 얼굴 그 자체가 진짜로 있는지조차 의심하면서, 그저 가면만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얼굴 쪽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스스로의 얼굴을 잃어버린 세대이며, 얼굴 대신에 그들이 소유하는 것은 차갑고 딱딱한 가면뿐인 셈이다.21

21 花田淸輝 「聖セバスチャンの顔」, 『文藝』 195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웨스 앤더슨의 '로얄 테넌바움'은 좋아하는 영화인데 배우 진 해크먼이 가족을 떠났던 아버지 로얄 테넌바움을 연기한다. 최근 들려온 해크먼의 비극적인 별세 소식에 앤더슨 감독도 애통해했으리라.


그 존재의 무게, 진 해크먼(1930~2025)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7083


1972년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 세트장에서 : 가운데 서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진 해크먼이다. By Bruce H. Cox, Los Angeles Times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 (1967 cast photo) : 맨왼편에 선 배우가 진 해크먼이다.  by Warner Bros.-Seven Arts.






앤더슨은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부터 로얄 역할로 진 해크만을 염두에 뒀다. 마초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실패한 아버지 역할로 해크만을 떠올린 이유는 감독 자신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해크만은 그런 결정을 타당하게 느끼게 해주는 무게감의 소유자였다.

진 해크만이라는 아이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포세이돈 어드벤처〉 그리고 오스카를 수상한 〈프렌치 커넥션〉과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볼 것.

해크만은 머리끝부터 반짝이는 구두코까지 철두철미한 멋쟁이 로얄로 변신했고, 편집광적인 말투로 상대를 철저히 깔아뭉개는 말을 유쾌하게, 완벽한 타이밍에 내뱉었다. 해크만이 이토록 날렵한 모습을 보여준 적은 드물었다.

해크만의 개인사도 로얄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해크만은 앤더슨에게 그가 13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은 자기 아버지가 떠나던 순간을 담담하게 들려주었어요.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차를 몰고 옆을 지나갔다더군요. 아버지는 잠깐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을 뿐 차를 세우지는 않았답니다. 그러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아버지를 봤다더군요. 해크만은 목멘 소리로 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는 자기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로얄이 진정으로 바라는 건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라며 해크만이 설명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5-03-2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진 해크만, 로얄 테넌바움에도 나왔었지요. 보니 앤 클라이드는 너무나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서곡 2025-03-20 18:09   좋아요 0 | URL
네 위에 다 옮기진 않았는데 해크만이 첨엔 로얄 역에 소극적이었대요 그래서 감독이 엄청 공들여 설득합니다 이 영화의 배우들이 다 훌륭하지만 부모 역으로 나온 대배우들이 명불허전 무게추처럼 중량감과 안정감을 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보니 앤 클라이드는 못 봤어요 시네마테크에서 해 주면 큰 화면으로 보고 싶습니다
 

어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 - 원작은 '미키 7' - 을 개봉관에서 봤다. 그의 전작들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보여 즐거웠다. 호불호야 당연히 타겠지만 봉 감독의 역량과 개성이 송곳처럼 튀어나왔고 만화 같은 장면들이 꽤 있었다. 두 편으로 나누어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외계생물들과의 관계를 후편에서 보여주고 전편은 미키에게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원작도 두 권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제 보면서는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오늘 생각하니 괜찮았다고 인정한다. 배우들이 기능적으로 도구화된 인상이지만 영화감독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정재일의 음악이 가지는 존재감이 대단하다. jung jaeil - Mickey 17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https://lnk.to/Mickey17_SDTKID


* (스포) * 그가 꼭 죽어야 했나. 나쁜놈만 죽여도 되지 않았을까. 희생 없는 승리는 불가능한 이상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5-03-2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는 기분은 어때?
여러번 죽으면 덜 무섭지 않아?
...여전히, 매번 무서워.
제 마음에 남은 대사였습니다

서곡 2025-03-25 14:34   좋아요 0 | URL
네 재생이 보장된다 해도 그렇겠죠 다시 못 깨어날 가능성도 있고요 어쩌면 한 번만 죽는 게 ‘남는 장사‘일 것도 같습니다
 

괴를리츠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2g1529a

괴를리츠 (2011) By Mylius


"베를린영화제 최대 화제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6119





작센에 있는 소도시 괴를리츠는 그림 같은 배경과 고풍스러운 느낌을 제공했지만, 파시즘의 부상에 굴복하고 만 지방 유럽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앤더슨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땀이 송골송골 돋아나는 것처럼 영화에는 홀로코스트를 암시하는 기운이 서서히 스며 나온다.

영화의 촬영은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됐고 두 달 동안 출연진 전원이 괴를리츠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알게 된 요리사가 요리를 해줬습니다. 우리는 촬영 기간에 밤마다 함께 저녁을 먹었죠." 앤더슨이 말했다. "거의 매일 밤 시끌벅적한 만찬 파티가 열렸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2014년 2월 6일에 베를린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보다 더 적절한 곳이 또 어디 있었을까?

이 영화를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코믹한 분위기와 그 기저에 깔린 어두움의 뚜렷한 대비와 충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