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현경은 이 책에서 초기작과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깊고 길었던 분노를 승화하려는 몸짓을 경어체로 서술한다. 열심히 사랑하고자 했던 현경은 자신의 지난 사랑을 떠올리며 본인과 타인을 끌어안는다.
Self Portrait, 1948 - Frida Kahlo - WikiArt.org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당신이 감당할 수 없었던 진실의 순도를 요구해서당신을 다그친 것 미안합니다.당신의 그림자를 용서합니다.나의 그림자를 용서해 주십시오.사랑합니다.
늦게 커피를 마시고 잠이 안 와 단편 하나 읽고 자기로 하고 요즘 읽는 백수린 작가의 첫 작품집 '폴링 인 폴' 중 '밤의 수족관'을 읽었다. 독자 내맘대로 주인공의 상상에 기반한 악몽이라고 해석해본다. 흠모하던 유명인과 막상 결혼하니 이런 악몽이 펼쳐지네. 예상보다 더 힘든, 수습되지 않는 결혼. 그러니 결혼은 됐고 팬으로 남는 게 나아, 무의식 속 여우의 신포도 이론. 이른바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맞닥뜨리는 열린 결말의 스릴러 팬픽.
Bride and Groom (The Couple), c.1915 - Amedeo Modigliani - WikiArt.org
어느새 나는 어항 속을 맴도는 물고기처럼, 전시실을 몇 바퀴째 맴돌고 있어. 내가 당신과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이렇게 시간이나 때우는 한심한 여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야. 누군가는 유명인 남편이 무섭긴 무섭구나, 빈정거리기도 하겠지. 하지만, 당신이 유명인이든 아니든 상관은 없었어. 나는 다만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열렬히 사랑했던 것뿐이니까. 어쩌면 당신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사랑을 지속시켜주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은색 비늘을 반짝이며 쏟아지듯 헤엄쳐다니는 정어리떼 앞에 세번째로 멈춰 설 때까지도 당신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신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지. 알고는 있지만, 있잖아, 아주 가끔은 가슴이 아파. 때로는 당신이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 밤의 수족관
나르키소스 By Gyula Benczúr - Fine Arts in Hungary:,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나르시시즘의 심리적 뿌리는 유아적 전능감이다. 유아기에 아무 근거 없이 자신이 옳고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느끼는 아기의 감정이 현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유지되면서 성인 나르시시스트를 만들어낸다. 또한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양육되면서 동일한 감정을 물려받기도 한다. - P125
나쓰메 소세키의 '춘분 지나고까지'에 점을 치러 가니 점술가가 나이와 생일을 묻고 동전점을 치는데, 동전점은 영화나 사극에서 본 적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떤 건지 궁금해져 찾아 보았다. 아래 포스트(수유너머로부터 출발한 문탁네트워크)에 꽤 자세히 나온다.
* 점을 쳐서 지수사괘를 얻다 http://moontaknet.com/?page_id=165&mod=document&uid=26174
동전점이란 노래가 있다. 나온지 한 달도 안 된 신곡. 아티스트는 코인도트. 진짜 동전점이다(웃음)! 노래 동전점의 영어제목은 coinflip - 동전던지기, 가장 단순한 동전점이다.
https://lyricstranslate.com/ko/coin-dot-dongjeonjeom-lyrics.html
"당신은 지금 망설이고 있어요. 나아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건 손해입니다. 설사 일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도 일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은 이득이 될 테니까요." "나아가도 실패하는 일은 없을까요?" "네. 그러니 되도록 얌전히, 성급하게 굴지 않도록 하세요." "나아가다니 대체 어느 쪽으로 나아간다는 거죠?" "그건 당신이 잘 알텐데요. 저는 그저 좀 더 앞으로 나아가시라, 그러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길이 두 갈래라 그중 어느 길로 나아가면 좋을지를 묻는 겁니다." "뭐, 마찬가지네요." 100~101쪽
기후변화로 인해 식목일 날짜를 바꾸자는 논의에 대한 뉴스이다. http://www.segye.com/newsView/20220405507538?OutUrl=daum [식목일 따로 나무 심는 날 따로?… 기후변화 속 ‘유명무실’ 논란 2022-04-05]
오늘은 식목일, 영문학자 피오나 스태퍼드가 쓴 '길고 긴 나무의 삶'이란 책을 읽는다. 오, 제인 오스틴의 에마(엠마) 펭귄클래식판 해설자가 이 분. 시작글로부터 일부 옮겨둔다. '꽃차례'란 말이 예쁘다. '꽃차례'란 제목의 시집도 있네.
봄이면 벌거벗은 잔가지에 꿈틀대는 생명을 느낄 수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 꽃차례들은 작은 오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간 흔적처럼 보인다. 어느 날 잔가지들이 굵어지고 환해지고 불룩해지기 시작한다. 이튿날쯤이면 나란히 짝을 이룬 집게발 같은 잎과 곁은 색, 미색, 분홍색이 감도는 꽃이 잔가지를 뒤덮는다. 봄기운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폭발한다. 이 책은 나무라는 자연 형상의 물질적 아름다움과 여러 세기에 걸친 그들의 생존, 나무에게서 자라난 문화적 의미에 대한 경탄에서 싹트긴 했으나, 오늘 심은 어린 나무가 미래 세대의 위대한 나무들로 변할 시간을 고대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여서 책을 내려놓고 나무나 삽을 찾으러 간다면 이 책은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나는 나무를 그 자체로 좋아한다. 특히 흔한 나무일수록 자라야 하기 때문에 그냥 자라는 - 이게 바로 나무들의 일이다 - 것들의 강렬한 매혹을 지니고 있다. (시작하며_싹, 나무껍질,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