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속 그는 (당연히) 레빈이다. 오늘 식목일을 축하하며 열린책들 '안나 까레니나' 로부터 옮긴다.




가축우리와 곡물 창고에서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들녘으로 나가자 한층 더 흥겨워졌다. 순한 말의 발걸음을 따라 고르게 흔들리면서, 청량한 눈의 향기와 따스한 대기를 들이마시면서, 군데군데 찍힌 발자국들이 희미해져 가고 유해처럼 파리해져 가는 잔설을 밟으면서 숲을 지나는 동안, 껍질 위에 이끼가 소생하고 싹눈이 부풀어 가는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를 볼 때 마다 그는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숲을 벗어나자 그의 눈앞에는 광활한 평원 속에 벨벳 융단같이 보드랍고 평평한 풀밭이 널리 펼쳐졌다. 공지나 습지라곤 단 한 군데도 없었고, 협곡에만 눈 녹은 자국이 점점이 얼룩져 있을 뿐이었다. - 제2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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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식목일이다. 나무 한 그루 심기 어렵지만 누군가 심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를 생각한다.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산책자'(배수아 역)에 실린 '작은 나무'는 제목에 걸맞게 짧고 사랑스러운 산문이다. 아래 옮긴 대목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화가 쿠르베가 언급된다.

View of La Tour de Farges, 1857 - Gustave Courbet - WikiArt.org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85729&cid=43671&categoryId=43671 파리 코뮌에 동참했던 쿠르베는 스위스로 망명하여 여생을 마감했다.






어째서 나무는 내 사랑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가. 뭔가 다정한 말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가. 나무는 청각이 없다. 나무는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 화답하는 내 미소를 보지도 못한다. 이러한 존재의 발치에 누워 쿠르베의 그림 속 인물처럼 영원한 작별을 고하며 죽어간다면!

물론 계속해서 살아가겠지만, 나는 시간이 흐른 후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인가? - 작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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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흐르는 카페 두 번째 이야기'(이재천) 중 'III 야만의 시대 - 전쟁과 선거' 로부터 옮긴다. 저자는 영화모임을 오래 했다.

레바논 (사진: UnsplashTatiana Mokhova)



끔찍한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은 희곡 '화염'이다.





"나는 이런 영화는 절대 혼자서는 안 봐요."

영화가 끝난 후, 뒷자리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함께나 보니까 보았다는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맞아. 이런 영화를 어떻게 혼자 봐.’

‘나와 함께 7년 넘게 영화를 보아 낸 사람들이라면 이 〈그을린 사랑〉도 보아야 한다.’

끝까지 영화의 배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줄거리는 전쟁이 보여 주는 것 자체, 아니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어떤 전쟁보다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내전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이 배경이었다.

원작자와 감독은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갈등을 피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풀어가기 위해서 익명의 공간으로 설정했다지만 영화의 실제 사건은 70년대 이후의 레바논 내전이다. 한 국가 아래 기독교도와 모슬렘이 40년에 걸쳐 수백, 수천,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여 왔다. 지긋지긋한 전쟁.

가장 종교적인 지역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인간과 종교의 제대로 된 단면을 보여 준다. 종교적 삶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용기는 타 종교를 절멸시키기 위해 신명을 다하게 한다. 그런 분쟁의 핵심에는 정치와 종교와 권력이 일체가 된 정치인들의 땅따먹기식 패권 싸움이 있을 것이며 석유와 돈을 좇는 서방세계의 이권개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 땅에서 뿌리를 내려 번영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청년들은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부모들은 일하고 노인들은 존경을 받으며 집안에 기거해야 하지만 레바논의 땅에서 그런 것은 철저히 파괴되고 불살라졌다. 콘크리트 건물은 화염과 총탄에 뒤덮였던 때를 말해 주듯 해골의 눈처럼 새까맣게 뚫린 창들과 그을린 벽체로 서 있다. 그런 집들, 빌딩들이 가득한 저곳은 분명 수만 명이 살던 도시일 것이다. - 복수의 고리를 끊는 처참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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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산불'(1907)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사진: UnsplashPatrick Konior


어서 전쟁광을 끌어내리고 얼른 전쟁의 화염을 끄자.





지금껏 굳게 닫혀 있던 창문들도 오늘만큼은 열렸다. 창문으로 어느 늙은 남자와 어느 늙은 여자, 이제껏 세상 구경을 한 적이 없는 충직한 하녀, 혹은 매부리코에 머리가 하얀 신사까지 고개를 빠끔 내밀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과 귀를 열었다. 그것 말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보이지 않는 익숙한 공포가 골목길을 달려가다가 오래된 정원 문을 두드렸고, 담장을 넘어 창가에서 수를 놓는 한 처녀의 이마에 명중했다. 목공은 대패질을 중단했고, 철물공은 망치질을, 제화공은 두드리는 작업을, 재단사는 바느질을, 공사장의 인부는 삽질을, 무덤 파는 사람은 땅파기를, 시계공은 광내는 일을, 학자는 연구를 멈추었다. 대신 이들 모두에게는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불안하게 기다려야 하는 새로운 소명이 주어졌다.

들판과 언덕에 산재한 인근 마을들에서도 야단법석이 일었다. 곳곳에서 마차와 수레가 덜커덩거렸고, 자전거를 탄 사람은 열심히 페달을 밟았으며,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북새통에 어른들에게 부딪혀 넘어진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일어났다. 철도 건널목에서야 사람들의 행렬과 자전거, 욕설이 정체되었다. 기차가 지나가 다들 건널 수 있을 때까지. 쉴 새 없이 울리는 이 종소리와 끔찍한 붉은색! 마치 약탈이 벌어지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어느 못된 초자연적인 악동이나 신이 세상에 불을 지른 듯했다. 게다가 마치 붉은색이 없으면 종소리도 결코 울리지 않을 것 같고, 분노한 수치심에 휩싸인 얼굴 같은 한낮이 마치 이 불타는 붉은색으로 무조건 뒤덮여야 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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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에 실린 '숲'의 마지막 대목이다. 


아, 고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요와 숲은 하나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으로 고요와 숲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나는 나의 가장 훌륭한 생각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부터 숲에 안녕을 고한다. 그래야 한다. 나는 숲이 그토록 단단하고, 크고, 넓고, 힘이 세고, 씩씩하고, 화려하다는 사실이 기쁘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1903년 -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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