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그래서 고 박완서 작가 생각이 났다. 박완서는 한국전쟁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한국전쟁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양혜원)의 4장 '트라우마' 중 '트라우마를 들어줄 귀'로부터 옮긴다.

1951년 1월 8일 강릉 외곽에서 폭설을 뚫고 남쪽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 행렬 -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한국 전쟁의 고난 중 하나가 피난길과 피난살이라면, 박완서의 가족은 그런 피난조차 가지 못해 피난 한 번 갔다 오는 것이 부상당한 오빠의 소원이 되었다. 모두가 피난살이의 고생을 이야기할 때 그 피난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오해 없이 들릴 수 있을까?
피난이 부럽고 차라리 졸지에 죽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박완서의 경험은 그래서 들어줄 귀를 찾아다니며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늘 죽음을 억울하고 원통한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조차 바뀌어갔다. 정말로 억울한 것은 죽은 그들이 아니라 그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나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억울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 것이다."29
29) 박완서. 《나목/ 도둑맞은 가난: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민음사(1981).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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