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가 겁이 나시는 분들은 해제부터 읽어보세요. 적어도 해제만은..아주 재미있습니다.

기존의 철학이 갖고 있는 경험론의 회의적인 면이나 이성론(합리론이라고 번역하면 경험론은 비합리론이 되기 때문에 '이성론'으로 번역했다고 함)의 독단적인 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대 혁명을 시도한 책입니다.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전근대성과 근대성, 진보성과 보수성의 갈등으로 점철된 시대 상황을 고찰한다면, 그 시대의 삶이 갈망하는 내용이 담긴 이 작품이 과연 전통과 근대를 조화시키려 했던가? 아님 양쪽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였던가..

라는 2가지 시선에서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의 철학은 인간 인식능력 일반의 주체인 이성 자체를 이성이 자기 비판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해제 132쪽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
-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22살때
˝나는 내가 견지하려고 하는 내 행로를 이미 그려놓고 있다. 나는 내 행로를 밟아 나갈 것이고, 어떤 것도 내가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주장할 만큼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해제 111쪽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내가 두 가지 대상을 여러 차례 그리고 오랫동안 성찰하는 데 종사하면 할수록, 그 두 가지 대상은 더욱 새롭고 높아지는 경탄과 외경을 내 마음에 가득 채운다. 이 두 가지는 ‘내 머리 위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다.‘ ˝- 해제 113쪽



헤르더(J.G.Herder)는 칸트에 대해서
˝어떤 간계, 어떤 종파, 어떤 선입견, 어떤 이름이나 명예욕도 그가 진리를 밝히고 넓혀가는 것을 방해하는 유혹이 되지 못했다˝라고 적고 있다. - 주석44) -189쪽

 

 

 

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감성, 지성, 이성 중 그 어느 것에도 절대 우위를 허용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도록 설정해놓았다.

즉 그는 이들 능력 사이에 삼권 분립을 제대로 마련해놓고자 했다. - 해제 115쪽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바로 이성 자신의 본성상 스스로에게 부과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달리 피할 수도 없는 물음들로 인해, 더군다나 그러한 물음들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넘어서 있어 스스로가 답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그 어려움을 피하고자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세계를 서둘러 이론화하려고 하며, 그로 인해 독단적 형이상학을 구축하게 된다 - 해제 127쪽





*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9-25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절에 이런거 드시고 그러심 체합니다 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5 12:17   좋아요 2 | URL
명절 스트레스를 잊을려면 더 심한 스트레스가 필요한 법입니다..ㅎㅎㅎ
그리고 카알벨루치님과 대화좀 할려면..
이렇게라도 자학해야^^;

카알벨루치 2018-09-25 12:29   좋아요 1 | URL
전 여기오면 벙어리가 된듯! 고전의 아고라에서 길잃은 방랑자가 된듯...ㅋ대학때 철학사 도서관에서 파다가 말았는데...전 암것도 몰라용 ㅋ

북프리쿠키 2018-09-25 13:19   좋아요 2 | URL
아 그래도 파셨다뉘..대단하십니다.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영원히~모를 것이다.라는 편안함으로 칸트를 대하고 있습니다. 비록 서문에 불과하지만 주저리주저리 하다보면 앎과 배움은 역시나 별개라는 걸 알게 되겠지요. ㅎㅎ


 

 

 

 

도그마, 관점, 당파성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 ........이런 사고들이다.

정론(正論)은 정론(定論)이 아니라 정론(政論)이다.

 

 

 

 

 

 

 

 

 

과학철학의 걸작인 토머스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유는 그가 객관성의 신화를 정면 비판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그것을 신봉하는 집단 안에서만 과학이지, 반례와 새로운 세력에 의해 신앙심이 흩어지면 과학(normal science)의 지위를 잃고 새로운 과학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것이 패러다임 혁명이다.

이후 기존 이론은 오류, 데이터, 역사로 남는데, 이 과정이 과학의 발전이다.

그러므로 쿤에 의하면 과학혁명은 언제나 개종(改宗)의 역사이다. 과학 이론은 처음에는 자기 입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도그마(dogma, 독단)으로부터 시작된다.

 

 

 

 

 

 

- 파이어아벤트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는 더 나아가 개종의 과정에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이 책의 부제 '새로운 과학관과 인식론적 아나키즘'이다. 앎의 시도에 방법의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방법에의 도전>이 공부하려는 사람의 첫 필독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이어아벤트는 "모든 과학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모든 이데올로기에 객관적인 척도로 이용된다.

기존의 거대한 독단주의는 사실로서 지위를 가질 뿐 아니라 그보다 극히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도그마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독단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의 신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과학은 현재의 법과 질서와 통념으로 구성되므로 이를 맹신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

아니키즘은 어떤 방법도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라고 말하는 완전한 개방성의 이념이다.

 

 

 

 

 

 

정희진 작가는 도그마, 관점, 당파성을 지지하며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보충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자기 당파성도 모르고 상대방의 도그마도 모를 때, 균형 감각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균형은 없다. 역사의 시작과 함께 저울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이 3가지의 책이 같은 관점을 공유하며

독단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난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고 느낌을 나눔에서 "균형감각"과 "관용"을 중시해 왔었다. 삶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즉, 내가 알고 있는, 또는 알아가고 있는 지식은 단지 '내가 알고 있는 한'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을 명심한다.

그리고 그 지식은 나의 지식이 아닐 뿐더러 더더군다나 통설에 불과하므로 충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수의 관점도

포용하여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글이라는 걸 쓸때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 서재의 프사글이기도 한 은유작가의 아래 문장을 좋아한다.

 

"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세계가, 사회가, 우리들에게 보편화되어 있는 규범과 체계를 '지당하신 말씀'으로 신격화한다.

객관적이고 다수가 용인하는 보편성에 함부로 덤벼들면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한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소위 '책 읽은 티'를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건 누구나 경험해보았으리라.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뾰족함을 우리 사회는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우리의 도그마는 첨탑처럼 뾰족해진다.

흔히들 시니컬해지는 게 보편적인가 보다.

 

 

 

 

 

슬라보예 지젝의 책 <삐딱하게 보기> 제목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에 대해서 계속 의구심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목표로 이끄는 원동력은 고독함”이라며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다. 나쁘게 말한다면 자신은 일종의 자폐증을 겪고 있다”고 말한 미코출신 하버드대 출신의 금나나가 말한 부분을 너무나 공감한다.

자폐증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가정을 생각해 봤을 때 이 발언은 경솔하다는 의견에 동감하지만,

말 그대로 책을 사랑하면 자폐(自廢)가 시작된다. 결국은 사회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당당해지자.

그 사회성이라는 정의(正義)도 결국은 권력의 정의(定義)니까 말이다. 

 

 

 

 

 

현재 우리는 지식을 제공하는 자, 지식을 습득하는 자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쌍방향으로 뒤섞인 개개의 독단으로 가득 찬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포스팅 자체도 하나의 정론(政論)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지향하는 '균형감각'은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고 허허 웃으면서 넘어가는 회피의 처세술이었던가.

성격이 무난한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익살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비판을 두려워하고, 소수자로 전락되는 것이 겁나 통설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한 이력(履歷)이 내 삶이었던가.

 

 

 

정희진 작가는 나에게 화두를 던졌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이젠 아파야 된다고.

 

물론, 과학이, 언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지금 내가 고민하는 부분과 정확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작가도 인간의 감성을 흔드는 분야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많은 공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고통스럽게 책을 읽는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그 지식의 사유화를 나의 독단으로 써내려갈 용기가 없다.(독자나 일반인에게 이런 주문을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균형감각, 절충, 객관화를 버리기도 쉽지 않다.

우리의 지식은 풍요로운 삶에 있어서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독단을 실행하는 자는 그저 위대한(?) 학자들에 맡기련다.

 

 

글마무리에 나의 고민을 간파하기라도 한 것 처럼 정희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약자의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을 향한 욕망을 접고 자기 입장을 더 깊이 있게 전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입장은 뭐냐? 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 뜻대로 균형감각과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물론 불가능하다.균형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기 때문이다.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오늘도 책은 나를 흔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8-09-2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충격받으셨군요. ^^
그럼에도 추석인데요...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북프리쿠키 2018-09-28 11:26   좋아요 0 | URL
남성인 저에겐 항상..숙제(?)같은 작가였는데..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한 책이 나를 성장시킨다라는 말. 이 책에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2018-09-22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뻔뻔한 이의 마음의 평화는 억울한 사람이 겪는 마음의 고통의 대가다. 관용은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사회가 쥐어준 권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없는 자‘의 관용은 비굴이나 아부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힐링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성숙한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는 스스로에게 잠시 속아주는 것.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삶을 속여봤자다.˝
- 본문




본문의 내용과는 다소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우린 가히 힐링 타령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삶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욕망의 수준은 높아져만 가고,
왠만한 여행지, 음식, 레저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서로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행복경쟁이
점점 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해지기 위해 ..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행복들이, 그 웃음이, 진정 내 얼굴이었던가.

아주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욜로‘를 부추기고 ‘소확행‘이란 교묘한 말장난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마치 관용을 베풀기나 한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너무 과도한 평화를 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값비싼 댓가는 뻔뻔한 자본의 호주머니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2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0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9-20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정희진 선생님의 책표지만 보아도 마음이 끌리네요.
진정한 행복이 뭘까. 만족한다는게 뭘까, 북프리쿠키님 글 읽고 다시 생각하는 아침이네요^^

북프리쿠키 2018-09-20 20:55   좋아요 0 | URL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이있게 책 읽고 계시는 단발머리님께 많은 걸 배웁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 다시 한번 자문해보는 아침이라~그 느낌..여기까지 와 닿네요.^^

서니데이 2018-09-21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 페이지로 왔더니, 서재 이미지가 멋진 야경을 담고 있네요.
한동안 북플 페이지로 읽어서 그런지 달라진 이미지가 멋있습니다.
북프리쿠키님, 오늘부터 추석연휴가 시작이라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

북프리쿠키 2018-09-22 11:49   좋아요 1 | URL
친히 서재까지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에는 서니데이님 없으시면 슬플것 같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하시구요.
저두 서니데이님 서재에 종종 놀러가겠습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제11편 3장에
˝안시성 싸움˝(p.288~311)을 기술하고 있다.



˝중국사서의 춘추필법에 따른 기록과 우리나라 사서의 노예근성에 충실한 편집은 거의 믿을 수 없는 망령된 말뿐이다˝- 291쪽



인시성 싸움의 전말에 대해 그간의 거짓 기록을
다양한 자료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수백년 사대의 용렬한 종이 된 역사가들이 그 좁쌀만한 주관적 눈에 보인대로 연개소문을 가혹하게 평하는 것에 단재는 원통해한다.


내일 개봉하는 영화에도 극적인 장치를 위하여
분명 시대적 대표 인물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고,
알팍한 팩션사이를 넘나들며 흥행의 도구로 삼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허구와 사실을 직시하고
영화는 영화로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총론에서 이야기하는 신채호의 뜻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만드는 것이지,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에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지, 지은이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우하거나 덧붙이거나 달리 고칠수 있는 것이 아니다.˝-553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9-19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청소년판 읽다가 잼없어 포기했는데 역쉬 북프리쿠키님은 갑입니다요!

북프리쿠키 2018-09-19 15:30   좋아요 1 | URL
살면서 갑이 되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ㅎ
갑을병정에도 없는 ㅠ

카알벨루치 2018-09-19 17: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하세요 인제 ~고전갑!!!!!

북프리쿠키 2018-09-20 10:33   좋아요 1 | URL
저야 이제 시작인걸요~^^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독자 대부분은 내용에 대해 인문학적 사유를 펼치면서 감동을 주는 요인(상징)들을 찾느라 깊은 상념에 잠긴다.
용케 그런 장면을 찾으면 감탄사를 외치며 칭찬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없으면 멀뚱해져서 뭐 이런 것을 작품이라고 하냐며 혀를 차게 된다. 그러나 빌려 쓰는 언어로 문학이 만들어진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낱말(기호)들에서 내용을 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전 시대의 수많은 작가들이 같은 낱말들로 이야기들을 수없이 서술해 놓았기 때문에 또 다시 그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로브그리예나 한트케 말대로 ˝낡아 버렸고˝ ˝ 서술 불능˝ 이며 ˝무미건조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한트케는 그래서 관객모독의 서술방법에 대해 <나는 상아탑에 산다>라는 소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희곡들의 작법은 (.....) 연극 진행을 단어들로만 한정한 것이었다. 단어들의 서로 다른 의미는 사건 진행이나 개별이야기를 방해했다. 연극이 어떤 구체적인 상을 그리지도 않고,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착각하게끔 하지도 않으며, 오직 현실에서 쓰이는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된다는 점, 그것이 이 작법의 핵심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방법들에 대한 거부가 내 첫 희곡의 작법이었다˝ -75쪽








페터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태생 독일 작가이다.
1942년생으로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 작가 중 생존해 계시는 몇 안되는 작가이다.
<소망없는 불행><페널티킥앞에선골키퍼의불안>이 책장에서 유혹했지만 꼭 이 작품부터 읽고 싶었다.
제목처럼 관객을 모독하는 작품이다.
무슨 얘기냐하면 연극공연을 하기 위한 희곡작품인데, 등장인물이나 대사가 없다.
대신 끝없이 늘어놓는 언어유희 모음이다.
마치 이상의 단편집 중 <지도의 암실>에서 아무리 꼼꼼하게 읽어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
마지막엔 책의 3장 분량의 욕설 모음을 내뱉는다.
다행히도 초연은 성공리에 환영받았지만 말이다.






작품해설에 나온 이 작품의 배경은 이렇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독 문인들이 독일의 전쟁 범죄 행위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조금도 속이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겠다는 공감대 속에서 만든 문인단체 47그룹 모임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의 문학은 ‘신사실주의문학‘ 또는 ‘참여문학‘이라고 불린다)
당시 그 모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도 47그룹 문학상을 받고 참석하였다.
요즘 읽고 있는 양철북의 작가이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가 세살 생일에 ‘어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하는 비현실적인 서술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겠다‘는 47 그룹의 문학방향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출판사의 배려덕에 모임에 참여한 이름도 생소한 한트케가 그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서술 불능이 독일 문학을 지배하고 있˝고 그들의 문학은 ˝무미건조하고 어리석으며˝ ˝ 낡은 서술 문학에서 성장한 것˝이라고 맹공을 펼쳤던 것이다. - 70쪽









한트케는 알랭 로브그리예(질투를 쓴 작가)가 자신이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데 대단히 중요한 모범이었다고 한다.
로브그리예는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이론, 롤랑바르트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자 등에 입각해 작품을 썼던 ‘누보로망‘의 대표작가이다.
(소쉬르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를, 사회 안에서 긴 시간을 두고 축적된 언어(langue, 랑그)와 그 일부를 빌려 쓰는 개인들의 언어(parole, 파롤)로 구분하고, 진정한 언어 연구의 대상은 랑그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언어가 세상 사물과 아무 관계 없는 기호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낱말이 그 지시 대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낱말이란 세상 사물과 아무런 관련없는 기호일 뿐이며 기호와 그 의미 관계는 단지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지금까지와는 너무나 다른 의식을 요구했다. 한트케가 젊은 날 심취했던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이러한 이론에 기반을 둔 사조다.)
한트케는 새로운 소설을 위한 논리와 문학적 시도를 자신의 논리로 전환시켰다

‘나는 독일어권에서 프랑스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일한 작가였다‘라고 말한다.

언어이론,형식주의, 구조주의 등과 같은 외국 사조의 영향을 통해 형성된 그의 문학 이론은 당시 서독 문단을 주도하던 47그룹의 문학 이론과 그 토양이 전혀 달랐다. 글을 쓸때 한트케의 과심은 오직 언어에 있는 데 반해 47그룹 작가들이 열중한 것은 오로지 현실이었던 것이다.





--------------------------------


관객모독은 관객뿐만 아니라 이 희곡이라 할 수 없는 희곡을 읽는 독자까지 모독한다.
모독받고 싶으면 한번 읽어보시라.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하지만 그 모독의 크기는 60여페이지정도의 얇디 얇은 분량 덕분에 참을만하다.
사실 프랑스 구조주의라는 사조에 대해 정말 1도 몰랐다면 이 무슨...잡소리를...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이런 독자들의 반응을 간파했는지 작품해설에서 비트겐슈타인, 소쉬르를 출동시키며 어르고 달랜다.
그러면서 고매한 지적 허영심을 불어넣어 평정심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든지, <대머리여가수>는 그나마 희곡의 형식이나 갖추고 말장난을 하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다..그냥 단어와 문장들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아..재미없다. 재미없다.



그런데 말이다....
뭔가가 내 뒤통수를 탁 쳤다.
비트겐슈타인이나 소쉬르의 주장. 뭐 그들의 저서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비트겐슈타인은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신해철님이 만든 그룹명으로 잘 알지)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안다.
그리고 ˝우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라든지, ˝언어는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이 무엇을 지향했는지 어렴풋이 느낀다.

바로 내가 느끼는 그 어렴풋한 언어학(?)을..
이 작품이 집요하게 ˝바로 이거야. 바로 이거야. 이 바보야 ˝라고 말한 것이다.

비록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반드시 스토리가 있고,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이
문학(예술)은 아니다˝ 라는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문학을 읽다보면, 얼척없이 재미없는, 단조로운, 책들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책들도 단숨에 내치지 않고 이건 필시 그 당시의 어떤 사조나 시대적 흐름에, 또는 주도하는 특이한 작가나 문체에 영향받은거라고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너그러운 시선을 선물했다.

한트케야 재미는 없지만 7천원 밥값 했다. 고맙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9-16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프리쿠키님께서 아이와 함께 하는 열악한(?)독서 환경에서 이런 어려운 책을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아이랑 놀 때는 그냥 내려놓는답니다ㅜㅜ

북프리쿠키 2018-09-18 15:07   좋아요 1 | URL

초가을 볕에 야외에서 읽으니 기분좋네요.
아이랑 놀 때는 책 자체를 들고 가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ㅎㅎ
훌쩍 커버리기 전에 아이랑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에는 책이랑 휴대폰은 가급적 안 들다봐야겠습니다..^^;

꼬마요정 2018-09-16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질투> 읽다가 식겁해서 이런 어려운 책은 좀 더 내공이 쌓이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평생 못 읽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읽을 거리는 어마무시하게 많으니까요^^

아이와 새, 아이스커피, 따뜻한 라떼, 그리고 물. 너무 멋진 풍경입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8-09-20 20:59   좋아요 0 | URL
아~질투 2장 읽다가 살포시 덮어놨는데요ㅎㅎ 컨디션 좋을때 아니면 열어보기 무서운 책이네요ㅋ
꼬마요정님 내공에 어려운 책이 있을까요.ㅎ

딸애와 함께하는 이 소박한 시간이 참 좋으네요^^

cyrus 2018-09-17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트케가 쓴 책은 대부분 분량이 얇아요. 그런데 내용은 재미없어요..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8-09-20 21:0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소망없는 불행>읽어볼려고 펼쳐봤는데 2편의 단편이더라구요.
또 도전해봐야겠어요
읽다보면 좋아지려나~ ㅎ

카알벨루치 2018-09-17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지가 납니다 딸과 책과 라떼 거기다가 비둘기...이건 이 글을 읽는 나를 포함한 알라디너를 모독하는거 아닙니까 독서하는 장소도 완전 우아 간지 엄지척!!!!ㅋ

북프리쿠키 2018-09-20 21:03   좋아요 1 | URL
오랫만에 광합성 중입니다.
여긴 딸애가 금붕어랑 비둘기 먹이 주는 곳인데.
책 읽기에는 집~쭝이 ㅎㅎ

연국현 2019-10-1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의 건덕지를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 서평을 보고 안읽기로 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