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몇 번이나 시도하다 완독을 포기한 <전체주의의 기원>,<인간의 조건>,<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가깝게 다가선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설명한다.
아렌트의 명성을 존경하는 것이 아닌, 이제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존경하게 된 책이 되었다.

이진우 교수님의 발췌와 해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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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괴물 같은 악을 저지른 자는 왜 괴물이 아닌가?

우리의 정치적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한 명 또는 몇몇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행위가 서로 얽혀 만들어진 어떤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악에 대처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매우 도전적인 주제로 우리를 이끈다.p63


많은 사람은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그 단어가 지칭하는 사태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p64


아렌트가 이 개념을 유일하게 사용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이 마지막 문장은 이미 ‘악의 평범성‘의 성격을 말해준다.
악은 ‘사고를 허용하지 않기‘때문에 평범하다. 사고할 능력이 없음이 결국 악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위가 비록 괴물 같기는 하지만 행위자는 결코 괴물이지도 악마이지도 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대한 아렌트의 해석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악마적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와 책임을 줄여주거나 벗겨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p69


아렌트는 사유할 능력 없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 말할 능력 없음이 결국 악을 키운다고 말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어떤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인지에 관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과 사생활로 도피하지만, 그것은 전체주의 정권이 가장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이래 죽을 때까지 사유할 수 있음의 의미를 파고든다. p80


5. 왜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져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만큼 정치의 전제조건인 인간의 다원성을 철저하게 사유한 철학자도 없다. p111


아렌트적 의미에서 정치적 인간은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정치적 인간은 자신의 자유가 타인의 현존과 평등성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정치적 공간은 ˝서로 다른 개인들이 함께할 때에만 생길 수 있고, 그들이 함께 머물러 있는 동안에만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이다.˝ p118


사람들은 행위자들이 다수라는 사실에서 오는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피해갈 수 있는 대체물에 유혹을 느낀다.사람들은 되도록 뜻과 마음이 같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 하고, 자신의 신념에 일치하는 정보와 의견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가 설령 다원성을 파괴하더라도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플라톤의 철인 통치의 이상이 생겨났다. p121


플라톤은 다양한 의견을 경멸하고 절대적 척도를 요구했다.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함으로써 서양 역사에서 잊힌 다원성의 전통을 복원하려 한다.
p122


다원성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시작을 불가능하게 만든 전체주의를 해부한 1951년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다원성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성찰한 1958년의 <인간의 조건> p123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역설은 다원성의 정치를 대변한다 p126


사람들은 정치에 혐오를 느껴 철학으로 도피하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정치이다. 우리가 다원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너무 많은 의견 속에서 진리를 찾기는 무척 어렵다.
다원성이 버거울수록 여론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의견만 절대화하는 전체주의의 유혹이다. p127


소크라테스와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다 p131


6.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자유로운가?


우리가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다른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우리는 이미 정치적이다. p135


7. 정치권력은 꼭 폭력적이어야 하는가?


권력과 폭력이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과 폭력은 반대의 것이다.
하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은 권력이 위험에 빠질 때 등장하지만, 제멋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에는 권력의 소멸을 불러온다. p 168


권력이 너무 취약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여론조작의 유혹에 빠지고, 자신이 원하는 권력관계를 보존할 수 없을 때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p169


베버는 권력을 ˝특정한 사회관계에서 반대가 있는데도 자신의 의지를 주장할 수 있는 기회˝로 간단하게 규정한다. p173


8. 정치는 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가?


˝진리와 정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누구도 진실성을 덕성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거짓말은 언제나 정치꾼이나 선동가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일에 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도구로 여겨졌다.˝

정치적 거짓말은 도덕적 결합과는 관련이 없다.
정치적 의견은 다양한 세계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므로 순수한 사실만 지향하지 않는다.
사실보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중요한 것이 정치다. p179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이고, 진리는 비정치적이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 바뀔 수 있는 현실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p192


9. 지배 관계를 넘어서는 평등의 정치는 가능한가?


두 혁명 모두 자유를 목표로 하는 정치혁명으로 시작했지만 프랑스 혁명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혁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미국혁명은 빈곤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건국의 정치혁명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p211


아렌트는 대의민주주의와 양당 정치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p221


10. 어떻게 정치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 어떻게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가?
아렌트에 의하면 관찰자가 기대하는 것을 고려하고 그와 일치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은 것이다. p 242


다양한 사건과 사례를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자신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우리가 공론 영역의 토대와 조건인 다원성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어떻게 합의에 이를 수 있는지도 여전히 수수께끼다.
한나 아렌트가 미적 판단을 끌어들이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p243



이렇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미적 판단이 공적 활동인 정치적 행위의 판단과 유사하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적 취향과 정치적 성향 차이에는 가족 유사성이 존재한다.
지극히 사적인 미적 판단의 타당성 문제는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라는 말과 ˝그것은 아름답다˝는 말을 구별할 때 비로소 제기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적인 선호도를 표현하고 결코 객관적 타당성을 주장하지 않지만 ˝ 그것은 아름답다˝는 표현은 대상의 특성에 대한 객관적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아름답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누구도 아름다운 대상을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이다. p245


미적 취향과 정치적 성향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렌트가 공통감각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의 한 구절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정신 이상의 유일한 일반적 징후는 공통 감각의 상실과 그것을 대체하는 논리적 자기 고집이다˝
p250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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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재 2030세대 폭민(暴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던져준다.


제2장에서 아렌트의 ˝근본악˝,˝절대악˝의 개념과 ˝대중˝과 ˝폭민˝의 키워드를 가져와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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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무엇이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가.


인류 역사상 권력은 언제나 현실이었음에도 도덕과 이념으로 통제하려는 전통에 반기를 들고 권력의 현실을 최초로 인정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악마의 손으로 쓴 책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한 것으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악마의 책을 불태우고 도덕적으로 배척한 교황과 군주들이 이 책을 은밀히 읽는 열렬한 독자였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면, 권력욕을 악으로 규정하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p42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것을 정치적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체주의 정권이 저지른 악행을 이해하기 위해 ˝근본악˝과 ˝절대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p43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려면, 그녀가 전체주의의 절대적 악, 또는 근본악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동기도 없이 인간을 학살하는 행위, 그것은 처벌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근본악이다.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을 절대악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죄를 오로지 아돌프 히틀러라는 악마와 괴물에게 묻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를 악마로 몰면 몰수록, 이러한 악행을 저지른 전체주의 정권의 실체는 더욱더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p45


한나아렌트는 칸트가 만들어낸 ˝근본악˝이라는 단어로 적어도 이런 악의 존재를 짐작했던 유일한 철학자이지만 ˝도착된 사악한 의지라는 개념˝으로 악을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히틀러의 전체주의 정권은 그 어떤 동기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다시 한번 단언한다. p47


왜 수많는 사람이 전체주의 지도자들에게 순순히 복종하고 충성했으며 또 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음의 공장으로 끌려갔는가는 쉽게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이다.
아렌트의 독창성은 이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에 있다. p49


전체주의는 잔학한 통치방법을 넘어서 사람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체제이다. 대중이 출현했다고 해서 반드시 전체주의 정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이 인간을 쓸모없게 만드는 잉여화의 기제와 결합할 때 전체주의적 경향이 싹튼다는 아렌트의 인식은 여전히 타당하다. p50


대중은 수적으로는 거대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고립되어 있다.(...)
정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서로 고립되어 있는 대중으로 만드는 방법뿐이다. ˝그러한 충성심은 완전히 고립된 인간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는 사회적 유대관계도 없고 심지어 단순히 아는 사람도 없이 단지 운동에 속해 있다는 사실과 당원 자격에서 사회적 존재의 의식, 즉 이 세상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의식을 이끌어낸다.
p52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대중은 본질적으로 폭력적 성향을 갖는다. 그 어떤 정치적 관심도 없는 비정치적 대중이 정치화될때 나타나는 것이 ˝폭민˝이다.(....)
폭민은 부르주아 계급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나타난다.(...)
한때는 중산층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계층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낄 때 훨씬 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다. p54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추적하면서 잉여화의 경향을 날카롭게 밝혀낸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완성하고 그 첫판을 카를 야스퍼스에게 생일선물로 보낸다.
이 책의 진가를 금방 알아보았다.
야스퍼스는 훗날 이 책의 독일어판 서문에서 아렌트가 ˝나치즘과 볼셰비즘에서 폭정과 전제정치를 넘어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인식했다고 말한다 p56


인간을 남아도는 존재로 만드는 잉여화, 그것을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수단화는 존재는 건드리지 않고 오직 인간의 존엄만 해치지만, 인간의 잉여화는 인간을 남아돌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에게서는 자발성에 상응하는-모든 예측불가능성을 제거하자마자 일어납니다. p54


그들에게 닥친 곤경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악이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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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x 이진우

그녀가 1951년 출간한 <전체주의의 기원>, 그녀의 철학적 문제가 시작된 책입니다.

마치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아렌트의 사유를 총 10챕터 중

챕터 1, 이제 전체주의는 끝났는가.

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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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경험한 역사상 가장 폭압적인 정권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1938년 이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 독재이고, 다른 하나는 1930년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볼셰비즘 독재이다.
두 정권 모두 당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뿌리를 잃은 대중의 실업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처방을 갖고 있다는 선전으로 등장했다. p19


한나아렌트가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뿌리 뽑힌 대중˝은 전체주의 운동의 자원이다. 전체주의 운동은 원자화되고 개인화된 대중의 특별한 조건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체주의 운동은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 조직에 대한 욕구를 가진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p26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개인들이 아무런 공동관심도 없이 흩어져 있다면, 전체주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그렇다면 본래는 매우 비정치적이었던 대중이 어떻게 무시무시한 형태로 정치화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전체주의가 대중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운동 양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와 테러, 선전, 선동과 비밀경찰을 정교하게 결합함으로써 대중을 조직한다.
우선, 전체주의는 세계와 방향을 잃어버린 대중이 스스로를 동일시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
스탈리니즘은 프롤레타라이 혁명을 끊임없이 실행하는 운동의 이데올로기이고, 나치즘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실현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다. p28


전체주의 정권이 대중에게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선전이다.
대중은 오직 선전을 통해서만 전체주의 운동에 동원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선전은 항상 테러와 함께 이루어지지만, ˝전체주의는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데올로기 교의와 실천적 거짓말을 끊임없이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p29


전체주의 운동은 권력을 장악하고 이데올로기에 따라 세계를 건립하기 이전에 선전을 통해 일관된 거짓말의 세계를 꾸며낸다
˝뿌리 뽑힌 대중은 이 거짓말의 세계속에서 고향처럼 느낄 수 있고 또 현실적인 삶과 실제의 경험들이 인간과 그들의 기대에 가하는 끝없는 충격을 피할 수 있다˝
이처럼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현실에서 허구로 도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p32


선전에 현혹되어 개성을 잃은 대중 앞에서 테러 정치는 시작한다.
반대자가 아니라 완전히 정복한 대중에게 행사한다는 점이 테러 정치의 진정한 공포이다. p33


총체적 지배의 세 번째 단계는 사람들의 개성을 파괴함으로써 자발성을 박탈한다. 우리는 전체주의 지도자에게 열광하는 광신적 대중에게도 경악하지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가스실로 걸어 들어갔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아렌트는 ˝복종하면서, 꼭두각시처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들의 행렬처럼 더 무서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p37

결국 ˝전체주의는 인간에 대한 전제적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안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시스템을 갖고자 노력한다. 전체주의가 권력을 얻고 지킬 수 있는 곳은 조건반사의 세계, 자발성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꼭두각시의 세계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용소의 피수용인들이 가스실에서 죽기 이전에 이미 인간으로서 철저하게 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p 38


˝전체주의의 해결책은 강한 유혹의 형태로 전체주의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생존할 것이다. 즉 인간다운 방식으로는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고통을 완화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면 언제나 나타날 강한 유혹의 형태로 생존할 것이다˝
전체주의를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아렌트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인간다운 방식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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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님(모임별명 : 스노우볼)과 함께 경북대 북문 boonsoon커피에서~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1987년)>
은 연작소설입니다.
한국문학에 11개의 단편으로 기고하면서 단편들이 어우러지며 서로 연관을 갖는 형식입니다.
이 소설의 히트로 양귀자는 부천시 원미동에서 서울 종로구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나무위키에는 당시 원미동의 가난을 소설삼아 돈을 벌었다는 원미동 주민들의 좋지 못한 시선도 있었다 하네요.

우리 부모님이 고군분투하던 딱 80년대의 가난한 소시민의 이야기는 제 어린시절과 오버랩되어 무척이나 공감되었습니다.
특히 첫 챕터 - 멀고 아름다운 동네(원미동)의 가난한 이들의 이사 광경은 긴 호흡으로 쓰여 있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와~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도 떠올랐고, 한편으론 그 디테일한 사건의 묘사는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에서 나오는 아낙네 빨래터의 싸움같이 오래 잔상이 남는 사실적인 문장들이었습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보다 폐부에 와닿는 가난의 거칠거칠한 아픔은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이 더 치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체념하는 것이라고, 혈기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라는 문장처럼 가난이란 것은 천재지변만큼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네요.

부모님께서 감당했던 무력감을
다시 한번 돌이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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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 책을 좋아하는 직장 내 지인들이 의기투합하여
<같이 읽을까> 직장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총 9명이 투표하여 첫번째 같이 읽을 책을 선정했습니다.
- 양귀자 <모순>

제가 추천한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은 따로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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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의 외침

하지만 아버지도 진진이란 이름 앞에 ‘안‘이 붙는다는 사실까지는 유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약간 지나치게 해석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도 나라는 인간은 평생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인 것이었다..... -P12




취미는. 없다.
나는 이 취미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취미란 단어는 악취미의 줄임말과 같은 뜻으로 종종 사용된다. 사람들이 진짜로 즐기는 유희는 고상한 것보다는 다분히 악의적인 것들이 훨씬 더 많다. P14




돈 모으기를 생활신조로 삼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내 또래 누구보다도 더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때때로 어떤 거래나 협상의 자리에서 아주 진지한 얼굴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런 말은 기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돈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P14




그랬으므로 지금 내게 나타난 두 명의 남자와도 나는 당연히 몹시 무덤덤하게 만났다. 유치해질 순간은 얼마든지 많았지만 그럴때마다 번번히 내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감상적이고 유치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세는 약간 과장되게 말한다면 내가 지닌 굳건한 세계관이었다. 내게 친구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은 다 그때문이었다. 나는 감상과 유치함에 대해 언제나 과감하게 적대적이었으니까. P16



이십대의 젊음에게는 온갖 것이 다 사랑의 묘약일 수 있다.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P17



그런데 나는..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던 나는 무엇인가. P17




하지만 결혼 말고 내 삶의 부피를 늘려줄 만한 어떤 일이 내 앞에 있는 것도 아니다. 빈약한 인생을 걱정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결혼에 빠져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어리석은 판단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많은 시간 충분한 검토를 거치겠다는 각오만 열렬하다면 말이다. P18




인생을 방기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면서까지 무위한 삶을 견디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P18



내 삶이 이토록 지리멸렬해진 것을 모두 다 어머니에게 떠넘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원인을 분석한다고 때로는 문제가 있는 가정에, 혹은 사회에, 아니면 제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분석들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방종을 정당화하려는 젊은 애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교활함을 참을 수 없어한다. 특히 열대여섯 되는 어린애들이 텅 빈 머리로 앵무새처럼 그런 핑계를 대고 있으면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야 한다.
영악함만 있고 자존심은 없는 인간들. P21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2



2. 거짓말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P28



사업이라니, 당시 어머니는 시장 바닥에서 사구려 양말을 팔고 잇었다. P35



누가 그랬다.
결혼은 디저트보다 수프쪽이 더 맛있는 정찬이라고. 나는 이십칠 년전의 결혼을 기념하는 부부 옆에서 실없이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P38


˝저기, 저분. 어머니 맞지˝
나는 안진진 엄마예요, 하고 아주 ㅅ여 있는 걸 뭐.˝
아니, 이모예요, 라고 말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소리가 되어 나온 대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전혀 거침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어머니하고 이모부, 이모부에게 식사 대접할 일이 있어서요. 참, 얼른 가봐요.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P39



3. 사람이 있는 풍경

줄담배를 피우며 눈이 빠지게 보고 있는 말론 브랜도의 [대부]와 최민수의 [모래시계] 이 두편의 비디오테이프는 진모의 교과서이자 보스 세계의 모든 것이었다. P49



내 친구들에게도 한번 물어보면 당장 확인될 일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절대 충고라는 이름의 지당한 말씀은 하지 않는 위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길게 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말이었다. 그런 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P51


어떤 경우에는 천박함이 무명천처럼 고슬고슬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P54



나는 진모를, 진모는 나를 한 번 더 확인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아니다. 하나 더 있다. 라일락 향기 아련한 봄밤에 남매끼리 마주 앉아 나누었던 한잔의 술, 그 아름다움.
P58



착한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나는 날에는 된장찌게도 끓이고 나물도 무쳐서 밥상을 차려놓고 시장에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러나 열 다섯 살이 넘은 후로는 그렇게 착한 마음이 생기는 날이 드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철이 들면 더욱 착하게 굴어야 할 텐데,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아는 착한 애들은 모두 바보였다. 그 당시 나는 단지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P60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P64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P75



내 마음대로 해석한 김장우의 전화 메시지 때문에 나는 쉽게 하늘색 전화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동전은 넘치도록 많은데, 뒤에서 빨리 끊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조용조용 꽃가지를 흔들고 있는 라일락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밤공기속에 흩어지는 이 라일락 향기는 참을 수 없을만큼 은은하기만 한데..... P 79



4. 슬픈 일몰의 아버지


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는 부드럽고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술에 취하면 실패한 탈옥수의 저항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사는 길을 선택했다. P87


훗날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거나 밥상을 뒤엎을때도 확실히 다른 집의 망나니 술꾼과는 달랐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그래도 굳이 써본다면 아버지의 그 망나니짓에는 일종의 ‘품위‘가 있었다. P90



어린 나는 무섭고도 그리운 아버지 앞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곤 했다.
P94



5. 희미한 사랑의 그림자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모자란 시간때문에 한없이 짧다.
또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만큼 한없이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한달 동안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랑을 완전히 부숴버릴 수도 있다. P99



내가 누군가에게 정색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그것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내겐 사랑에 꼭 필요한 맹목이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이 하나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탐색은 여저니 계속될 것이며, 선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의 대가일 것이므로. P 100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해질지도 모르겠다.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을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 P 102



김장우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또 씩 웃는다. 저 웃음. 그는 모든 말과 말 사이를. 모든 행동과 행동 사이를 언제나 웃음올 연결 짓는다. 마치 수채화 붓으로 연푸른 선 하나를 짧게 긋듯이 씨익..... P 108



나영규의 활짝 웃음이 옆 사람까지도 웃게 만드는 전염성 강한 것이라면 김장우의 수채화 웃음은 여운이 길어 웃음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묘한 웃음이다. P110


6. 오래 전, 그 십분의 의미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27



가족 중 누구 하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버리면 어떤 행복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는 법이었다. 어머니도 점차 외갓집 발길을 끊었다. P133



철이 든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가진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P142



7. 불행의 과장법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가 나영규이든 김장우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이든 간에, 이 사람과 결혼하고야 말겠어, 라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P165



8. 착한 주리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173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P176


9.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인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 - P182


이 쌍둥이 자매들은 똑같이 책에 의지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었지만, 선택하는 책은 이토록이나 정반대였던 것이다. 마치 그들의 삶처럼 P187


마음에 담아둔 것을 내보이는데 한없이 서투른 사람, 그렇지만 마음속에 모든 것이 다 있는 사람
P190


˝이거, 매미나물. 봄부터 가을까지 이렇게 숲 속에서 저 혼자 피고 지는 꽃. 줄기를 자르면 안 돼. 아프다고 피를 흘리거든.˝P193


˝이유야 또 있지. 안진진이 있잖아. 옆에서 말도 해주고 같이 웃어주고 쉴 새 없이 숨소리를 내는 안진진이 있어서 순간순간이 충만할 텐데 뭣때문에 카메라를 가져오겠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사랑하는 꽃 이름을 부르는 대신 안진진의 이름만 열심히 부르기로 결심했어.˝
P194


˝낯설어 죽겠단 말야. 왜 그렇지? 장우씨는 알아? 갑자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무서워.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구요. 사랑하면 이렇게 세상이 낯선거냐고...˝ P202


10. 사랑에 관한 세가지 메모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P210


11. 사랑에 관한 네 번째 메모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P218



12. 참을 수 없는, 너무나 참을수 없는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P228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P229



이모는 지금 사진만 있고 추억만 없는 이모부를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모는 마치 제목만 있고 본문이 없는, 텅텅 빈, 기이한 소설책을 펼치고 망연자실해 하는 소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P231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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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1-28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프리쿠키님 설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북프리쿠키 2025-01-28 23:5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남은 연휴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