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배내옷은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육체적 성장에 필요한 움직임의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배내옷의 제거뿐 아니라, 움직임이 자유돕도록 언제나 넉넉한 옷을 아이에게 입혀야 하는 것은 옷 입히는 습관의 기본철칙이다.-p.34

˝아이가 어머니의 태내에서 떠나 움직이는 자유와 사지를 펴는 자유를 맛보자마자 사람들은 그에게 새로운 속박을 가한다. 배내옷을 만들어 입히며, 머리는 고정시키고, 다리는 죽 뻗게 하고, 두 팔은 몸에 가지런히 붙여 잠을 재운다. 그는 자세 바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온갖 종류의 헝겊과 띠로 휘감겨 있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조이지 않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뱉어내야 할 물이 스스로 흘러나올 수 있도록 옆으로 눕혀주는 주의만이라도 기울여준다면 천만다행이다. 그에게는 물이 입에서 용이하게 흘러나오도록 머리를 옆으로 돌리는 자유마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 72
[뷔퐁 <박물지>제4권.190쪽]

그리하여 성장을 위한 신체 내부의 충동은, 그 충동이 신체에 요구하는 움직임에 대한 극복할 수 없는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어린아이는 계속해서 힘써보지만 소용이 없다.
힘을 다 써버림으로써 발육이 지연될 뿐이다.
아이는 배내옷을 입고 있을때보다 태내에 있을 때가 더 좁지 않고 불편이 덜했으며 조임이 덜했다.
나는 그 애가 태어나서 득을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이의 사지를 잡아 매어두는 데서 오늘 활동 부족과 속박은 피와 체액의 순환에 지장을 초래하여 아이가 강해지고 성장하는 것을 막으며, 체질의 변화를 방해할 뿐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은 모두 키가 크고 튼튼하며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자유롭게 움직임으로써 신체가 일그러지지나 않을까 두려워 사람들은 서둘러 아기의 몸을 억눌러 일그러뜨린다.
그들은 신체가 엉망이 되는 것을 막는다며 오히려 아이들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p.72~73

당신들은 그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괴롭힌다.
그가 당신들에게서 받는 최초의 선물은 쇠사슬이며,
그가 받는 최초의 대접은 고문이다.-p. 73

˝옛 페루인들은 아이들에게 아주 헐렁헐렁한 배내옷을 입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있도록 했다.
배내옷을 벗길 경우에는, 땅을 파고 헝겊을 두른 구멍에 아이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다.
그 구멍 안으로는 아이의 하반신이 들어가 있게 되는데, 그럴 경우 팔은 자유로우며 머리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몸 또한 그렇게 움직일 수 있지만 넘어지거나 다칠 염려가 없었다.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 걷도록 하기 위한 미끼로 좀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에게 젖을 내보여주었다.
흑인 아이들은 때로 젖을 빨기 위해 훨씬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들은 그들의 무릎과 팔로 어머니의 한쪽 허리를 잡는다.
그들은 어머니의 허리를 아주 세게 거머쥐기 때문에 어머니팔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다.
그 아이들은 그들의 팔로 어머니의 젖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의 계속되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방해를 받거나 넘어지지 않고 젖을 빤다.
그 아이들은 2개월부터 걷기 시작한다.
-p.104~105 [박물지 제4권,192쪽]

수전손택이 <문학은 자유이다>란 연설에서 인용한
문장이 생각나는데요.
˝문학의 임무 중 하나는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고,
널리 만연된 경건함을 반박하는 겁니다. 그리고 뭔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때조차도 예술은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나아갑니다.
문학은 대화이자 응답입니다˝- <수전손택, 타인의고통 속 부록 1. 문학은 자유이다 p. 207>중에서

배내옷에 대한 널리 만연된 경건함을 반박하고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는 측면에서 보면 루소의 에밀 또한 문학이자 예술이기도 하네요.

---------------------

배내옷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루소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의 배내옷은
개념과 명칭, 활용조차도 당시의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배내옷이든 꽁꽁 싸매는 속싸개(?)든
얼굴에 손톱상처를 내는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해 팔다리의 활동을 제약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반대로 아기가 엎드려 있을 때 그 제약으로 종종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지금 신생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의 안전과 속박에의 자유라는 절충선을
어느 눈금에 맞출지 한번쯤 고민해 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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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0-28 1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냇옷을 생각없이 입혔는데, 배냇옷이 아이에겐 ‘구속복‘이 될 수 있겠군요... 아내와 이야기해보니, 연의는 배냇옷을 정말 싫어했다네요... 북프리쿠키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북프리쿠키 2017-10-28 18:48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은 <에밀>을 읽으셨을것 같아요~ㅎㅎ
다행히 연의가 싫어해서 덜 입혔으리라 생각합니다.
호랑이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게 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속복이라 하시니 그 ‘어린 수형수‘가 안타깝네요.
이미 울 힘조차도 없는 아기가 얌전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평화를 찾았을테니까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7-10-28 18:51   좋아요 2 | URL
북프리쿠키님처럼 깊이 있게 읽지 못했네요.ㅜㅜ. 이번 기회에 좀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읽어야겠습니다. 그래도, 배냇옷을 입히는 편이 자기 아이를 고아원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해 봅니다 ㅋ

북프리쿠키 2017-10-28 18:59   좋아요 2 | URL
ㅋㅋ 볼테르에게 호되게 당했지요..흔히들 ‘천재들의 광포한 이기주의‘라고 위안을 삼기도 ㅋ
그러고보니 허름한 허세도 마누라 요양원보내고, 3형제 친척집에 보내더니...
오롯이 창작의 열기를 ^^

저도 그냥 그냥 읽고 있어요.ㅎㅎ 호랑이님께서 재독하시면 좋은 의견 참고하겠습니다^^







커피소년 2017-11-12 12:15   좋아요 2 | URL
두 분이 배내옷에 대한 생각 잘 읽고 갑니다.. 배내옷.. 다른 것을 중점으로 두고 있어서 크게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아이를 위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존경심을 느끼게 됩니다..^^

cyrus 2017-10-30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베네옷을 입히는 것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기를 키워 보지 않은 미혼자라서 옳은 생각일 수 없겠지만요. 친구 부부가 딸을 출산해서 딸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아기가 입은 베넷옷이 답답해 보였고, 베넷옷의 단점을 알고 있어서 이 얘기를 했다가 핀잔 들었어요. 친구는 제가 미혼자라서 잘 모른다고 했어요.. ^^;;
 


˝자기 아내를 용서했다는 걸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남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일이지. 자기 아내를 진심으로, 거짓없이 용서했다는 것 말이야.
그럼으로써 여자는 두 배로 그의 소유물이 되니까˝
- p.113

‘노라이즘‘을 탄생시킨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

노라에게서 어머니를 보았다.
그저 ‘여자‘였을 뿐인 젊은 시절의 내 어머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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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을 싫어하는 루소는 그리하여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서 모든 과제를 없앰으로써 아이의 가장 불행한 도구, 즉 책을 제거하는 것이다.
독서는 아이에게 재앙인데도 어른들이 아이에게 빠지지 않고 시키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어야 에밀은 겨우 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어도 읽을 줄은 알아야 하다고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나 역시 그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독서가 그에게 유익할 때, 읽을 줄 알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독서는 아이를 지겹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p.36

언제나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도록 해야 된다는 명제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즉 다섯살에서 열두살때까지 경험적으로 사물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감관에 대한 훈련을 시켜야 하는 거지. 아이에게 추론하는 것이나 관념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 같은 일을 피해라는 말일 것이다.
독서가 이 나이에 ‘재앙‘의 수준이라니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말을 했다면 분명 나보고 미친놈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본문 2부에서 자세히 다룰 내용이라 루소의 이 주장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고 통용된다는 확신을 어떻게 심어줄 지 사뭇 기대된다.
EBS나 SBS스페셜에서 가끔씩 혁신학교나 대안학교, 혹은 그러한 신념을 가진 부모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을 조명한 적이 있는데, 적쟎은 호기심과 감탄을 불러 일으킨 내용 또한 루소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니 혼란스럽지만, 충분히 실천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루소는 아이 시절을 존중할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있으며, 자연의 자리에 끼어들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자연이 오래도록 작용하게 내버려둘 것이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걱정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며, 교육을 잘못 받은 아이가 전혀 교육받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더 슬기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아이를 즐겁게 뛰어놀도록 내버려 둘 것을 당부한다. 아이에게 노는 것은 곧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것은 아주 가치가 큰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말하는 이른바 그 무위를 두려워하지 말라. -p.38~39

나 자신도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니 무위보다는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더 많았다.
잠을 줄여서 무언가를 더 할려고 하지말고,
깨어있는 시간만이라도 잘 활용했더라면..하는 후회가 남는다.
아이를 즐겁게 뛰어 놀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루소의 사상은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설령 왼손, 오른손도 구별할 줄 모르는 상태이지만, 아이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열두 살까지 길러낼 수 있다면, 당신의 최초의 가르침이 시작되자마자 그의 오성은 눈은 이성을 향해 열릴 것이다‘ 라는 루소의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를 즐겁게 뛰어 놀게 하는 것이 어떤 목적을(가령 학습동기를 유발한다는 등의) 이루기 위해 효과적인 수단으로만 의도한다면 더 크나큰 고통을 부모와 아이에게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어느 정도의 ‘재능‘도 무시할 순 없으니 그저 놀 수 있는 나이때 행복하게 실컷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를 다그치는 것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상당수의 깨어있는 부모들도 이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호메로스를, 그리고 머리에는 언제나 ‘에밀‘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에밀은 큰 인상과 감명을 남겼다 -p.50

사람이 태어나는 곳 어디에서나 내가 제안하는 방법으로 인간을 교육한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며, 내가 제안하는 방법으로 인간을 교육하여 그들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또한 만족한다. 만일 내가 그와 같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내 잘못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약속을 이행했음에도 그 이상의 것을 내게 요구하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밖에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p57

모든 것은 창조자의 수중에서 나올때는 선한데
인간의 수중에서 모두 타락한다.-p.61

자연인은 자기 자신이 전부이다.
자연인은 수의 1같은 존재로, 자기 자신이나 자신과 같은 존재하고만 관련이 있는 절대적인 총체이다.
시민은 분모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분자처럼 사회라는 전체와 관련되어 그 가치가 결정될 뿐이다. 좋은 사회 제도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가장 교묘하게 자연성을 잃게 만들어 그의 절대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상관적인 존재를 주어 ‘나‘라는 자아를 공동체 속으로 양도시킬 줄 알게하는 그런 제도이다.
그리하여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한 개체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부분으로 생각하여 전체에 더 민감할 뿐이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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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7-10-22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 공감합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것만큼 큰 재앙은 없습니다.. 18세기 철학자의 시대를 매우 앞서간 뛰어난 혜안과 통찰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아니.. 그러고보면 그 때도 기득권 집안에서는 강제 교육 과잉이 문제가 되었겠군요...

북프리쿠키 2017-10-28 19:4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의도‘가 좋든 나쁘든간에 철저히 아이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 생각하더라도
아이를 구속하고 강제성을 띠면 그것조차 학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늘 무언가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데 품이 드네요..^^;;

이하라 2017-10-22 1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요즘 아이들이 많이 힘들게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유치원부터 외국어에 초딩 때 학원 몇개에... 아이들에게 자연에 맞는 생활이란 게 먼 얘기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네요

북프리쿠키 2017-10-28 19:45   좋아요 1 | URL
요즘 애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공부에 올인한 결과는 무엇인가 묻고 싶네요.
더 두뇌가 명석하거나 지혜로운지..의문입니다.
오히려 천재들은 과거에 더 많았지 않나 생각하구요.
정말로 자연과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며 좋겠습니다.
 

1.
루소는 아이들에 대한 그와 같은 교육을 가리켜
‘아이들을 살해하는 행위‘라고 가혹하게 비판하면서
그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그런 교육기관들에서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지식을 쌓고 있으며, 체벌에 대한 공포와 포상에 대한 희망속에서 비굴한 정신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첨하는 법을 배우며, 계략을 짜내는 법을 배우며, 질투와 시기심으로 뒤범벅이 된 경쟁만을 배울 뿐이다.
그렇게 아이 시절의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면 이제는 관습의 멍에라는 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기에 이른 그들은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하면서 환호할지 모르지만, 세상의 준칙의 노리개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그들 자신이 되어보는 때를 찾지 못한다. 아이 시절에는 아이로, 청년시절에는 청년으로 살지를 못한다.
그 시절은 그저 빨리 흘려보내야만 하는 의미 없는 시기일 따름이다.
- p.29

이 부분은 저의 학창시절 덧씌워진
학교 권위의 굴레에 대한 공포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당시 이런 신념을 갖고 실천했던 분이 과연 몇이나 있었던가. 하는
의문과 함께 몇몇 소수 교육자의 탈을 쓴 인간이하의 선생에게 환멸을 느낍니다.
물론 일선의 교육현장이 잡다한 행정서류에 파묻혀
교육에만 전념할 수 없는 환경인 걸 잘 알지만
한나아렌트의 말처럼 ‘악의평범성‘으로 변명할 수 밖에 만 없다면 그 분들은 다른 일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적어도 ‘교육자‘라면 말이죠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첫 페이지 문장이
다시금 와 닿네요.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나는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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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0-21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육이 우리 바람과는 달리 실상은 계도화와 국가화의 수단이죠. 국가 행정의 일환으로 교육자들,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시달리고 휘둘리는지만 봐도.... 학창시절 생각하면 다들 억울한 사연 하나쯤은 있지요.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가 이런 교육 실상 잘 꼬집어 소설 썼던 게 생각나네요^^

북프리쿠키 2017-10-21 21:53   좋아요 2 | URL
아이를 아이로 대하는 교육, 청년을 청년으로 대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어른이 원하는 모양으로 아이를 주조하는 교육이 언제쯤 변할 수 있을까 안타깝네요.
제 책장에 앙드레모루아의 <프랑스사>만 봐도 아갈마님이 떠오르니, 로베르트 발저도 시간이 되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교육에 대한 출판물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니,
전 점점 고전으로 단단해질까 하는데,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건 피할 수 없겠지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0.
나는 훌륭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교육의 좋지 못한 점을 증명하는 일 역시 하지 않겠다.
많은 사람이 이미 그 같은 시도들을 했기 때문에, 나까지 모두가 아는 내용들로 내 책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아주 오래전부터 어느 누구도 더 나은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제안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방법을 비판하는 외침만 있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식물은 재배를 통해 가꾸어지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약하게 태어났으므로 힘을 기를 필요가 있고, 우둔한 상태로 태어나므로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 어른이 되면 갖추겠지만 태어나면서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이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 교육은 자연이나 사물 또는 인간의 소산이다. 우리의 능력과 기관들의 내적인 성장은 자연의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그 성장을 이용하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이 세 선생의 가르침이 일치하고 같은 목표로 향할때에만 학생은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면서 시종 일관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올바른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 장쟈크 루소

<신엘로이즈>의 대성공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 책<에밀>의 출간으로 당국과 종교인들로부터 지탄을 받았으며, 자신과 사상이 다른 당시의 철학자들과 다툼이 잦았다 합니다.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흔들리지 않는 교육관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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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21 0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고 루소의 에밀을 찍었는데, 오 제가 맞았네요.^^
책 내용은 잘 몰라도 제목이라도 알고 있으면 퀴즈에 유리할 것 같아요.^^
북프리쿠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북프리쿠키 2017-10-21 21:56   좋아요 1 | URL
늘 겸손하십니다..ㅎㅎ
저야 책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늘 뒤따라가는 입장이라
모든 분야에 생소하고 설레고 합니다. 토요일 밤이라 마음이 평온하네요. 좋은 밤 되세요ㅛㅛ;

cyrus 2017-10-21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밀》을 읽으셨으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루소의 사상을 비판했어요. 울스턴크래프트가 비판한 루소의 책이 《에밀》과 《신 엘로이즈》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10-21 22:02   좋아요 1 | URL
아..초반부 읽는데, 볼테르가 <시민의견해>에서 루소가 과거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일을 두고 엄청난 독설로 공개비판했네요.바로 그 시기가 정열을 바쳐 자신의 일을 할 나이라 흔히 말하는 ‘천재의 광포한 이기주의‘에 빠져있었다고요.
그래서 <에밀>에서 루소가 아버지의 의무를 언급하는 곳에서마다 지난날의 자신의 그 과오에 대한 회환의 눈물을 흘렸다던데...눈여겨 봐야겠어요.

울스턴크래프트도 여성의 교육에 대해서 루소를 비판했다하니..루소가 이 책을 쓰고 은둔과 방랑의 생활을 할 만큼 톡톡한 댓가를 치뤘네요.
<여권의 옹호>란 책도 꼭 읽어볼께요. 늘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