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 

  

[저희에게 한 마리 있었던 바로 그 요괴가 맞습니다. 제가 새끼였을 때 다리에 표시를 해두었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군요] 

그가 왼쪽 다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제서야 나는 새지의 다리를 처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왼쪽 정강이 쯤에 십자 모양의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 살이 안쪽으로 함몰 된 듯 약간은 징그럽기도 한 상처가 일부러 낸 것이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이런 곳에...?]
[이렇게 표시를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팔색조로 변하였을 때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누가 주인인지를 알아야 말을 듣고 명령에 따릅니다] 

새지는 마음이 여리다. 굳이 누가 주인인지 아픔을 주면서 까지 알려주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일을 잘 모르니 섣불리 의견을 말하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법사와의 대화에서 어떤 이질감을 느끼면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최근에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이렇게 깨어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당장 대답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이 곳에 묶으면서 같이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따로 부르지 않았는데도, 아까 그 여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람이 아닌 것이 맞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가 사역한다는 요괴인 듯 싶다. 

[따라가시면 묶을 방으로 안내할 겁니다. 팔색조는 제가 잠시 맡아 두겠습니다] 

그에게 건네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나, 별 다른 이유를 댈 수 없어 그가 안아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동도 없는 새지가 내게서 떨어지는 것이 영 꺼림직했다. 여인을 따라 안채로 가다가 뒤돌아보니 어느새 법사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안채도 역시 사람의 그림자가 전혀 없다. 그러나 매일 청소를 하는 듯 먼지 하나 없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갈아 입을 옷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답답한 기분이 들어 창을 활짝 열었다. 벚꽃이 가득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꽃잎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울적해졌다. 만약 전쟁터에 가지 않았다면, 사신들을 만나지 않았다면..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 열심히 대장간의 일을 배우며 종종 새지와 냇가에서 놀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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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빼려고 하자 힘을 꽉 준다. 프릭스가 이렇게 힘이 쎈가..따뜻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 고양이로 변했을 때 자살하려고 했었거든] 

뜻하지 않은 말에 굉장히 놀랐다. 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럴 때는 그가 내 생각을 못 읽는 게 고맙다.

[어제 오늘 보니까 넌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잖아, 보통 뱀파이어처럼]
[고마워..근데..좀 저리 가주면 안 될까?]
[왜? 내가 너무 잘생겨서 부담스러워?]
[머리 아파서 미치겠다, 정말! 내 향수를 쏟아 부었니?]
[니가 냄새 풍기면 들킬 거라고 해서..게다가 재체기도 심한 것 같고..]

그는 겨드랑이와 팔목, 옷에서 냄새를 맡느라 킁킁 거렸다.

[어? 스승님?]

뱀파이어 주민자치센터의 꼭대기 부분이 나타날 정도까지 걸어갔을 때,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스승님이 보였다. 오늘은 핸섬하게도 검은 양복차림이었다. 그는 곧장 나에게 걸어왔다.

[여긴 무슨 일이니?]
[수당 좀 타려구요. 얘는..]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길래 말은 시작했지만 뭐라고 소개해야할지 난감했다. 프릭스는 위험 생물로 분류되어 구속해야할 10가지에 속하니 정직하게 말하기가 그렇다.

[저는 남자친구입니다]
[그래?]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보니 아직도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기에 그 말이 그럴싸한지 스승님은 말없이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도 이 상황에서 다른 생각이 안나 고개를 어설프게 끄덕였다.

[언제부터?]
[며..칠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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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씀씀이가 헤프니?]
[무슨 뜻이야?]
[돈이 없다니까 하는 말이지. 집도 크고 일하는 아줌마도 있는데 돈이 떨어져서 쥐피를 먹어야할 정도면 니가 펑펑 쓴다는 소리잖아]
[아니거든. 그 집이랑 아줌마는 스승님 꺼야. 내껀 몸뚱아리뿐이고. 난 장애가 있는 아~주 가난한 뱀파이어야. 그래서 지금 장애 수당 받으러 간다, 그거라도 있으면 당분간은 버티니까.]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뱀파이어 주민자치센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데려가고 싶지 않아 말없이 나왔는데 어느새 그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쫓아왔다, 여전히 백합무늬 파자마를 입은 채. 주변의 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빠르게 뛰자 그도 헐떡이며 뒤따라왔다. 서로 실랑이를 하면서 오다보니 한강 둔치에 15분 만에 도착했다. 내가 마침내 천천히 걸어가자 궁금했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장애가 있어? 다리도 팔도 말짱해 보이는데..머리가 이상한가?]
[이가 없어] 

그가 눈썹을 올리며 못 알아들었다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내가 중얼거리듯이 말했으니 잘 안 들렸을 수도 있다. 

[이가 없다고, 이가] 

딴 곳을 바라보며 말하자 얼른 내 앞으로 다가와 입을 벌려보더니 탁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이 전부 있구만, 없긴 뭐가 없어?]
[너 아이큐가 몇이냐? 뱀파이어에게 있어야할 송곳니가 없다는 말이야]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일이야 처음 겪는 것도 아니니 별반 신경 쓸 게 못 되지만, 기분 나쁜 건 나쁜 거다. 자신이 가진 약점을 스스로 말해야 하는 건 누구라도 하기 싫을 테니까.  

그가 동정을 하거나 놀리면 화를 내려고 했는데, 의외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슬며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넌 참 멋진 뱀파이어구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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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고개를 끄덕이던 여인은 새지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 듯 한 참을 처다보다가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조금 열려있는 사당문 사이로 보니 법사의 뒷 모습이 보였다. 나를 사당 옆에 있는 작은 정자로 안내하고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후, 사당 안으로 사라졌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내 머리카락이 날리는 느낌이 상쾌하다기 보다는 눅진하다. 이제 겨우 봄의 시작이지만, 이 저택 안은 공기가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설 때부터 들었는데, 사당이 있는 뒤쪽은 더 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면 탁하고 무겁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건장하고 키가 큰 법사가 정자 앞에 서 있었다. 나는 품에 고이 안고 있던 새지를 그때서야 바닥에 내려 놓았다.  

 

 

[팔색조로군요]
[이 요괴를 아세요?]
[저희도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정자에 올라와 건너편에 앉았다. 잠시 동안 새지를 바라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그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잠시 주저했다. 그는 그것을 곤란해하는 것으로 여기고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손을 저었다.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그는 새지를 앞으로, 뒤로 자세히 살피더니 숨을 들이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요괴는..이 곳에서 키우던 놈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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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계세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당 안은 마구 자란 풀들로 빽빽했다. 사람이 다니려고 만들어 놓은 돌 길도 풀들이 구석구석 자란 상태다. 법사가 오랫동안 없던지, 있어도 관리를 전혀 안 하는 모양이다. 몇 번을 불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의 저택이면 문지기가 있을 법한데 정말 모두가 어디론가 출타한 모양이다.  

 풀들을 헤치며 들어서니 아름다운 연못이 한 중간에 있었다. 분홍 색 연꽃 봉오리들이 올라오고, 이름도 잘 모르는 수중 생물들이 맑은 물 속에서 흔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물 속을 잠시 내려다보니 작은 물고기를 닮은 요괴들이 헤엄쳐다닌다. 법사의 연못에는 요괴들 말고도 반정도 투명해서 안이 보일 듯 말듯한 구슬 모양의 알들이 떠다녔다. 희안한 연못이다.  

 문득 어떤 눈길을 느껴 고개를 들어보니 연못가의 작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등불이 바람도 없는데 약하게 흔들리고 있는었다. 이 집은 등불에도 요괴가 붙을 정도인걸까? 고개를 갸웃하며 연못을 지나 안채 쪽으로 연결 되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 쪽 역시 아무도 없는지 고요하기만 하다. 왼쪽으로는 부엌, 고깃간, 차고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외양간, 마굿간, 방앗간 등의 부속 건물들이 있는 것이 아마도 법사가 살기 전에는 어떤 귀족의 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걸어들어가면서 슬쩍 살펴보니 역시나 귀족의 집이었던 것이 맞는지 조리방과 상차림방으로 나뉘어져 있는 부엌에는 가마솥에서 김이 새어나오고 있다. 차고에는 둘레가 탁 트인 남성용 수례가 하나 자리를 차지하였으나, 마굿간은 예상과 달리 텅 비었다. 안채에도 사람이 없을 듯 싶어 집 뒤쪽에 지어져 있다는 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복을 빌러오는 사람들은 보통 사당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뒤쪽의 쪽문으로 드나든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정문으로 들어와 아무도 못 만난 것이 아닐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곱게 저고리와 치마를 차려입은 여인이 사당의 문을 열고 나와 인사를 했다. 얼핏 보아도 눈과 입매가 아름다운 게 필시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외모다. 그러나 희디 흰 얼굴이 어딘지 요사스러운 분위기가 풍겨,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반쯤 하며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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