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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은 마치 현대 사회 같은 소설이었다. 구성 자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대에 혼자 있는 인물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칸칸이 분리되어 있는 각자의 단편 같은데,
그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엮어나가다 보면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된다. 부품화된
현대 사회의 이야기 같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편리하게 24시간 이용하기 위한 편의점인데 오히려 불편한 편의점이
되어서 여러 사람들의 편의가 아니라 인간적인 면을 두드러지게 한 ALWAYS 편의점처럼, 이 책은 편리한 현대 사회의 이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우리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불편한 책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가장의 무게 때문에 홀로 술을 마시던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 불편한 편의점에서 한 잔씩 술을 마시고 가는 게 어느새 일상이 되면서 가족은 해체되고 있었다. 그러다 불편한 편의점의 야간 알바로 밤을 지키는 독고씨에게 영향을 받아 술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점차 늘려가게 되었는데, 치킨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반가워하는 장면에서 이 문장이 문득
마음에 와 닿았다.
48% 무엇에 기뻐했냐고? 치킨에? 아빠에?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함께 닭을 뜯으면 그게 가족이었다.
식구(食口). 한 지붕
밑에서 같이 먹는 사람. 그랬다. 가족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함께 닭을 뜯으면 그게 가족이라는 말이 뭉클했던 건 다같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함께 식사하는 게 드문 풍경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의 향수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해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52%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나도 힘들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서로 친절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나 살기도 바쁜 세상이라 친절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고객
응대 매뉴얼대로 하다 보면 친절해진다.
58%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마음 속 깊이 친절하다면 완벽하겠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일단은 가볍게 친절한 척이라도 해야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친절한 척만 하더라도 그걸 받는 또 한 명의 힘든 사람이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정해진 트랙 위에서 궤도 위를 돌고 있는 삶을 사는 중이라 궤도 수정이라는 말도 참 와 닿았다.
88% 아들은 궤도에서 벗어난 스스로의 삶에 지쳐 있는 듯했다. 하지만
궤도에 재진입하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사실 궤도에서 계속 달린다고 종착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면서도 정답지를 들이밀고 있는 우리 사회. 조소하면서도
있는 힘껏 달려 궤도에서 계속 달리고 있는 중이다. 궤도를 벗어난 사람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특정 궤도를
정답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궤도라는 게 없다면 그게 궤도 안인지 밖인지조차 모를 테니까. 자꾸 힘들 게 달리다 보니 이렇게 달려서 도착하는 종착점은 어디인가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살아가는 한 종착지란
없는 것 같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불편하지만 따뜻한 감정을 일깨워준 독고씨는 예전에 겪은 힘들 일로 인해 기억도
잃고 노숙자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편의점 사장님의 배려로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변화시키면서 독고씨 자신도 변화하게 된다. 가족들에게
무뚝뚝하게 함부로 대하는 가장이었던 사람이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듯 가족에게도 친절하게 대해보라는 조언을 해주면서 스스로도 그렇게 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것처럼.
94%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가까우면 그만큼 편해서 더 함부로 하게 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손님처럼
멀게 대하는 게 아니라 가까워도, 아니 가까우니 오히려 더 배려하고 친절해야 하는 것 같다. 가족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가깝다고 함부로 대한다면 서로 상처만 받게 될 테니까.
94%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삶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마음이 치유된 독고씨는 의료사고로 환자가 죽었던 일을 기억해내며 자신이 의사였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되찾은 독고씨는 환자의 묘소에 가 참회한 후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의료 봉사를 하러 가기
위해 떠난다. 노숙자 시절 뛰어내리려고 했던 강을 기차를 타고 건너며 바라보는 장면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99%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편의점이라는 공간, 알바라는 상황,
드나드는 손님들. 모두 조각조각 나 있는 요즘 인간 관계의 표상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서부터 이끌어낸 관계의 회복이 우리에게도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 것 같아서 불편하지만
따뜻한 책이었다.
Ps. 독고씨의 기억 상실이라는 장치 자체가 소설 전반에 걸쳐서 필요한
장치라서 마치 시적 허용처럼 소설 속에서의 상황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일반인의 의료사고와 의료인에
대한 인식이 이런 거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외래에서 진료 본 의사 대신 수술방에서 수술만 하는 의사를
고스트 닥터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자신이 직접 수술 했으면 환자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얼마나 오만한가. Mortality는 확률, 내가 얼마나 잘 했는지 잘 못 했는지에 따라 0%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있을 수 있는 일. 그러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진인사 대천명일 뿐인데 진인사 한다고 하여 그 확률이 0이 되지 않으므로 의사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본인이 직접 집도했다면 그 환자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본인이 신이라고 믿는 게 아닌 이상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게다가 의료 사고를 무마하려는 원장은 어떠한가? 마치 조폭을 동원해
필요하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의료 사고는 진짜 의사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데 확률 탓을 할 뿐이고, 그럴 경우 불법적인 경로로 입막음 한다는 느낌이구나. 씁쓸하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래도 의학을 배우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을 모를 수도 있으니 학회 차원에서라도 홍보를 해서 보다 현실에
맞는 관점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