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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 당신의 감정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
가보 마테 지음, 류경희 옮김, 정현채 감수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심하게 아픈 적이 있다. 정신없이 일을 하면서 몸을 혹사했고 스트레스로 마음을 다쳤다. 열을 받더라도 불의를 보더라도 꾹 참는 것이 습관화 되었고, 그것이 나를 서서히 망가뜨려가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내가 극복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들은 더 바쁘게 지내는데 나는 나태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 내 몸은 수시로 신호를 보냈지만 내가 무시했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정지해야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많은데,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책은 제목부터 나를 끌어들인다.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라는 제목에서 주는 메시지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강력히 공감하게 한다.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무시하고 외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책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내면과 신체와 정신의 작용을 통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들었던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라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내 몸이 스스로 파괴해버리고 모든 것을 멈추라는 신호를 준 것이었던 셈이다. 여러 의학적인 견해를 뒤로 하고 보면 내 마음 상태가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으니 말이다.
모든 자가면역질환들의 공통점은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신체를 공격하여 관절과 신체 결합 조직을 손상시키고, 더 나아가 눈, 신경, 피부, 내장, 간, 뇌 등 거의 모든 신체 기관들을 손상시킨다(13쪽)
이 책의 저자는 게이버 메이트. 밴쿠버의 내과 전문의다. 오랫동안 <밴쿠버 선>지와 <글로브 앤 메일>지의 칼럼니스트였다. 20년간 통증 완화 의료 전문의로 일했으며,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노숙자 시설 담당의로 일하기도 했다. 이 책은 천식에서 암까지 수백 명 환자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마음과 몸, 그리고 트라우마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환자들의 삶과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그리고 질병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다층적 시선으로 통찰하면서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변화의 힘을 일깨운다.
이 책의 장점은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가 담겨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읽어나가면서 이들의 상황과 질병의 연관관계를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치유의 시작이 된다. 또한 이 책의 도움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을 위한 것인지 파악하게 된다. 늘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암 발병 사실에 당혹해하며 말했는데 저자는 심각한 낙관주의의 해독제로서 부정적인 사고의 힘을 권장해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긍정의 힘에만 의존하다보면 감정 억압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외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기에 적당히 해소하는 방법도 함께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박적인 긍정주의가 아닌 부정적인 사고의 힘을 모으는 것이 치유의 또다른 방법임을 인지한다.
이 책을 보며 암, 과민성 대장 증후군, 알츠하이머, 강직성 척추염, 천식 등 질환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현대인에게는 이 책에 담긴 사례 중 어떤 것 하나 이상은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해당되는 곳을 찾아 읽어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글이 시원시원하게 담겨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목을 보고 막연히 예측했던 내용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 느낌이었다. 읽고 나면 앞으로 내 몸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이런 신호를 보낼 때 어떤 심리가 그 밑에 깔려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은 결코 떨어져있지 않음을 이 책을 보며 생각해본다.
과학적 발견의 본질은 대상을 가장 먼저 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사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의 관계를 굳건히 정립하는 일에 달려 있다. 진실한 이해와 진정한 발전을 가장 촉진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결속 과정이다. _한스 셀리에, 의학박사, 《인생의 스트레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