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고습지(七顧濕地)랄까. 무슨 기대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궁금해서 방이 습지로 7번째 향한다. 매번 무작위로 바뀌는 queer 세계를 힘닿는 대로 섬세하게 탐색하여, 멀찌막이나마 참여할 기회에 가 닿으려 해서다. 관찰 덱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어 갑갑하긴 하지만 작은 생명들을 보호하려면 불가피한 제한이기도 할 테니 거기서 멈춘다.

 

꽃창포, 개구리밥, 노랑어리연, 수련, 갈대들이 그때그때 변하는 모습을 기억과 감탄에 버무려 담아둔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검보라빛 오디를 따거나 주워서 먹는다. 이드거니 서서 논병아리가 한가로이 깃 고르는 풍경에 잠겨 든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우거진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 선다. 물까치 가족이 사부작사부작 가지를 넘나든다.


 

영민하고 경계심 많은 물까치가 내 존재를 모를 리 없음에도 사뭇 고요하다. 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은 물까치가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어느 순간 그가 ~깨깨깨깨깩!” 말을 건넨다. 이는 지난번 길게 되풀이했던 경계에 찬 질문 투, “크르르르르~!?”와 다르다. 경계를 푼 음조다. 나도 따라 한다. “~깨깨깨깨깩!”

 

잠시 뒤 이곳저곳에서 여러 물까치가 ~깨깨깨깨깩!”을 마치 돌림노래처럼 불러댄다. 자유로움과 안전감이 전해진다. queer 생명으로 낭자한 이 습지에서 우리는 queer 공명으로 삶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조절한다. 나를 품은 생명 파동이 습지 숲에 물결쳐 간다. 우리는 숲에서 나와 제국의 개들이 왜자기는 올림픽공원역을 가로지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울장애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복잡한 증후군이다. 그 가운데 내가 깊이 유념하며 치료해 온 측면은 자기 경계를 건강하게 세우지 못해 일어난 자기 비하나아가 자기부정이다. 타자를 당당하게, 대등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배려·양보·관용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먹잇감 되게 하는 모진 경향성이다. 그 끄트머리에 자기 살해가 도사린다.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송주현, 2026)에 따르면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

 

<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에서 내 위장질환 문제를 이야기한 바 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 시절 아밀라아제 결여가 어떻게 일생을 뒤흔들었으며, 그 진실을 알고 나서 어떻게 변했는지가 그 내용이었다. 그보다 더 육중한 오늘 사연은 내 우울장애 이야기다; 같은 곳에서 발원한 두 질환이 내 인생 전체 방향을 더불어 규정하고 조정했다는 각성 이야기다.

 

내가 40대 중반에 수능 쳐서 한의대 입학해 50대 초반에 한의사 그것도 숙의(熟議)로 정신 치료하는 사람이 된 까닭은 50년 동안 시달려온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한 내 병을 스스로 고치려,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는 주위 뿌리치고 건곤일척 도박을 감행했다. 성취만큼이나 좌절도 심했던 임상이지만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중이다; 우울 골갱이도 남아 있는 채다.


물론 그 골갱이도 인제 고갱이로 변할 테다. 위장질환 경우처럼 그 시원(始原) 곡절을 마침내 알았기 때문이다. 이 두 변화는 치유를 근본 지점에 가 닿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생명에 배어든 식물성과 여성성이 몸 마음 살갗을 찢어 들어온 상처였음을 통렬히 각성하게 했다. 그 각성은 온정과 신비 경사각을 단박에 쳐 내려, 상처 이전 본성이 지닌 임계점에 다시 세웠다.

 

임계질량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종간 공명과 소통을 꿈꿀 수 없다는 진리 앞에 허리 접도록 깨우치신 도봉 큰 스승께 8배 올린다; 본성 최선으로 흐르게 길을 트도록 가르치신 회룡 큰 스승께 고맙습니다!” 예물 드린다; 동시성을 인과성에 붙들어 매려 했던 아둔함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신 물까치 큰 스승께 “객~깨깨깨깨깩!” 찬가 바친다. 노나지가 참 아우라지 길을 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까치는 60년도 썩 넘은 내 기억 역사 속에 암암히 살아 있는 새다. 그 소리도 메나리토리처럼 귀에 각인돼 있다. 이따금 그 날렵한 자태와 파스텔 톤 물색에 눈이 가곤 하지만 보통은 출근길 숲에서나 도봉산 숲에서나 방이 습지 숲에서나 특별한 주의 없이 익숙하게 대하고 지나친다. 오늘 그 오랜 습관이 툭 끊어진다.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를 나와 자주 가는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지하철로 곧장 방이 습지를 향한다. 달력 구분으로는 오늘이 봄 마지막 날이지만 습지는 이미 여름에 이드거니 들어와 있다. 볕이 후더분해서 누리가 누글누글하다. 물에 떠 있는 논병아리도 굼뜨다. 나 또한 땀 아낄 요량으로 소심히 움직인다.

 

꾀꼬리, 되지빠귀,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들 목소리에 귀를 열고 무심히 걷던 어느 순간, 내 주위를 따라 돌고 있는 새 기척이 다가온다. 물까치다. 걸음을 멈춘다. 그가 같은 음성으로 내 존재를 탐색한다: 크르르르~!? 곧이어, 숲 전체에 흩어져 있던 물까치들이 집결한다. 내 주위를 도는 그가 더욱 가까이 다가든다.


 

마치 공격하듯이 근접 비행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더 오래 머물며 다시 말한다: 크르르르르~!? 다음 순간 내 입에서 같고 또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크르르르르~?! 열댓 번 주고받더니 풀어놓는다. 내가 서서히 움직이자 집결했던 무리도, 말을 걸었던 그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도, 떠난다.

 

다음 일이 궁금하다. 그들이, 아니면 그만이라도 나를 기억할까? 다른 궁금증이 하나 더 있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에서 내가 크르르르르~?!” 말하면 거기 물까치들도 대답할까? 아무래도 이거까진 무리지 싶다.^^ , 괜찮다. 새가 이리 말을 걸어왔으니, 길이 보인다. 여간해서는 생략할 수 없는 동물 나를 응시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26-06-04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아파트 주위에도 물까치가 아주 많아요. 이 아파트에 처음 이사와서는 한 종류의 새가 눈에 띄게 많은데 무슨 새인지 몰라서 도감 보고 찾아봤더니 물까치더라고요.
아기 물까치도 혹시 보셨나요? 쬐그만 것이 아주 귀여워요.^^
 

 

일기 예보는 분명히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도봉산은 어쨌으려나 궁금하다. 지난주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 골짜기 들머리에 도착했다. 회룡천 물부터 살핀다. 역시나 오히려 지난주보다 수량이 줄었다. 아우라지 상황도 마찬가지다. 복류 지점이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지난번 복류 웅덩이는 아예 말라버렸다.

 

접지하며 앉아서 찬찬히 살핀다. 돌 사이로 낙엽이 쌓여 길을 막아 물이 빙빙 돌며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열어주자 후련하게 물이 흐르더니 금세 말간 줄기를 되찾는다. 돌돌 여돌차게 들리는 물소리가 한결 더 경쾌하다. 정신을 명징하게 만드는 소리다. 커다란 폭포 소리도 감동을 주지만 작디작은 쏠 소리가 이럴 땐 훨씬 더 찰지게 배어든다.


 

숲에 빙의되어 숨 쉬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산초나무가 손짓한다. 건너편 비탈 활엽수 뒤에 몸을 숨겼던 소나무도 슬며시 나선다. 돌 틈과 나무 사이 좁은 땅에 깜냥 맞춰 이고들빼기, 좀깨잎나무, 졸방제비꽃, 주름조개풀들이 해를 향해 까치발하고 있다. 빛살과 마주하는 온갖 방식으로 조그만 숲은 queer 자체다.

 

헬리콥터가 온 산을 뒤흔들며 다가와 사패산 보루 쪽에 머문다. 사고가 난 듯 한참이나 지나고야 떠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머니 같은 산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맹수 같기도 한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아우라지도 ‘노나. 아우라지라고 거슬러 찾아온 내게 여기는 그런 나누라지다: 섣부른 신비주의 합일보다 엄연한 경계 앞에서 투명하라.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제 마주한 현실이 마지막 승부수를 요구한다면 어찌할까. 무엇이 승부가 될까. 수는 있을까. “나로서는아직 알 수 없다. 내 황석공(黃石公)이신 도봉산 회룡계께서 일묵만뢰(一黙萬雷) 가르치실 테다.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날 때 엄숙과 질탕이 갈마들며 심사가 묘연해진다. 오라시면 오고 가라시면 갈 따름이다.

 

* '노나지'는 분리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노누다'에서 끌어와 새로 만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 한해를 빼고 거의 70년 동안 나는 위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는 말고 서울 와 살면서부터만 돌이켜봐도 배앓이, 게우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집 차고 눅눅한 방에서 배를 웅크려 안고 뺑뺑 돌던 기억이, 이따금 마치 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러 가지 위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렇다 할 치료를 하지 않고 견뎠다. 왜 그런지 생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다음에는 더러 한약을 달여 먹곤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깊이 관심 두지 않았다.

 

70줄에 접어든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벼락같은 사실과 맞닥뜨린다: 생후 1년 이내 영아에게는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가 분비되지 않는다! 이 시기 동안은 모유를 먹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내가 먹은 음식은 모유가 아니라 미음이었다. 어머니한테서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먹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누구이랴. 당사자인 아기가 자라서 의료인이 된 뒤에도 20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을 바탕으로 뭔가 알아차리기란 벼락 맞고 천재 되는 일과 같다.


 

인간이 모른다고 아무도 모르리라 단정하면 안 된다. 아는 존재들이 그때부터 있었으며, 이제까지 있다: 바로 인간 나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그들이 증거 주체며, 나아가 나를 어렵사리 살려낸 은총 주체다. 그들이 마침내 꼭 똑 알맞은 카이로스를 택해 내게 기별했다. 한 소식 전해 들은 나는 그제야 70년간 봉인돼 있던 비밀에서 풀려났다(解脫). 깨달음은 곧장 치유력으로 작동했다. 사실에 터 잡은 진실 서사가 장엄한 의학이 되어 내 생애 전체를 화쟁으로 관통했다. 70년 통틀어 속이 이리 안온한 나날은 바이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중이다.

 

내력도 이치도 시종도 모르는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절망한다. 모르는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의학이다. 이 행위를 하는 의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구조 병을 수리하는 외과 기사, 기능 병을 개선하는 내과 기사만 판을 친다. 삶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을 서사로 치료하는 고갱이 의학을 내다 버린 거다. 서사로써 모르는상태를 걷어내는 시간이 제국 자본에 반역하기 때문이다. “모르는상태이기에 무거워지는 고통이 기사질로 가벼워지는 고통보다 모름지기 더 많다. 의자가 본디 알려주는 자였다는 역사를 신화에 내어주면 찐 손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