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방이동 옛 이름은 방잇골이었다. 개나리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 이름으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병자호란 때 오랑캐를 막았다는 뜻, 곧 방이(防夷)가 등장했다. 후대에 선비들이 뜻을 문제 삼아 방이(芳荑)로 바꾸었다고 마무리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부분 그렇듯 먹물들이 지어낸 그럴듯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

 

방잇골은 백제 첫 도읍인 위례성 권역으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안말내(성내천)와 단내(감천, 나중에 감이천)가 합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농사가 성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 특히 1960년대 말부터 사나운 변화 대열에 휩쓸린다. 정치적 계략이 사회경제적 현실을 부추겨서 거대한 토건을 이른바 영동지구에서 일으킨 것이다.

 

영동은 영등포 동쪽이란 뜻으로 1, 2차에 걸쳐 엄청난 부동산 쇼가 온 나라를 뒤흔들며 펼쳐졌다. 흔히 이 사태를 강남 개발이라 불렀다. 이 광풍 언저리에 놓여 있던 방이동, 안말내와 단내 사이 농지에 1970년 벽돌공장이 들어섰다. 1997년에 문을 닫을 때까지 토사를 마구잡이로 퍼낸 결과 그 자리에 커다란 웅덩이가 형성됐다.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웅덩이는 인근 물과 강우가 쌓이면서 습지로 변해 갔다. 숲이 생기고 물고기와 각종 동물이 보금자리를 꾸몄다. “방이 습지. 2002년 서울시는 방이 습지를 생태·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했다. 2011년에는 방이동생태학습관도 열었다. 현재 식물 114, 조류 45, 어류 6종이 서식하고 있다(2021년 통계 자료). 



지난 일요일(4월 26나는 방이 습지로 향했다올림픽공원역에서 진입하는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귀살쩍다여전히 방치 상태다도시 개발이 빚어내는 그림자로 궁뚱망뚱한 살풍경 전형이다서둘러 지나쳐 생태학습관에 이른다아무도 없다관찰 길도 마찬가지다적요에 아뜩해졌으나 곧 고요에 깃든다.

 

천천히 걷다 섰다 앉았다 하며 쩍말없이 홀로라는 습지그 물컹한 늪으로 빠져든다여태까지 걸었던 숲이나 물 발길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질퍽거린다시간이 흐를수록 음탕해지는 개구리 연가를 속귀 열어 듣는다홀연히 꿩이 울리라는 육감에 따라 스마트폰 앱을 연다이어서 울지 않고 끊는 그 우렁찬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는다.

 

이런 시간을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 자연은 퀴어하다에서 말한 공동체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사실 내가 여기 온 며리가 그러하다내 걷기는 중대한 변곡점을 향해 가는 중이다무작위성과 퀴어함에 나를 열어듣지 못해서 듣는 세계로 들어가고자 해서다마법이 과학인과학이 마법인 삶에 잠기기 위해서다.

 

새, 나무버섯바람을 반제·반식민 동지로 모시는 일이 더없이 엄밀해지려면 더 자주 더 이드거니 만나야 한다여럿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여러 번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인간과 과학 경계를 가로질러 시공을 접는’ 마법이 필요하다유의미한 고뇌는 유의미한 결과를 창조하는 법이다습지에 홀로 앉아 영에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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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느지막이 도봉산 무수골로 향한다. 다른 계획을 잡기 어려울 때 가곤 하던 곳이다. 지난번 내린 봄비로 무수천 물도 물소리도 깨끔하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 전에 어귀 밤나무집 가서 점심 식사부터 한다. 새콤하니 익은 열무김치 곁들여 잔치국수를 먹는 중에 바깥일 하던 여주인이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듣는다.

 

여기서 태어나 60년 가까이 살았으나 골짜기 이름을 무수골이라고 부른 적이 없단다. 심지어 보문사 계곡이란 말은 처음 듣는단다. 토박이들은 골 위쪽을 밤나무골이라 부르고 아래쪽을 굿골이라 불렀단다. 물론 밤나무와 무속인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실현 가능성이 작으나 한자로 표기한 관료식 이름을 모두 본디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도봉산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 창건된 도봉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설이나 조선 개국과 관련해 도봉산이 됐다는 설은 모두 지배층 중심 사후 서사다. 도봉에서 에서 왔다고 본다. 자운봉을 비롯해 그 주위 암벽들이 지니는 압도적 위상서껀 이어지는 오봉·포대·다락 암릉(巖稜) 길을 가리키는 우리말 이름이 모름지기 엄존했을 테니까.

 

특정 목적에 따라 작위로 지은 이름과 달리 민중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름은 무작위 소산이다. 인간으로서 산, , 들과 상호작용 하며 살아가는 맥락에 딱 알맞은 표상을 누구랄 수조차 없이, 너나 함께 입에 올려서, 사실상 자연발생 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시원에 닿은 평등과 자유 팡이시질(networking) 영성을 머금고 있다. 되살려야 할 며리다.

 

길 잃고 헤매기 직전에 담았다고 추정하는 숲 풍경


밤나무골 길을 찾은 뒤 처음 담은 물 풍경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여주인이 허리 아픈 이야기를 한다먹다 말고 나는 침을 꺼내 든다침 치료를 받은 그가 고마움을 표하며 전을 부쳐준다맛나게 먹고 길을 나선다지도에서 확인한바 다른 길과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 비탈길로 들어선다길 잃기로 작정한다마침내 어디선지 알 수 없이 길을 잃고 무작위로 헤맨다숲에 왜 드는지 알고야 말리.


어떻게 해서 밤나무골 길을 찾아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지점을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은 걸 보니 넋을 놓은 상태로 떠돌았음에 틀림없다. 정신 차리고 담아 놓은 물 사진이 서른 장 가까이 된다. 밤나무골 물 모심은 제대로 한 듯하다. 새로운, 아니, 본디 이름을 찾아 다시 부를 일 없는 이름 무수골은 이제 어떤 격상을 앞두고 있다.

 

실은 몇 주 전부터 해월(海月) 스승 유택이 있는 원적산을 탐색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숲에 드는 게 맞는지 스스로 다시 물었다. 기나긴 여정 뒤라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확실히 비어 있다고 느껴서 끈덕지게 물었다. 원적산을 보류하고 위험성이 덜한 밤나무골 어디선가 길 잃기로 돌렸다. 숲이 어떤 슬기를 줄는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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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까지 창덕궁은 <빛, 바람 들이기>라는 이름으로 문과 창문을 열어 놓는 행사를 했다. 본디 의도와는 무관하게 방문객은 그 마주 열리는 문과 창문을 액자 삼아 건너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통 한옥이 품은 이른바 차경(借景) 효과를 누리는 각별한 시공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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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청량산 안말골 들어가 길 잃고 헤매다가 손가락 몇 군데 가시에 찔린 적이 있다. 다른 데는 얼마 되지 않아 다 아물었으나 유독 가운뎃손가락 끄트머리 상처가 여태껏 남았었다. 검은색이니 부러진 가시가 박혀 있음이 분명한데 아프지도 성가시지도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날카로운 통증이 들이닥치기에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신기하게 가시가 염증 없는 상태로 살과 공존(!)하고 있다. 주위 살을 살짝 밀어 올리고 단침(短針)으로 파내주니 작디작은 구멍 하나 남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가락 생명체는 무감으로 돌아갔다.



 

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려 했는데 불쑥 의문이 든다. 어째서 염증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갑자기 달려든 가시를 검문한 결과 지닌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적은 아니라고 판단해 일단 내치지 않고 공생(!)을 시도한다. 얼마간 시간을 두고 좀 더 세심히 살핀바 무기만 없는 게 아니라 주고받을 생명 건더기조차 없다. 공생은커녕 공존할 존재도 아니라고 최종 결론 내린다.” 내 상상력은 여기까지다. 공생하는 통 생명체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인 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아프지도 성가시지도 않아서라는 근거는 얼마나 아둔하고 덜퉁한가?

 

그러하다. ‘라고 뻐기지만 본디 란 존재하지 않는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나들’(김선우) 팡이시질(networking)이 가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 삼가 참여하려면 나들 속 나는 끝 없이 조프린 얼() 눈으로 나들통 생명 사건 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틈에서 빛이 나온다(레너드 코언). 그 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피상성과 진부함, 그리고 엉성함에서 인간 또는 인류가 저지르는 온갖 악이 나온다(한나 아렌트). 찰나마다 깨어서 섬세 치밀하게 감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련다. 거대 장엄은 얼핏 본 짝퉁이고, 미세 장엄이야말로 촘촘히 본 진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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