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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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환경 문제는 우리가 의지를 지니고 있다 해도 이미 너무 악화되어서 개선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인류의 곤경은 음울하다. 근본적인 문제가 6000년이나 된 타락한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황은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보인다. 정신이 문제라면,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방법은, 이 정신이 변화하는 것, 어떻게든 타락한 정신을 초월하여, 자연이 우리와 연결된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회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상정이 타당하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347-348쪽)


매일 산길을 걸을 때, 나는 걷기 전문가의 조언 가운데 하나를 따르지 않는다. 땅을 살피기 위해서 시선을 아래로 둔다.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밟지 않으려 함이다. 먹이 쪼는 참새를 피해 돌아가려 함이다. 인격인 내가 비인격인 그들의 소미장엄에 표하는 근원 예의다. 소미장엄에게 거대한 인격 에너지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내 인격의 거대 에너지가 소미한 소식으로 “자라서” 작은 꽃과 통성명하고 참새와 식사하는 날을 꿈꾸는 건 신비주의일까?


자아폭발의 역사적 실재성을 인정하든 않든 인간에게 인격 존재라는 우월감과 편견이 뿌리 깊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은 인격을 세계의 정상에 세우고 비인격 존재에게서 인격과 “연결된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거두어들였다. 대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채워 넣었다. 자연 생태계를 잔혹하게 유린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음모의 전 과정에서 발군의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사하라시아 셈족의 거대유일신교, 특히 기독교다.


그들은 인격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고, 그 인간이 지배할 자연도 창조했다는 참람한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그 내러티브는 인격신의 계시로 투사됨으로써 영속적 도착구조가 이루어졌다. 인간이 만든 신이 도리어 인간의 숭배를 받는 과정에서 자연은 갈가리 찢어졌다. (이 도착구조는 일거에 문명 전반을 가로질렀다. 인간이 만든 화폐가 도리어 인간의 숭배를 받는 과정에서 생태적 순환이 무너졌다. 인간이 만든 권력이 도리어 인간의 숭배를 받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망가졌다.)


맑은 영혼으로 자연에 배어들어보라. 그 신비 하나하나를 인격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면 말이 안 된다는 도착증 환자들의 주장과 반대로 인격신이 창조했다면 그 신비 하나하나에 대한 모독이 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인격은 비인격에서 발원한다. 비인격이 인격을 품은 범주다. 인격은 존재의 적응 또는 작용 방식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중심본능을 내려놓으면 자연의 종말, 최후 파국이 아닌 타락 인간의 종말이 온다. 하느님나라는 자연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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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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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선형으로 보는 관점이 우리에게는 자명해 보이지만·······타락한 정신의 산물이다.(323쪽)


선형 시간은 추상으로,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328쪽)



소여로 철석같이 믿어온 우리에게 선형 시간의 탄생 비화는 그 무엇보다 충격적이다. 의외로 이치는 간단명료하다. 선형 시간이 성립하려면 과거와 미래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둘 다 실제적 존재가 아니다. 인용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과거는 기억이고 미래는 기대일 따름이다. 결국 기억과 기대가 추상의 수다를 거쳐 선형 시간으로 조작되었다는 말이다.


기억과 기대는 분리에 기원을 둔다. 분리로 말미암은 불안을 잠재우고, 소유를 지키며, 어리석음을 감추는데 시간지배가 동원된다. 분리문명 지배세력은 기억을 조작해 대문자 역사로 기록한다. 기대를 조작해 천년왕국의 도래로 기획한다. 기독교 구속사의 구성 원리다. 기독교 구속사의 세속화가 인도유럽인·셈족의 정치사다. 6천년이란 시간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런 시간의 탄생을 오늘 여기 우리 또한 목도하고 있다. 자주시민이 3월대혁명을 기억만 되새기고 넘기자 매판세력은 신식민지의 역사를 기록한다. 자주시민이 공화국에 대한 부푼 기대만으로 흩어져 있을 때 매판세력은 궐기를 기획한다. 이 기록과 기획의 결절점에서 이명박 석방이 이루어졌다. 이 참람한 선형 시간을 사는 나는 과연 타락한 정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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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3-06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금원회장은 뇌종양에도 석방이 안됐는데. 이명박은 석방이 되다니. 화가 납니다

bari_che 2019-03-06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폐집단의 세력 과시이자 궐기 선동이지요.
 
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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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에 대한 긍정적 개방적 태도가 타락한 인간의 억압적이고 죄의식에 물든 태도로 이행하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이 책의 가장 우울한 내용 가운데 하나다. 타락 이전 시대의 건강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종말을 고한 뒤, 타락한 시대는 굉장히 많은 질병을 가지고 있으며, 억압과 죄악으로 부패했음에 틀림없다. 지난 6000년 동안 인간이 일종의 정신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바로 이 사실로써 충분해진다.(319쪽)



산길 걸어 출근하다 나무 등걸 가운데 난 구멍에 밀어 넣어진 밀감 껍질을 본다. 육체 건강을 위해 아침 운동을 하던 누군가가 육체 건강을 위해 밀감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왜 정신 건강은 거기다 버렸나. 타락 이후 육체에 모멸을 가한다는 말이 과연 옳은가? 정작 모멸 대상은 정신 아닐까, 전복된다 싶은 찰나 홀연 한 번 더 전복되는 생각.


폭발한 자아가 스스로를 정신하고만 일치시켰을 때 정신은 이미 치명적인 모멸에 중독되었다. 물질적 본질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정신이 육체의 정신이라는 진실에서 절연되면 정신은 마성을 띠게 된다. 마성의 자아-정신은 다만 금욕이나 고행 같은 가시적인 모멸에서 그치지 않고 애지중지 학대를 육체에 가함으로써 자기기만적 모멸에 빠져든다.


육체를 애지중지하는 오늘의 풍조는 가히 광란의 도가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갖 안티에이징, 슈퍼 푸드, 요가, 성형, 근육운동, 다이어트 상품이 모든 매체에 도배되어 젊고 매혹적인 육체에 대한 사랑과 숭배를 찬양한다. 이리도 열렬하게 기리는데 육체 모멸은 무슨.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신의 향락에 바쳐지는 ‘부흥회’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부흥회’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런 포르노 수준의 추구란 있을 수 없다. 육체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일은 서로 다른 육체의 생태를 따라 고유한 건강미를 각기 가꾸면서 유쾌해지는 수준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축제적 열광도 중용의 균형으로 되돌아와 일상의 경외를 누리며 살아간다. 일상의 경외는 한 아름의 육체감각이다. 그 너머는 타락이다.


타락 문명의 절정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당연하게도 이 육체감각의 휴먼스케일이다. 휴먼스케일은 거대한 거짓의 거절이다. 봄까치꽃 작은 한 송이가 머금은 향기를 맡는 코다. 감지조차 할 수 없는 우리의 소미한 본향, 그 거룩함으로 안내하는 이정표다. 이 이정표는 본향과 타향의 경계에서 숭고한 바람소리를 일으킨다. ㅅㅅㅅㅅㅅㅅ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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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은 나에게

큰봄까치꽃으로 왔다

앙증맞은 바이올렛 꽃잎이

'기쁜 소식' 한 방울 머금고 있다

소소소소 나날의 기적에 고마워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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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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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믿음은 타락 고유의 특성이다.”(281쪽)


오늘날 지구상에 만연해 있는 인도유럽인·셈족의 신 개념은 타락한 인류가 만들어낸 허구임이 명백하다. 팽창된 자아의 투영이자 파열된 자아의 벌충이다. 전자는 일극집중의 매끈함을 안겨주고 후자는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둘 다 궁극의 해결책이 아님은 물론이다.


무신론이 답인가? 그럴 리가. 자아 거점을 지우고 전체성에 배어드는 재-주술화가 진정한 신(의 길)이다. 여기서 무진한 비대칭의 대칭이 되살아나고 함께-있음의 향연이 무궁하게 되풀이된다. 신은 무한 개체의 무한 네트워킹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자.


“일신교도 자아의식 심화에 따른 결과·······다.”(291쪽)


그렇다. 거대유일신은 자아 팽창이 만들어낸 최후의 가짜 신이다. 다른 모든 신을 우상이라 몰아붙이고 혼자 남은 우상이다. 야훼도 알라도 덩치 큰 우상을 면치 못한다. 선불교의 화두 들기도 우상숭배고, 화두 가지고 놀다 견성했다며 까불대는 중 나부랭이도 우상이다.


신이 하나라면 꼭 한 경우에서만 그렇다. 무한한 다른 신들과 네트워킹 하는 신들 가운데 하나. 이 신은 홀로 우주를 창조하지도 않았고, 전지전능하지도 않으며, 심판하려고 종말을 벼르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립감에 빠진 인간에게 보살핌의 사탕을 물리지 않는다.


“신이 항상 임재하며 보살핀다는 믿음은 아기에게 잠정적 관심대상transitional objects이 필요한 것처럼 타락한 인간의 고립감에 대한 하나의 방어기제·······다.”(293쪽)


타락한 인간의 타락한 신 개념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바로 “항상 임재하며 보살핀다는” 것이다. 남성 가부장적 신에다 모성을 짜깁기해 넣고, 아기 상태로 돌봄 받다가 천국 가겠다는 어이없는 탐욕이라니. 쩌는 유치함을 엄숙미로 가리고 진짜 자알 놀고들 계시니, 어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이 아이인 줄 모르고 어른 행세를 하는 아이, 그리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아이를 알아차리고 겸허하게 키워가는 어른. 그만 자라도 되는 완성된 어른은 없다. 참 신은 다른 모든 존재와 함께-있음으로써 자라가는 부단한 도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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