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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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라면,······· 좀 더 다이내믹하고 좀 더 깊이 있는 관계를 원하게 되죠. 그게 연인과의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아들과 아빠로서의 교감 같은 것이기도 해요.······· 계속 목마르겠죠. 갈증에 시달리겠죠.(276쪽-성호 아빠 최경덕)


내가 아들로서 아버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은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막내 동생을 낳은 네 번째 어머니와 이혼 문제를 놓고 아버지가 내게 청한 대화였다. 말하자면 아들이 아버지 이혼상담을 해준 것이다. 나는 한 개의 질문을 했고 아버지도 한 개의 대답을 했다. 대화 뒤 부부는 결별했다. 나머지 한 번은 ‘아버지란 내게 무엇인가?’ 나만의 최종 결론을 내리기 위해 내가 아버지한테 요청한 대화였다. 나는 두 개의 질문을 했고 아버지도 두 개의 대답을 했다. 대화 뒤 내 영혼은 아버지와 결별했고, 아버지는 끝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과는 모두 어떤 결별이었지만 전자에는 교감이 있었으나 후자에는 없었다. 교감 없는 상태로 각기 고립되어 얼마간 살던 중 몹쓸 병을 얻은 아버지는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 내게 남은 것은 후회 따위가 아니었다. 적요를 뚫고 침묵으로 솟아올라 가뭇없이 번지는 “갈증”이었다. 이 갈증은 내 생에 커다란 훼절을 간단없이 일으켰다. 훼절은 무엇보다 그 자체로 실패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훼절은 내게 오도悟道라는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실패는 나를 변방으로 내몰았고, 오도는 그 변방을 두 세계의 경계로 만들었다. 그렇게 ‘비대칭의 대칭’이라는 독자적 사상 축을 잡도록 나를 이끈 아픈 병리요 슬픈 선생이 바로 갈증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위치가 바뀐 점 말고도 성호 아빠 최경덕의 갈증은 형국이 사뭇 다르다. 사악한 국가권력이 외아들을 살해함으로써 들이닥친 그의 갈증은 분노와 죄책감, 그리고 무력감에 휘말려 있어 앞으로도 오랫동안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증폭될 것이다. 돌이키지 못함에 대한 회한과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나보다 훨씬 더 맹렬하리라 짐작한다. 그 다른 지점에서 아버지 최경덕은 어떻게 아픈 병을 앓고 또 어떻게 슬픈 오도에 이를지 나는 차마 알 수 없다. 알아도 과연 그 앎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오늘도 내가 아는 내 세계의 가장자리로 나아간다. 나는 오늘도 내가 모르는 남의 세계의 가장자리로 다가간다. 그 마주 가장자리, 그 경계에서 큼큼 냄새를 맡는다. 내 몸뚱어리를 돌아본다. 냄새를 타고 냄새나는 곳으로 스며들 수 있는지 더듬거린다. 누구에겐가 이런 길에서 감싸이는 신뢰를 말한 적이 있다. 무심히 헤매면 ㅅㅅㅅㅅ 다가오더라는. 갈증이 밤 숲 무덤 가 지날 때 뒷덜미 감각처럼 풀어진다면야 그 아니 송연하랴. 송연한 신기가 벌컥벌컥 마시는 막걸리처럼 들이부어지는 어느 날, 나는 산 자로서 죽은 자의 촉감 넘치는 손을 잡으리. 거기, 내 416의학의 지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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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머리·······진상규명할 때까지 절대로 바꿀 생각이 없거든요. 엄마들하고 광화문에서 삭발할 때 결심한 거예요. 이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나는.(275쪽-권순범 엄마 최지영)



2017년 2월 12일 416엄마들의 뜨개전시회 때 노랑머리 엄마 최지영을 먼발치서 보았다. 의사 정혜신의 사회로 대담하는 데 웅기 엄마 윤옥희, 영만 엄마 이미경과 함께 나왔다. “노랑머리 했다고 욕하는 소리 들었다.” 얘기하던 그 음성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물론 욕하는 인간들 뇌 속에는 ‘새끼 죽었는데 머리 염색이나 하고 자빠졌다.’는 알량한 생각 정도가 들어 있었을 테다. 노랑머리가 기억과 약속의 노랑리본이라는 진실을 알았다면 때리려고 달려들었을 지도 모른다. 노랑머리가 하늘의 노랑별자리라는 진실을 알았다면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도 416엄마 최지영은 5만 개의 노랑리본과 250개 노랑별을 이고 노랑머리로 살아간다. 나는 고작 노랑리본 5개를 지니고 소심한 시민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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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시어머니가 보수적인 분이었거든요. 바깥 활동을 많이 하셔서 트인 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좀 닫힌 문을 갖고 계셨어요. 그런데 이 일을 통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고, 남은 인생은 예은이 덕분에 이전보다 나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예은이한테 고맙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고요.(269쪽-유예은 엄마 박은희)


한의원 근처에 십년 가까이 드나드는 백반집이 있다. 주인 내외하고 친구되어 심심찮게 함께 소주잔을 기울인다. 보통 나누는 대화는 미셀러니 수준인데 박근혜 탄핵 전후 급격히 바뀌었다. 정치 얘기가 시작됐다.


최순실-박근혜 협잡의 실체가 시시각각 밝혀지면서 얘기는 의당 그 내용으로 채워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탄식을 넘어 어떤 자각을 향해 대화가 흘러갔다. 이 지점부터 부부 사이에 미묘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아차렸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정권이 바뀌고 그에 따른 매판 본진의 프레임 조정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견해는 확연히 벌어졌다. 남편은 잠시 흔들리다 조선일보 독자였던 본디 성향으로 회귀했다. 똑같이 조선일보 독자였던 아내는 완전히 돌아섰다. 

이 사실을 접하는 순간, 나는 돋아 오르는 질문, 아니 답을 확인했다. 진실, 또는 진리를 직면할 때 여성과 남성 간 차이가 있을까, 그래 있다. 오랜 상담 경험에 터해 판단하건대 이 부부의 서로 다른 태도는 분명히 젠더 차원이다. 그냥 개인차가 아니다. 

정치문화 패러다임 전체를 톺아보며 곰곰 생각한다. 세계 정치판 전체를 여성 주도의 네트워킹으로 만들어야 인류가 멸절을 면할 수 있는 것 아닌지. 백반집 여주인이 소주 한 잔 하자며 대구탕을 끓이기 시작한다. 허, 아무래도 좀 달리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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