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넘게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첫인상이 가장 좋았던 그는, 무척 잘 생겼고, 키도 크며, 목소리까지 맑은데다, 미소마저 뇌쇄적입니다. 심지어 마음씨도 비단결이었습니다. 거기까지입니다. 신의 스토킹으로 그의 인생은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저를 처음 만났을 때, 배우자 외도로 이혼한 뒤 홀로 산 지 이미 여러 해 된 터였습니다. 극심한 우울증 때문에 여러 번 폐쇄병동을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수차례 자살을 기도해, 손목에는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생의 애착을 잃어버려 피폐해진 심신 상태 때문에, 그는 수시로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곤 했습니다. 만난 이후 10여 년 동안, 저만해도 그를 세 번이나 살려내야 했습니다. 물론 그 덕에(!) 그는 저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두 번은, 음식점에서 쓰러져 호흡이 정지된 상태에 있는 그를 인공호흡으로 살렸습니다. 마지막 한 번은, 참으로 극적이었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맞닥뜨린 가장 힘든 일 때문에 허덕이던 어느 날 늦은 밤, 술에 취해 귀가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 저·······죽나 봐요. 무서워 죽겠어요.”


택시를 잡아타고 그가 홀로 사는 집에 당도해보니, 손목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온갖 술병이 어지러이 나뒹굴었습니다. 이곳저곳 핏자국이 낭자했습니다. 그를 들쳐 업고 인근 병원으로 뛰었습니다. 응급실에서 그의 원-가족한테 연락을 취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먼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목숨 줄로 이어져, 저는 그의 삶 구석구석까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실에 마주앉아서가 아니라, 그의 삶이 그리는 동선을 따라가면서 대소사에 전천후로 엮였습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잠자리 빼고는 죄다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심지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돈까지 빌려주었습니다. 아, 물론 다 돌려받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함께 살아낸 세월의 겹 위로 얼마만큼 안정된 빛이 그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그의 삶에 동행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며 살다가 문득 소주 한 잔하는 정도면 만족합니다. 언제라도 그는 전화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버지, 낼 저녁 소주 한 잔 해요!”


그와 제가 함께 했던 삶에서 일어났던 일을 구구절절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는 까닭을 아실 듯합니다. 혹시 그와 제가 소주 한 잔 할 때,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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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걸어와 냉방 장치가 가동되는 한의원에 들어서면서 “아, 덥네!” 하는 사람, 그리고 “와, 시원하다!” 하는 사람.


얼핏 보면 전자는 부정적이고 후자는 긍정적이다. 힐끗 보면 전자는 '아, 옛날이여!’ 스타일이고 후자는 ‘Carpe diem!’ 스타일이다. 긍정의 힘도 이 순간의 충실함도 포르노 사회의 자양분으로 수탈당한다는 사실을 알면 사정은 아연 달라진다.


삼복더위라는 전체 진실에서 볼 때, 냉방 장치 가동되는 시공간은 일시적·부분적인 현실이다. “아, 덥네!” 하는 사람은 그 사유가 전체 맥락에 닿아 있다. “와, 시원하다!” 하는 사람은 전체 맥락이 누락된 눈앞의 현상만 본다. 전체 맥락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문제 지향이다. 눈앞의 현상만 좇는 사람은 해답 지향이다. 해답은 문제 안에 있다.


문제 지향의 사람은 답을 빨리 찾으려고 덤비지 않는다. 덤비지 않는 사람은 더디 간다. 더디 가는 사람은 편의와 향락에 물들지 않는다. 신마저 편의와 향락 앞에 엎어진 21세기, 더디 가는 삶은 욕됨으로 스스로 스미는 것이다. 욕됨으로 스스로 스미는 것은 단순한 실천이 아니다. 실천을 무한히 일으키는 창조다. 창조는 근원인 영점 사건이다. 근원인 영점 사건은 자신을 無로 만들어 모두를 無限이 되게 하는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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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醫者로 사는 동안 제게는 저를 아버지라 부르는, 또는 그리 여기는 사람이 여럿 생겼습니다. 숙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 정도 사랑과 신뢰, 그리고 존경의 정서가 쟁여졌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마음치유 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지닌 정서의 폭은 십인십색이거니와 매우 각별한 인연으로 저와 맺어진 한 청년이 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그의 상태는 마치 그 계절과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깨질 듯 달려드는 두통만이 살아 있는 표지였습니다. 바짝 마른 몸에 더 바짝 마른 마음이 일그러진 문짝처럼 을씨년스럽게 매달려 있는 풍경은 기괴하기까지 했습니다. 얼굴에는 ‘신기神氣’가 파르라니 흘렀습니다. 눈빛 앙칼지기도 여간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사회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극심한 대인공포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하다못해 알바 자리 하나 구하려 해도, 사람 눈 마주보며 면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두통은 심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이상한 한의사 하나를 발견하고 달려왔습니다.


기본적인 상황 파악을 끝내고 치료 일정을 잡은 첫 상담 일주일 뒤, 두 번째 상담 예약을 했습니다. 무심코 잡아 놓고 메모하지 않은 탓에 그 예약일이 성탄절인 줄 몰랐습니다. 까맣게 잊었으니, 한의원 문을 턱 하니 닫고, 저는 휴식을 즐겼습니다. 밤이 되어 혹시 온라인 예약 들어온 것이 있나, 살피려고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아뿔싸! 문 닫힌 한의원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다 돌아가서 쓴 그의 글이 분노와 실망을 그득 문 채, 상담실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사과 글을 올리고, 바로 다음 날 오전 상담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제 사과와 제안을 받아들여, 항의 글을 내렸습니다. 저는 제 사과 글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걸어두었습니다. 이따금씩 그 글을 읽으며, 자세를 가다듬곤 했습니다. 이렇게 액땜을 다부지게 하고 나서, 저와 그의 인연은 빠르게 깊어졌습니다.


그의 부모는 사이가 본디-그가 기억하는 한-좋지 않았습니다. 불화는 다양하게, 그러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었습니다. 그의 10대 중반 무렵,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사건이 악화의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외도로 비화하면서 이혼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선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받은 상처는 컸습니다. 제대로 학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아, 생활도 궁핍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점점 더 소원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시나브로 알코올중독에 빠져들었습니다. 우울과 불안이 함께 그를 덮쳤습니다. 사소한 일상마저 깡그리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 계속될 때, 그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저와 같은 부류의 사람 눈에만 들어오는 육감 같은 것입니다. 다름 아닌 무속인의 길입니다. 사회적 평판을 문제 삼아서가 아니라, 그 삶의 신산함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기에, 어찌 하든 피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제게 홀연 타개책이 떠올랐습니다.


“제3의 길이 딱 하나 있다. 좋은 분 소개할 테니 가봐.”


제가 던진 승부수는 다름 아닌 요가 마스터의 길이었습니다. 제가 소개할 사람 이름을 말했더니,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연히 한 번 뵌 적이 있는 분이라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는 흔쾌히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늘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지금 요가 마스터의 길을 나름대로 곡진히 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뜬금없이 그가 오겠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사주며 그가 말했습니다.


“그 날 아버지가 던지신 승부수, 아무래도 제 인생에서 신의 한 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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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月來花社

山翁起整衣

重來有好客

且莫掩柴扉


고갯마루 달이 떠 꽃말 비추면

외딴 노인 일어나 옷깃 여미네

반가운 어떤 손이 더디 오시매

아직은 사립문 닫을 때 아니네


_권상하權尙夏1641~1721  _필자 글씨, 번역


*


달빛 아래 옷깃 여미고 앉아 더디 오는 손을 기다리는 외딴 노인의 자태가 너무도 선연히 그려진다. 아, 도저한 느지막함이여. 내 삶의 빛으로 보니 중래重來가 '더디 오다'로 읽힌다. 지하철역에 걸린 시 하나가 이런 감동을 준다. 인생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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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똑 그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유령처럼 들어서는 광경을 본 제 영혼이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넷 에움 모두 숨죽이는 듯했습니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귀신이 씌웠다고 하면서 그를 골방에 가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이비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안찰기도 한다며 온몸을 두들겨 팼습니다. 그는 네 차례나 도망쳤습니다. 그때마다 잡혀 들어와 더욱 모질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숨겨두었던 얼마간의 돈을 들려서 제게 보냈습니다. 헐떡임조차 나지막한 숨 사이로 더듬더듬 기어가던 그의 이야기는 얼마 못 가 멈추었습니다. 말할 기력도 부치거니와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겹겹 쌓인 고개를 넘어가기 무서웠던 것입니다. 저는 그를 잠시 누워 쉬게 했습니다. 한참 뒤, 저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얀 종이에는 큼직한 글자 두 개가 쓰여 있었습니다.


“가출”


심신이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서도 그는 단호히 결단했습니다. 이튿날 가방 두 개를 들고 한의원에 나타났습니다. 두 명의 친구 집에서 하루씩 묵은 뒤 한의원으로 돌아왔기에 ‘마침 봄이기도 하니 한의원에 머무르면서 갈 곳을 찾아보라.’ 일렀습니다. 밥도 사먹고 영화관도 가고 책도 사 볼 수 있게 얼마간 용돈을 쥐어주었습니다. 사흘 지나 그는 꽤 여러 날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그가 말했습니다.


“시력이 떨어져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젠 파란 나뭇잎이 보여요.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이젠 내용이 머리에 들어와요. 식욕이 없어 도통 먹을 수 없었는데 이젠 맛있어요. 이거 다 먹을 거예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그는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며 그렇게 존엄한 식사를 그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작별인사를 하는 그에게 한약과 용돈을 건네며 말해주었습니다.


“부디 자기 자신의 연인으로 사세요. 스스로 연애를 걸지 않는데 누가 있어 프러포즈를 해오겠어요.”


그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습니다. 어름어름 잊힐 만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완전히 탈출했음을 알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제 걱정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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