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코의 종교학


(1) 신


시각 포르노 시대의 신은 거대 유일신이다. 거대 유일신은 이미지 장엄이어서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이므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소미 무한신은 은밀 장엄이어서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므로 냄새를 풍긴다. 냄새나는, 냄새나서 냄새 맡는, ‘큼큼쟁이’ 신이야말로 참 신이다. 코의 신이다.


(2) 인간


스스로 크다 여겨 거대 장엄을 제유한 거대 유일신 만들어 아바타로 삼았지만 결국 인간은 수탈하는 인간homo rapiens이 되고 말았다. 수탈하는 인간보다 더 알량한 존재가 어디 있으랴. 수탈을 포기해야만 인간은 참 신 세계의 일원일 수 있다. 참 신 세계의 일원은 작아도 알량하지 않다. 작아도 알량하지 않은 인간은 무한한 냄새의 결과 겹 속에 살면서 후각을 따라 흐른다. 코의 사람이다.


(3) 구원


거대 유일신은 눈의 신이다. 눈의 신은 시각 포르노에 중독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시각 포르노에 중독된 인간을 구원할 신은 소미 무한신, 그러니까 코의 신이다. 코의 신은 지각조차 되지 않는 생명후각으로 스며들어 시각 포르노에 중독된 인간과 그 인간에게 착취당한 모든 존재를 구원한다. 구원은 전지전능의 허장성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작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조그만 냄새를 풍기고 맡음으로써 구원한다. 코의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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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혼인이란 무엇일까요? 혼인과 사랑에는 함수관계가 존재할까요? 일부일처제라는 보편 조건이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요? 세상의 어떤 고전도 정답을 주지 못하기에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렇듯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나름 행복하게 살다가 어느 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른 사람 또한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가정에 불만이 없습니다. 아이도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염증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만나 처음엔 선선한 친구였다가 이내 열렬한 연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알면 알수록 좋아집니다. 어찌 할까요?


사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마음치료를 내건 의자한테 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딱히 그가 자신으로 하여금 바람피우게 하는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의 첫인상에서 풍기는 담담한 당당함에 좋은 예후를 느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선택을 하든 홀랑 말아먹지는 않을, 어떤 자기 생의 종자신뢰 같은 것을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눅 들지도 않고 야비하지도 않으니 제가 할 말은 오히려 세계 진실의 모호성, 그러니까 비대칭의 대칭을 정색하고 드러내는 기본만으로도 족했습니다.


그의 명민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어립니다. 그가 턱 받치고 톡톡 던진 질문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때의 그보다 오늘의 그가 덜 행복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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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을 헤며 장엄을 말한다. 광대무변의 장엄을 부인하는 자 누군가. 그 광대무변의 장엄이 우리네 구체적인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장내 세균을 헤며 장엄을 말하지는 않는다. 소미의 장엄을 인정하는 자 누군가. 그 소미한 생명들은 우리네 삶에 실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은하계 수천억 모여 우주 하나 된다는 사실을 무시해서 우울증에 걸리지는 않는다. 장내세균이 정서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엄마가 북극성의 빛이 고려 때 출발한 것인 줄 몰라서 자폐아가 태어나는 경우란 없다. 엄마가 장내세균 상태를 몰라서 자폐아가 태어나는 경우는 엄연히 있다.


대체 무엇이 장엄한가. 무엇이 대관절 장엄인가. 자아비대증에 걸린 인간은 큰 장엄만 장엄이라 한다. 작은 장엄을 감각하는 것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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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코의 경제학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유난히 가진 자들의 ‘갑질’ 행패가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가진 자들의 천박한 유세 떨기는 그들이 가진 게 돈밖에 없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내주는 짓거리다. 저들은 ‘근본 없는 것’들 콧대 꺾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자기 근본을 돈에 둘 수밖에 없는 것들이야말로 천하에 ‘근본 없는 것’들이다. 적어도 인간이려면 이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아마 끝 날까지 저들은 여기에 의도적 무지를 드러낼 것이다. 아는 순간 곧 파멸이라는 진실만큼은 짐승의 감각으로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이 휘몰아치고 언론이 떠들어 법의 손길이 다가오면 마지못해 저들은 콧대를 90도 가까이 꺾어서 위기를 넘긴다. 물론 이 또한 비즈니스, 정확히는 몽키 비즈니스, 그러니까 협잡monkey business니다. 나중에 더 높은 각도로 콧대를 쳐들기 위한 전술인 것이다. 콧대를 꺾는 그 순간에도 저들은 나중에 다시 더 높이 쳐들 쪽을 향해 눈은 치켜뜨고 있다. 매판자본의 힘이다. 약탈경제의 힘이다. 저들은 이렇게 하여 스위스 비밀금고에 980조, 조세피난처에 870조 이상을 쌓아 놓을 수 있었다. 이 돈은 2014년 기준 노인· 장애인 복지 본예산을 두 배로 늘여 100년 이상 집행할 수 있는 규모다.


저들에게 그 많은 돈을 털린 을들은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아무런 잘못도 없이 늘 콧대가 꺾인 채 살아가고 있다. 갑 앞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친구 앞에서도 그렇다. 가족 앞에서도 그렇다. 자기 자신의 인생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울 변두리 가난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재활용품 실은 유모차를 밀고 가는 허리 굽은 할머니 모습이다. 그들의 허리는 거의 90도로 굽어 있다. 따라서 정면을 보기 위해서는 반대로 90도 고개를 들어야만 한다.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콧대의 각도는 지면과 0도를 유지한다.


꽤 오래 전 세인의 논란꺼리가 되었던 ‘폴더 할머니’가 있다. 폴더라는 표현처럼 상체와 하체가 앞으로 거의 완전하게 접혀 있다. 그 상태로 지하철을 전전하며 재활용품을 모으고 있다. 집이 여러 채라는 둥, 아들이 자가용 몰고 와서 실어간다는 둥, 악의적 소문과는 달리 집은 옛날에 소유했던 기록뿐이고, 아들은 알코올중독인 일용직노동자라 한다. 그 분의 콧대는 당연히 지면과 거꾸로, 그러니까 갑들의 그것과는 반대방향으로 90도를 이룬다. 처지가 비슷한 을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그 분의 콧대는 더욱 무겁게 거꾸로 90도로 매달려 있다.


참으로 무서운 사회가 아닌가. 갑들의 갑질을 당한 을들이 더 못한 을들에게 갑질을 흉내 내어 저지르니 말이다. 갑들이야 처음부터 그렇다 치고, 갑들의 갑질을 내면화한 을들의 참담한 마음병이 사회 전반에 검푸르게 번져 있는 것이 문제다. 스톡홀름증후군이라는 서양식 표현도 있거니와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 비극이 우리사회를 이 꼴로 만들었으며 앞으로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자본주의가 유일한 이데올로기이자 종교인 세계에서, 그것을 극단화한 식민지 괴뢰국가에서 을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으로 콧대를 꺾지 않고도 살아가려면 경제 주체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만 한다. 이것은 돈 앞에서 내리는 정치적 결단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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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코의 정치학


일본 교토에 있는 코 무덤鼻塚을 아는가? 물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승전의 ‘인증 샷’으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 가져다 만든 무덤이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12만이 넘는다 하니 당시 인구를 감안할 때, 실로 엄청난 숫자다. 물론 처음에는 수급首級, 그러니까 목을 베어 오라 했을 테.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그 일부로 코를 택한 것이다. 왜, 하필 코일까?


단순히 간편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코가 인간 존재 자체의 상징이라는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가령, “콧대를 세우다.”, “콧대가 꺾이다.” 따위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바와 마찬가지로 코가 한 인간의 사회적 존재 의의를 좌우하는 표지標識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패망의 시그널로서 그 백성의 코를 베어 땅에 묻고, 그 영혼의 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돌탑으로 찍어 누른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잔혹하고도 칼날 같은 사회정치적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짓을 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의 대접을 받으며 금칠한 사당에 누워 있는데, 코 하나로 남은 조선 백성의 고혼孤魂은 조국으로 돌아가지도 못 하고 수백 년 동안 잡초 무성한 무덤 위를 떠돌고 있다. 지금이라도 미련 없이 그 “코” 버리고 제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겉 이름만 대한민국이지 속 알맹이는 아직도 대일본제국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구천을 헤매는 동안 그들의 조국은 매판 귀족 서인 노론 손에 농락당하다가 결국 그들을 죽인 제국주의 일본에 팔려버렸다. 35년 동안 국권을 잃고, 그들의 동족은 살았으나 죽은 채 버텼다. 1945년 일제는 패망했다. 그러나 일제의 패망이 곧 우리의 독립은 아니었다. 점령군인 미군이 통치를 시작했다. 미군의 관심은 일제 부역자 처단, 우리의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다. 자국의 이익과 편의에 맞추어 향후 대한민국의 통치 기조를 만들었다. 미국 식민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던, 권력과 돈만을 탐했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매판집단이 정권을 장악하고 자주민주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죽임으로써 반공주의가 김춘추 세력이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동원했던 통일신라 내러티브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1960년 4·19민중혁명으로 이승만이 축출되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쿠데타로 매판을 극적으로 건져냈다. 독립군 잡는 만주군 장교였던 그가 극대화한 반공주의, 산업화, 그리고 경상도 패권으로 매판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통일신라 내러티브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박정희는 18년 독재 끝에 심복의 총탄을 맞고 죽었다. 자주민주의 꿈이 되살아나려는 순간 그가 키운 정치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 노태우가 이어간 매판군부 통치는 이 땅을 더 지저분한 식민의 그늘 아래로 처박아버렸다.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과 노무현은 부족하나마 이 땅에 진정한 정치, 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야말로 잠시 숨통만 튼 것일 뿐이었다. 매판독재집단의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깨뜨리지 못했다. 일천오백 년에 십 년은 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뼛속까지 매판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은 단군 이래 최고의 수탈통치를 감행했다. 공적 권력을 철저히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했다. 매판 재벌의 마름에서 출발하여 매판독재 상속자의 마름으로 화려하게 끝을 맺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박정희의 딸이 일천오백 년 매판 역사의 정점에 등장했다. 대중의 공포, 탐욕, 무지를 극대화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부추겼다. 매판이면 어떻고 독재면 어떠냐고 속삭였다. 콧대를 팔아 배를 두드리라고 꼬드겼다. 그렇게 협잡질을 하다가 쫓겨나 감옥에 갇혔다.


박근혜를 벤 자리에 자주와 민주, 그리고 통일의 꽃이 피었나? 촛불정부라는 새 정권이 매판독재세력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여전히 코 무덤 위를 떠도는 백성이 돌아올 조국은 없다. 돌아오면 다시 한 번 그 코를 베일 것인데, 어찌 돌아올 것인가. 더더욱 수치스럽게 일제의 마름, 아니 개들의 손에 베일 것인데, 어찌 돌아올 것인가. 살아 있는 사람의 “콧대를 꺾어”버려 자살자가 OECD국가 가운데 1위인 식민지 조국에 돌아와 그 원한이 어찌 풀리겠는가.


코 무덤의 저 영령들이 시간을 가로질러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열쇠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각성이다. 역사 속에서 왜곡된 정치의 진실을 밝혀 이제라도 자주·민주·통일의 길을 열어갈 때, 산 자의 콧대와 죽은 자의 콧대가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 어울려 대동大同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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