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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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역행 과정을 시작할 때가 왔다. 상품과 서비스 영역에 있던 것들을 선물, 호혜, 자급자족, 공유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과정 말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그런 과정이 통화 붕괴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물건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해지면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 때 진정한 공동체가 회복될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의 안전이 걱정이라면, 공동체야말로 최선의 투자처다.(162쪽)


시스템이 초 인플레이션에 이를 정도로 무너지면, 화폐만큼이나 사회적 관습에 불과한 재산 제도 역시 무너질 것·······이다. 혼란의 시기에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오직 공동체뿐이다. 감사의 마음, 인간관계, 주위 사람들의 도움뿐이다.·······지금 가진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투자하라·······.

  현재 시스템이 붕괴하는 날까지, 우리가 자연과 사회자본의 화폐화를 막고자 무슨 일이든 한다면 붕괴를 앞당겨 붕괴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163쪽)


이문재 시인의 <대재난을 응시하라>(2013.10.9. 경향신문) 일부를 읽는다.


“지구의 전부, 문명의 전 과정이 올라오는 식탁에서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다가 ‘지푸라기’ 하나를 발견했다. 레베카 솔닛의 탐사보고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 솔닛은 대지진, 대공습, 테러 등 재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지를 입체적으로 관찰한다. 소수 권력자나 대중매체는 재난 속에서 인간은 야만으로 돌변한다고 강변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지옥 속에서 ‘꽃’을 피워낸다. 이타주의, 연대, 즉흥성, 창의성이 어우러진 자율적 공동체를 조직한다는 것이다. 솔닛은 “재난은 지옥을 통과해 도달하는 낙원”이라고 말한다.


재난은 기존 질서와 가치, 제도를 일거에 퇴출시키고, 그 자리에 새로 태어난 시민을 들어서게 한다. 지배 엘리트는 패닉 상태에 빠지는 반면, 시민들은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희열과 자긍심을 느낀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광주 5월의 며칠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대도시 한복판 등이 바로 재난의 공동체였다.


솔닛의 ‘지옥 속의 유토피아’는 그것이 예고 없이 형성되고, 또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솔닛은 멕시코 남동부 산악지대에서 재난 공동체의 영구화 시도를 발견한다. 멕시코 오지 사파티스타 마을 입구에는 이런 푯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민중이 통치하고, 정부가 복종한다.” 대재앙이 우리 앞에 있다.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다. 100% 안전한 원전도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재난 공동체가 ‘마지막 비상구’ 중 하나일 것이다. 지옥에서 인간 본성을 다시 만나고, 국가의 맨얼굴과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우리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가세가 기울면 애들이 일찍 철든다.” 위기 앞에서 발현되는 ‘이타주의, 연대, 즉흥성, 창의성이 어우러진 자율적 공동체’를 일상의 경험 어법으로 묘사해냈다. 이 경험은 한 집안의 문제를 넘어선다. “광주 5월의 며칠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대도시 한복판”, 그리고 세월호사건 이후 안산·팽목·광화문, 마침내 박근혜를 끌어내린 다시 그 촛불의 대도시 한복판을 우리는 경험했다. 경험은 문명의 궁극으로 향한다.


화폐시스템에서 비롯한 재앙. 다른 것들과 달리 익히 알고 있으며 예측도 가능하다. 최대한 안전한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작심하고 “붕괴를 앞당겨 붕괴의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이를테면 동종혁명이다. “본격적으로 역행 과정을 시작할 때가 왔다. 상품과 서비스 영역에 있던 것들을 선물, 호혜, 자급자족, 공유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과정 말이다.” 불가피한 재난이므로 닥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재난공동체를 꾸리는 일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지혜며 의무다.


재난의식 선취는 어떻게 가능한가? 엄밀하게 말하면 현대사회가 재난을 재난으로 느끼지 못하는 중독사회이기 때문에 선취보다는 각성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미 우리가 재난 한가운데 있다는 의식을 일깨우는 증후는 차고도 넘친다. 증후의 눈앞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이 또한 거꾸로 접근할 일이다.


“현재 내 인생에 선물의 삶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우애와 환대를 나누는 삶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자급자족의 삶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공유의 삶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이 질문들에 그다지 답할 게 없다면 우리는 엄청난 재난에 휘말려 있음이 분명하다. 재난에 휘말려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뭔가. 막연하지 않다. 어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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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화폐시스템에서는 화폐창출 과정 자체가 구조의 결핍을 유지하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풍족하게 사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누군가 번창하면 다른 누군가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 손해를 보게 돼 있다.·······돈을 둘러싼 우리의 죄의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147-148쪽)


우리시대 가장 맑은 영혼을 지녔던 사람 권정생은 말했다.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


그는 한평생 그 말대로 살았다. 그가 쓴 『몽실 언니』, 『강아지 똥』 들에서 나오는 거액의 인세를 모두 아픈 어린이들에게 쓰도록 남기고 떠났다.


간신히 겨우겨우는 어느 정도의 불편을 말하는가? 그렇게 돈이 많아도 45만원에 가사도우미 쓰려고 불법과 갑질을 마다하지 않은 한진 이명희 보면 부자일수록 결핍의식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풍족하면 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이익을 탐한다. 내 이익이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 내 번창이 누군가를 가난하게 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것은 필경 거꾸로 규정될 수밖에 없지 싶다. 자신이 풍족하게 산다고 생각하여 더는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사람 아닐까.


더는 이익을 탐하지 않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을 일일이 열거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마다 다 다를 테니 말이다. 두 가지 정도의 자기질문을 지니고 실천하면 막연한 관념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1. 내가 이 돈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은 나와 연속된 존재인가?


이 질문은 기존 화폐시스템의 토대가 되는 분리 자아를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한다.


2. 내 손에 든 이 돈은 상거래용인가, 선물거래용인가?


이 질문은 돈 개념과 돈 자체를 바꾸려는 목적에서 한다.


이 두 질문으로도 어떤 감각이 생기지 않으면 다음 말을 음미한다.


돈을 둘러싼 우리의 죄의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화폐적 인생을 불가피하게 사는 동안 찰나마다 죄의식을 지닌다면 막연한 관념성은 뿌리부터 말라가지 않을까. 이때 죄의식은 당연히 물질적 본질을 지닌다. 물질적 죄의식, 그 참된 신성함을 느끼려 권정생의 삶 앞에 무릎으로 서본다.



권정생의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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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141쪽)


이자 기반 시스템에서 계급전쟁은·······불가피하다.·······화폐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기 전까지, 계급전쟁은 점점 심화될 것이다.(138쪽)


개인의 채무 이행 거부는 법 제도와 국가의 적법성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가능한 일이다. 그런 붕괴는 돈과 재산이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상징의 관습적 해석에 근거한 모든 것을 빼고 나면, 세계 최고 부자·······도 나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집이 내 집보다 클지 몰라도, 문서상으로 그 집이 그의 것이라 해도, 그 또한 관습의 문제일 뿐이다.(140쪽)


프로젝트는 기획이며 사업이다. 이자 기반 화폐시스템에서 빚은 돈 없는 사람의 필요를 따라 생기지 않는다. 돈 있는 사람이 토건으로 일으킨다. 말이 좋아 프로젝트다. 음모가 적실한 표현이다. 계급전쟁의 불가피성을 머금으니.


법 제도와 국가의 적법성은 사실상 허울뿐인지 오래다. 법과 국가가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빚을 일으키는 음모 과두와 그 주구들뿐이다. 이미 붕괴된 적법성이 그나마 지탱되고 있는 것은 마취 효과 때문이다.


마취에서 깨어난 사람 있어, “돈과 재산이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인다. “상징의 관습적 해석”을 넘어간다. 채무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진다. 계급전쟁의 서막이거나 기존 화폐시스템에 종언을 고하는 조종이거나.


어디 연착륙이 쉽겠나.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인류사적 현 단계를 한 인간의 일생에 빗대어 “성장의 한계, 미성년기의 끝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112쪽)고 한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닐진대 진통은 당연히도 엄청나게 크지 않겠나.


그 누구라도 무서워하는 파국. 현실에서 보면 딱 맞다. ‘개’망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 죄악을 씻으랴. 안타까움에서 덜어보려 한다면 길은 하나다. 시기를 앞당기는 거다. 앞당기려면 버티지 말아야 한다. 버티지 말고 놓아야 한다.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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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말해 이자의 논리는 이렇다. “나는 돈을 가졌고 너는 돈이 필요해. 그러니까 내가 돈을 쓰게 해주는 대신 이자를 청구하겠어. 왜냐하면 나는 돈이 있고 너는 돈이 없으니까.” 부의 양극화를 피하려면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돈이 있다는 이유로 생산자본의 평균 한계효율보다 빠르게 부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생산보다 소유를 통해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거의 항상 그렇다.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면 관계당국이 이자율을 더 올리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방지책이라고 하지만, 부를 계속 늘리고 돈 있는 사람들의 힘을 더 키우는 장치다. 재분배 정책 없이는, 불황은 물론 호황에도 부의 집중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134-135쪽)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펼친 주장과 같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 자본가는 항상 더 높은 소득을 올리므로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된다.”


2015년 이후 상위 1%의 부가 나머지 99%의 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상위 8명의 부가 하위 50%인 36억 명의 부와 맞먹는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이 세계 현상은 각각의 국민국가 화폐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일의 단순한 집합일까? 물론 아니다. IMF·IBRD·WTO 삼위일체 유일신이 창조한 금융체제가 주도하는 초국적 단일 현상이다. 그 유일신은 금융제국주의를 인류 최초로 건설한 USA의 아바타다. USA를 섭리하는 지성소는 월스트리트다. 월스트리트는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다.


이 위원회가 과연 “재분배”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산·소득·권리 일부를 많이 가진 계층에서 적게 가진 계층으로 이전하는 것을 그들은 공산주의라 반발하거나, 미쳤다고 조롱할 테니 말이다. 조롱 받으며 미친 짓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개벽 시대에 인식론적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복된 인식은 다름 아닌 선물. 선물의 삶으로 재분배를 시작한다. 묻는다.


“내가 바로 이 순간 선택할 선물의 삶은 무엇인가?”


알므로 신뢰한다. 거대한 모래 산을 무너뜨리는 힘은 작디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가 자리를 바꾸는 데서 생긴다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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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돈의 모순에 걸려 있다. 본래 돈은 감사와 신뢰의 징표고, 선물과 필요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며, 돈이 아니면 아무 교류도 없을 사람들 간의 교류를 돕는 촉진제로서 우리 모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돈은 불안과 빈곤을 가져왔고, 자연과 문화적 공유자원을 고갈시켜왔다. 왤까?


그 원인을 찾으려면 화폐시스템의 핵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원인은 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에 내재해 있으며, 그 시스템의 중심에 이자놀이가 있다. 이자놀이는 선물과 정반대의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이 그것을 남과 나누는 대신, 소유의 힘을 이용해 더 많이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118쪽)


문제는 이자에서 비롯한다. 이자를 낳는 빚은 언제나 새로운 돈을 수반하기에, 빚의 총액은 언제나 돈의 총액을 넘어선다. 돈의 부족은 우리를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구조적 결핍에 시달리게 만든다.(127쪽)


이자 기반의 빚 시스템에서 신용 거래는·······현재의 상품과 ‘더 많은’ 미래의 상품을 교환하므로, 우리가 ‘충분한’ 상태로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빚을 갚거나 단지 살기 위해, 우리는 남이 가진 기존의 부를 빼앗거나·······공유자원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한다.(128쪽)


불교의 <중아함경>을 제외하면 고대 종교나 철학 사상 대부분은 이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화폐시스템의 경제적 본질을 통찰하고 내린 결론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등장 이후 몇몇 이슬람국가 말고는 이자 자체를 문제 삼는 종교는 없으니 말이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모든 종교도 이제야말로 돈과 이자 문제를 놓고 근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멸절의 조짐 앞에서 이토록 무력한 종교라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지 않는 한 구원과 깨달음을 더 이상 전파할 수 없으리라.


이슬람국가, 예컨대 말레이시아가 이자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 사람들은 극단적이라고 말한다. 극단이란 중용을 잃고 치우친 상태다. 이자는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이 그것을 남과 나누는 대신, 소유의 힘을 이용해 더 많이 얻으려” 하는 수탈 수단이다. 수탈의 정도를 낮춘다고 중용이 되나. 수탈 자체를 멈추어야 중용이다. 수탈을 멈추면 “정반대의 것”이 경제를 이끈다.


선물


선물을 주고받는 경제는 “우리를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구조적 결핍에 시달리게” 하지 않는다. “남이 가진 기존의 부를 빼앗거나·······공유자원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하지 않는다. “감사와 신뢰”의 세계를 다시 펼친다. “아무 교류도 없을 사람들 간의 교류”를 촉진해 “우리 모두를 풍족하게” 하는 길에 새삼 세운다.


모순을 푼다.


* 번역 문제-본디 이자놀이는 고리대금으로, 모순은 역설로 번역되었는데 인용자가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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