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가량 입은 한복 바지다.

서툰 솜씨로나마 기워서 입고 다닌다.

삼가 대하고 함부로 없애지 않음으로써 사물을 경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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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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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인류의 천명이라 할 때, 사랑은 그 보편성 안에 개체성을 매몰시킬 수 있다. 다시 사랑 문제를 말하는 소이다.


사랑의 개체성은 사랑의 겹과 결을 칼같이 톺는다. 사랑의 보편성이 그 주체를 추상화하여 사랑을 studium에 널어놓을 때, 개체성은 그 punctum에 비수를 찔러 넣는다.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사랑하는가.


사회역사적 당위로 각성하기 훨씬 전에 사랑은 자본의 전략에 따라 편만하게 소비되었다. 이미 그 통속함은 극에 달해 있다. 아니 할 말로 개나 소나 사랑을 입에 담는 세상이다. 이 매끈함 속에서 역사적 맥락의 구불구불함과 사회적 지평의 울퉁불퉁함을 찾아내야 한다.


위기에 처한 나라 팔아먹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매판집단이 해야 할 천명의 사랑과 항일의병에서 독립군에 이르기까지 나라 지키기 위해 희생해온 민초들이 해야 할 천명의 사랑이 어찌 같을 수 있나. 개인 토지 97.6%를 소유한 상위 10%가 해야 할 천명의 사랑과 고작 2.4%를 소유한 나머지 90%가 해야 할 천명의 사랑이 어찌 같을 수 있나.


250명이나 되는 생때같은 아이들을 물에 빠뜨려 죽인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사랑과 그 범죄 이후 4년도 훨씬 지나 국가의 책임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 내린 사법이 준동하는 오늘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다. 4대강사업 벌여 국토를 유린한 이명박의 사랑과 그에 반대하여 소신공양 단행한 문수 비구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다.


사죄하는 것이 한 사랑이면 사죄를 요구하는 것도 또 다른 한 사랑이다. 불의하게 모은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 한 사랑이면 불의하게 모은 재산을 환수하는 것도 또 다른 한 사랑이다. 살인까지 저지르며 국정을 농단한 통치자를 몰아내는 것이 한 사랑이면 산업농을 거부하고 묵묵히 자연농에 귀의하는 것도 또 다른 한 사랑이다.


보편적 사랑의 저 로맨틱함만으로 시대를 전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대를 전환할 사랑은 독한 것이기도 해야 한다. 독한 사랑은 수탈당하는 사람, 슬픈 사람, 소수인 사람에게 아프디아픈 천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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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미줄꽃

살아 있으되 길들여진 진실을

단칼에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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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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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이 청소년기에서 끝나지 않듯이, 문명의 진화도 성장이 끝난다고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말하자면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도기에 있다. 육체적 성장이 끝나면 인간의 생명차원은 내면으로 향해 다른 영역의 성장을 돕는다.(175쪽)


과학시대 인류는 추상적 사고가 가능한 ‘형식적 조작기’로 알려진 인지발달 단계를 마치고, 데카르트적 과학을 통해 극단적 분리, 완전히 발달한 자아, 지나친 합리성을 지닌 십대로 접어들었다.·······극단의 분리는 재결합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자아 경계가 사랑하는 사람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완벽하게 이기적이던 세계도 무너져 내린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도 하고, 함께 창조하기도 하는 새로운 종류의 애정관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자와 완전히 분리될 때 비로소 타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고, 본래의 결합보다 더 위대한 결합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분리의 여정을 다 끝내고 이룬 결합이기 때문이다.(176쪽)


인류사를 한 인간의 일생에 빗대어, 아니 그 틀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어딘가 나이브해 보인다. 게다가 목적론적 해석의 냄새도 풍긴다. 심지어 요절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전개하는 이야기는 무근의 낙관론처럼 보인다.


이렇게 다시 물어보자. 한 인간의 일생을 틀로 썼다 할 때, 그 틀에는 해석이 없나? 없을 수 없다. 임의의 틀은 불가피하다. 4. 신성한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④에서 쓴 틀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맞나 틀리나’가 아니다. 점을 치는 게 아니니까.


문제는 해석의 틀이 기술description뿐만 아니라 처방prescription도 낳는다는 데 있다. 처방은 당위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누락시키면 해석 틀은 운명론이나 예정론으로 영락한다. 자, 이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간단명료하다.


사랑에 빠진다.


이상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연Sein 아니던가. 한 인간과 한 사회는 이 지점에서 갈라선다. 한 사회는 한 사람이 아니다. 한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집합이 아니다. 한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에서 순수한 자연Sein은 없다. 필경 누군가의 당위Sollen와 마주 엮인다. 위기가 닥친 사회일수록 당위가 향방을 결정한다. 이때 당위는 영적 본질을 지닌다. “인간의 생명차원은 내면으로 향해 다른 영역의 성장을 돕는다.” 이것이 당위로서 사랑이다. 천명으로서 사랑이다.


사랑이 천명이라면 천명은 시대를 따르니 사랑은 역사적 실재다. 고정불변의 영원한 사랑은 없다. 지난 수천 년 간 철저히 처절히 타자와 분리되어온 우리는 이제 “비로소 타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고, 본래의 결합보다 더 위대한 결합”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랑은 다른 사랑이다. 이 다른 사랑은 언젠가 천명을 따라 또 다른 사랑으로 변해갈 것이다. 변화의 결에 맡기고 우리 여정을 계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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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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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라 부르는 종잇조각과 전자신호는 그야말로 강력한 마법을 지녔다.

  그런 마법은 어떻게 작동할까? 각종 의식과 부적이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합의된 이야기, 우리 현실을 구성하고 할 일을 조정하고 삶을 조직하는 이야기를 고착시키고 영속시킨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예외적인 때는 바로 ‘사람 이야기’가 무너지는 때며, 이제 우리는 그런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169쪽)


마법은 실재 사건을 일으키는 허구다. 허구와 실재 사이에 가로놓인 것이 이야기다. 이야기가 교체되면 마법은 끝난다. 마법의 종언이 혁명이다.


마법은 어떻게 인간사에 틈입했나. 인간의 시생대 때 울음소리에서 비롯한다. 울음소리 하나로 영유아는 모든 욕망을 실현한다. 전능한 존재가 된다. 전능감은 인과가 단절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동기를 거치며 사위었다가 청소년기에 다시 점화된다. 재 점화는 자아 폭발을 낳는다. 폭발된 자아는 폭발적 마법을 구사한다. 폭발적 마법이 부리는 이야기는 모든 것을 갈가리 찢는다. 그 폐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움튼다. 새로운 이야기는 의식을 환대로, 부적을 선물로 바꾼다.


환대와 선물 시대는 마법을 축출하지 않는다. 진짜 마법으로 혁명한다. 혁명으로서 마법은 낱 온 생명의 한 꿈을 일으키는 실재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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