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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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복음서에는 예수가 타락 이전 또는 타락 초월의 일치와 영적임재를 체험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하늘의 왕국이 네 안에 있다.”거나, “나는 아버지 하느님 안에 있으며, 아버지 하느님은 내 안에 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약 1세기 전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옥시린쿠스” 파피루스의 <예수 말씀집>을 보면·······예수가 말하는 신은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숭배하는 분리되고 의인화된 독립체가 아니다. 신은 인간 내부에 있는 영이며, 예수 자신이-신의 현현으로서-모든 피조물 안에 깃든 영이다. “돌을 들어라, 그러면 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무를 쪼개라, 거기 내가 있을 것이다.”(379-381쪽)


기독교에는 1000년대 시작과 함께·······수많은 저명 신비주의자가 연속해서 나타났다. 이런 신비주의자의·······신 개념은 정통 기독교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그의 신은 세상을 돌보는 인격신이 아니었다. 그의 신은 실질적으로 브라만이고 영적 힘이었다. 그에게 전체 세계는 신의 빛으로 충만하다.(387쪽)


스티브 테일러가 제시하는 예수의 신은 유일 인격신이 아니다. 복음서가 암시하고 옥시린쿠스 파피루스가 전하는 예수의 신 인식은 “타락 이전 또는 타락 초월의 일치와 영적임재”를 반영한다.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예수는 모세 종교, 그러니까 사하라시아 종교의 향벽설위向壁設位를 타파하고 향아설위向我設位를 복원하려 했다. 향아설위, 그러니까 아버지 하느님-예수 자신-제자-작은 자-돌과 나무로 번져가는 “일치와 영적임재”를 제시함으로써 모든 존재의 신성과 그 네트워킹인 무한-신 사건의 전경을 넌지시 열어 보인 것이다.


예수 “믿는” 무리는 각기 무궁한 다양성으로 무진하게 네트워킹 해냄으로써 무한-신 사건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나아갔는가? 아니다.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제도 기독교 주류는 예수 진리 파악에 철저히 처절히 실패했다. 예수의 무한-신 사건은 성인숭배 중심의 지역 기반 작은 공동체 민중과 신비주의 소종파의 지류로만 겨우 명맥을 이어왔을 뿐, 기독교 전반은 타락의 본질에 대한 무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타락의 본질은 거대유일신에게 지은 원죄가 아니다. 거대유일신을 세계 밖에 만들어 세우고 우상으로 숭배한 것, 그 참람한 분리가 타락의 본질이다. 분리 없는 곳에 우상이 있을 리 없다. 기독교는 이 진리를 뒤집은 오류에 침륜되어 있다. 이 실재를 간과하는 한, 어떤 식의 개혁으로도 기독교는 예수 진리에 가닿을 수 없다.


식탁에 놓인 봄동 한 포기가 살아 있는 하느님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걸 주신 분이라며 스스로 개입시킨 허깨비에게 감사기도 올리는 타락한 영혼이 입에 예수를 담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봄동 버려서 얻은 ‘천국’이 어찌 구원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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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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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거의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붓다에게 중요한 단 하나의 문제는 타락 이후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고통에서 인간을 놓여나게 하는 것이었다.(365쪽)


  한 가지 의미에서 불교-적어도 초기불교에서-는 완전한 “타락 초월” 운동이 아니다. 불교에는 세계가 신성하다는 의식이 없다. 지상에서의 삶은 항상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유는 물질세계를 초월해야 온다.(367쪽)


  그러나 2세기경부터는 타락 이전 세계관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외향성 전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것은 모든 실재를 영혼의 현시로 보았으며, 인간 육체와 물질 영역 전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이 시기에 열반과 삼매는 하나라는 급진적인 대승불교 운동이 오래된 남방불교 전통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승불교의 중요 경전인 반야심경에 따르면 “형태가 있는 것은 형태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형태가 없는 것은 형태가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이 물질이며 물질이 영혼이다.·······열반은 육체를 두고 떠나 물질적 영역을 초월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384쪽)


흔히 불교사상을 심오하다 하지만 본디 붓다의 관심사는 심오함과 거리가 멀다. 붓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기無記인데 심오한 질문들에 답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붓다는 오직 “고통에서 인간을 놓여나게 하는 것”에만 유의할 따름이다. 경험적 실용주의 정도로 삶에 대한 붓다의 태도를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 고통의 유래까지도 경험과 실용 범위 안에서 찾는 것이 붓다답다. 붓다는 고통의 원인이 갈망craving이라 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갈망의 근원이 자아폭발이라 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그 차이가 “사소하며slight” “최종 결과는 같다”고 한다.(367쪽) 과연 갈망의 극복과 자아폭발의 극복은 같은 것인가?


최종 결과가 같으려면 그 사소한 차이에 유념해야 한다. 실제 차이는 자아폭발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가 천지를 가른다. 자아폭발을 모르고 하는 행위는 초월의 노력일지라도 자아폭발 메커니즘을 따른다. 불교수행이 고도한 정신 에너지를 고립 상태로 집중하는 방식인 이유가 여기 있다.


안다connaître는 것은 함께 태어난다naître avec는 것이다(미셸 마페졸리). 자아폭발의 진실을 알고 초월하려는 사람은 공동체적·생태학적·디오니소스적 방식에 열려 있다. 홀로 세계를 떠나 주지적 각성에 이르는 아라한프로젝트는 자아폭발의 세련된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붓다의 의도와 무관하게 불교는 이 얼굴로 산다.


급진적인 대승불교가 “열반은 육체를 두고 떠나 물질적 영역을 초월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아 色卽是空 空卽是色을 천명했지만 온전히 “세계가 신성하다는 의식”에 이르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적어도 오늘날 이 땅 불자들을 보면 불교 신비전통은 실제 삶과 무관하다. 분리문명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라는 유명한 선문답이 있다. 여기서는 개미의 불성까지 거론된다. 식물이 거론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승려들이 육식 않고 채식하는 걸 뭐나 되는 듯 내세우지만 사실 종적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피상적 생명관일 뿐이다. 바랭이 풀 한 포기를 부처로 섬길 수 없다면 타락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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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9-03-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자아농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말을 할 때마다 나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자의식이 너무 짙어서 자기 농도를 낮추라는 말씀이 인상깊었거든요.

bari_che 2019-03-13 13:4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표현이 있군요. 실은 제가 코이케 류노스케를 잘 모릅니다. 죄송^^

자아농도가 높다는 말은 자아가 폭발했다는 말과 동일한 맥락인 듯합니다. 다만 농도는 그야말로 정도 문제이고 폭발은 분리 문제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달라보입니다. 분리는 존재 자체를 왜곡하니 말입니다.
 


이젠 인적마저 드물다. 가족이 곧 스스로 천막 거둔다 한다. 기획한 제노사이드가 분명한데 여전히 침묵만 흐른다. 소시민 나는 그저 리본 몇 개 집어들고 묵념하고 돌아설 뿐이다. 진실은 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밝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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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 아빠 유경근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1. 이제는 우리 안에 암약하며 작동하고 있는 박근혜 망령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세월호참사를 해상교통사고로 규정해버린 <박근혜-자유한국당-검찰-조중동-해피아-자칭전문가>의 음모를 깨버려야 진짜 진상규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참사는 해상교통사고(안전사고)”라는 프레임에 갇혀(또는 유도해) 안전대책 강화(법규 강화, 안전의식 고취, 구조/안전훈련 강화 등등)를 세월호참사의 대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2. 그러려면 “세월호참사는 살인범죄”라고 명쾌하게 규정하고, 살인자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검찰특별수사단>입니다. 박근혜 시절에 이미 수사를 끝낸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설치하고 “전면재수사”에 나서려면 정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문재인정부가 결단할 수 있도록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여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3.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핵심과제는 “왜 선원만 표적구조하고 승객들에게는 어떠한 구조시도도 하지 않고 죽였는지”, “세월호 급변침과 침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구조를 하지 않은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고 그 책임을 <살인죄>로 묻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살인의 동기와 과정과 책임”을 밝히는 것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전부이며, 이는 마땅히 검찰이 해내야 할 의무입니다.

4.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려면 반드시 <자유한국당>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은 바퀴벌레보다도 더 질기게 살아남아 여전히 패악질을 일삼는 “국정농단적폐잔당”일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세월호참사의 범인이거나, 최소한 살인자를 은닉, 비호하는 공범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계속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당장 해체시켜버리는 것 뿐입니다.

5.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방향타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검찰특별수사단>과 긴밀히 공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회적참사 특조위> 내 일부에 있는 “세월호참사는 해상교통사고(안전사고)”라는 거짓프레임을 몰아내야 합니다. 특히 살인범죄인 세월호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안전사고 대책들을 세월호참사의 대책인양 위장하고 피해자들의 동의를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전사회소위원회”가 각별히 이를 유념해야 합니다.

6.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저는 오직 “세월호참사는 살인범죄”임을 증명하는 데만 집중하고,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과제들은 거들떠도 안볼 것입니다. 이제서야 겨우 진상조사를 시작하는 마당에 다른건 쳐다볼 여유도 없거니와 ‘예은이 아빠’로서 할 도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월호참사 5주기를 ‘살인범죄 진상규명의 출발점’으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4월 13일 광화문 추모행사와 16일 안산 공식추모식은 물론 전국/해외의 5주기 관련 행사, 모임, 행동에서 <4.16시민/동포>들께서도 같은 외침과 행동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확신에 찬 외침과 행동을 하실 수 있도록 <살인범죄의 증거>가 곧 드러날 것이라는 ‘희망(?)’을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4.16시민/동포들의 네트워킹과 방향제시”에 더 집중해주시고 선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p.s. 지금도 ‘세월호 아이들/유가족들’ 덕분에 박근혜를 탄핵/구속하고 적폐세력을 솎아냈으며 공영방송을 되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세월호참사는 살인범죄”이며, <검찰특별수사단>을 설치, 수사해야 하고, <자유한국당>을 해체시켜야 한다고 함께 외치고 행동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박근혜를 탄핵하고 감옥에 보냈으니 된거 아니냐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박근혜는 세월호참사 때문에 탄핵된 것이, 감옥 간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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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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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문제는 우리가 의지를 지니고 있다 해도 이미 너무 악화되어서 개선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인류의 곤경은 음울하다. 근본적인 문제가 6000년이나 된 타락한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황은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보인다. 정신이 문제라면,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방법은, 이 정신이 변화하는 것, 어떻게든 타락한 정신을 초월하여, 자연이 우리와 연결된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회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상정이 타당하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347-348쪽)


매일 산길을 걸을 때, 나는 걷기 전문가의 조언 가운데 하나를 따르지 않는다. 땅을 살피기 위해서 시선을 아래로 둔다.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밟지 않으려 함이다. 먹이 쪼는 참새를 피해 돌아가려 함이다. 인격인 내가 비인격인 그들의 소미장엄에 표하는 근원 예의다. 소미장엄에게 거대한 인격 에너지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내 인격의 거대 에너지가 소미한 소식으로 “자라서” 작은 꽃과 통성명하고 참새와 식사하는 날을 꿈꾸는 건 신비주의일까?


자아폭발의 역사적 실재성을 인정하든 않든 인간에게 인격 존재라는 우월감과 편견이 뿌리 깊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은 인격을 세계의 정상에 세우고 비인격 존재에게서 인격과 “연결된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거두어들였다. 대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채워 넣었다. 자연 생태계를 잔혹하게 유린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음모의 전 과정에서 발군의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사하라시아 셈족의 거대유일신교, 특히 기독교다.


그들은 인격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고, 그 인간이 지배할 자연도 창조했다는 참람한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그 내러티브는 인격신의 계시로 투사됨으로써 영속적 도착구조가 이루어졌다. 인간이 만든 신이 도리어 인간의 숭배를 받는 과정에서 자연은 갈가리 찢어졌다. (이 도착구조는 일거에 문명 전반을 가로질렀다. 인간이 만든 화폐가 도리어 인간의 숭배를 받는 과정에서 생태적 순환이 무너졌다. 인간이 만든 권력이 도리어 인간의 숭배를 받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망가졌다.)


맑은 영혼으로 자연에 배어들어보라. 그 신비 하나하나를 인격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면 말이 안 된다는 도착증 환자들의 주장과 반대로 인격신이 창조했다면 그 신비 하나하나에 대한 모독이 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인격은 비인격에서 발원한다. 비인격이 인격을 품은 범주다. 인격은 존재의 적응 또는 작용 방식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중심본능을 내려놓으면 자연의 종말, 최후 파국이 아닌 타락 인간의 종말이 온다. 하느님나라는 자연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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