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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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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서나 어느 세대나 모든 여성은 출산 시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해 비슷한 방법을 쓴다.·······엄마 아니면 가족 운데 엄마 대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나 혹은 산파 등 이웃사람 중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등이 자신 가까이 있는지 확인하려 한다. 믿을만한 조산사는 엄마를 대신할 수 있다. 안정감을 주되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지 않는 사람의 원형이 엄마다.(64쪽)


엄마 혹은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산모에게 안정감을 주고 산모가 마음의 안정을 누릴 때 순산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본문의 내용은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티베트 의학의 지혜』라는 책에 따르면 인디아·티베트 전통 사회에서 산바라지의 제1순위는 아기의 이모, 제2순위는 아기의 외할머니입니다. 산모는 물론 신생아까지 배려한 좀 더 수준 높은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셸 오당의 생각이 미처 미치지 못한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태아는 초기에 엄마의 마음 상태를 매개로 외부 조건과 간접 접촉을 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소통합니다. 무엇보다 아기는 음성 포함 여러 정보를 해석하고 종합하여 엄마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마 모습은 그렇게 아기에게 생애 최초의 안정감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은 일단 신생아에게 일종의 공포입니다. 불안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생애 최초시기에 아기가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을 안정적으로 만나려면 그 이미지가 엄마와 가까워야 합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자신의 엄마가 더 가까울지 모르지만 아기 입장에서는 엄마의 자매가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아기 입장을 좀 더 반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엄격한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핵심이 엄마와 아기가 모두 안정감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이고 보면 그러기 위해 어머니/외할머니든 자매/이모든, 출산을 도우려는 그 누구든 평소 태아와 교감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업 출산을 혁파하고 사랑의 출산으로 복귀하려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미셸 오당 같은 근본적 거장조차도 어른 중심 시각의 잔재를 다 씻어내지 못할 만큼 타락한 문명의 독성은 강합니다. 우리 좀 더 치밀하고 좀 더 맹렬하게 문제적이어야겠습니다. 전체 프레임을 걸고 싸우는 전쟁에도 능해야 하지만 소소하고 미미하게 스며드는 전투에도 능해야 합니다. 출산이란 말은 그 자체로 이미 엄마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아기의 입장에서는 출생입니다. 산업 출생에서 아기를 구하려면 아기의 생명감각으로 삼가 스며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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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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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모든 다양한 문화가 출산을 방해하는 정도에 따라 인간의 잠재적 공격성을 각기 다른 정도와 다른 방향으로 발달시켜온 것이다.(51쪽)

  ·······빌헬름 라이히 같은 인간 본성회복을 주장하는 전위적 지지자·······는 “신생아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해서 고려할 때 비로소 문명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56쪽)


저자가 무슨 단어를 썼는지 모르나 “출산을 방해”한다는 번역은 전체 문맥을 고려하면 “출산을 훼손”한다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그 생리적 이치를 따르지 못하도록 토건 의료로 통제·왜곡·침탈하는 것이므로 방해라는 소극적 표현보다 훼손이라는 적극적 표현이 진실에 부합할 터이기 때문입니다.


임신-출산-육아의 전 과정에 의료가 권위적·공격적으로 개입하여 여성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병자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합니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과정 전체를 병리상태로 몰아버리는 문화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거세된 여성에게 남는 것은 오로지 “공격성”뿐입니다.


출산을 전후한 엄마 상태를 병리상태로 몰아버리면 태중, 출산, 양육 상태에 있는 아기의 상태 전반 또한 당연히 병리상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생애의 최초이자 핵심인 시기를 병리상태로 몰아버리는 문화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거세된 아기에게 남는 것은 오로지 “공격성”뿐입니다.


빌헬름 라이히가 무슨 단어를 썼는지 모르나 “신생아 복지”라는 표현은 전체 문맥을 고려하면 “신생아 존엄”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그 생리적 이치를 따르지 못하도록 토건 의료로 통제·왜곡·침탈하는 것이므로 복지라는 도구적 표현보다 존엄이라는 근원적 표현이 진실에 부합할 터이기 때문입니다.


양수가 미리 터져 감염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 딸은 유도분만을 통해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주치의와 병원 측이 당시 조건치고는 공격적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주어서 그나마 나은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분만실 밖으로 나오면서 아내가 처음 지은 표정, 처음 한 말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아기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경이로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좀 더 온전하게 훼손을 차단했더라면, 좀 더 온전하게 존엄을 지켜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죄스러움 또한 죽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남은 날들은 저 훼손된 모성/여성을 복원하고, 새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일에 어찌 이바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저만의 각오가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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