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걸어와 냉방 장치가 가동되는 한의원에 들어서면서 “아, 덥네!” 하는 사람, 그리고 “와, 시원하다!” 하는 사람.


얼핏 보면 전자는 부정적이고 후자는 긍정적이다. 힐끗 보면 전자는 '아, 옛날이여!’ 스타일이고 후자는 ‘Carpe diem!’ 스타일이다. 긍정의 힘도 이 순간의 충실함도 포르노 사회의 자양분으로 수탈당한다는 사실을 알면 사정은 아연 달라진다.


삼복더위라는 전체 진실에서 볼 때, 냉방 장치 가동되는 시공간은 일시적·부분적인 현실이다. “아, 덥네!” 하는 사람은 그 사유가 전체 맥락에 닿아 있다. “와, 시원하다!” 하는 사람은 전체 맥락이 누락된 눈앞의 현상만 본다. 전체 맥락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문제 지향이다. 눈앞의 현상만 좇는 사람은 해답 지향이다. 해답은 문제 안에 있다.


문제 지향의 사람은 답을 빨리 찾으려고 덤비지 않는다. 덤비지 않는 사람은 더디 간다. 더디 가는 사람은 편의와 향락에 물들지 않는다. 신마저 편의와 향락 앞에 엎어진 21세기, 더디 가는 삶은 욕됨으로 스스로 스미는 것이다. 욕됨으로 스스로 스미는 것은 단순한 실천이 아니다. 실천을 무한히 일으키는 창조다. 창조는 근원인 영점 사건이다. 근원인 영점 사건은 자신을 無로 만들어 모두를 無限이 되게 하는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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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醫者로 사는 동안 제게는 저를 아버지라 부르는, 또는 그리 여기는 사람이 여럿 생겼습니다. 숙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 정도 사랑과 신뢰, 그리고 존경의 정서가 쟁여졌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마음치유 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지닌 정서의 폭은 십인십색이거니와 매우 각별한 인연으로 저와 맺어진 한 청년이 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그의 상태는 마치 그 계절과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깨질 듯 달려드는 두통만이 살아 있는 표지였습니다. 바짝 마른 몸에 더 바짝 마른 마음이 일그러진 문짝처럼 을씨년스럽게 매달려 있는 풍경은 기괴하기까지 했습니다. 얼굴에는 ‘신기神氣’가 파르라니 흘렀습니다. 눈빛 앙칼지기도 여간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사회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극심한 대인공포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하다못해 알바 자리 하나 구하려 해도, 사람 눈 마주보며 면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두통은 심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이상한 한의사 하나를 발견하고 달려왔습니다.


기본적인 상황 파악을 끝내고 치료 일정을 잡은 첫 상담 일주일 뒤, 두 번째 상담 예약을 했습니다. 무심코 잡아 놓고 메모하지 않은 탓에 그 예약일이 성탄절인 줄 몰랐습니다. 까맣게 잊었으니, 한의원 문을 턱 하니 닫고, 저는 휴식을 즐겼습니다. 밤이 되어 혹시 온라인 예약 들어온 것이 있나, 살피려고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아뿔싸! 문 닫힌 한의원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다 돌아가서 쓴 그의 글이 분노와 실망을 그득 문 채, 상담실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사과 글을 올리고, 바로 다음 날 오전 상담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제 사과와 제안을 받아들여, 항의 글을 내렸습니다. 저는 제 사과 글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걸어두었습니다. 이따금씩 그 글을 읽으며, 자세를 가다듬곤 했습니다. 이렇게 액땜을 다부지게 하고 나서, 저와 그의 인연은 빠르게 깊어졌습니다.


그의 부모는 사이가 본디-그가 기억하는 한-좋지 않았습니다. 불화는 다양하게, 그러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었습니다. 그의 10대 중반 무렵,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사건이 악화의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외도로 비화하면서 이혼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선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받은 상처는 컸습니다. 제대로 학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아, 생활도 궁핍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점점 더 소원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시나브로 알코올중독에 빠져들었습니다. 우울과 불안이 함께 그를 덮쳤습니다. 사소한 일상마저 깡그리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 계속될 때, 그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저와 같은 부류의 사람 눈에만 들어오는 육감 같은 것입니다. 다름 아닌 무속인의 길입니다. 사회적 평판을 문제 삼아서가 아니라, 그 삶의 신산함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기에, 어찌 하든 피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제게 홀연 타개책이 떠올랐습니다.


“제3의 길이 딱 하나 있다. 좋은 분 소개할 테니 가봐.”


제가 던진 승부수는 다름 아닌 요가 마스터의 길이었습니다. 제가 소개할 사람 이름을 말했더니,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연히 한 번 뵌 적이 있는 분이라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는 흔쾌히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늘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지금 요가 마스터의 길을 나름대로 곡진히 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뜬금없이 그가 오겠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사주며 그가 말했습니다.


“그 날 아버지가 던지신 승부수, 아무래도 제 인생에서 신의 한 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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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月來花社

山翁起整衣

重來有好客

且莫掩柴扉


고갯마루 달이 떠 꽃말 비추면

외딴 노인 일어나 옷깃 여미네

반가운 어떤 손이 더디 오시매

아직은 사립문 닫을 때 아니네


_권상하權尙夏1641~1721  _필자 글씨, 번역


*


달빛 아래 옷깃 여미고 앉아 더디 오는 손을 기다리는 외딴 노인의 자태가 너무도 선연히 그려진다. 아, 도저한 느지막함이여. 내 삶의 빛으로 보니 중래重來가 '더디 오다'로 읽힌다. 지하철역에 걸린 시 하나가 이런 감동을 준다. 인생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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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똑 그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유령처럼 들어서는 광경을 본 제 영혼이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넷 에움 모두 숨죽이는 듯했습니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귀신이 씌웠다고 하면서 그를 골방에 가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이비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안찰기도 한다며 온몸을 두들겨 팼습니다. 그는 네 차례나 도망쳤습니다. 그때마다 잡혀 들어와 더욱 모질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숨겨두었던 얼마간의 돈을 들려서 제게 보냈습니다. 헐떡임조차 나지막한 숨 사이로 더듬더듬 기어가던 그의 이야기는 얼마 못 가 멈추었습니다. 말할 기력도 부치거니와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겹겹 쌓인 고개를 넘어가기 무서웠던 것입니다. 저는 그를 잠시 누워 쉬게 했습니다. 한참 뒤, 저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얀 종이에는 큼직한 글자 두 개가 쓰여 있었습니다.


“가출”


심신이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서도 그는 단호히 결단했습니다. 이튿날 가방 두 개를 들고 한의원에 나타났습니다. 두 명의 친구 집에서 하루씩 묵은 뒤 한의원으로 돌아왔기에 ‘마침 봄이기도 하니 한의원에 머무르면서 갈 곳을 찾아보라.’ 일렀습니다. 밥도 사먹고 영화관도 가고 책도 사 볼 수 있게 얼마간 용돈을 쥐어주었습니다. 사흘 지나 그는 꽤 여러 날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그가 말했습니다.


“시력이 떨어져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젠 파란 나뭇잎이 보여요.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이젠 내용이 머리에 들어와요. 식욕이 없어 도통 먹을 수 없었는데 이젠 맛있어요. 이거 다 먹을 거예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그는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며 그렇게 존엄한 식사를 그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작별인사를 하는 그에게 한약과 용돈을 건네며 말해주었습니다.


“부디 자기 자신의 연인으로 사세요. 스스로 연애를 걸지 않는데 누가 있어 프러포즈를 해오겠어요.”


그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습니다. 어름어름 잊힐 만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완전히 탈출했음을 알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제 걱정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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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암이 발병해 그만두었다가 ‘구름에 달 가듯이’ 교인들과 노닐겠다며 새 교회를 여는 친구 목사 초대로 창립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부부와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제가 도리어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그들은 그때로부터도 몇 년 전 10대 초반 아들을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뚜렛증후군’이었습니다. 이 질병은 틱 장애가 1년 이상 치료되지 않는 중증 상태입니다.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 최고권위자-무슨 근거에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도 있었답니다. 3년 이상 그렇게 헤맸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애를 끓이던 차에 우연히 한 선배한테 제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바로 이 해후를 가능케 한 제 친구 목사였습니다.


상황 설명을 간략하게 들은 다음, 저는 부모를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아이와 단 둘이 마주앉았습니다. 아이는 질병에 시달려 낯빛이 검었습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해 몸이 전체적으로 아주 작았습니다. 저는 아이와 눈을 맞추려고 납작 엎드렸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이 병이 왜 생겼는지 알지?”


아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알아요. 근데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아이는 여태껏 누가 물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3년이나 지나도록, 그의 부모는 그렇다 치고, 수많은 의사들조차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아이는 모를 거라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마음 상태와 무관한 병이라는 잘못된 의학적 판단 때문입니다. 아이가 제게 들려준 사연을,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부모가 들려준 이야기와 결합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때 아버지는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대개 그렇듯 새벽기도회는 늘 전도사 몫이었습니다. 전도사 부부는 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집을 나섭니다. 어느 날 아기가 우연히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본능적으로 더듬어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없습니다. 공포가 들이닥칩니다. 아기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무리 울며불며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듭니다. 돌아온 부모는 여전히 잠들어 있으니 별일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시나브로 숨을 크게 몰아쉬는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합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갑니다. 아이가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자 비로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병의 뿌리가 깊어진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얼른 낫고 싶으냐?’ 물었습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아이를 진단 베드로 안내했습니다. 반듯이 눕힌 다음 ‘하루라도 빨리 고쳐줄게. 그 대신 문제 하나 풀어볼래?’ 하고 아이가 누운 침대로 다가가 우뚝 섰습니다.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올리고 손을 맹수 앞발 모양으로 만들며 ‘어흥!’ 소리를 냈습니다. 재빨리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를 잡아먹으려고 이렇게 호랑이가 달려들 때 넌 어떤 마음이 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니?”


어른 같으면 이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당근, 공포죠.”


아이가 제 의중을 간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공포랑 친구 먹을 수 있어?”


아이는 힘차게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공포랑 친구 먹는’ 이치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아이에게는 숨 막히는 공포가 덮칩니다. 공포로 말미암아 살아남기 위한 첫 방어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는 것입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격정 상태에서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통증이 생깁니다. 통증은 점점 더 강해집니다. 극렬한 통증은 다시 공포를 부릅니다. 이 악순환은 통증을 없앤다고, 숨 크게 몰아쉬기를 없앤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공포가 지니는 양면성을 직시해야만 끊어집니다. 공포는 누구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어둠임과 동시에 생명을 지켜내려면 없어서는 안 될 날카로운 빛의 감정입니다. 이 이치를 알아차린 아이에게 제가 제안했습니다.


“자, 숨 크게 몰아쉬기가 닥쳐온다고 상상하고, ‘친구야, 어서 와!’ 하면서 두 팔 벌려 숨을 더 크게 몰아쉬어보자.”


아이는 ‘상상하는 거 말고 진짜 해볼게요.’ 하면서 잠시 저를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합니다. 제가 나가는 즉시 그 증상이 재현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밖으로 나와서 잠시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가 ‘됐다.’며 손짓합니다. 아이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담은 웃음입니다.


부모는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누군가와 단 둘이서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날, 심지어 첫 만남이었는데 무려 40분이나 함께 대화를 했지 뭡니까. 더군다나 아이가 웃기까지 했으니·······.


그 날부터 꼭 한 달 동안, 아이는 한약 두 제를 먹고 상담을 세 번 더 했습니다. 3년 동안 전혀 변화 없던 아이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남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도리어 불안해하던 부모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부모는 제게 경이로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학교를 갈 수 없어 홈스쿨링으로 견디던 아이가 미국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축구선수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교 회장이라는 것입니다. 아, 아이와 저는 그렇게나 짧은 시간에 그렇게도 놀라운 삶을 함께 준비해갔던 것입니다.


부모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가 갈 천국이 있기는 하다면 저 아이를 치료한 덕분이 아닐까·······.’ 농담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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