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아이젠스타인이 날카롭게 내 폐부를 찔러온다.


“사랑은 익명으로 할 수 없다.”


차마 가 닿을 수 없었던 진실이다. 60년 남짓한 생애 기조가 익명성이었기 때문이다. 내 익명의 삶은 시원적 방치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강권을 거쳐 마침내 자발적 중독으로까지 나아갔다.


있으나 불리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의 누적은 나를 익명성에 깊숙이 접어 넣었다. 부피를 상실한 내 이름은 어디에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내 이름은 거의 질문되지 않았다. 스스로 이름을 크게 외칠 때는 듣는 이가 없었다. 많은 사람 속에서는 이름 부를 목소리가 사라졌다. 익명성은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 흐름에 맡기면 언제나 익명이 보장되는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어쩌다 중심으로 흘러들면 익명은 돌연 요구가 된다. 그 요구에 속절없어진 나는 이름을 가리고 선사膳賜에 배어든다. 선사에 배어든 나는 무색투명해진다. 무색투명한 자가 건넨 선물이 연대의 고리가 될 리 없다. 연대 바깥에 선 자는 공동체 일원이 아니다. 나는 초월자연하는 국외자였다. 거대신의 헛된 그림자를 여전히 밟고 있었다. 나는 오만을 흉내 냈다. 나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인색에 빠져 있었다. 인색은 자기 착취다. 자기 착취는 이내 그 경계를 넘어간다. 경계 너머 남에게도 내게도 이름 자체가 선물이며 사랑이라는 진실을 느지막이 깨닫는다. 사랑은 이름에서 출발한다.


비로소 이름을 찾아 나선다. 이름은 은총이자 천명이다. 은총이자 천명인 이름은 명명백백 드러나 공유되어야 한다. 명실상부 공유의 삶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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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戌噛子

요키, 제리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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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으로 걸어

보라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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燔鷄燭火燒盜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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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에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왼쪽 것이었다. 올해 겨울에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오른 쪽 것이었다. 작년에 남은 오른쪽 장갑과 올해 남은 왼쪽 장갑을 나란히 놓아본다. 제짝이 아닌 만큼 다르다. 그 다름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딱 하나뿐이다. 가족도 한의원 간호사도 송년회 온 동창도 지하철 승객도 광화문 행인도 내가 짝짝이 장갑을 끼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매일 아침 나는 짝짝이 상태를 알아차리며 유심히 장갑을 낀다. 사물과 더불어 노는 유희의 시간이다. 매일 밤 나는 짝짝이 상태를 알아차리며 유심히 장갑을 벗는다. 사물을 경외하는 제의의 시간이다. 잃어버린 뒤에야 짝짝이 장갑을 낀 뒤에야 가 닿은 진리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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