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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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화폐시스템에서는 화폐창출 과정 자체가 구조의 결핍을 유지하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풍족하게 사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누군가 번창하면 다른 누군가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 손해를 보게 돼 있다.·······돈을 둘러싼 우리의 죄의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147-148쪽)


우리시대 가장 맑은 영혼을 지녔던 사람 권정생은 말했다.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


그는 한평생 그 말대로 살았다. 그가 쓴 『몽실 언니』, 『강아지 똥』 들에서 나오는 거액의 인세를 모두 아픈 어린이들에게 쓰도록 남기고 떠났다.


간신히 겨우겨우는 어느 정도의 불편을 말하는가? 그렇게 돈이 많아도 45만원에 가사도우미 쓰려고 불법과 갑질을 마다하지 않은 한진 이명희 보면 부자일수록 결핍의식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풍족하면 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이익을 탐한다. 내 이익이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 내 번창이 누군가를 가난하게 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것은 필경 거꾸로 규정될 수밖에 없지 싶다. 자신이 풍족하게 산다고 생각하여 더는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사람 아닐까.


더는 이익을 탐하지 않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을 일일이 열거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마다 다 다를 테니 말이다. 두 가지 정도의 자기질문을 지니고 실천하면 막연한 관념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1. 내가 이 돈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은 나와 연속된 존재인가?


이 질문은 기존 화폐시스템의 토대가 되는 분리 자아를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한다.


2. 내 손에 든 이 돈은 상거래용인가, 선물거래용인가?


이 질문은 돈 개념과 돈 자체를 바꾸려는 목적에서 한다.


이 두 질문으로도 어떤 감각이 생기지 않으면 다음 말을 음미한다.


돈을 둘러싼 우리의 죄의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화폐적 인생을 불가피하게 사는 동안 찰나마다 죄의식을 지닌다면 막연한 관념성은 뿌리부터 말라가지 않을까. 이때 죄의식은 당연히 물질적 본질을 지닌다. 물질적 죄의식, 그 참된 신성함을 느끼려 권정생의 삶 앞에 무릎으로 서본다.



권정생의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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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141쪽)


이자 기반 시스템에서 계급전쟁은·······불가피하다.·······화폐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기 전까지, 계급전쟁은 점점 심화될 것이다.(138쪽)


개인의 채무 이행 거부는 법 제도와 국가의 적법성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가능한 일이다. 그런 붕괴는 돈과 재산이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상징의 관습적 해석에 근거한 모든 것을 빼고 나면, 세계 최고 부자·······도 나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집이 내 집보다 클지 몰라도, 문서상으로 그 집이 그의 것이라 해도, 그 또한 관습의 문제일 뿐이다.(140쪽)


프로젝트는 기획이며 사업이다. 이자 기반 화폐시스템에서 빚은 돈 없는 사람의 필요를 따라 생기지 않는다. 돈 있는 사람이 토건으로 일으킨다. 말이 좋아 프로젝트다. 음모가 적실한 표현이다. 계급전쟁의 불가피성을 머금으니.


법 제도와 국가의 적법성은 사실상 허울뿐인지 오래다. 법과 국가가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빚을 일으키는 음모 과두와 그 주구들뿐이다. 이미 붕괴된 적법성이 그나마 지탱되고 있는 것은 마취 효과 때문이다.


마취에서 깨어난 사람 있어, “돈과 재산이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인다. “상징의 관습적 해석”을 넘어간다. 채무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진다. 계급전쟁의 서막이거나 기존 화폐시스템에 종언을 고하는 조종이거나.


어디 연착륙이 쉽겠나.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인류사적 현 단계를 한 인간의 일생에 빗대어 “성장의 한계, 미성년기의 끝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112쪽)고 한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닐진대 진통은 당연히도 엄청나게 크지 않겠나.


그 누구라도 무서워하는 파국. 현실에서 보면 딱 맞다. ‘개’망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 죄악을 씻으랴. 안타까움에서 덜어보려 한다면 길은 하나다. 시기를 앞당기는 거다. 앞당기려면 버티지 말아야 한다. 버티지 말고 놓아야 한다.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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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말해 이자의 논리는 이렇다. “나는 돈을 가졌고 너는 돈이 필요해. 그러니까 내가 돈을 쓰게 해주는 대신 이자를 청구하겠어. 왜냐하면 나는 돈이 있고 너는 돈이 없으니까.” 부의 양극화를 피하려면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돈이 있다는 이유로 생산자본의 평균 한계효율보다 빠르게 부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생산보다 소유를 통해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거의 항상 그렇다.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면 관계당국이 이자율을 더 올리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방지책이라고 하지만, 부를 계속 늘리고 돈 있는 사람들의 힘을 더 키우는 장치다. 재분배 정책 없이는, 불황은 물론 호황에도 부의 집중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134-135쪽)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펼친 주장과 같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 자본가는 항상 더 높은 소득을 올리므로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된다.”


2015년 이후 상위 1%의 부가 나머지 99%의 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상위 8명의 부가 하위 50%인 36억 명의 부와 맞먹는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이 세계 현상은 각각의 국민국가 화폐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일의 단순한 집합일까? 물론 아니다. IMF·IBRD·WTO 삼위일체 유일신이 창조한 금융체제가 주도하는 초국적 단일 현상이다. 그 유일신은 금융제국주의를 인류 최초로 건설한 USA의 아바타다. USA를 섭리하는 지성소는 월스트리트다. 월스트리트는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다.


이 위원회가 과연 “재분배”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산·소득·권리 일부를 많이 가진 계층에서 적게 가진 계층으로 이전하는 것을 그들은 공산주의라 반발하거나, 미쳤다고 조롱할 테니 말이다. 조롱 받으며 미친 짓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개벽 시대에 인식론적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복된 인식은 다름 아닌 선물. 선물의 삶으로 재분배를 시작한다. 묻는다.


“내가 바로 이 순간 선택할 선물의 삶은 무엇인가?”


알므로 신뢰한다. 거대한 모래 산을 무너뜨리는 힘은 작디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가 자리를 바꾸는 데서 생긴다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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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돈의 모순에 걸려 있다. 본래 돈은 감사와 신뢰의 징표고, 선물과 필요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며, 돈이 아니면 아무 교류도 없을 사람들 간의 교류를 돕는 촉진제로서 우리 모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돈은 불안과 빈곤을 가져왔고, 자연과 문화적 공유자원을 고갈시켜왔다. 왤까?


그 원인을 찾으려면 화폐시스템의 핵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원인은 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에 내재해 있으며, 그 시스템의 중심에 이자놀이가 있다. 이자놀이는 선물과 정반대의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이 그것을 남과 나누는 대신, 소유의 힘을 이용해 더 많이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118쪽)


문제는 이자에서 비롯한다. 이자를 낳는 빚은 언제나 새로운 돈을 수반하기에, 빚의 총액은 언제나 돈의 총액을 넘어선다. 돈의 부족은 우리를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구조적 결핍에 시달리게 만든다.(127쪽)


이자 기반의 빚 시스템에서 신용 거래는·······현재의 상품과 ‘더 많은’ 미래의 상품을 교환하므로, 우리가 ‘충분한’ 상태로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빚을 갚거나 단지 살기 위해, 우리는 남이 가진 기존의 부를 빼앗거나·······공유자원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한다.(128쪽)


불교의 <중아함경>을 제외하면 고대 종교나 철학 사상 대부분은 이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화폐시스템의 경제적 본질을 통찰하고 내린 결론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등장 이후 몇몇 이슬람국가 말고는 이자 자체를 문제 삼는 종교는 없으니 말이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모든 종교도 이제야말로 돈과 이자 문제를 놓고 근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멸절의 조짐 앞에서 이토록 무력한 종교라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지 않는 한 구원과 깨달음을 더 이상 전파할 수 없으리라.


이슬람국가, 예컨대 말레이시아가 이자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 사람들은 극단적이라고 말한다. 극단이란 중용을 잃고 치우친 상태다. 이자는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이 그것을 남과 나누는 대신, 소유의 힘을 이용해 더 많이 얻으려” 하는 수탈 수단이다. 수탈의 정도를 낮춘다고 중용이 되나. 수탈 자체를 멈추어야 중용이다. 수탈을 멈추면 “정반대의 것”이 경제를 이끈다.


선물


선물을 주고받는 경제는 “우리를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구조적 결핍에 시달리게” 하지 않는다. “남이 가진 기존의 부를 빼앗거나·······공유자원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하지 않는다. “감사와 신뢰”의 세계를 다시 펼친다. “아무 교류도 없을 사람들 간의 교류”를 촉진해 “우리 모두를 풍족하게” 하는 길에 새삼 세운다.


모순을 푼다.


* 번역 문제-본디 이자놀이는 고리대금으로, 모순은 역설로 번역되었는데 인용자가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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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말해서 음모론은 인간이 그 복잡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조종한다고 볼 만큼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대개 반증 불가능한 음모론은 실증적 호소라기보다 심리적 호소에 훨씬 더 가깝다. 음모론은 우리의 원초적 분노를 이용하고, 그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아 비난하고 증오하게 만드는 사악한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수많은 혁명가들이 과두제를 전복하면서 깨달았듯이, 우리는 증오 대상을 잘못 잡고 있다.(115-116쪽)


우리는 세계 파괴에 연루되는 일을 최소화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이 사회에 사는 것만으로 세상의 악에 기여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완전히 고립된 자급자족의 계획공동체를 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사회악에서 결백함을 증명하려는 개인적 욕망은 백 평도 넘는 주택에 설치한 태양열전지판과도 같은 일종의 물신fetish이다.(114쪽)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의 이데올로기, 신념체계, 무의식의 그림자들이 만들어낸, 마치 음모처럼 보이는 동시발생의 그물망·······이다. 말하자면 음모를 꾸미는 사람 없는 음모며, 모두가 하수인이지만 하수인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115쪽) 진짜 범인·······, 막후에서 엘리트층을 조종하는 진짜 지배자는 바로 화폐시스템 자체다.(116쪽)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음모론에 휩쓸리는 따위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 그러면 음모론을 일축하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음모론과 의문 사이에서 많은 지식인이 국가범죄·사회악의 방조범으로 전락한다. 음모론의 곡절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허다한 음모론의 전범典範은 거대유일신교다. 창조신 관념이야말로 음모론의 핵심이다. 국가, 남성가부장, 성인,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들이 모두 창조신에 빙의되어 크고 작은 음모의 정상에 군림한다. 대한민국이라면 영남, 삼성, 조·중·동, 개신교, 판검사, 사학재단, 서울대, 육사를 아우르는 매판·독재·분단세력이 음모의 정상에 자리 한다. 음모가 아니고서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모는 실재다.


음모는 분리문명 시대에서 필연이다. 분리문명 시대의 분리는 상하 분리다. 상하 분리의 목적은 수탈적 지배다. 수탈적 지배는 음모 없이 불가능하다. 음모론은 실제 음모 여부를 가지고 나이브하게 논해서는 안 되는 주제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음모론을 물리치는 실질적 이유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현대문명을 변혁하려 할 때 취해서는 안 되는 두 극단을 경계한다. 하나는 음모론에 이용당하는 세속 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고립된 자급자족의 계획공동체”다. 양자는 모두 분리를 전제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후자는 음모론과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음모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분리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아무리 완벽주의를 시도해도 헛일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찌 하면 음모를 돌파할 수 있나? 분리문명의 세상에는 부단히 음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음모란 없다고 못 박는 것은 분리문명의 화폐시스템이 펼치는 전략 가운데 하나다. “동시발생의 그물망·······이다. 말하자면 음모를 꾸미는 사람 없는 음모며, 모두가 하수인이지만 하수인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 진짜 범인·······, 막후에서 엘리트층을 조종하는 진짜 지배자는 바로 화폐시스템 자체다.”라는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말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동시발생의 그물망과 화폐시스템은 전혀 다른 말이다. 전자는 구성 개체(n)의 상호작용(n!)으로 실재하는 사건이며 n 하나하나와 분리되지 않는 전체적 실재다. 후자는 개체 구성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실체다. 만일 진짜 지배자로서 화폐시스템 자체를 범주 개념으로 삼는다면 이 논의는 분리 문명을 넘어서지 못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기독교의 거대유일신 그림자 안에 도로 갇히고 만다. 도로 음모론에 갇힐 때는 이중으로 갇힌다. 음모가 없다는 음모론.


음모가 없다는 음모론을 꿰뚫으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동시발생의 그물망, 정확히는 비인과적 상호작용의 네트워킹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네트워킹에서는 진짜 지배자와 하수인을 분리할 근거가 없다. 화폐시스템 자체는 그럼 누가 변모시키나, 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음모론이 말하는 음모가 들어설 자리도 없다. 완벽한 음모가 없다고 해서, 전지전능한 조종자가 없다고 해서 음모를 부정하는 자들처럼 거대유일신을 부정한답시고 무신론에 빠져버리는 유의 오류에 가담할 이유도 없다.


비인과적 상호작용의 네트워킹은 신성과 타락 어느 한쪽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지 않다. 생성·변화·소멸해가는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는 인간들의 정치경제학적 역관계를 따라 다른 결과 겹이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다. 시스템이 막후에서 엘리트층을 조종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은 신께서 섭리하신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음모론을 “실증적 호소라기보다 심리적 호소”(115쪽)라고 비판하기 전에 ‘실증적 호소라기보다 정치적 계산’으로 음모를 부정하는 현실에 저항해야 한다.


그 저항이 네트워킹에서 신성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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