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원제는 『THE LOST ART OF HEALING』이다. ART를 왜 본질이라고 번역했는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저자가 치료 대신 치유라는 말을 쓴 의도를 헤아린다면 예술이라는 본디 표현을 살리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어떤 재주나 능력이 탁월하여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는 경지에 이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쓴다.


치유를 예술이라 할 때는 어떤 의미에서일까? 치유는 질병 너머 사람과 삶까지 한 아름에 품으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활동임에 틀림없다. 현실에서 대부분 의사의 재주나 능력으로는 치유를 행하지 못한다. 능력이 탁월하여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는 경지에 이른 소수만이 치유에 가 닿는다. 행위 내용에서도 수준에서도 치유는 예술이다.


치유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으로 치료하고 나아가 사람과 삶에 대한 결곡한 지혜로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가 자아내는 감흥이 치유를 예술이게 한다. 예술로서 치유는 사람과 삶을 신성으로 인도한다. 신성의 완전함은 질병으로 배어들어 치유로 배어난다. 이 진리를 깨닫는 데 백색의학과 산업 의료는 백해무익하다. 치유예술혁명의 때가 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의원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건물 뒤 후미진 곳에 가끔 길고양이들이 와서 머문다. 오늘은 그중 낯익은 녀석이 하나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가감 없이 평안을 몸에 담을 줄 아는지. 혹 사람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싶어 부럽고 부끄럽고 그렇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9-11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40대 후반과 50대 전반 10년 동안 나를 사로잡은 텍스트는 『상한론傷寒論』이란 동아시아 의학 고전이다. 『상한론』의 독자적 해석서 한 권을 품고 탐구하면서 나는 비로소 자신을 담은 책 한 권을 지니게 되었다. 한창 이 책을 가지고 강의할 때는 반드시 수강자들에게 이 책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대부분은 그 냄새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내 체취라고 말해주면 감탄하거나 의아해했다. 전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로 받아들인 것이고, 후자는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로 받아들인 것이다. 각자의 길이 있으니 각자 선택한다. 다만, 자신의 삶이 어떠하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비추는 책 한 권에 자신을 담는 예의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역이자 화폐, 경제적 지대의 제거와 공유자원 고갈에 대한 배상,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 경제·통화의 지역화, 사회배당금, 경제 역성장, 선물문화와 P2P 경제로 요약(358-378쪽)되는 찰스 아이젠스타인 표 신성한 경제학을 분권화, 자기조직화, P2P, 생태적 통합(215쪽)으로 트랜스버전하면 찰스 아이젠스타인 표 신성한 정치학이 된다.


이 신성한 정치학을 나는 <59. 신성 유물론①>에서 저마다 중심, 자발적 내부창조, 평등한 개체끼리의 직접 닿음, 소요고요의 생명 연대로 트랜스버전해서 신성한 신학에 갈음했다. 신성한 신학은 그대로 신성한 자연학이다. 신성한 자연학은 그대로 신성한 인간학이다. 신성한 인간학은 그대로 신성한 미학이다. 신성한 미학이 아름다움을 복원한다.


아름다움을 복원해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지상의 가치며 열반이며 구원이다. 아름다움은 나의 품에 그득히 남을 안고 살아감으로써 펼쳐내는 갸륵함의 느낌이며, 알아차림이며, 좇음이다. 한 아름 더 되면 허영이다. 한 아름 덜 되면 퇴영이다. 아름다움은 최대한과 최소한이 일치하는 한 아름의 경계에서 피는 꽃이다.


한 아름은 절묘한 균형이자 규모다. 이 균형과 규모로 인간, 자연, 신의 신성성을 담보하는 공동체가 구성된다. 한 아름 공동체의 네트워킹에서 정치경제학의 신성성이 완성된다. 신성한 정치경제학은 평범한 존재들이 평등한 연대로 평화를 향수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이 역동적 과정은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찰나마다 영원의 보랏빛 섬광을 선물할 뿐.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마음은 지나치게 좋은 것을 꿈꾸기 두려워한다. 이런 얘기가 분노와 좌절과 슬픔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누구나 지닌 상처, 즉 분리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우리 내면의 앎은 억누를 수 없다. 이제 우리 내면의 앎을 믿고 서로 의지하고 그런 삶을 꾸려나가자. 낡은 세계가 무너져가는 지금,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신성한 세계보다 못한 세계에 안주할 것인가?(482쪽)


박완서의 소설 『창밖은 봄』(1977)을 <MBC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한 적이 있다(1984). 줄거리 많은 부분을 잊어버렸지만 오랫동안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다. 식모 일을 하던 길례(서갑숙 분)와 막노동을 하는 정씨(이대근 분)가 어렵사리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가는 어느 겨울. 일이 잘 안 되다 그날은 운이 좋았던지 조금 큰(?) 돈을 손에 쥔 남편이 생선 한 손 사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한다. 생선을 받아들고 반색하던 아내의 얼굴에 갑자기 어둠이 깔린다. 남편에게 말한다. (바로 그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임에 틀림없다.)


“여보, 우리 이렇게 잘 살아도 되는지 겁이 나요.”


무슨 말인가. 행복한 시간이 덧없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랄 수 있겠다. 전혀 달리, 섬광처럼 찾아온 행복을 한껏 기림으로써, 불행을 생의 기조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불행한 운명에 곡진히 헌사를 바치는 것이랄 수도 있다.


불행한 운명에 바치는 곡진한 헌사는 분리문명 깊숙이 던져진 평범한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실재the Real의 미학이다. 현행 화폐시스템 속에서 행복의 예찬과 축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언어 착취며 조롱인지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지 않나.


20대 후반, 참된 삶의 지향과 각성·구원 문제로 깊이 고뇌하고 있던 내 가슴에 이 장면은 육중하게 각인되었다. 내가 각성·구원 문제를 인간 지평에서 떠나지 않는 것으로 닻 내리게 만든 예리한 한 순간이었다. 여적 내 사유의 정수리에는 쪼그만 질문 구멍이 뚫려 있다.


“그대, 황홀한 행복이 삶의 지향이며 의미인가?”


우리가 꿈꾸는 신성한 세계는 결코 궁창에 둥실 떠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우리가 구태여 “믿고 서로 의지하고” 꾸려가야 할 신성한 세계는 분리시대의 아프고 슬픈 기억을 제거해 몰아넣는 망연한 환희 도가니가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우리가 지향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신성한 세계에는 분명히 선물이 필요한 사람과 선물을 주려는 사람이 각각 존재한다. 그냥 주어야 하는 사람과 감사를 표하며 받아야 할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 서로 견딤을 주고받으며 기다린다. 그 과정마다 희로애락을 두루 실감한다. 우리의 신성한 세계에 천사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