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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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은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아케다’라 부른다. 아케다는 히브리어로 ‘묶기’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놓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다.(124-125쪽)

  아케다 이야기를·······샤갈이 그린 <이삭의 희생>을 보면·······절규하는 여인이 있다. 바로 이삭의 어머니 사라다. 아케다 그림 가운데 처음으로 사라가 등장한다. 이 그림의 핵심은 사라의 울부짖음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실제 아케다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지만,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이 담겨 있다.(158-159쪽)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샤갈은 신이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확신한다. 그런 신이 자기 자식을 살해하려는 사건에 개입하려는 모습에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샤갈의 그림은 신에 대한 불평이다. 이삭과 아브라함에게서 피어오르는 불길은 신에 대한 항거다.·······신은 이 비극의 장면을 외면했지만 사라로 대표되는 여인들은 홀로코스트에 참여하고 반응한다. 처음부터 이 광경을 지켜본 사라는 우리에게 방관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림 상단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앞에도 두 명의 여인이 서 있다. 아마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수제자 막달라 마리아일 것이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인 ‘피에타’가 있다. 이는 동시에 사라가 이삭을 안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아케다 이야기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전화된 것이다. 샤갈은 아케다 이야기를 사라의 눈으로 해석하라고 말한다. 사라의 시선은 우리로 하여금 이삭을 사랑하는 아들이자 희생된 아들로 인식하게 만든다. 사라를 통해 우리는 이삭, 예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로 보게 되는 것이다.(164쪽)



아케다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러티브입니다. 설혹 직접적으로는 모른다손 치더라도 동일한 맥락의 모티프를 지닌 다양한 설화들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바리데기, 심청 이야기도 이런 유에 해당합니다. 인류 문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버림, 희생, 구원 이야기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해석자의 현실 삶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저자가 렘브란트, 카라바조를 설명한 뒤 마지막으로 설명한 샤갈의 해석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합니다. 하나는 사라를 등장시켜 중심에 세움으로써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해석을 뛰어넘어 여성적 시각을 일깨운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홀로코스트의 잔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모성적 세계 인식의 지평을 열어 제친 것입니다.


샤갈의 이런 해석은 오늘 여기 대한민국에 가장 절실하고 정확한 안목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어머니 리더십 운운하며 호들갑떤 것도 잠시, 연이어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죽임의 행렬이 이어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특히 샤갈의 아우슈비츠처럼 우리는 세월호에서 꽃 같은 아이들 250명을 비롯한 304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600만이라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은폐된 상태에서 죽임 당했고 세월호사건 희생자를 304명이라 하지만 그들은 5000만 명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죽임 당했습니다. 나치보다 박근혜 정권이 덜 잔인하다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것 말고는 그 어떤 언행에서도 박근혜는 여성이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어머니일 것입니까. 최태민과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에게 모성이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성이 있다면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제 아이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한꺼번에 250이나 되는 생때같은 아이들을 죽여 놓고도 가짜로 사과하고 끝내 진실 파묻고 생글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비단 박근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사회 지배층 전체의 문제입니다. 죄 없이 희생된 가장 작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했다면 세월호사건을 이렇게 일으키고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뒤 중동독감사태 방치, 역사교과서 국정화 획책, 일본군성노예피해자문제 야합,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밀어붙이기·······아들딸들의 목숨을 거두는 이 모든 반여성적·반모성적 패악을 박근혜가 혼자 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거대한 매판독재분단세력의 카르텔이 제 아들딸들 죽여서 곳간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게 인신공양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사회가 정녕 인간 공동체의 기본이라도 지키려면 차제에 근원 혁명을 해야 합니다. 근원 혁명은 ‘피에타’ 영성으로야 할 수 있습니다. 사라의 울부짖음, 마리아의 찢긴 가슴, 막달라 마리아의 피눈물이라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세월호 아이들의 엄마라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대답해야 합니다.


“주님께 드릴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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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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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주위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처지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맞이했다. 한순간에 자신은 없어지고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105쪽)

  신은 공중부양을 하거나 축지법으로 종횡무진 하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만든 종교의 교리 안에 힘없이 감금된 포로도 아니다. 신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만나는 ‘낯선 자’다. 우리가 낯선 자를 그냥 지나치거나 아무런 감정 없이 대하면 말 그대로 낯선 자가 되지만, 우리가 그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대접하면 그는 우리에게 신이 된다.······아브라함·······의 신은 요란하게 천둥번개 속에서 등장하지 않고 땀과 눈물로 범벅된 일상에서 자신을 드러낸다.(109-110쪽)


신약성서 마태복음 25:31-46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지극히 작은 낯선 자가 바로 하나님임을 설파한 장면입니다. 굶주린, 목마른, 정처 없는, 헐벗은, 병든, 옥에 갇힌 어려움에 처한 자가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그 지극히 작은 자가 나와 내 가족이 아닌 생면부지 남일 때, 비로소 지극히 작은 낯선 자 하나님이 됩니다. 이 지극히 작은 낯선 자 하나님을 만나려면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그 기득권으로 가득한 자기 영지를 떠나야 합니다, 빈손 들고 낯선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심을 벗어나 변방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낮은 곳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나를 위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나를 위하는 일는 언제나 남을 위하는 일 속에 있습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이상 어떤 말도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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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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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 플리트 센터에서는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의 지명을 위한 민주당원 모임이 있었다. 존 케리 의원은 당시 무명에 가까운 한 인물에게 찬조연설을 맡겼다. 그는 일리노이 주 민주당 상원의원에 출마한·······버락 오바마였다.

  ·······그의 연설은·······이러한 말을 건넨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지만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E pluribus unum입니다.·······


  오바마가 말한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라는 구절은 <창세기> 4장 9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신이 아벨을 살해하고 숨어 있는 가인에게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가인은 질문으로 답한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오바마의 연설은 가인의 질문에 답한 것이었다.


  ·······주사위는 이제 우리 각자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나만·······지키는 자인가. 아니면 우리사회 안에서 불행을 겪는 모든 이들을 지키는 자인가. 신은 우리 모두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80-82쪽)


“최순실이 국민들 싫어할 일은 다 하고 다녔다. 내 앞에선 그냥 조용히만 있어서 그런 일 했는지 전혀 몰랐다.”


이른바 대통령이 가장 최근에 한 말입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는 거짓말을 통해서도 진심을 드러냅니다. “너의 아우 순실이가 어디에 있느냐?” 국민의 물음에 이리 대답한 것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시민은 이제 이런 유체이탈 어법에 반응조차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짓을 되풀이합니다. 머릿속에 오직 자신 밖에 없는 그가 바로 ‘가인’입니다. 그 가인은 이미 ‘아벨’, 곧 수많은 국민 아니 국민 전체를 살해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마침내 ‘오장육부’였던 아우마저 죽이려고 되묻습니다. “제가 순실이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참으로 참담합니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유의 말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나와 돌아다니는 나라 꼬락서니가 비할 데 없이 비참합니다.


아메리카합중국 시민을 감동시키며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 아메리카합중국의 형제·자매를 지켜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모양입니다. 재선했고 마지막까지 지지율이 매우 높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대한민국 형제·자매는 그의 형제·자매 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 행각, 특히 대선부정과 세월호사건의 진실을 전혀 몰랐다고 하기에는 그의 자리가 너무 막강했습니다. 그의 막강함이 대한민국 형제·자매에게는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에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클레이튼 커쇼가 메이저리그 최우수선수로 뽑힌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단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81쪽)


생때같은 아이들 250명이 죽어가는 7시간 동안 국가원수가 공식집무를 이탈해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일본제국주의 성노예로 희생당한 어르신들을 10억 엔에 팔아먹고도 국민을 야단치고 협박하는 이른바 대통령 입에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최순실 말 듣고 수많은 국민의 생존이 달려 있는 개성공단을 폐쇄해버리고도 뭘 잘못했느냐고 반문하는 최고 헌법기관에게 어찌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이겠습니까. 오바마가 박근혜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정치를 펼쳤을까 상상해봅니다. 미합중국보다 훨씬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 곳간만 채우는 매판독재분단세력의 강고한 카르텔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일 또한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최순실이 국민들 싫어할 일은 다 하고 다녔다. 내 앞에선 그냥 조용히만 있어서 그런 일 했는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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