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 후진 대접을 받아온 까닭은 후미진 틈바구니까지 스며드는 소미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짐승의 것, 아니, 아니 그래서 ‘여자’의 감각으로 치부하여, 앞에서는 아득히 경원하지만, 뒤에서는 드잡이판 벌이는 남성 백색문명의 압제·수탈 대상이 다름 아닌 후각이다.

 

후각의 복원은 그 어떤 혁명보다 래디컬하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대체, 얼마나 반-문명이며, 비-교양이며, 몰-품위며, 탈-인류인가 말이다. 큼큼대다니. 그러나 그래서 큼큼대라. 큼큼대야 생명의 근원에는 냄새가 있다는 진리를 깨친다. 그 냄새가, 바로, 녹색 냄새다.

 

녹색 냄새는 비리꼬리하다.

 

녹색 냄새를 맡아 ‘들이는’ 비리꼬리 후각 감각은, 그러면 어디서 날까? 스스로 냄새의 장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맡아도 들이지 못한다. 녹색 후각은 공현이며 공감이다. 자신이 근원적으로 비리꼬리하지 않으면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녹색 후각을 지닌 인간은 녹색 체취를 풍긴다. 녹색 체취 풍기는 인간은 자신을 소미심심의 생태계로 유지한다. 소미심심의 생태계로 유지되는 인간에서만 후각은 진정한 해방을 맞는다.

 

후각 해방을 위해 코를 우뚝 깃발로 세운다. 코는 대체 인간에게 무엇인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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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의학을 자연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인도 환자도 자연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정확성을 전제하고 진단과 치료에 임합니다. 현대의학은 이런 자부심과 체계적 사기술이 결합된 키메라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질병으로 인정하는가? 이 문제는 자연과학인 의학적 연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인문적 조건, 정치경제학적 역관계가 얼마든지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아니 거꾸로 사회인문적 조건, 정치경제학적 역관계가 자연과학의 연구를 지휘하고 통제합니다. 실제로 미국 정신의학 협회(APA)가 펴내는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SM-5)의 주요내용을 초국적 제약회사의 로비가 좌우합니다. 자연과학으로서 의학은 자본의 푸들로 소비되는 수준을 넘어서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DSM-5가 신경발달장애로 분류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경우 진단과 치료에서 남용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습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진단받고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10대 초반 아이가 왔습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들의 걱정이 컸습니다. 본인은 오죽하겠습니까.


서구의학에 따른 진단 소견에는 ‘반응과 정보처리 속도가 느리고 반응의 일관성이 부족하므로 주의집중력 문제가 시사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흔히 보는 지극히 타성적인 진단 의견입니다. 약을 먹으며 학습효율은 다소 높아졌지만, 아이의 식욕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그러자 늘 그러하듯, 식욕을 높이는 약이 추가 처방되었습니다. 아이 문제를 이렇게 ‘처리해’ 놓고 담당 정신과의사는 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귀신이 보여요. 웃음소리도 들리고요.”


조현병까지는 아니니까, 그냥 귀신이 어디 있냐 하고 정신과의사는 물론 부모도 일소에 부쳤겠지요. 저는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자, 귀신의 얼굴색은 시퍼렇고, 흰 옷을 입었으며, 가라고 쫓아도 피식 웃고 만다 했습니다. 모두 여자 아이이며, 서서 노려본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계단 구석에 처박혀 목이 꺾인 채 있는 귀신도 봤다고 했습니다,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7세 이후 줄곧 겪어온 일인데, 꿈일 때도 있고 생시일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말을 먼저 걸더냐고 물으니 그런 적은 거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단호하되 따스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거 귀신 맞아.”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한 찰나에 안도의 웃음과 호기심 어린 갸웃거림이 함께 지나가는 것을 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체 없이 문제를 해소시켜주었습니다. 저는 다시 따스하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 귀신, 너야!”


예상대로 아이는 단박에 제 선언을 받아들였습니다. 놀란 것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이 문답의 과정을 지켜보며 몇 차례 당혹스런 순간을 겪었을 테지만, 마지막 순간이 아마 가장 놀라웠을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군말을 덧붙이지 않았으나, 어머니에게는 보충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지요.


더 이상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얼마 뒤, 기회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아이에게 그 나라는 다시없는 해방공간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고 낙인찍지 않았습니다. 학교 교사들은 아이의 행태를 개성으로 수용하고 그에 걸맞은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부모를 포함한 주위사람들은 여전히 잘 적응이 되지 않겠지만, 그는 언제까지 그로서 씩씩하게 잘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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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본디 우울증이 있는데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갑자기 파혼을 선언하고 잠적해버려 창졸간에 마음과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20대 초반, 1년 사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나이도 어렸을 뿐더러 외동인 제가, 친척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장례를 포함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홀연히 초등학교 동창인 한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망연자실해 있는 저를 다독이며 헌신적으로 수습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중단했던 제 학업도 다시 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까지 희생에 가까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님도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해주셔서 결혼을 약속하고 집까지 마련했습니다. 제 삶이 이렇게 거의 완벽할 정도로 안정을 찾자, 비로소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돌아오면 결혼식을 올리자 하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났습니다. 이 가벼운 발걸음이 나중에 너무나 무거운 변화를 몰고 돌아올 줄 그 때는 몰랐습니다. 여행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전혀 알 지 못합니다. 돌아오자마자 저와 그의 부모님 앞에서 그는 돌연 파혼을 선언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런 삶을 살지 않을 것이며, 유학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질문 하나로 남은 그 선하고 슬픈 눈망울이 8년 지난 지금도 선연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는 자기 파괴적 희생으로 사는 동안 서서히 영혼이, 그 내면의 힘이 소진되어갔을 것입니다. 자기 요구와 거절을 봉인하고 오로지 그대만을 위해 몰두함으로써 그의 실존은 공동空洞이 되고, 존재는 형해形骸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無에 묻혀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한 찰나, 그는 가차 없이 발길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을 찾도록 놓아주십시오. 그 놓음이 기다림일지 포기일지는 천천히 그대가 결정하십시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를 보살피는 동안 자기 자신의 우울증이 한 없이 깊은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갔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와 떨어져 지내면서 어떤 경로를 통해 깨달았을 것입니다. 물론 결별의 방식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사자에게 그 결단은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친구 희생 덕분에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그라면, 친구가 최선을 다해 내린 결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 뒤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는 그의 눈망울만큼은 적어도 비관적이지 않았으니, 두 사람 다 잘 견뎌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저는 그와 함께 그의 삶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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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문명에서는 의학도 상식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근원적 경계 사건이 혀에서 일어난다. 정확히는 혀와 항문에서 일어난다. 비대칭의 대칭 원리는 여기부터다. 혀의 감각(미각 제외)은 증폭된 상태로 일어난다. 항문의 감각은 응축된 상태로 일어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고 소화·흡수가 끝나면 싸는 것은 자연이자 당위다. 먹을 때는 주의를 기울여 조금만 먹어야 한다. 쌀 때는 놓아버리듯 한껏 많이 싸야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최소한으로 한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최대한으로 한다.


이 근원적 비대칭의 대칭은 인간의 윤리를 단도직입으로 제시한다. 남에게서 받는 것은 너무 많다고 느껴 최소한으로 하라. 남에게 주는 것은 너무 적다고 느껴 최대한으로 하라. 황금률은 공자, 예수 말씀 이전부터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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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필드W. G. Penfield의 호문쿨루스homunculus에 따르면 가히 촉각의 ‘중추’라 할 만한 것은 손과 입술(과 혀를 포함한 입 주위)이다. 그중 단연 손이다.



피부 접촉 가운데 대부분을 손으로 한다. 닿기(대기), 만지기, 쥐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잡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받치기(받들기), 주무르기, 접기, 펴기, 벌리기, 찌르기, 짜기, 조르기·······.


여기서 생사가 나뉘고, 애증이 교차한다. 여기서 성장과 퇴행이 엇갈리고, 상처와 치유가 자맥질한다. 여기서 웃음과 울음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이별과 상봉의 운명이 결정된다. 여기서 한 생이 시작되고 한 생이 끝난다. 여기서 문명이 일어나고 문명이 스러진다. 여기서 지구가 안식하고 지구가 요동친다.


백색 손은 소외와 격리를 극단화한다. 백색 손은 기술과 돈을 극대화한다. 하여, 죽음과 증오, 퇴행과 상처, 울음과 이별이 비즈니스 전략으로 둔갑한다.


백색의학은 더 이상 손으로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는다. 기구·기계·화학합성물질이 모든 것을 한다. 백색의학에게 아픈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고장 난 기계다.


녹색의학은 손 의학이다. 손으로 진단하고 손으로 치료한다. 녹색의학에서는 코도 손이다. 녹색의학에서는 입도 손이다. 녹색의학에서는 귀도 손이다. 녹색의학에서는 눈도 손이다. 녹색의학에서는 약도 손이다. 의자와 환자가 서로 마주 닿고(대고), 만지고, 쥐고, 쓰다듬고, 다독이고, 도닥이고, 문지르고, 비비고, 잡고, 닦고, 씻고, 두드리고, 긁고, 간질이고, 누르고, 받치고(받들고), 주무르고, 접고, 펴고, 벌리고, 찌르고, 짜면서 생명을 지켜간다.


나는 신학의 길을 가다 의학으로 돌아섰다. 말의 사람에서 손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이 손의 사람을 근원에서 요청하는 의학이 녹색의학이다. 이런 손의 사람을 근원에서 요청하는 곳이 둘 더 있다. 농업, 그리고 출산. 이 둘을, 나는 인연이 짓는 길 따라 내 손 닿는 곳 안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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