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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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재능은 항상 위대한 결함을 동반하는 것 같다.·······이러한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 전체에서 드러난다. 인류가 이룩한 밝은 면은 파괴적이고 우울한 어두운 측면과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20-21쪽)


인류 대차대조표의 플러스 면과 마이너스 면은 같은 현상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다. 그 현상은 바로 타락-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자아폭발이다.(41쪽)


위대”하다고 하기에 그 결함은 너무 잔혹하다. 인류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표방하면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 흔히 말하는 Psychopathy나 Sociopathy 수준 또는 그 너머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엉킨 채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균형”을 이룬다고 하기에 그 어둠 쪽 기울기는 너무 가파르다. 빛의 혜택은 1%에 쏠리고 어둠 속 수탈은 99%에 미친다. The Fall: The Insanity의 평행을 제목 삼은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한 용어”인 “자아폭발”은 Insanity of the Ego일 텐데, Insanity를 왜 폭발이라고 번역했을까? ‘위대한 것들 사이의 균형’을 염두에 둔 중립화 의도일까? “자아폭발”이라는 용어에 번역자가 이렇게 각주를 달았다. ‘자아가 폭발적으로 갑자기 크게 팽창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설명까지 한 것을 보면 폭발과 Insanity의 괴리를 의식한 듯하다.


정신 불화, 전쟁, 가부장제, 아동 학대, 소유 집착, 거대신과 종교, 몸과 자연의 소외, 시간 지배와 같은 엄청난 질병 또는 악의 상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열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차별적 분열이다. 이 분열의 전방위성을 고려할 때, 굳이 폭발이라 번역한다면 팽창보다 파열 현상에 의미 깃발을 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파열은 폭발의 어두운 면이다.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밝은 면은 열림이다. 깨뜨려야 할 것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깨뜨려서 열린 것은 앎이다. 앎을 통해 인류는 풍요와 번성을 누리고 있다. 폭발의 이런 균형, 아니 내 방식으로 말하자면 대칭은 왜 비대칭적 대칭asymmetric symmetry일 수밖에 없을까?


아마도 폭발의 조건 자체가 급격한 파열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급격한 파열 상황에서 열린 앎을 차별적 분열의 도구로 쓴 최초의 어떤 정신병 집단, 그리고 감응정신병communicated insanity 집단으로 말미암아 비대칭성이 문명 기조로 자리 잡았지 싶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설명 방식이다. 사물의 이치로 따지면 폭발의 본령은 파열이고, 파열의 궁극은 전복이다. 기존 세계를 홀랑 뒤집었으니 가히 광란이라 할 만하다. 광란의 전복, 그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어둠의 절정에서는 빛의 생존을 묻지 않는 법이다. 오직 이 하나를 묻는다.


“어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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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하늘이

쏟아져 내려

기뻐서 슬픈

눈물로 바뀐

느 겨울날

를 버리니

너는 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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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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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왔다. 역사가 기록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는-최소한 어느 정도는-정신이상이었다.

  이러한 말은 믿을 수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신이상으로 초래된 결과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광기가 지배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정상적이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러한 광기는 어디서 왔으며, 과연 진정으로 그러한 광기가 당연한 것인지 조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 이전에는 인류의 삶에 근심 걱정이 전혀 없었으며,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한 듯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타락 이후의 삶은 “끔찍하고 야만적이고 짧은” 것이 되었고, 너무나도 많은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그러나,·······아마도 지금 우리는 한 바퀴 다시 돌아 애초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희망적으로-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지난 6000년은 정신분열증과 같은 악몽이었으며, 마침내 우리는 깨어나기 시작했다.(12-14쪽)


『The Fall: The Insanity of the Ego in Human History and the Dawning of a New Era』, 이것이 책의 원제다. 기독교신학이 말하는 구속사적 맥락과 묵시록의 은유가 어른거린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와 무관하게,


Fall은 당연히 성서에서 나온 어휘다. 이것은 악의 상태를 반영한다. Insanity는 인용문 속에서 정신병, 정신이상, 광기, 정신분열증(과 같은 악몽) 등의 여러 표현으로 변주되면서 질병 상태를 반영한다. 저자가 악의 본질을 질병으로 인식해서 이런 평행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질병이라면 치료 가능성 아래 악을 역사적 지평에서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악을 역사적 지평에서 성찰하는 일은 각별히 중요하다. 인간에게 본성인 악이 있느냐, 따위의 부질없는 논쟁을 하지 않고 역사적 지평 안에서 악의 실재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 또는 해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완전과 초월로 들뜨지 않는 시선은 역사와 함께 간다.


역사와 함께 가는 시선으로 볼 때, “한 바퀴 다시 돌아 애초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말은 적잖이 께름하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정신의 질병을 치료하면 정신이 질병 이전 상태로 복귀할까?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런 환원을 가리킨다면 그게 과연 역사적일까? 저자가 그렇게 순진할 리 없다는 믿음과 별개로 나는 내 문제의식 때문에 이런 말들이 무엇의 유제일까, 더듬으며 큼큼거린다. 내 영혼의 지성소가 원효니까.


원효를 가슴에 품은 채 “마침내 우리는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복음을 한번 귀담아 들어볼 일이다. 증후는 외부에만 있지 않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성의 기미에 주의를 기울이면 소소하고 미미한 파동이 감지된다. 책에서 만나는 진실은 이미 나중 일이 되었을 줄 뉘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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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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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보다 거대한 무언가의 메신저(8쪽)


나는 대뜸 이 “거대한”이란 말에 걸려 멈춰 선다. 스티브 테일러가 신, 특히 거대유일신 개념은 타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분명히 했으므로 여기 “거대한 무언가”가 거대유일신이 아님은 물론이다. 필경 신과 같은 존재로 의제되지 않는 “위대한 영혼”(285쪽)을 가리킬 터이다. 이런 의문이 든다.


“거대/위대한 무언가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영혼 사이의 네트워킹 사건으로서 나를 메신저 삼는 그 “무언가”는 소소하고 미미하다. 소미하기에 빚어내는 무한한 결과 겹으로 말미암아 천지간 가득해서 크게 여겨진다. 크게 여겨지나 실체로 포착되지 않는다. 실체로 포착되지 않는 상호작용이어서 메시지를 지닌다. 그 메시지를 감지하고 전달하는 메신저를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군자라 한다. 『중용』은 말한다.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 대우 명제로 바꾸면 명료해진다. 소소하고 미미해서 포착되지 않는 상호작용인 메시지가 아니면 군자가 전할 수 있는 말道이 아니다. 아니, “거대한 무언가”는, 그것이 질량이든 에너지든 도무지 메시지를 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거대한 무언가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자가 나타났다면 그 메신저도 가짜고 그를 보낸 “거대한 무언가”도 가짜다.


진실에서도 진리에서도 거대한 실체는 없다. 소미한 실체들의 동시적 군무가 그려내는 찰나적 덩어리 실재로 떴다 사라질 뿐이다. 이 진실, 이 진리를 아는 것이 참 앎이다. 거짓 앎은 거대를 휘감은 질병이며 악이다. 스티브 테일러의 탁월함에 뚫린 작은 구멍부터 들여다보고 가는 것은 독자인 내게는 행복이고 저자 자신에게는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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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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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미안>(마이페이퍼 2018.12.28.) 어르신께서 오늘 아침 오셔서는 하실 말씀이 있다며 정색하고 앉으신다. 실은 한의원 처음 오시기 전 날, 꿈을 꾸셨단다. 호랑이를 보셨단다. 붉은 점 두 개를 등에 새긴 호랑이가 너무도 무서우셨단다. 그 때문에 떨림 병-의학적으로는 노인성 진전振顫이라 함-이 왔다고 철석같이 믿으신다.


저 마법적 사고로 백년을 사신 거다. 어떡해야 하나. 잠시 걱정하다가 나는 침 하나를 들어 보인다. 어르신 귀 가까이에 입 대고 이렇게 소리친다.


“호랑이 잡는 침 들어갑니다!”


꿈에 본 호랑이로 말미암아 병들었다는 생각이 우스운가. 일소에 붙일 수 있는 앎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왜 저 노인에게는 없는가. 누가 인간다운가.


인간의 삶에서 앎은 가히 결정적crucial이다. 알지 못해서 치명적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 제대로 아는 것이 거룩한 것이다. 진리는 허나 여기서 입을 다물고 말지 않는다. 진리는 앎이 병이자 악이기도 한 진실을 감추지 못한다. 이 어둠의 진실에 가 닿는 데 다시없이 좋은 안내자가 바로 스티브 테일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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