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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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웅은 “자기 자신의·······더 숭고하고 더 고결하고 더 가치 있는” 대의명분을 믿는다.·······

  ·······영웅의 반대편에서는·······“도덕적 인간”이 “다른 인간의 삶이나 행복 혹은 존엄성”을 자신의 대의명분으로 선택한다.(189-190쪽)


고전적 의미의 영웅을 삼류화한 맥락에서 ‘뜨거나 대박 난’ 통속영웅 한 사람 만들기 위해 그렇게 될 수 없는 열 사람을 홀리는-이 표현은 박성미의 『선한 분노』에서 변형 인용한 것임- 시크릿류 자기계발이 우리사회를 집어삼킨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통속영웅에게 “더 숭고하고 더 고결하고 더 가치 있는 대의명분”은 물론 돈입니다. 돈에 사로잡힌 통속영웅이 사회적 감수성, 그러니까 “다른 인간의 삶이나 행복 혹은 존엄성을 자신의 대의명분으로 선택”하는 감각을 지닐 리 만무합니다. 우리사회 통속영웅들이 정치적으로 어이상실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은 이런 곡절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전적이든 통속적이든 영웅이 세상을 이롭게 하지는 않습니다. 영웅은 영웅 자신을 이롭게 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영웅은 “자기 자신의·······더 숭고하고 더 고결하고 더 가치 있는 대의명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웅 이야기가 인류 역사를 관류하며 인기를 끌어온 것은 세상의 구원을 바라서가 아니라 인간 각자에게 내재한 영웅무의식, 그 욕망이 견인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은 “다른 인간의 삶이나 행복 혹은 존엄성을 자신의 대의명분으로 선택”하는 “도덕적 인간” 뿐입니다. 영웅은 자기 자신의 삶을 확장하고 도덕적 인간은 타인의 삶을 자기 자신 안으로 받아들입니다.


통속불교와 통속기독교가 인류 구원에 실패한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나사렛 예수를 영웅으로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라 부르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든 명칭은 비본질적 문제입니다. 두 스승은 우리에게 “도덕적 인간”의 본을 보인 것이지 영웅의 본을 보인 것이 아닙니다. 숭배자들이 자기 자신 안의 영웅무의식을 스승에게 투사함으로써 스승들을 모독했습니다. 스승을 모독하는 내공에 힘입어 저들은 스스로 스승이 되었습니다. 스님이라 받듭니다. 성직이라 높입니다. 결국 중생과 이웃은커녕 자기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합니다. 영웅은 필요 없습니다. 도덕적 인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에서 통속영웅 패거리가 이렇게 나댈 수 있는 힘은 본디 자기계발의 사회 동원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 분위기를 형성하고 이끄는 정치적 변화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현 정권은 역사교육을 통한 영웅 내러티브 조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매판과 독재를 정당화하려는 전체 기조에 반하여 누구누구의 아버지가 사실은 친일파가 아니라는 자가당착까지 범하며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왜 이렇게 날뛰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인간의 삶이나 행복 혹은 존엄성”에는 전혀 관심 없다, 그러니까 부도덕하다는 사실입니다. 좌시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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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아픈 사람과의 지속적인 연대감에 기반을 둔다. 이 연대는 개인의 몸이 현재 건강한지 질병이 있는지의 문제를 초월한다.(186-187쪽)


자기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결정을 최대한 뒤로 미룹니다. 언제나 약속시간에 늦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연대하는 힘이 약해져서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구태여 서구 정신의학적으로 병명을 붙인다면 그것 또한 전형적인 우울장애입니다.”


이런 경우 성격이 우유부단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래도 낫습니다. 대부분 이 청년처럼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게으르다고 비난합니다. 어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묻는 청년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결정을 뒤로 미룰 때, 그냥, 아, 그렇구나! 하십시오. 약속시간에 늦을 때, 그냥, 아, 그렇구나! 하십시오. 부정 어법의 비판과 비난은 독입니다. 긍정 어법의 부추김은 더 큰 독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 스스로와 연대할 길이 열립니다. 스스로와 연대하면 더 이상 미루고 늦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통합된 생명감각으로 책임이 복원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연대하는 일은 남과 연대하는 일의 기원이 됩니다. 아픈 나와 연대한 사람은 아픈 남과 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의 천명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잃고 아파하는 세월호 유족과 연대함으로써 시민들은 무한히 열린 책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정작 무한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무책임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아픈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연대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초월자의 자리로 올라가버렸습니다. 그는 무책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곧 무책임입니다.


자기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던 그 청년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자꾸 눈물이 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우십시오. 책임이 그대를 안아줄 것입니다.”


이 백성은 엉엉, 소리 내어 우는 통치자를 볼 길이 영영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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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신문에, 노벨상을 수상한 의사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을 텔레비전 세트로 생각해야 한다고 기자에게 말했고, 정교한 비유가 뒤따랐다.·······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수리를 필요로 하듯이, 몸도 그러하다. 기원의 문제는 어떻게 기계를 다시 작동하게 할 것인가라는 퍼즐의 문제로 수렴된다.

  기원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은·······본래의 근본적인 행위에서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정당화를 추구한다.·······그 사람이 처음에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행위들은 삭제된다.·······환자 역할을 촉발시키는 기질의 형태를 고려하지만, 그러한 기질을 가져온 조건을 변화시킬 필요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환자 역할에 있는 사람이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고쳐질 수 있는 무한한 미래가 있는 한, 기원이 되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진다.(181-182쪽)


부부나 연인 문제를 상담할 기회가 드물지 않습니다. 교감과 소통에 문제를 일으켜 심각한 갈등 상황에 빠진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의 화제에서 과거, 무엇보다 생애 초기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애 초기는 한 사람의 “기원”입니다. 생애 초기는 한 사람의 “기질을 가져온 조건” 자체이자 그 조건의 조건이 묻혀 있는 고고학적 근거지입니다. 이 이야기를 농밀하게 나누지 않은 채, 오늘의 문제점과 내일의 해결책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로 어긋납니다. 어긋나는 곡절을 모른 상태에서는 어긋남을 더욱 깊게 하는 언행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더 높은 벽이 되어갑니다.


기원 또는 조건의 문제는 비단 이렇게 특정 부부나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기원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이 모더니즘 사고의 전형이라고 말합니다. 모더니즘은 전 지구적 구속력을 지닌 헤게모니 문명 양식입니다. 모더니즘 문명의 핵심부에 자리한 모더니즘 의학은 “사람이 처음에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아프게 하는 “조건을 변화시킬 필요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이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고쳐질 수 있는 무한한 미래가 있는 한, 기원이 되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관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모더니즘 문명의 구속 아래 사는 사람 그 누구나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적·신자유주의적 성공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모더니스트는 “기계” 인간입니다. “고장 나면 수리”해서 “다시 작동하게” 하는 사람이 의사입니다. 의사의 일은 그러므로 기계 수리 “작업”일 뿐입니다. 이 작업을 잘해서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노벨상을 상징으로 하는 이 모더니즘 문명에서 인간의 역사, 공동체적 조건은 전혀 무가치합니다. 아니!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엇입니다. “고쳐질 수 있는 무한한 미래”라는 환상으로 내던져진 사이보그들만 와글거리는 세상입니다.


어제 오후, 한 여성이 찾아와 바로 상담 받을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실은 오늘로 전화 예약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예약한 뒤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마침 전화를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미안한 듯이 황급히 말을 마무리하는 그 분에게 나지막이 말해주었습니다. “오시기 어렵다는 거 압니다.” 그 분은 도리어 제 이 한 마디에 마음을 돌려 무작정 달려왔다고 합니다. 제 말은 그 분이 지닌 고통의 기원, 기원의 상황, 상황의 조건에 가 닿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내일 어린 딸과 함께 다시 제게 올 것입니다. 고통의 기원을 더듬으며 울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세월호사건 유족이 지닌 고통의 기원, 기원의 상황, 상황의 조건에 통치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 오늘을 살피고, 보상금 타서 내일을 해결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같은 입으로 역사, 그러니까 기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 기원을 왜곡하여 미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왜곡과 미화로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방어 기제의 작동일 따름입니다. 종당 병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불치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 비극을 지켜보는 백성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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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치료하는 것은 상품이다. 약의 형태를 띠건, 서비스의 형태를 띠건, 어떤 방식으로 지불되건 간에, 그것은 상품이다. 텔레비전 광고는 모든 질병에 치료약이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키기 때문에, 그리고 치료약을 구입 가능한 포장된 상품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강력한 주인서사다.(178쪽)


몇 해 전, 청담동 사는 젊은 여성이 심인성 안면홍조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진료과정과 처방 내용이 모두 스마트하다는 평과 함께 다음 주에 또 오겠다며 밝은 표정으로 일어섰습니다. 다음 주 약속한 시각에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선생님은 패키지 치료 않으시나요?”


요컨대 고가의 치료 상품 구매하고 ‘신분에 맞는’ 결제를 하러 왔는데 딸랑 예비상담료와 한약 한 제 값만 받으니 불쾌했던 것입니다. 싸구려 취급 받았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필경 접수처에서 이런 유의 말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상담 12회, 한약 6제로 일차 치료가 종료됩니다. 540만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현금 일시불일 경우 500만원입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대한민국은 돈, 그러니까 상품성 하나로 모든 기준이 통일된 나라입니다. TV드라마 속에서 재벌가에 가난한 며느리가 들어올라 치면 ‘근본 없는 물건’이라고 내동댕이치는 장면은 이미 상투적인 고전이 되었습니다. 돈 많다고 어찌 근본 있는 사람이 되는지 의아해하는 것은 물색없습니다. 돈이 바로 저들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짜리인가, 가 모든 가치의 기준입니다.


자, 정색하고 묻습니다.


“당신의 근본은 얼마짜리입니까?”


이 질문으로 일거에 제압되는 사회는 이런 중산층 기준을 지닙니다.


-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

- 연봉 6000만원

- 승용차 2000cc급 중형차

- 통장 잔고 1억

- 해외여행 1년에 1회


이 질문으로 일거에 제압되지 않는 사회는 이런 중산층 기준을 지닙니다.


-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전자는 한국입니다. 후자는 미국입니다. 제 경우 한국에서는 도저히 중산층일 수 없고, 미국에서라면 제3항이 조금 문제가 되기는 해도 대체로 가능합니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상품의 문제’로 극단화된 것은 매판독재분단고착 세력 때문입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쿠데타, 제노사이드로 점철된 현대사의 어둠은 모두 저들이 만든 그늘입니다. 지금도 저들은 제노사이드에 이어 역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윽박지르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대로 살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이 질문 앞에 서보십시오.


“당신의 근본은 얼마짜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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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친구가 괴로워하면서 자신의 환자가 암으로 죽어간다고 내게 말했다. 그 의사의 괴로움은 그 환자가 죽어가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죽으며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가 싫어했던 것은 그의 환자가 병원 전문가들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는데, 그 세계의 전문가들은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어떤 성공 가능한 치료요법으로도 이끌 수 없는 수많은 테스트들을 계속한다.·······치료에 집착한 나머지, 의학은 그 여성 환자의 이야기를 다른 어떤 서사에도 위치시킬 수 없다. 많은 자원이 소요되고, 내 친구 의사의 관점에서는 보다 중요하게도, 그의 환자는 그녀 자신의 좋은 죽음의 형태를 향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복원에 대한 의학의 희망은 다른 어떤 이야기도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든다.(173-174쪽)


제약회사와 의료기회사가 서양의학의 부양자라는 사실은 이미 전 지구적인 스캔들입니다. 저들의 로비가 심지어 질병을 생산해내고 폐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더 큰 부양자는 저들의 농간에 환자로 규정되는 사람들입니다. 서양의학은 그 사람들의 목숨에서 양수겸장으로 떼돈을 벌어들입니다.


하나는, 질병을 치료하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연명만 시키는 야비한 방식입니다. 이 연명의 기술을 저들은 의학으로 포장하지만 본질상 그렇지 않다는 것은 췌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적극적 행위로서 안락사 또는 존엄사 논쟁을 떠나 무의미한 연명의 기술을 의학이라 하는 것은 사람 목숨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토건적 발상이며 비인도적 파렴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의료사고(엄밀하게는 고의에 따른 의료사망사건이 포함되므로 사고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이라 해야 합니다. 입니다. 의료사고에는 단순한(!) 약물 오남용부터 잘못된 외과 수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수와 실패가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공식 통계로는 한 해에 의료사고로 숨지는 사람 수가 4만 명입니다. 실제로는 두 배 이상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 숫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암환자에 대한 통계가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양의학에서 현재 암과 관련된 모든 처치는 정당한 의료행위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암 처치 중 사망한 것은 의료사고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암제도 방사선도 실제로는 살인기술에 가깝습니다. 암 치료(?) 받다가 숨진 사람을 포함하면 의료사고 사망자수는 수십만 명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실로 가공할 일입니다.


무의미한 연명도 무도한 의료사고도 아픈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막고, 사람답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는 참람한 행위입니다. 의학의 이름으로, 치료의 명목으로 인간성을 파괴하는 이 근원적 범죄 서사가 문명의 일급담론인 현대는 분명 저주와 멸절의 시대입니다. 아픈 사람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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