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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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성문명은 자기중심적 일방주의라는 기본 특성을 지닙니다. 일방주의는 물론 세계의 대칭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권력적 속성과 맞물립니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자기 아래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권력은 맞은편 대등한 지점에 무엇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성문명은 언제나 공격과 정복을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정치, 경제, 학문, 교육, 예술, 종교 모든 분야가 오로지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로만 흘러갑니다. 그 결과 인류는 다양한 구획, 사실상 수직적 계층구조로 분할되고, 그 분할에 따라 차별과 착취를 당합니다. 한쪽에서는 굶어죽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천문학적 돈을 날리고 있습니다. 감세를 통해 부자들의 배는 더욱 불리고 그렇게 빈 재정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충당합니다. 세계평화를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팔아먹습니다. 당장 우리 사회만 해도 이런 유의 어이없는 현상은 이미 일상화되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사회의 이런 굴절은 지구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여성문명이라는 대안을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입니다.(110-111쪽)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철저徹底하다’가 있습니다. 이 말보다 의미가 다소 약한 것으로 ‘도저到底하다’가 있습니다. 도저하다는 말은 그다지 잘 쓰지 않습니다.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도저하다는 말이 철저하다는 말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자주 쓰는 말은 갈수록 감수성을 무디게 해서 느낌이 둔해지다 못해 의미까지 바래지게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사회에서는 멘토, 힐링 따위의 말입니다. 이 두 말은 싸구려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자본이 포장만 바꾸어 상업적으로 대량 유통시키고 있어서 눈만 뜨면 우리 앞에 나타나 돈을 뜯어낼 따름입니다.


의도적 유통이 빚어내는 말의 타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주 쓰게 하여 그 말의 함정이나 독성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정치와 문명을 지배하는 자들은 바로 이런 주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패권을 차지하고 유지합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미래, 행복, 창조, 애국, 통일 따위의 말들이 그러합니다.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실체가 없음에도 뭔가 있는 것처럼 현혹시키거나, 본디 좋은 의미인 것을 왜곡하여 본질을 흐리게 하는 전략에 동원된 말들입니다. 언어 독점으로 백전백승하는 이미지 정치의 전형입니다.


영어를 위시한 인도-유럽어의 논리, 정치, 문명 체계가 세계를 제압한 현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연스러운바 되었습니다. 함정을 안락으로, 독을 약으로 받아들인 채 인류는 노예 상태에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체계에 여러 이름을 붙일 수야 있겠지만 남성가부장적 특성이야말로 그 함의의 고갱이임이 분명합니다. 대다수 여성들조차 중독되어 있는 남성가부장적 언어의 장악력은 전방위·전천후입니다. 우울증도 남성가부장적 언어-논리-정치-문명의 산물이자 희생양입니다. 본령이 이렇다면 우울증의 진단·치료는 남성가부장적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우울증에 대한 남성가부장적 언어란 무엇일까요? ‘우울증은 미친 것이다.’로 시작하는 통속한 오해에서 ‘우울증은 뇌질환이다.’로 끝맺는 의학적 이해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바, 그 일방적·환원적·기계적 담론들입니다. 이 시각에도 이렇게 지절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부분의 우울증은 약만으로 완치됩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25주 과정 대인관계치료 프로그램에 초대합니다.” 우울증 진단·치료에서 진실의 비대칭적 대칭성, 그 전체상을 고려한 담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성적인 쌍방향 언어가 필수불가결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성가부장적 언어가 내면화된 어머니의 폭력으로 수십 년 동안 기조우울증의 포로로 살아온 중년 여성이 있습니다. 그 또한 남성가부장적 언어가 내면화된 어머니에게 관통상을 입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어머니와 똑같은 방식으로 양육해왔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목 놓아 울었습니다. 시의와 상황에 적합한 제 조언에 맞추어 자신과,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생애 최초로 여성적인 쌍방향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저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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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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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터질 때마다 벌떼 같이 덤벼들어 잉잉거리지만 결국·······‘뒷담화’의 여운만 남긴 채 우울증은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고야 마는 한심한 작태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우울증의 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울증은 오히려 사소한 일상의 습관들 속에 속살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없다 싶을 정도로 잘 웃는다, 늘 양보한다, 따스하게 남을 배려하며 보살핀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한다, 손해 보고라도 공존을 꾀한다, 급기야 자기를 베어 남을 살리는 자기 파괴적 희생을 감수한다, 경쟁 국면에서 물러선다, 직장생활에서 언제나 일 많은 곳에 배치된다, 꼭 못된 상사를 만나 고생한다, 사고를 자주 당한다, 상대방(연인)의 약점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심각할 정도로 숫기가 없다, 거절당할까 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거나 그냥 침묵한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노력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 때문에 좌절한다, 좋은 기회를 놓치는 징크스가 있다, 아무리 푹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무력하다, 목표를 성취했을 때 이상하게 허망해진다,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때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상대가 떠날지 모른다는 걱정에 휘말린다, 등등….

  이들을 다만 기분장애 정도로 다루고 말 일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우울증이 한 인간의 삶의 오랜 습관, 곧 인격, 아니 존재 자체, 더 나아가 그와 맞닿은 세상 전체와 깊이 결합된 복잡하고 웅숭깊은 문제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증거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이들에게 꼼꼼히 주의를 기울이면·······직관으로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 주의력이 바로 여성적 생명 감각입니다.(105-106쪽)


악인은 죄상이 드러날 때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가해자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사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늘 하던 대로, 심상히 말하고 행동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특별한 공격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레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주고받은 자잘한 상처가 퇴적되어 어느 날 우울증으로 나타나면 이렇게 시치미를 뗍니다. “도대체 그럴 만한 일이 없는데요?”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부모입니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가족입니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입니다. 나도 그대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지개를 오색무지개 또는 일곱 빛깔 무지개라고 하는 것은 인식하기 쉬운 두드러진 색을 중심으로 개념화한 결과입니다. 무수한 점이지대를 소거한 이런 편의적 인식 프레임은 마음병을 상담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현장에서도 작동합니다. 유발요인이나 악화요인도 크고 뚜렷한 것에 집중합니다. 증상도 크고 뚜렷한 것에 집중합니다. 치료도 크고 뚜렷한 것에 집중합니다. 그 그물을 던져 걸려 나오는 것이 없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규정합니다. 이것이 뭔가 ‘각 잡고’ 찾아내야, 이름 붙여야, 생색내야 직성 풀리는 전문가 집단이 반성 없이 반복하는 치명적 실패입니다.


우울증은 죽음 같은 상실을 겪은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옆집 아이와 가볍게 비교를 당한 아이에게도 나타납니다. 우울증은 자살 시도와 같은 증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 사이에 늘 먼저 연락해오는 증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우울증은 전문적인 정신요법으로 치료한다고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평범한 인문적 대화로 일상을 양육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소한 진단이 위대한 진단입니다. 사소한 치유가 위대한 치유입니다.


이 마편초 꽃 시든 유리병

부채가 닿아 금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려니,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가벼운 생채기,

하루하루 결정結晶을 좀먹어들어,

보이지 않지만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았다.


맑은 물이 방울방울 새어 나가,

꽃의 진액은 말라들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였으나,

손대지 말라, 금갔으므로.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맘 스쳐서, 상처 입힌다.

그러면 그 마음 저절로 금가,

사랑의 꽃은 말라죽는다.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멀쩡해도,

가늘고 깊숙한 상처가 자라

나지막이 흐느껴 운다.

금갔으므로, 손대지 말라.


쉴리 프뤼돔 <금간 꽃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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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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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문명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은 이미 전 지구적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끌개로 하는 이 문명이 수십 억 인류 전체의 삶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무서운 속도로 파괴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우리가 견지해 온 가치와 지향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왜 인간인지 깊이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에 틀림없습니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 위대성의 징표라면 어째서 문명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데 인간에게 더할 나위없는 잔혹한 착취와 소외, 그리고 죽임이 가득차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이 문명의 주동자들은 의도적으로 절대다수 인간을 소외시킴으로써 인류를 우울증 상태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자기 모독이 빚어내는 파괴적 희생과 포기, 그리고 거절 결핍은 그들의 수탈적 권력과 명예, 부를 키우고 보전하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음모적 문명 건설 과정에서 인간은 대상이 되고, 사물이 됩니다. 바로 그 대상, 사물의 연장선에 인간 생존의 환경 조건이 있습니다. 결국 이들 또한 착취와 소외, 끝내 죽임의 목표가 되고 맙니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는 물론 땅, 바다, 산, 강, 얼음, 눈, 공기 모두 이 문명의 칼날을 피하지 못합니다.

  우울증은 인간의 경계를 넘어 문명 자체·······의 병이 되고 맙니다. 우울증은 이리하여 가장 깊고 어두운 사멸의 전령이 되고 맙니다.·······이 문명을 도대체 어찌해야 합니까. 필부필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 걸까요.(99-100쪽)


젊은 날, 먹물 근성을 누그러뜨려볼 요량으로 아주 잠깐 일용직 건설 노동을 했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해 8월, 원주 근방 마을에 가서 자그만 건물 하나 올리는 데 미장 보조로 뛴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기도 했지만 그날따라 뙤약볕 아래 작업은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소주 몇 잔 들이붓고 붕 뜬 상태에서 일을 했는데 술기운이 몸을 빠져나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형언할 수 없는 전신 통증이 밀려들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그날 일과를 마쳤습니다. 저녁식사 때는 다시 소주를 붓듯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에 떨어져야 하니 말입니다. 잠자리에 누워 잠들기를 기다리던 짤막한 시간, 문득 이런 깨달음이 들이닥쳤습니다.


“아, 저 수없이 많은 건물 벽에는 이런 노동의 고통이 엉겨 붙어 있는 거구나. 피라미드, 만리장성에는 헤아릴 수 없는 목숨들이 켜켜이 깔려 있는 거구나.”


오늘 날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마차 공기처럼 누리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누림 앞에는 수많은 사람의 피눈물과 목숨이 놓여 있습니다. 거기 부여된 의미가 이게 다는 아닐 테지만 문명이라는 것도 결국 아무리 높게 평가해봐야 편의의 차원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아니 넘어서서는 안 됩니다.


문명의 사전적인 뜻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기술적·사회 구조적 발전, 그러니까 자연 그대로인 원시적 생활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입니다(국립국어원). 문명은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해 인류가 지성·의지를 동원해 행동해온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문제는 문명에 욕구를 넘어 욕망을 채우는 향락적 도구화가 진행될 때 일어납니다. 향락적으로 도구화된 문명은 착취와 불평등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착취와 불평등은 인간의 경계를 넘어 생태계 모두에게 가해집니다. 하늘과 땅 모두가 우울증에 빠져듭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 인류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편의를 넘어서 극소수 지배층의 테마파크가 돼버린 문명 탓입니다.


인류 대다수를 우울로 몰아 살殺처분하려는 야심찬 기획은 역사상 최초로 금융제국주의를 창건한 미국의 지구 식민화 전략의 일부이자 결과입니다. 문명이 제국의 발아래서 수탈의 마름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인간이 인간이려면 의당 이 문명을 거절해야 합니다. 이 문명을 거절하려면 무엇보다 이 문명의 사유체계를 거부해야 합니다. 이 문명의 사유체계를 거부하려면 이 문명의 목록inventory어語를 내다버려야 합니다. 이 문명의 목록inventory어語를 내다버리려면 이 의문문이 필요합니다.


“왜 우리는 늘 동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자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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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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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사회가 병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울증은 개인, 그리고 개인적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닙니다.·······우울증은 사회가 병든 것입니다.

  의학은, 그래서 사회학입니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을 때 어떤 개인이 건강하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함정을 안고 있는 말입니다. 사회적 소외와 생물학적 소외는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의 우울증 발병률이 현저히 높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2008년 초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울장애를 1년 동안 한 차례라도 경험하는 비율이 5년 새 껑충 뛰었다. 우울장애는 특히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쉽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 양극화’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가 우려된다.

·······연구팀은 “지난 5년 간 40~50대 중년 남성과 20대 남녀에게서 주요우울장애가 증가했다”며 “무직, 저소득층, 이혼·별거·사별 등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위험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2001년과 비교했을 때는 저소득층과 남성의 유병률 증가가 뚜렷했다. 연구팀은 200만원 미만의 수입을 가진 계층에서 우울증의 위험률이 다른 소득 계층보다 높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땅에서 건강하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 사회적 관점을 확립해야 하는 연유가 있습니다.·······우울증과 그 치료에 대한 올바른 사회윤리를 바탕으로 국민보건의료체계는 처음부터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더 치명적으로 노출되는 일을 막아야 함은 물론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에서 소외되는 일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97-99쪽)


이제는 점입가경이란 말도 더는 쓸 수 없는 언어도단 지경에 다다른 지 오래건만 여전히 통치의 정점에서는 매번 자체 기록을 갱신하는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어 실로 탄식무인지경의 아사리 판인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최고 헌법기관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책상을 여러 번 내려치며 화를 냈다는 보도가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체 나라이기는 한 것일까요? 바로 이런 사이비 국가의 정치경제학적 난맥이 사회 전체를 우울로 몰고 갑니다. 아니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전체가 우울증입니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대한 최초의 국가적 접근은 매우 기만적이고 음모적입니다. 2월 26일 아침 신문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정부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2016~2020년)을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1차 의료기관에서 우울증 등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자살자의 28.1%(2015년 심리부검 결과)가 사망 전에 복통이나 수면곤란 등으로 1차 의료기관을 방문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동네 의원에서도 정신질환이 있는지를 검사하고 진단할 수 있도록 선별검사 도구를 개발할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전국 224곳의 지역별 정신건강증진센터에 ‘마음건강 주치의’(정신과 전문의)를 배치해 정신질환을 조기에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정신과 외래진료의 본인부담률도 30~60%에서 20%로 낮아진다. 질환이 나타나는 초기에 집중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취지다. 또 상담료 수가를 올려서 심층치료를 활성화하도록 하고 비급여 정신요법,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이 확대된다.

정부는 또 올해 안에 ‘정신질환 차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신과 진료 기록으로 민간보험 가입에 차별을 받는 등 불합리한 문제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중독에 대한 개념을 의학적으로 정립하고 질병코드 신설을 추진하는 한편,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하는 등 자살예방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한겨레신문)


얼핏 보면 정부가 국민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하여 복지 차원까지 고려한 체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행간에 숨겨진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대책’은 토건적 발상에 근거를 둔 일종의 ‘사업’입니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유발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대한 검토와 예방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 증거입니다.


동네 의원에서 쉽게 진단 받을 수 있고, 본인 부담률을 낮추는 것이 접근을 쉽게 하려는 대책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신장애자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상담료 수가를 올려서 심층치료를 활성화하고 비급여 정신요법,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그 무엇보다 이 대책의 토건 사업적 성격은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중독에 대한 개념을 의학적으로 정립하고 질병코드 신설을 추진한다는 부분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동안 강박적으로 ‘중독법’ 제정을 추진해온 집권세력이 방향 바꾸어 또 다시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14년 이 문제에 관해 제가 쓴 글을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를 달군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중독법안 논쟁이었습니다. 논쟁의 쌍끌이였던 두 법안의 이름은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대표 발의자: 신의진)>(이하 중독법), <인터넷게임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표 발의자: 손인춘)>(이하 지원법)입니다.·······


지원법의 핵심은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돈을 걷어 예방·관리 및 치료 경비에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국가에서 치료비용을 부담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뒤에서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아니 그 돈으로 곳간을 채우려는 모종 이익집단의 수익창출 마케팅과 연결되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프로젝트를 이미 10년 전부터 집요하게 추진해왔습니다. 그들은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의 도덕성을 공격하여 돈을 뜯어내려 합니다. 실제로 중독법 대표발의자인 국회의원이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 대표에게 ‘아이들 중독시켜 번 돈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은폐하기 위해 곳간을 채워주기 바라는 상대방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정신과전문의, 그것도 소아정신과전문의라니....... 그리고 그 배후에 한국중독의학회가 있습니다. 이 법안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집단으로 숙원사업 운운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바로 이런 부류의 의자들이 의학과 의료가 맞닥뜨린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들은 중독과 관련된 각종 기관의 요직과 자금에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중독된 아이들 살리려 한다는 명분 뒤에 작동하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종교 이 법안 통과를 위해 개신교 단체가 적극 가담하고 있습니다. 의 토건적, 경찰적, 수탈적 시스템의 마름 노릇으로 알량한 자리와 돈을 차지하려 드는 치졸한 작태입니다.


더 무서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중독법 제안 이유서에 보면 현재 치료 대상을 333만 명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법 제2조는 중독유발 물질에 ‘인터넷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라는 포괄적 규정을 둠으로써 대상을 무한히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SNS, 예컨대 트위터도 언제든 중독유발 물질 규정이 가능합니다. 사실 그들의 주된 의도가 거기를 향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결국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이 법의 관리(!) 대상이 되고 치료를 가장한 일련의 해소 (중독법과 매우 밀접한 관련법인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0조의 6 제1항에 명시된 용어입니다.)조치 아래 묶여야만 합니다. 가히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세상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제 치료 문제입니다. 의학치료와 의학외적치료가 총동원될 테지요. 의학외적치료는 필경 상담을 가장한 강제적 ‘정신교육’이 핵심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령 청소년의 경우, 학교에 전담교사가 배치되는 것입니다(지원법 제22조). 이런 사이비 치료행위보다 더 가공할 치료가 화학약물 투여입니다. 실제 정신과의사들은 시간 대비, 돈 안 되는 상담이나 교육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약물처방을 독점할 것입니다. 실로 막대한 숫자의 환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법의 비호까지 받아가며 ‘약장사’를 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숙원사업이 아니겠습니까.·······(『인문과 한의학, 치료로 만나다』129-134쪽)


끔찍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하는 등 자살예방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대목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로 어떻게 자살을 예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보다 먼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예민한 반응일까요?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국민의 머릿속까지 뒤지겠다는 발상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건강 종합대책이라는 말을 전유함으로써 국민을 대량으로 정신장애자로 만들어 관리·통제하려는 거대한 토건 사업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월호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위장된 제노사이드임에 틀림없습니다. 불의한 정치로 국가적 우울증이라는 토건을 일으키고, 속임수 행정으로 국가적 우울증 예방·치료라는 토건을 다시 일으켜 마무리하는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의 사업수완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울증은 잘못된 정치가 만들어낸 정치 병입니다. 정치적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의학은 정치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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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우울증, 인생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은 한 인간이 외부 환경과 더불어 형성해 온 삶의 과정 자체가 병든 것입니다.·······우울증은 그 어떤 병보다도 실생활의 곡절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차별과 학대, 폭력과 외상trauma, 과도한 부담과 실패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숱한 사건들이 우울증의 뼈와 살입니다.

  이런 경험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과정 전반에서 자기 모독과 무의미성에 사로잡힐 때 이를 일러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에서 떼어내 뇌가 어쩌고, 신경이 어쩌고 하는 말은 가소로운 환원주의일 뿐입니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는 기술자로 고착되고 맙니다. 의사는 환자의 인생 전체의 디자인에 동참하는 존재이지 기계적으로 가위질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대 의사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95-96쪽)


기조 우울증이라는 말은 공인된 의학용어가 아닙니다. 제가 임상 경험과 통찰에 터하여 세운 개념으로서,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우울증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삶 자체가 우울증 상태인 채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병리가 거의 인격화된 상태라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더 심각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착하다·얌전하다·과묵하다·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따위의 수사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심지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기조 우울증에서 삶과 병을 분리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곧 인생을 바꾸는 일입니다.


실제 임상에서 기조 우울증 치료는 전방위·전천후 숙론熟論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자기부정의 증후가 도처에 흩뿌려져 있고 일거수일투족이 상실·차별·폭력·실패의 상처로 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처음 본 사람과 인사 나누기부터 크게는 공적 어젠다에 참여하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생사를 함께 깊이 논의해야 합니다. 병을 삶과 분리할 수 없듯, 치유 또한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본인보다 주위 사람, 그러니까 백발백중 원인을 제공했을 가족, 특히 부모가 훨씬 더 많이 다그치듯 묻는 것은 ‘언제 완치되느냐?’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짓이겨 병을 키워놓고는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왜 이렇게 치료가 되지 않느냐?’고 윽박지릅니다. 이치상 무엇이든 망가뜨리기는 쉬워도 고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럼에도 돈을 입에 올리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의 탐욕 때문에 자녀를 병들게 한 부모가 치료에조차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제법 오래 전 부모의 폭력으로 삶의 고갱이가 으깨져 기조 우울증 앓는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치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료비 문제로 압박을 가하던 부모는 급기야 어느 날 치료비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일상생활이 잘 안 되는 사회불안도 겹쳐 있었기에 그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끝내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보다 허덕지덕 벌어서 치료 받으러 오는 그의 모습이 훨씬 더 제 마음을 맑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그에게 거의 매번 밥을 샀습니다. 그 식사 자리가 더 깊은 숙론의 자리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숙론의 자리를 가진 뒤 밤 이슥히 홀로 돌아갈 때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픈 사람과 인생을 함께 말하지 않고도 돈을 많이 가져가는 잘나가는 의사醫師이기보다 내 돈을 들여서라도 아픈 사람과 인생을 함께 말하는 가난한 의자醫者로 살아가는 것이 내 천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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