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20장 네 번째 문단입니다.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知斯三者 則知所以修身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자왈 호학근호지 역행근호인 지치근호용. 지사삼자 즉지소이수신 지소이수신 즉지소이치인 지소이치인 즉지소이치천하국가의.

凡爲天下國家 有九經 曰 修身也 尊賢也 親親也 敬大臣也 體群臣也 子庶民也 來百工也 柔遠人也 懷諸候也.

범위천하국가 유구경 왈 수신야 존현야 친친야 경대신야 체군신야 자서민야 내백공야 유원인야 회제후야.

修身則道立 尊賢則不惑 親親則諸父昆弟 不怨 敬大臣則不眩 體群臣則士之報禮重 子庶民則百姓勸 來百工則財用足 柔遠人則四方歸之 懷諸侯則天下畏之.

수신즉도립 존현즉불혹 친친즉제부곤제 불원 경대신즉불현 체군신즉사지보례중 자서민즉백성권 내백공즉재용족 유원인즉사방귀지 회제후즉사방외지.

齊明盛服 非禮不動 所以修身也 去讒遠色 賤貨而貴德 所以勸賢也 尊其位 重其祿 同其好惡 所以勸親親也 官盛任使 所以勸大臣也 忠信重祿 所以勸士也 時使薄斂 所以 勸百姓也 日省月試 餼禀(廩)稱事 所以勸百工也 送往迎來 嘉善而矜不能 所以柔遠人也 繼絶世 擧廢國 治亂持危 朝聘以時 厚往而薄來 所以懷諸侯也. 凡爲天下國家有九經 所以行之者一也. 

제명성복 비례부동 소이수신야 거참원색 천화이귀덕 소이권현야 존기위 중기록 동기호오 소이권친친야 관성임사 소이권대신야 충신중록 소이권사야 시사박렴 소이 권백성야 일성월시 기품(늠)칭사 소이권백공야 송왕영래 가선이금불능 소이유원인야 계절세 거폐국 치란지위 조빙이시 후왕이박래 소이회제후야. 범위천하국가유구경 소이행지자일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知에 가깝고 실천을 힘씀은 인仁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몸을 닦는 방법을 알며, 몸을 닦는 방법을 알면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며,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안다.

무릇 천하국가를 다스림에 아홉 가지 원칙이 있으니 몸을 닦음과, 어진 사람을 존경하는 것과, 친족과 하나가 되는 것과, 대신을 공경하는 것과, 여러 신하를 내 몸처럼 여기는 것과, 서민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것과, 백공들을 오게 하는 것과, 먼데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과, 제후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을 말한다.

몸을 닦으면 곧 방법이 생기고, 어진 사람을 존경하면 미혹되지 않으며, 친족과 하나가 되면 제부諸父와 형제가 원망하지 않고,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으며, 여러 신하들을 내 몸처럼 여기면 선비들의 보례報禮가 중후하게 되고, 서민들을 자식처럼 여기면 백성들이 분발하게 되며, 백공들을 오게 하면 재물을 쓰는 것이 풍족해지고, 먼데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사방 사람들이 돌아오며, 제후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면 천하가 두려워하게 된다.

재계하고 깨끗이 하며 정복을 갖추어 입고서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몸을 닦는 수단이고, 아첨하는 자를 제거하고 여색女色을 멀리하며 재물을 천하게 생각하고 덕德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현자賢者를 권면하는 수단이며, 그 지위를 높이고 그 녹祿을 무겁게 해주며 그 호오好惡를 같이 하는 것은 친족과 하나 됨을 권면하는 수단이고, 관직의 수가 많아져 지휘권을 맡기는 것은 대신을 권면하는 수단이며, 충심忠心으로 대하고 믿으며 녹을 많이 주는 것은 사士를 권면하는 수단이고, 부역을 때맞게 하고 세금 걷는 것을 줄이는 것은 백성을 권면하는 수단이며, 날로 살피고 달로 시험하여 보수를 일의 능력에 맞게 하는 것은 백공을 권면하는 수단이며, 가는 이를 보내고 오는 이를 맞이하며 착한 것을 칭찬하고 잘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먼데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수단이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고 망하는 나라를 일으켜주며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고 위태로운 것을 붙잡아주며 조회[조朝]와 초빙[빙聘]을 때에 맞게 하며, 보내는 것을 많이 하고 받는 것을 적게 하는 것은 제후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수단이다.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아홉 가지 원칙이 있으나 그것을 행하는 수단은 하나이다.

 

2. 다섯 가지의 보편적인 도와 세 가지 보편적인 덕을 거쳐 아홉 가지 다스림의 원칙을 말하는 데까지 왔습니다. 길고 상세한 언급이 있으나 일일이 풀어 설명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봉건시대 최상위 정치 지도자를 대상으로 강론한 듯도 한 느낌을 주는 내용이라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성질의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히려 강조할 것은 수신修身으로 풀어서 수신으로 매듭지은 사실입니다.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일 또한 다함없이 실천의 결기를 닦는 평범한 일에서 비롯한다는 내용입니다. 부단히 깨어 있어 찰나 찰나를 챙기는 닦음, 그 미세한 통찰을 소홀히 하고서는 천하와 국가의 다스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3. 적어도 한 사회의 통치자 위치에 서는 꿈을 지닌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사적 실천에서 떳떳함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회의 어두움을 틈타 온갖 부조리에 발을 담그며 이득을 누려 왔다면 통치자 자리에 앉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통치자 자리조차 이득의 하나로 여기는 판국이라 이런 말도 우습습니다만 사적 이익 추구 능력을 공적 통치 능력과 혼동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런 혼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수신이란 말의 향기가 어느 순간 돌연, 개나 줘버릴 쓸모없는 것으로 “대놓고” 바뀐 것은 아무래도 이명박이란 희대의 인물이 대통령이 된 그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전과14범이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의 선거를 통해 통치자가 된 순간 공화국은 범죄자의 개인 금고가 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한 번 그렇게 망가지자 걷잡을 수 없이 수신의 기준은 허깨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웬만한 범법행위는 아예 자격요건으로 여겨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소시민의 입에서 “큰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대범한 소리가 흘러나오니 수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현재의 통치 집단은 ‘대놓고’에다 ‘함부로’를 더 얹어 대한민국 사회를 수신 묻지 않는 막장으로 쑤셔 박고 있습니다.



어린 국민 250명을 죽여 놓고 장례비용 아끼라는 깨알 같은 지시를 내린 대통령이 취임 후 2년 동안 무려 120여벌의 새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이 참담한 수신 불문의 나라에서 중용 운운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닐는지요. 사회 변혁의 에너지로 전화되지 못하는 인문적 사유를 중언부언 떠들 게 아니라 단 한 마디라도 사실과 증거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가야 하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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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어제는 청계천에서 인왕산까지 14km가량 걸었다중간에 잠시 관훈동에 들러 '중용' 국시 먹은 시간 빼고는 줄곧 걸었다


1. 사기꾼이 가짜로 만들어놓은 냇물이건만 물고기가 살아 돌아다니니 세상에왜가리가 납시었다자연은 인간의 선악 문제와 아랑곳없이 무심히 생명 길을 열어간다천지불인의  맥락일 터이다.



2. 겸재가 뮤즈와 노닐던 인왕산 자락사람 눈길 닿지 않는 곳에 아리잠직한 아카시아가 피어 있다오월이구나인왕산 오월은 광주 오월을 알지 못한다인왕산과 광주 모두를 아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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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우울증을 전 지구적 문제라고 전제할 경우 이는 비단 인간 생명의 차원에만 국한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미 인간의 지나친 진화와 번성이 몰고 온 지구 생태계 전반의 위기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과 인간의 우울증 사이엔 분명한 함수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거침없는 진화를 통해 자연을 대상화, 타자화한 결과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인간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이 잔혹한 문명의 혜택을 독점, 향유하는 헤게모니 블록은 자기 단일성의 미망에 빠진 분열증 집단입니다. 그들은 나머지 인간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기를 거절합니다.

  이 광포한 분열증에 대한 경고가 바로 우울증입니다. 왜냐하면 우울증은 반성 불능의 자기단일성에 집착하는 분열증 집단의 먹잇감에게 씌워진 굴레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은 이 먹잇감이 다른 존재, 즉 자기 포식자에 대한 공감, 배려, 보살핌으로 자신의 생명을 잠식해 들어가는 병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영혼은 고요히 흐르는 깊은 강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투명한 통찰력을 지녔으나 따스합니다. 그들의 감각은 눈부시나 각질이 말랑말랑합니다. 하여 이 잔인한 문명 안에서의 삶은 백전백패입니다. 이 슬프고도 장엄한 패배를 온 영혼에 지닌 존재들이 저 승리자들과 자연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저들이 죽어가면서 자연을 향한 분열증 집단의 돌진을 막습니다. 그들은 우울증이라는 천형을 덮어쓰고 생명의 연속성, 연대성을 절규하고 있습니다. 분열증적 자기단일성으로 승리한 문명의 적자, 저 비정한 ‘1%’가 끝내 이 선한 영혼, ‘등경(등잔걸이)을 말 아래 두는’ 생명들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울증은 인류의 파멸을 막기 위해 분열증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 핀 슬프고도 아름다운 꽃입니다. 인류가 이 사실에 귀를 기울이고 총력을 기울여 생명의 연속성, 연대성을 복원한다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오래토록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웅숭깊은 문명비판이 구원의 무지개로 뜨기를.(305-306쪽)


상담을 하다 보면 이른바 보호자, 특히 어머니가 치료를 가로막거나 망쳐놓는 일이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상담하는 의사를 뒤에서 조종하려 듭니다. 자신이 아이를 병들게 했다는 각성은 없습니다. 도리어 의사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함으로써 아이를 더 말 잘 듣는 기계로 만들겠다는 전략만 있을 뿐입니다.


어제도 한 어머니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딸의 상태가 어떠냐고 건성으로 물은 뒤, 딸이 더욱 악화된 것 같다고 대뜸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전혀 말이 안 되는 엉터리 소리를 해대며 덤빈다고 근거를 댔습니다. 딸이 하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못을 박았습니다. 필경 그 딸을 이런 방식으로 키웠을 것입니다.


저는 그 어머니에게 또박또박 냉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따님은 분명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결코 악화된 것이 아닙니다. 따님의 말은 엉터리가 아닙니다. 설혹 엉터리라 해도 그 말을 할 수 있게 놓아두셔야만 합니다. 어머니께서 차후 해주실 일은 그 어떤 평가도 간섭도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시는 것 하나뿐입니다.


그 어머니는 단절적으로 성공하려고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온 전형입니다. 현재 그가 누리는 부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 과정에는 반드시 희생양이 필요합니다. 마침 여리고 감수성 풍부한 딸이 있었습니다. 손쉽게 그 딸은 연속성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 딸은 자기 자신을 퍼내 남에게 주며 거듭거듭 비어갔습니다.


비고 또 비어 마침내 텅 빈 순간 아프디아픈 깨달음이 들이닥쳤습니다. 우울증입니다. 자신의 우울증을 알아차리고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 딸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도 병들어 있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딸은 아픈 마음을 이끌고 병의 물길을 막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도 아이도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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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0장 세 번째 문단입니다.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천하지달도오 소이행지자삼. 

曰 君臣也 父子也 夫婦也 兄弟也 朋友之交也 五者天下之達道也.

왈 군신야 부자야 부부야 형제야 붕우지교야 오자천하지달도야. 

知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 

지인용삼지 천하지달덕야 소이행지자일야.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一也.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일야.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一也.

혹안이행지 혹이이행지 혹면강이행지 급기성공일야.


천하의 달도는 다섯 가지가 있고 이를 행하는 소이는 세 가지가 있다.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붕우의 사귐이라고 하는 것 다섯 가지가 천하의 달도이다. 지, 인, 용 세 가지는 천하의 달덕이니 이를 행하는 소이는 한 가지이다. 혹 나면서 알며 혹 배워서 알고 혹 고심해서 알지만 안다는 점에서 보면 같은 것이다. 혹 편안하게 행하며 혹 이롭게 여겨서 행하며 혹 애쓰고 억지로 힘써서 행하지만 그 공을 이루는 점에서 보면 같은 것이다.

 

2. 세상에 두루 통하는 보편적 가치로서 도가 펼쳐지는 인간관계는 가족에서 출발하여 가까운 이웃을 거쳐 사회정치적인 큰 지평까지 아우릅니다. 각각 나타나는 양상은 다르지만 근본에서 일치하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정치적 인간관계의 이치 또한 “평범함[용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중中].”

 

이러한 도리를 바로 알아[지知] 어질고[인仁] 날래게[용勇] 실천하는 것이 세상에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덕입니다. 세 가지를 따로 나누어 각각 덕이라 이름 하는 것, 그리고 다시 둘로 나누어 지와 행을 논하는 것이 오래된 명사적 독법 전통이지만 중용의 실천적 맥락을 놓치는 안일한 해석입니다.

 

아는 것도 실천입니다. 실천도 아는 것입니다. 실천 없는 지식은 처음부터 지식이 아닙니다. 깨달음 없는 실천은 처음부터 실천이 아닙니다. 적어도 중용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지知는 행지行知이며 행行은 지행知行입니다. 실천 없는 명상적, 관념적 중용에는 중도 없고 용도 없습니다. 중용의 외양을 취하더라도 알아차림 없는 동작이라면 가치로서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처한 상황이 있는 까닭에  완벽하지 않은 수준에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이므로 지니는 현실적 한계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닦아야[수修]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수신修身입니다. 실천 자체를 부단히 최고의 경지로 밀어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허나 최고의 경지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므로 자신의 실천이, 아니 자신 자체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확인하는 것이 수신의 핵심입니다.

 

결국 이 지점에서도 동사적 독법의 필요성이 나타납니다. 반복되는 “일야一也”는 “오직 그렇게 다함없이 닦아 나아가야 한다.”는 역동적 격려요 요청입니다.


3. 북아메리카 원주민 호피족은 연평균 강우량이 200mm 정도인 척박한 애리조나에서 농사를 지으며 삽니다. 비는 절대적 필요이므로 비가 오지 않으면 그들은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100% 비가 내립니다. 그토록 영험한 까닭은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 동안 익히 들어온 ‘인디언 기우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행위에 대한 허무개그 식 비아냥거림이 들어 있는 한 이 이야기는 진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비가 올 것이라 믿는 긍정적인 마음과 인내를 제시하며 성공하는 삶의 비결을 말하는 자기계발류의 해석은 더욱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심지어 인식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윤리적 의지로 읽는 것조차 진실에서 벗어난 것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개신교를 포함한 통속적 종교의 기도 관념을 투영한 왜곡된 해석일 뿐입니다. 그들은 먼저 진심으로 모든 조건에 감사하는 기도를 한답니다. 그 감사 대상에 끔찍한 가뭄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입니다. 바로 여기가 여느 기도나 긍정심리학과 첫 번째 다른 점입니다.


그 다음, 그들은 여러 가지 감사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 비를 고요히 ‘선택’한답니다. 바로 여기가 여느 기도나 긍정심리학과 두 번째 다른 점입니다. 이 선택은 필요에서 멈춰섭니다. 탐욕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그들은 선택한 비를 온몸으로, 오감으로 느낀답니다. 바로 여기가 여느 기도나 긍정심리학과 세 번째 다른 점입니다. 이성으로 의지로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가 오는 드넓은 조건을 향하여 자신의 모든 생명감각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비굴하게 애걸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답니다. 바로 여기가 여느 기도나 긍정심리학과 네 번째 다른 점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사사로운 이익의 추구가 아닙니다. 그들의 기도는 이웃과 민족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아픈 사람, 그리고 약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실로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가 어찌 당당하지 못할 것입니까. 이 당당한 기도가 어찌 인식과 실천을 하나 되게 하지 못 할 것입니까.


4. 세월호사건 이후 어느 시점부터인가 기도를 시작하여 이제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차고 어두운 바다에 버려진 이백 쉰 명의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함으로써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그 영혼들을 위해, 아니 그 영혼을 거룩한 영으로 모셔 그들에게 기도합니다. 그들이 이 실재 역사에 함께하기를, 그 함께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가 민주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기를, 버려진 사람이 끝내 버린 자까지 구원해내는 대동 세상 오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 기도가 앎과 삶을 하나로 이어주는 인력인 것을 느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새삼 정색하고 점검합니다. 죽임의 조건까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필요를 넘어서지 않고 있는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온 영혼으로, 오감으로 느끼고 있는가? 당당하게 두려움을 꿰뚫어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과 대답이 영글어가는 과정에서 중용은 중용이 되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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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 모두가 우울증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울증은 그냥 없애기만 하면 되는 그런 질병이 아닙니다. 모든 병이 사실은 그렇거니와 우울증 역시 진실의 전령입니다. 우리 모두 무엇엔가 홀려 허깨비로서 삶을 살고 있으니 제발 좀 돌아보라고 외치는 ‘광야의 예언자’입니다. 썩은 가치에 매몰되어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는 가차 없는 혁명의 소리입니다.

  ·······우울증은 우울한 삶을 가리킵니다. 다양한 증상들은 각기 우울한 삶의 에피소드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우울한 삶을 혁파하라고 절규하는 영혼의 외침입니다. 우울증을 통해 슬픔에, 수치심에, 무기력에, 죄의식에 중독된 자신의 참혹한 모습을 직시할 수만 있다면 우울증이야말로 실로 찬란한 희망입니다.

  우울증이 축복이자 희망이 되어가는 도정에서 우리가 아프게 배우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성’입니다. 비현실이 현실을 비틀어버린 ‘비극’이 우울증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눈, 본 그대로를 살 줄 아는 몸, 산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이런 도저한 현실성에 깃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울의 그림자와 아름답게 결별합니다.

  현실성의 요체는 생명의 한계성입니다. 완전한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슬픕니다. 그 슬픔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우리를 간절하게, 사무치게 살도록 하는 힘입니다. 간절함을, 사무침을 각성하라고 간절하게, 사무치게 부르는 음성이 바로 우울증입니다. 불완전함을 보듬어 안고 죽음을 향해 가는, 그러나 꼭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아니 한 번이어서 지극히 아름다운 인생을 사랑한다면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벗이여, 지. 금. 여. 기. 가 비로소 참된 자기 인생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의 시공간입니다. 우울증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대의 삶을 고요히 돌아보십시오.(299-300쪽)




1


반쪽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반쪽 어둠을 찾아 영접하는 것이다.


영혼은 본래부터 완전하였다.


2


영혼의 혈거


그 바닥엔


우주먼지로 지어진 밥상 하나


그 위엔


먼지의 밥 한 그릇 숟가락 두 개


바라보며 나누어 먹으며 가끔 입가를 닦아주며



_<소울메이트> 전문 (김선우의 『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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