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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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합니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 이가 혹 있거든 대답하지 마라. 아무리 말해도 모르거나 이미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도 언어적 정의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그윽하고 섬세한 경험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정색하고 저렇게 서늘한 자세를 드러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어 넘어 있는 실재의 지식도 느끼고 알아차리지 않은 채로 잠겨 있는 한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니까 부분의 오류를 무릅쓰고 일일이 하나씩 설명하여 정의를 구성해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수 있습니다.


둘의 차이는 침습 당했을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침습은 구체적으로 가시적으로 파고듭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단박에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설혹 한순간에 무너진 사랑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모든 것을 침습 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침습 당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참으로 그윽하고 섬세한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라면 하나하나 느끼고 알아차리는 각성이 있어야 그런 착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 그러나 부분을 모른 채 전체를 아는 법은 없습니다. 흔히 명상·참선 따위로써 전체를 안다고 하지만 다시없는 착각입니다. 무엇보다 사랑은 명상·참선의 범주가 아닙니다. 하물며 어찌 그 대상이겠습니까.


사랑은 소소하게 닿고 미미하게 비빕니다. 몸으로 관통하고 흡수합니다. 격렬하게 아픕니다. 박탈감 없이 주고 미안함 없이 받습니다. 내가 죽어 네가 살고 네가 죽어 내가 삽니다. 내가 너고 네가 납니다. 올마다 결마다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사랑일진대 사랑은 물샐틈없는 과학입니다. 미셸 오당은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에 힘입어,


우리가 말합니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 이가 혹 있거든 대답해라. 사랑은 그 물음이 발화되기 시작한 바로 그 소소한 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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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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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른 아침, 오십이 채 되지 않은 애제자 하나에게 말기종양이란 객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대학생일 때 만나 이십오 년 넘게 인연 지어온 사이인 만큼 새삼 무슨 생각이 드는 것도, 무슨 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습니다.


“쌤, 제가 본질적 예수쟁이잖아요. 마음 편합니다.”


저는 살짝 바꾸어 맞장구 쳐주었습니다.


“그래, 너 근본적 예수쟁이지.”


애써 예리하게 서로 차이 낼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언어 감각에서 ‘본질’은 타고난 숙명의 냄새가 나고 ‘근본’은 천명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의 냄새가 나기에 그리 바꾼 것입니다. 하여 그의 음성에 공현을 일으키는 제 음성에 찰나마다 결절이 맺혔습니다.


스스로 인정하듯 그는 무한히 참고 견디고 받아들이는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지 않자 몸에 십자가가 지워진 것입니다. 지난 삶의 빛으로 오늘 그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이는 비단 개인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불에 덴 듯 깨닫게 됩니다. 우리사회 전반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한히 협박하고 속이고 때리고 빼앗고 죽이는 권력을 무한히 참고 견디고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백성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입니까.


제대로 된 눈으로 지금 현실을 보면 우리사회는 물론 인류사회 전체가 어떤 근본적 지점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권력과 자본, 그리고 종교가 공통적인 광기에 휩싸여 서로 부추기며 달리고 있습니다. 이 질주를 멈추게 하려면 저들의 통속한 강력과는 전혀 다른 공감의 약력을 써야 합니다. 산업 문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통하는 단도직입의 근본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장 급진적입니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딱딱하고 뻣뻣하고 크고 분명하지 않습니다. 말랑말랑하고 낭창낭창하고 작고 모호합니다. 말랑말랑하고 낭창낭창하고 작고 모호한 감각으로 말로 몸으로 마음으로 삶으로 연대로 하는 혁명이 농투성이 혁명이며 어미 혁명입니다. 소미심심小微沁心의 혁명입니다.


농투성이 혁명은 좁쌀 한 알, 굼벵이 한 마리 , 아니 흙 한 줌의 혁명입니다. 어미 혁명은 ‘다른 세상’의 욕 한 마디, 옥시토신 한 방울, 아기 눈동자 하나의 혁명입니다. 이것이 장엄한 하느님 나라입니다. 아미타 정토입니다. 소미심심小微沁心의 영성 없이는 오지 않을 꿈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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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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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궁극적인 최우선 과제는·······무엇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의 도래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그것은 어느 정도의 인류통일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서 그는 사랑의 에너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146-147쪽)


산업 출산 문명을 인류가 병든 상태라고 볼 때 그것의 혁파는 의당 치유가 될 것입니다. 치유된 출산으로 “다른 유형의 인간의 도래”가 가능하다면 그 인간은 “사랑의 에너지의 주인”으로서 “인류통일”이라는 지평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루는 인류통일이야말로 인류가 자신과 자연에게 다해야 할 마지막 도리입니다. 탐욕의 정치가 선동해온 유구한 통일 산업은 다만 토건에 지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출산의 치유는 출산 시스템 자체를 전혀 다른 상태로 바꿔내는 일이 핵심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잘못된 출산으로 이미 병들어 있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죽임증후군이라 명명했듯 그 치유가 대단히 어려운 일임은 이미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그 동안 제가 만난 마음병 가운데 치유에 실패한 경우는 아마도 대부분 산업 출산에서 비롯한 죽임증후군이었을 것입니다.


기억과 감정을 내러티브로 구성해 치유하는 상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심층 상담을 하다 보면 첫돌 이전 기억, 심지어 태아 때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예외적 상황입니다. 언어적 표현이 불가능한 ‘시생대’ 상처는 기존 패러다임의 치유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테면 미셸 오당이 말하는 ‘다른 세계’에 가 닿아야 치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고백컨대 이것이 저의 최근 화두입니다. 아직 “유레카!”의 트임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최면 따위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소소하고 미미한, 모호해서 혼돈인, 저 가뭇없는 시공으로 들어가게 도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백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저 자신부터 소미심심小微沁心의 극진함 속으로 스미고 배이고 번져가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용맹정진. 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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