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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출산의 통증과 모성애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19쪽)
얼마 전에 한 연구팀이 소량의 술에 속성 항우울제와 생화학적 경로를 공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물론 우울증 치료법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동안 서양의학이 술에게 무거운 죄를 뒤집어씌워온 전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제에 이치를 좇아 면밀히 이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밥이나 빵도 과식하면 병의 원인이 됩니다. 그렇지만 밥이나 빵을 술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거의 대부분의 약도 독입니다. 과량을 복용하면 죽음에까지 이릅니다. 한의학에서 명약으로 일컬어지는 인삼·녹용도 매한가지입니다. 하필 술에게 온갖 병의 원흉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은 과학 외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술과 같은 누명을 쓴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증입니다. 맥락은 다르되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학 전체가 진통의학이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통증 자체를 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통증을 정신적 괴로움에 묶어서 생각하는 통속한 오류를 악용하여 진통의 공격을 더욱 가열 차게 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통증과 고통은 다른 것입니다. 후자에는 통증은 괴로운 것이라는 오류가 담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통을 고와 통의 기계적 합성어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산의 고통이라는 표현도 동일합니다. 정녕 엄마가 아기를 낳는 일을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받아들일까요? 통痛이 곧 고苦일까요? 뭔가 끼어들어 비틀었음이 분명합니다.
통이 고라는 말은 통이 ‘나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없애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빛에 대한 어둠처럼, 아니 선에 대한 악처럼 인식하는 이분법적 서양인식론이 도구적 의료화를 부추긴 것입니다. 하여 무통을 지향하는 진통의학이 편만하게 자리 잡은 것입니다. 진통의학은 긍정심리학과 손잡고 서구문명 전체를 “마음 없는” ‘투명사회’로 만들었습니다.
마음 없다는 것은 두 가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불가피한 존재론적 통증을 관통하는 과정에서 솟아나는 사랑이 그 하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그 사랑에 터하여 빚어지는 깨달음입니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통증입니다. 무통문명의 투명사회는 인간 사회가 아닙니다. 낄낄거리며 향락에 빠진 채 꺼져가는 인두겁의 잡귀일 뿐입니다.
요즘 악귀에 빙의된 영매 하나가 쥐락펴락하는 대한민국 민낯을 시시각각 보고 있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가 속절없이 그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인데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했답니다. 그가 말한 나라는 “나와 유라”의 준말인 모양입니다. 사랑 아닌 탐욕, 깨달음 아닌 접신, 그 또한 무통의 향락에 빠진 게 아닐는지요.